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충고는 무시해라.


가장 기본적으로 하는 충고인 많이 써보고, 많이 읽으라는 충고도 당연히 포함된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권터 그라스는 30까지 막노동하다가 현대 독일 문학의 최고 작품중 하나인 양철북을 썻다. 많은 사람들이 많이 읽고 쓰라하지만 이미 권터 그라스는 작가 하나로 틀렸다고 증명된지 오래다. 


최대한 쉽게 쓰라는 조언도 예외는 아니다. 영문학에서 가장 활발히 연구되는 작가인 제임스 조이스는 최대한 어렵게 쓰고자 노력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단어의 수준부터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게 쓰고자 노력한 제임스 조이스는 영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책이라 평가받는 율리시스를 만들어냈다. 


1984와 동물농장의 저자 조지 오웰은 "짧은 단어를 쓸 수 있을 때에는 절대 긴 단어를 쓰지 않는다. 빼도 지장이 없는 단어가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뺀다. 능동태를 쓸 수 있는데도 수동태를 쓰는 경우는 절대 없도록 한다" 이라 말했다. 그렇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포크너는 완전히 이에 반대되게 소설을 집필했다. 예를 들어서 알베르 까뮈처럼 엄마가 죽었다. 라고 문장을 적을 수도 있었겠지만 윌리엄 포크너는  "남아 있는 모든 생명이 엄마의 눈으로 쏠린 듯, 잠시 동안 두 개의 불꽃아 타오른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 불꽃을 훅 벌어 꺼버린 듯이 이내 사라져버린다."라 문장을 창조했다. 이 문장은 위의 조언을 완전히 무시했지만 문제는 없다. 오히려 아름다움마저 느껴질 정도로 잘 만들어져있다.


위에서 내가 한 말을 읽는다면 간결체와 이해하기 쉬운 글들은 수준이 낮아 보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또 다르게 반박되는 예시들은 이번에도 존재한다. 톨스토이가 가장 이뻐하던 안톤 체호프의 단편선들은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워보이며 충분히 책을 읽는 독자가 이정도는 쉽게 적을 수 있지 생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쉽고 간단한 문장들은 체호프의 문학성에 의구심을 가지게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의심과는 다르게 체호프는 러시아 문학의 거대한 한 부분이며, 체호프의 문학성은 박경리가 토지를 쓸 때 그저 벚꽃동산의 복제품이라 말한 것으로 대신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쯤되면 여러분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 할 것이다. 모든 조언에는 반대되는 사례가 무조건 존재한다고.

그렇다면 모든 조언을 무시하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수 있다. 작가 본연의 개성만이 남는다고 말이다. 자신 본연의 글을 적는다면 공식에 따라서 정제된 소설이 아니라 순수한 원석만이 남는다. 그러니 모든 조언은 무시해라. 사람들은 원하는 틀에 박힌 소설이 아니라 새롭고 생동감 있는 작가만의 소설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