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주 오랜만에 하늘을 바라다 보았다.

높게 걸려있는 몽실한 구름들과, 그 배경에 깔린 짙푸름의 아름다운 조화.

어린 시절, 매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았던 그런 정겹고도 그리운 풍경을 나는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


...어렸을 때는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은 어떠한 것을 짊어지지 않았기에, 천천히 되돌아볼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그럴때마다 습관처럼 하늘을 바라보았다.

넘실 넘실, 산들바람을 탄채 느긋하게 떠다니는 구름들과, 하늘안에서 자유로히 헤엄치는 새들.

그 생경넘치는 풍경들을 매일매일 두 눈에 담는 것이 참 좋았다.


그래서 인걸까.

오랜만에 다시 그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자연스레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어른이 될 수록 하늘을 볼 일이 적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다만 그것은 단순히 머리가 굵어져서만은 아닐 것이다.


한살, 두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짊어지는 것이 생기면서, 고개는 위에서 천천히 내려오게 되었다.

내 눈은 더이상 하늘이 아닌 책임져야만 하는 것에 고정되었고, 그것을 온전히 내 품안에 지키기 위해 내 가진 모든것을 쏟아부어야 했다.


나는 남들보다 빨리 달려야만 했다.

나는 조금이라도 치열해야만 했다.

그렇게 해야만 지킬수 있으니까.

그렇게 해야만 버틸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빨리 빨리'는 습관이 되어버렸다.

빨리 밥을 먹어야, 조금이라도 일을 더 할 수 있다.

빨리 잠을 자야, 내일 일찍 일어난다.

빨리 일을 끝내야, 커피라도 한 잔 먹을 수 있다.

빨리.

빨리..

빨리...


이제는 그것들이 습관이 되어서, 나는 더이상 하늘을 바라다 보지 않게 되었다.

하루를 빠르게 보내는 사람에게 하늘을 볼 여유같은 것이 있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겨우 내가 품은 것들을 지켜낸 만큼, 나는 그만큼의 '여유'도 잃어버렸다.


느긋해야만 보이는 것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언제나 바쁘다는 핑계를 방패로 내세우며, 나는 도망치기 바빴다.

그러니, 이제는 쉴틈 없던 내 삶에 조금이라도 쉼표를 찍고자 나는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구름처럼.

저 하늘처럼.

나는 한참동안 잃어버렸던 여유가 저 위에 있기라도 하는것처럼 그렇게 풀밭에 누워 한참이나 그러고 있었다.


"누구게?"


허나, 그런 나의 감상을 방해하는 짖궂은 말이 들려왔다.

순식간에 가리워지는 시야.

내 귓가에서 풋풋- 웃음을 참고 있는 시시덕 거림.

손이 조그만해서 내 눈을 전부 다 가리지도 못했으면서, 이 악동은 자신이 누군지를 맞추길 원했다.


"으음~ 누굴까? 목소리를 들어보면 내가 가장 잘 아는 아이 같은데?"


"그 사람 아늰데?!"


놀이를 도와주는 겸 눈을 감은 내가 떠보는 말에 화들짝 놀란듯, 손을 움찔거린 아이는 억지로 굵은 목소리를 내며 제 정체를 숨기려 했다.

아늬니까 빨리 맞춰바! 하며 혀 짧은 소리로 앵앵거리는 아이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입이 짙은 호선을 그려버렸지만, 지금은 마냥 웃고 있을 때는 아니겠지.

나는 곧장 아이의 장단을 맞추어 주어야 했다.


"음, 엄마?"


"땡!"


일부러 틀린 답을 내자, 듣는 것만으로도 청량한 외마디가 터져나온다.


"음, 그럼...세연이?"


"때앵~! 이제 한번 남았지롱!"


기회가 있는 거였나?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짖궂은 웃음소리가 계속 들리는 것을 보니 벌칙같은 것도 있는 모양이었다.


"음, 그럼...우리 막...내?"


"읏...으음...!"


아까처럼 땡! 하던 것과는 달리 쉽사리 말을 못하는 것을 보니 정답인 것 같았다.

침음에서 느껴지는 짙은 아쉬움.

눈에 띄기 시무룩해하는 느낌이 목소리에 묻어나오자 나는 다급히 마저 입을 열을 수 밖에 없었다.


"아, 아니! 셋째! 유세진! 세진이다!"


"으힛-! 땡! 땡! 땡! 아니지롱!"


내가 일부러 틀린 답을 내놓자, 아이는 콩콩 뛰며 틀렸대요~ 틀렸대요! 하며 방실방실 웃음을 터뜨렸다.

다시금 돌아온 푸른 시야, 자리에서 일어나 옆을 보니, 그저 웃는것만으로도 사랑스러운 꼬마숙녀가 말괄량이같은 미소로 나를 보고 있었다.

엄마를 닮은 붉은 눈동자와 조금은 어둡지만, 자연스러운 연갈색으로 땋아진 고운 머리.

그 뒤에서 기꺼움을 표현하듯 살랑거리고 있는 하나의 여우 꼬리는, 보는것만으로도 탐스럽게 느껴질정도로 북실함을 자랑했다.

진짜 닮았네.

제 엄마의 어린 시절과 똑 닮은 그 모습과 성격, 나는 그럴때마다 다시금 유전자의 무서움을 체감하곤 한다.


"틀렸으니까! 벌칙!"


엄숙한 표정으로 아이가 손가락을 척 내뻗었다.

지키지 못한다면, 엄벌에 처하겠다는 그 굳은 의지.

나는 담담히 웃으며 아이가 내릴 무시무시한 벌을 기다렸다.


"집에 돌아갈때까지 목마 태우기! 세아는 공주님이니까, 말을 타고 가야 한다는 말씀!"


"하하, 그런가?"


귀여운 벌칙에, 결국 잘 참았던 웃음이 푸훗하며 터져나왔다.

그러나 내가 웃거나 말거나, 세아는 내 품에 폭 달라부터 앵기며 나를 보채는데 바빴다.


"빨리-빨리!"


"네 네, 알겠습니다. 공주님. 그럼 공주님 제 머리 꼭 잡아야 해요?"


"응!"


아직 어린데도 벌써부터 빨리라는 말을 외치는 아이를 조심스레 목마를 태웠다.

몸을 들어올리자마자 단번에 시야가 높아진 탓일까.

막내 세아는 내 머리 위에서 우하-!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기 바빴다.

꼭 잡으라니까는...

목마를 태운지 일 초도 되지 않아, 팔을 쭉 편채로 전능감을 즐기고 있는 막내의 다리를 꼭 잡은채, 나는 조심스레 언덕을 내려갔다.


"엄마는 뭐하고 있어?"


"밥하고 있어! 곧 다 될 껄? 엄마가 나보고 아빠 데려오랬거든."


"아하, 그래?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됬나...그보다, 기특한걸? 아빠도 데리러 오고."


"에헴!"


그렇게 세아와 이러저러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천천히 언덕을 내려오자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빨래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너머에 보이는 작지만 아늑한 오두막.

문 앞에서 조심스레 세아를 내려놓으니, 막내가 곧장 드센 기세로 문을 벌컥 열으며 자신의 귀환을 알렸다.


"아빠 데려 왔어!"


"아빠다아아아!"


막내의 외침에 저편에서부터 우다다다- 조그만한 무리들이 나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나를 바라보는 여섯 쌍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들.

개개인마다 그 모습에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모두 똑같이 붉은 눈을 가진 아이들은 이내 나를 두고 저마다의 원대한 계획을 내 앞에서 일장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 아빠아! 오늘은 세연이랑 소꿉놀이 해요! 아빠가 아빠! 나는 엄마!"


"아빠! 나는요! 오늘은 아빠랑 낚시하러 갈래요! 낚시! 낚시!"


"아빠아~ 세아랑 뭐했어? 내가 가고 싶었는데! 내가 세아보다 언니인데!"


"아하하...얘들아. 조금만 있다가. 밥 먼저 먹자? 응?"


"그럼 밥먹고 소꿉 놀이! 응? 응? 약속!"


"누나는 맨날 아빠랑 소꿉놀이하잖아! 이제 내 차례야!"


"맞아. 맞아! 세연이 언니는 욕심쟁이! 오늘은 내가 엄마 할꺼야!"


"뭔 소리야?! 엄마는 나만 할 수 있거든?!"


"누가 정했는데? 오늘은 세은이 차례거든? 오늘은 언니가 딸 해!"


"싫어어!!"


북적북적, 왁자지껄.

서로 눈에 쌍심지를 킨채 나를 두고 옥신각신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어쩔수 없는 한숨이 튀어나왔다.

저대로 놔두었다간 저번처럼 또 무슨 사달이 날지 모를 노릇.

그러나 내가 애들에게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부엌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합죽이가 됩시다."


""""합!""""


네 명의 아이들이 마치 하나로 이어진 것처럼 동시에 외쳤다.

양손으로 입까지 꼭 막은채 조용해진 아이들.

언제 그렇게 시끄러웠냐는 듯, 단번에 아이들을 침묵시킨 장본인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말했다.


"밥 먹자. 다들 손 씻고 오렴."


"네에!"


그 말에 아까처럼 손을 씻으러 아이들이 우다다다 빠져나갔다.

역시- 쉽지 않네.

육아란 해도해도 어려운 것임을 체감하며, 나는 미안한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살았어, 고마워. 여보."


"뭘 그런걸루요?"


내 말에 아내는 그저 살짝 미소를 지어주었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그 미소.

내가 결국 반하게 되어버린 그 순수하고 행복한 미소를 마주하며 나는 화답처럼 마주 웃음을 지어주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함께 길을 걸을 내 하나뿐인 사랑.

딸에서, 여자친구로, 여자친구에서 아내로.

산에서 마주한 운명의 붉은 실을 따라, 우리는 어느새 여기까지 오게되었다.

여우에서 아이로, 아이에서 여인으로 그리고 이제 여인에서 네 아이들의 어머니로.

눈처럼 새하얀 그녀에게 지어준 셋카라는 이름이, 이제는 내게 있어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셋카는 어서 앉으라며 나를 식탁으로 데리고 왔다.

처음에는 그녀와 나 두개뿐이었던 의자였었는데, 지금은 온가족이 다 둘러앉으면 조금 비좁게 느껴질 정도로 의자가 많이 늘어버렸다.

아니면, 그저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
이제 보니, 아이들이 앉을 네개의 의자가 유독 내 쪽에 가까워져있는 것 같은 모습에 나는 살짝 셋카를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셋카.


"얘들이 무조건 아빠랑 같이 먹고 싶대서..."


"아하..."


"핏...아빠는 내껀데."


"하하, 뭐야. 설마 애들한테 질투하는거야?"


"질투해버릴 만큼 부러워서 그래요."


엄마도 그렇게 사랑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실없는 농담인 것을 알기에 머잖아 나도 셋카도 웃음을 지어버렸다.


"어쩔땐 무서워 죽겠어. 크면 아빠랑 결혼한다고 할때마다."


"어릴땐 다들 그러잖아.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예뻐보일 때가 있는 거지. 나중에 크면 기억도 못할걸?"


"당신이라면 모를까, 난 아니에요. 쟤들이 누굴 닮았겠어요?"


당신이지...

라는 말은 고이 접어 안에 넣어놨다.

그래도, 겉만 닮았지. 속은 또 아닐수도 있지 않을까?

허나 나름 낙관적인 내 모습과는 달리, 걱정 많은 아내는 그게 아닌지 나름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


"괜찮을 거야.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을 필요는 없잖아?"


"하아...그렇겠죠?"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 앉는 사이 손을 씻으러 원정을 나갔던 아이들이 다시금 위풍당당하게 부엌으로 당도했다.

내가 앉아있는 것을 보자마자 눈에 불을 키며 달려오는 아이들.

그러나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 그 간단한 것마저도, 아이들은 쉽지 않았다.


"내가 여기!"


"뭔 소리야! 아빠 옆은 내 자리거든? 내가 아까부터 찜했어!"


"언제 했는데? 나는 어제부터 찜해놨거든?"


"나는 저번주에 찜했거든?!"


"나는 태어날때부터 찜했거드은?!"


"야! 그냥 언니한테 양보해!"


"무슨 소리야! 언니가 동생한테 양보해야지!"


첫째 세연이와, 둘째 세은이가 눈에 불을 키며 내 옆 자리를 차지하려 했다.

셋째 세진이랑 세아도 눈치를 보는 것을 보자니 자신들도 쟁탈전에 끼어들 모양.


...이런.


살짝 골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저런 순번 싸움에 억지로 개입해서 내 멋대로 정해주는 것은 좋지 않은 짓이었다.

불만을 가진 아이들끼리 흉흉하게 싸울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나이차이가 얼마 나지 않기에, 서로 감정에 골이라도 깊어지기리도 하면 진짜 박터지게 싸운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서 알고 있었다.


"얘들아, 그만하고 밥 먹지..."


"당신, 잠깐만."


다시금 아이들을 제지하려는 셋카에게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이럴때는 간단하지.


"세연이랑 세은이는 아빠 양 옆에 앉아."


"와아! 네!"


"그리고 세진이랑 세아는 아빠 무릎에 앉자. 그럼 됐지?"


"좋아! 아빠 최고!"


금세 내 주위로 아이들이 한껏 부대끼는 모양새가 되었다.

다소 밥을 먹는데 불편해지기는 했지만, 적어도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세상이 된 것은 확실했다.

슬쩍 셋카를 보자 어쩔수 없다는 듯 미소를 흘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 또한,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비록, 여유는 여전히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 곳이 내가 바라보는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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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키워준 여우로 찾아왔어.

문득 하늘을 보니까 그냥 쓰고 싶어지더라.

어릴때는 나도 하늘을 되게 많이 보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한달은 커녕 일년에 몇번 보나 싶을정도로 손에 꼽더라고.

그냥, 좀 감상에 젖었음...

아무튼 늦어서 미안하다.


사랑했었던은 조만간 올릴게.


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