전편 모음





다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다.

숨은 한참 거칠어진지 오래고, 몸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한계에 달했다.

얼마나, 걸은거지.

머리가 어지러워서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얼핏, 어두웠다 밝아지는 광경을 서너번 정도 보았으니, 사흘정도를 쉼없이 뛴 셈일까.


"허억....허어억..."


나무에 기대, 거친 숨을 몰아쉰다.

너무 힘들었다.

험지와, 오지를 뛰달리느라, 몸에 가득한 상처는 아물새도 없이 그 위에 새로운 상처가 덧대지고, 발목은 이미 여러번 삐어, 걷는것도 힘들정도로 커다랗게 부어있었다.


만신창이.

사람보다 훨씬 강하고, 튼튼한 이 몸이 아니었으면, 아마도 진작에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을 만큼, 내가 보기에도 몸의 상태는 심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뛸 수 있다.

뛸 수 없게 된다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걸을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얼마남지 않았어.

곧 끝나.

그런식으로 자기 최면에 가까운 되뇌임으로 자꾸만 쓰러지려는 몸을 가혹하게 내리쳤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쉬는 시간조차 아까워, 결국 이를 꽉 문채 다시 걸음을 옮겼다.

가까워지고 있다.

분명 느껴지고 있었다.

실의 너머에서 느껴지는 친구.

내가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는건지 실의 울림은 분명 확실하게 커져가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마치 심장처럼 맥동하는 울림이 온 몸을 내달렸다.

저 비탈의 아래.

본능에 따라, 내려가자 이내 큰 동굴이 눈에 들어왔다.


"여...여기다..."


이 안에 있다.

드디어 왔어!

미친듯이 요동치는 실의 느낌이 분명히 말해 주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스산함과 오싹함이 느껴지는, 동굴의 입구.

그 주변에는 어떤 짐승이라도 살고 있는지, 퀴퀴하면서도 역한 무언가의 체취가 코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정말 이 안에 있는 걸까.

생각보다 너무 고요하다.

동굴의 앞에는 짐승의 흔적.

도저히 사람이 살고 있어보이지는 않기에, 저절로 나는 의문이었다.


"어차피, 더 방법도 없어..."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

포기하고 돌아서기엔, 시간도, 힘도, 모든것이 부족했다.

들어가자.

굳게 결심하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찰박, 찰박.


동굴의 안은, 습하고 따뜻한지 바닥에 물같은 것이 고여있었다.

밟을때마다 들리는 소리가, 동굴의 내부를 울리고 퍼져나갔다.


찰박, 찰박.


꽤나 깊은걸까.


제법 입구와 멀어졌음에도, 아직도 동굴의 끝도, 실과 이어진 친구도 보이지 않았다.

입구의 햇빛조차 닿지 않을만큼 어둡기에, 급한대로 밝게 빛나는 꼬리를 이용했다.

코를 자극하는 점차 짙어지는 짐승냄새.

아니, 엄연히 말하면, 이미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사체의 썩은내가 동굴의 안으로 들어갈때마다 점차 심해지고 있다.


"흐읍..."


괴로울 정도로 코를 찌른다.

이제는 숨을 쉬는것조차 힘들어, 옷섶으로 코를 막았다.

악취가 너무 심해...

이 안에 내 친구가 있단 말이야?

친구는 무사한걸까?

아니면 설마...

그 날 이후로?

불안함이 떠나지 않는다.

지금 이 냄새가 죽어버린 친구에게서 나는것이 아니라고 보장할 수도 없다.

혼란스럽기만 한 머리를 억지로 흔들었다.

아직 울림은 여전하다.

아니, 이제는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듯이 쿵쾅대고 있다.

분명, 살아있을거야.

그 생각을 하며, 어느새 저 너머에 나타난 공동같은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찰박, 찰박.


"밝아..."


어두웠던 동굴의 통로와는 달리, 공동은 대낮같지는 않더라도 꽤나 밝았다.

공동 위에 박혀있는 수많은 돌들.

그 신비한 돌들이 은은한 초록빛을 내뿜으며, 아름답게 주변을 비추고 있었다.

이런 곳도 있었구나.

처음 보는 광경에, 살짝 한눈을 팔았던 걸까.


[기다리는 것도 지치던 참이었다.]


"꺄아악!"


공동의 너머, 기역자로 꺾여있는 한쪽 너머에서 머리를 울릴정도로 큰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 넘어지고 말았다.


쿵. 쿵. 쿵.


저 너머, 누군가가 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저 걸음을 내딛는 소리같은데도, 마치 지진이라도 나는 것처럼 땅이 울리고 있었다.

뭐야.

뭐가 있는거야?


미친듯이 가슴의 실이 요동친다.

내 눈에 보이는 실은, 분명 저 너머에 이어져있었다.

설마, 저것이랑...

저것이랑 이어져있다는 거는 아니겠지?

불안한 상상이 들었다.

아닐거야.

아니야.

설마, 그런....

내가, 왜...


쿵.


그것의 발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마치, 나와 같은 발이었다.


쿵.


그것의 털이 보인다.

빛바래고, 거친데다 썩어가고 있었지만 분명 나와 같은 하얀색이었다.


쿵.


그것이 그 거대한 얼굴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와 마주친 그 눈은, 아빠가 예쁘다고 칭찬했던 나와 같은 빨간색이었다.


쿵.


드디어 그것의 몸이 완전히 드러났다.

눈에 다 담지도 못할 거대한 꼬리.

다만, 그것만은 나와 달랐다.


호롱, 호로롱.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풀려버릴만큼, 무시무시한 기운을 뿌리는, 여덟개의 꼬리가 내게 향해있었다.

멍하니 그 힘에 압도당하면서도, 나는 그 것의 눈을 보았다.

기억에 있는 눈이었다.

역겨운 무언가를 보는 듯한, 눈.

혐오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듯, 증오로 이글거리는 그 눈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아, 아아...

이런게 어딨어.

허무하게 고개를 떨구자, 가슴에 보이는 검은 실이 보인다.

그 실은 끔찍하게도, 눈 앞의 괴물의 가슴에 이어져있었다.


[어이가 없군, 네 년 그 몰골은 무어냐? 아무리, 썩어가는 살덩이에 불과하다 한들, 이 요우카가 그리 만만히 보이더냐?]


자신을 요우카라 밝히는 거대한 여우.

언젠가, 아빠가 얘기해주던, 너무나 사악하고 잔인해서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던 요괴들의 왕.

그리고, 태어나자마자 내다버렸던 나의 친어미.

대요호 요우카(妖花)가 이를 으르렁 거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저 친구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도움을 주는 착한 친구라고만 생각했는데.


도와주던게 내 어미라니.


진작에 끊어진 인연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왜 이어져 있었던 거야.

이미 버린 자식이면서.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요우카..."


어째서 날 버렸나요.


"요우카...!"


...그렇다면 왜 날 낳은거야.


"왜...왜, 왜 왜 왜! 왜! 왜에!!!!!"


절망이 분노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공동이 떠나가라, 목이 찢어져라, 외치며 악에 받쳐 소리쳤다.


왜 버렸어.

왜 날 버렸어!

내가 뭘 잘못한거야!


[잘못? 네가 잘못한 건 없다.]


화를 내던 내가 황망할정도로, 심드렁하고, 무신경한 대답이었다.

내가 잘못한게 없다고...

그럼, 정말 아무런 정조차 못 느꼈다는 거야...?

마치, 상관없는 남을 대하듯.

요우카가 내뱉는 말에는 아무런 감정도, 일말의 연민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설마, 네 년은 정말 내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이라 생각하는게냐?]

 

뭐라고?


[착각하지마라. 네 년은 내 자식이 아니다. 그래, 염엄히 따지면 내 분신과 가깝다고 해야겠지.]


요우카는 이내 꼬리들을 활짝 펼쳐보이며 내 앞에 그것들을 보였다.


[보이느냐, 맡아지느냐? 이 추악하게 썩어가는 몸이 보이느냐? 이 것을 봐라!]


꼬리들의 끝.

본래 있어야 할 자리에, 하나의 꼬리만이 없었다.

그렇다면, 원래, 요우카의 꼬리는 아홉 개였다는 말이 된다.

그 생각에 대답해주듯, 요우카의 말이 이어졌다.


[그 증오스러운 신선이, 생명을 관장하는 꼬리를 떼어 만든것이 네 년이다. 알겠느냐? 네 년은 본래 나의 꼬리에 불과한 존재란 말이다.]


...분신이라고.

꼬리에 불과하다고...?



머리가 멍했다.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것 조차도.

아빠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조차도, 거짓말로 만드는 말이었다.

내가 가짜라는 거잖아.



그냥, 모조품이라는 거잖아...?


[네 년은 아느냐? 그 신선에게 꼬리를 뺏기고, 마치 보란듯이 내 아래에서 너를 탄생시킬 때의 내 분노를 아느냐. 몇천, 몇만 갈래로 찢어죽이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집어삼킨다면, 다시금 힘을 되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그래서 그런 눈으로 날 본거야?

멍하니, 증오를 마주본다.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하고, 끔찍할정도로 깊은 분노였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해칠것을 대비해 네 몸에 축복까지 남겼다. 찢어죽일 놈들,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놈들...네 년을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죽어버리는 것은 분명 나였을 테지...]


살려두었던 것은, 죽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말을 내뱉으며 요우카는, 어째서 그 때 죽지 않았냐며 나를 원망했다.


[네 년은 그 때 그냥 죽었어야 했다. 그 추위에 얼어 죽어버렸어야 했다! 그런데...그런데, 그 멍청하고 하찮은 미물따위가, 네 년을 살렸지...]


미물.

아빠를....말하고 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아빠를 미물이라고 말했다.


[아, 그러고보니 네 년. 분명 날 찾아온 이유가 그 미물을 살리기 위해서렸다?]


일그러진다.

내게 보이는 얼굴은...그것은 한눈에도 알 수 있는 비웃음이었다.


[아주, 잘도 따르더구나. 멍청한 년. 덕분에 수고를 덜었구나.]


순간 가슴이 시리도록 차가웠다.

설마...

나 설마...


"...그때 해줬던 모든 말들이...너만 믿고 아빠를 낫게 하는 줄 알았는데...아...아아아....아아!!"


[무지(無知)는 병이자, 독이니라. 본디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요기가 어찌 병세를 치료하겠느냐? 멍청한 것.]


머리를 붙잡았다.

너무 어지러워서, 터질 것만 같았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그런게 아니야...

아빠, 아빠....아빠!


[곧이 곧대로 믿고, 아비에게 독을 먹이는 기분은 어떻더냐? 아니지, 미물 주제에 그리 오래 버텨온 네 아비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밖에 없더구나. 본디, 요기에 씌이면 사람의 형체도 유지하지 못할 터인데.]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고개를 흔든다.

하지만, 듣고싶지 않아도, 귀를 막아도, 요우카의 말은 비정할정도로 선명했다.


[착각하지 말거라. 애초에, 틀렸다. 네 아비는 원래 그 산짐승에 치여 죽었어야 할 운명이었다. 그걸 처음 억지로 되살린 것은 네 년이지 않느냐? 그 병이라는 것이, 어째서 건강하던 네 아비에게 생겼는지는 단 한번도 생각치 않은게냐?]


무너진다.

둑이 터지듯,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이 휘몰아치며, 나를 뒤덮고 있다.

나 때문이다.

모든 것이 나 때문이다.

나 때문에 아빠가 죽었다.

나 때문에 아빠가 병에 걸렸다.

나 때문에 아빠를 다시 죽게 만들었다.

나는....나는...


[그래, 그렇게 되는 거다. 네 년도 그렇듯, 우리에게는 행복 따위는 없다. 그저 절망만 가득할 뿐이지.]


요우카가 다가온다.

어떻게 서있는지도 모를만큼, 심하게 썩어가는 몸인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를 똑바로 노려보고 다가왔다.


[여전히 널 죽일수는 없다. 그리고 이 몸도 이제는 한계에 몰렸지. 오늘로서 아마 나는 죽을 것이다.]


뻐걱.


이윽고, 썩어있던 하나의 다리가 부러지고 요우카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서있었다.


[허나, 마지막 유희치고는 나쁘지 않았느니라. 네 년의 파멸을 보는 것 만으로도, 그 신선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는 것 만으로도, 심히 만족한다.]


주루룩...


악취가 풍기는 내장이 흘러내린다.

점차 기울어가는 몸으로도, 눈만은 여전히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이제는 네가, 대요호다. 셋카...라고 했느냐. 어디 마음껏 누려보거라. 그 지옥을, 이 끔찍한 곳을.]


허물어진다.

이제는 한계에 달한듯, 눈의 총기마저도 사라지고 있다.


[이제야...갈 수 있겠구나...내 님...내 사랑하는 그 이에게...]


요우카의 눈은 어째서인지 그 순간만큼은 편하게 감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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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마지막 편 써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