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조금도 침투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둡게 커튼을 쳐놓은 방 안에서, 얀순이는 행복한 표정으로 잠의 동산을 뛰어놀고 있었어. 물론 혼자는 아니었지. 얀붕이가 그 옆에서 죽부인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까.
코알라가 나무에 붙어있는 것처럼 얀붕이에게 단단하게 붙어 새근새근 잠든 얀순이를 보며, 얀붕이는 어쩌다가 이렇게 예쁜 애가 히키코모리가 되었을까 싶어 작게 한숨을 내쉬었지.
“히히... 얀붕이 너무 좋아...”
“너란 애는 자면서도 내 생각밖에 안하는 거니...”
알기는 초등학생 때부터 계속 알아왔지만, 이제는 정말 얀붕이가 없으면 살 수 없게 되어버린 얀순이를 보며 얀붕이는 어떻게 세상이 한 사람에게 이리도 가혹할 수 있는지 신이 있다면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어.
“얀순아, 우리... 아니, 너는 행복해져야지.”
잠든 얀순이의 뺨을 손으로 살살 어루만지는 얀붕이의 손길을 꿈속에서라도 느꼈는지, 얀순이는 행복한 표정으로 웃었어.
그리고 결심했지. 아주 굳은 결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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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얀붕아....?”
잠에서 깨어난 얀순이는, 분명 차있어야 할 자신 옆의 공간이 허하게 비어있다는 걸 알고 일순간 잠이 전부 도망치는 걸 느꼈어.
자신의 구원자요, 세상에서 유일하게 손을 뻗어준 이가 없다는 건 곧 얀순이의 세계가 무너진다는 걸 의미했기에 얀순이는 바로 울음보가 터지기 직전이 되었어.
“흐끅.... 얀붕아.... 얀붕아 어디 갔어....
나 너무 무서워.... 버리지 말아줘.... 너 없으면 살 수가 없어...
우아.... 우아아아앙!!! 얀붕아! 히끅, 얀붕아 제발 돌아와 줘....!
흐끅.... 언제나언제나언제나 나하고만 있어줘... 훌쩍... 얀붕아.... 으아아앙!!!!”
울고, 울고, 또 울고.
결국 방 안에서 울음보가 터져 엉엉 울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얀붕이는 급히 문을 열고 달려와 얀순이를 안아줬어.
“괜찮아?! 얀순아, 나 좀 봐봐!”
“히끅... 얀붕이다...
에헤.... 헤헤헤헤.... 얀붕이다!
어디 갔었어... 나 정말 보고 싶었다고.... 계속, 계속 얀붕이가 날 버린 것만 같아서 너무 무서웠어... 버리지 말아줘.... 혼자 두지 말아줘....
내가... 너한테 쓸모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얀붕이의 존재를 온몸으로 느끼려고 한 얀순이는 얀붕이를 만지고, 냄새 맡고, 핥고, 눈에 담았어.
어린아이처럼 그에게 폭 안겨있는 얀순이를 토닥여주던 얀붕이는, 갑자기 얀순이가 자신의 품 안으로 더욱 움츠러들자 왜 그런가 싶어 더 꼬옥 안아줬어.
“그래요, 얀붕군 말이 맞네요. 지금 이대로는 아무 것도 안 되겠어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얀순이 어머니의 목소리. 지난 달에 얀순이를 포기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얀순이는 더욱 움츠러들었어. 덜덜 떨리는 작은 몸이 기댈 수 있도록, 얀붕이는 굳건한 돌담처럼 버텼고, 그 상태로 대답했지.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얀순이는.... 제가 꼭 사회로 다시 이끌어내보겠습니다.”
“우리도 포기한 걸 얀붕군에게 부탁하니 미안하지만... 그래도 부모된 자로서 딸을 저버릴 수는 없으니까요.
생활비는 매달 1일에 부쳐드리죠. 매달 월말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상태를 점검하고 생활비 증감 여부를 결정지을 겁니다.”
“생활비까지 부쳐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럼 전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
대화를 마친 얀붕이가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하자, 놀란 얀순이는 얀붕이를 끌어안은 손에 더욱 힘을 줬어.
“가려는 거야 얀붕아...? 가지 마... 나랑 있어줘...
네가 가면 나 너무 무서워... 꿈에 나온단 말이야....
그 때 날 괴롭힌 애들이... 너 없으면 악몽이 멈추지 않아...
가지 마.... 나 두고 가지 마...”
또 다시 울 것처럼 울먹임을 잔뜩 머금은 목소리로 얀붕이의 바짓가랑이를 놔주지 않는 얀순이를 보며, 얀붕이는 봄날 햇살이 겨우내 얼었던 땅에 스며드는 것처럼 말했어.
“얀순아, 난 널 버리지 않아.
너희 부모님과 이야기를 마쳤어. 내일부터 우리 같이 살 거야.
내 자취방으로 네가 올 거고, 그럼 이제 매일 나랑 함께할 수 있어.
널 버리는게 아니야. 단지, 같이 살 준비를 해야 하는 것뿐.
그러니까 오늘은 이거 놔줄래? 내일 아침에 널 다시 데리고 와야 하니까.”
그 말을 들은 얀순이는 흑진주처럼 까만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어.
“그거 정말이야....? 나... 정말 얀붕이랑 같이 살아...?”
“그럼. 그러니까 내일 아침에 데리러 올게. 이제 이거 놔줄 수 있을까?”
“으응... 알겠어 얀붕아...”
얀순이가 설렘 반 떨림 반으로 얀붕이의 바짓가랑이를 놔주자, 얀붕이는 얀순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어.
“내일 보자, 얀순아.”
“얀붕이도 내일 보자...”
얀붕이가 방을 나가고, 얀순이는 다시 어두운 방안에 혼자 남겨졌어.
하지만 이번에는 얀순이의 눈물샘이 작동하지 않았어.
얀순이의 마음 안에, 조금씩 빛이 새어들어오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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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순이가 얀붕이한테 엥겨 붙는 씬을 많이 쓰고 싶었는데... 생각한 것만큼 많이 나오지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