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나라의 공주 얀순이. 

약소국이었던 얀나라는 근나라의 공격을 받고

왕은 수도를 버리고 달아나는데, 그 과정에서

딸을 놓침. 다행히 환관 하나가 그 딸을 챙겨서

도망치려다 적의 추격에 사고를 당하고 자신은 죽고 맘.


얀나라 공주 얀순이는 다치고, 배도 고픈 상태로

비틀거리며 정처 없이 떠돌다가 어느 창고 안에 들어가

쌀 가마니 위에 풀썩 쓰러지고 마는데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낯선 천장이다'


딱 이 상황이 돼있음.


"이세카이 인가?'


라는 의문이 들 무렵 누군가 들어오는데

마을 청년 얀붕이였어.


"아이고, 꼬마야! 정신이 드니?"


그의 손에는 거친 곡물을 끓여 만든 죽이 들려 있었고,

그 그릇을 작은 상에 올려놓고는 받쳐 들고 있었어.

얀붕이가 그 상을 얀순이 앞에 가져다 놓으면서 말하지


"어제 널 곡식 창고에서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넌 어디서 왔고, 왜 창고 안에 들어왔니?"


얀순이가 어리긴 했지만, 아주 눈치가 없지는 않아서

자기 신분을 함부로 드러내면 안된다는 것 쯤은 알았어.

그런데 웬걸, 얀붕이의 따사로운 외모와 말씨, 그리고 목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무장 해제 시켜버려.

그래서 그녀는 될 대로 되란 마음으로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지.


물론, 소설 속 이야기처럼 정의감 넘치는 한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여자를 구하는 이야기는 아니야. 왜냐면

때는 전쟁의 시기였고, 평범한 사람인 이상 이익을 무시할 수는 없었으니까.

얀붕이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녀를 왕인 아버지에게

무사히 데려다 주면 큰 상을 받게 될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게 돼.

그래서 얀붕이는 그녀에게 자신이 무사히 가족에게 데려다 주겠다며

호언장담하게 되고, 얀순이는 그의 말을 순진하게 믿어버려.


......,


아무리 하찮은 재주도 없는 것보다 나은 법.

곱게 크느라 특별난 재주가 없던 얀순이와 달리, 얀붕이는

살기 위해 가릴 것 없이 이것 저것 해 온 지라

할 줄 아는 것이 많았어. 심지어는


한 밤중에 순찰 도는 근나라 군인 옆을 스윽 지나가는 척 하면서

그의 주머니를 소매치기 하는 데 성공해. 뭐, 사졸 나부랭이 주머니에 큰 돈이

있을 리 만무하겠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인생 역전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얀순이에게 먹을 것 좀 사다 줄 돈은 됐기에, 아침이 밝고 시장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만두랑 먹을 것 이것저것 해서 사 들고 

얀순이에게 가. 그는 챙겨온 먹을 거리를 그녀에게 바치며 말해.


"공주 마마. 이 소인이 드릴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렇게 하찮은 음식 뿐이니

그저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다만 이것이 마마의 허기를 가시게 하는

요깃거리가 됐으면 하는 바람 뿐입니다.


그가 챙겨온 음식을 얀순이는 허겁지겁 먹어 치우다가  

살뜰하게 자기를 챙겨주는 유일한 남자인 얀붕이에게 점차 호감을 느껴가.


......,


덕치로 평판이 좋았던 얀왕은 다행히 주변국의 도움을 받아

군사와 군량 원조를 받아 다시 힘을 키우고, 근나라를 몰아내기 위한

결전을 펼쳤어. 강 하나를 두고 펼쳐진 전투에서 훌륭한 전략,전술로

얀나라가 근나라를 상대로 크게 이기면서 근나라는 패퇴하여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되고, 얀나라는 잃었던 국토를 모두 수복 해.

그렇게 얀왕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면서도, 불타고 유린 당한

자신의 궁성을 바라보다가 멀리서 어떤 소리를 들어.


"전하! 공주 마마께오서 돌아오셨습니다!"


공주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정신이 번쩍 든 얀왕이

성벽으로 한 달음에 내달려가는데, 성 문 밖 들판에 한 남녀가

서있는 것을 봤어. 얀붕이와 얀순이였지.

얀왕은 격식을 차릴 새도 없이 문을 열고 달려나가 

공주를 끌어 안고 서로 펑펑 울었어.   


"얀순아! 이 못난 애비는 죽어서도 너를 챙기지 못한 죄를 씻지

못하겠구나..."


그렇게 우는 얀왕에게 얀순이가 말하기를


"아녜요, 아바마마. 소녀, 이렇게 아바마마와 재회할 수 있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감격에 벅찬 얀왕이 말하기를


"얀순아, 이제 고생은 끝이다. 네가 원하는 것 뭐든지 들어 주겠다."


그 말에 얀순이가 옆에 있던 얀붕이를 한 번 스윽 쳐다보며 말하지.


"아바마마, 저 이 사내와 혼인하고 싶어요."


그제야 얀왕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녀 옆에 서있던 남자를

처음으로 제대로 보게 돼.


귀한 구석은 없이, 동네 건달 같은 모습. 교양이 있어 보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싸움을 잘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은 느낌. 그 꺼림칙한 

마음에 사내에게 물었어.


"내 딸과 함께 있던 그대는 어디서 온 누군가?"


얀붕이 예를 갖춰 답해


"얀현 얀군에서 온 촌부 얀붕이라 하옵니다, 전하.

공주 마마께오서 도망하시다가 곡식 창고에 지쳐 쓰러져 계신 것을

보고는 제가 먹을 것을 챙겨드리곤 곧장 전하께 모셔 왔나이다."


얀왕이 그의 손을 붙잡으며 감사를 표하면서 물었어


"고맙네...고마워. 그대는 나의 은인일세.

...아니, 근데 얀순이가 말하는 혼인 이야기는 뭔가?"


얀왕의 물음에 얀붕이가 답하기를


"공주 마마께오서 아직 나이가 차지 않으셔서, 

고마움의 마음을 다 큰 남녀의 사랑으로 오인 하셨나 봅니다, 전하.

부디 염려치 마오소서."


그렇게 그녀와 선을 그으려는 얀붕이의 모습에 얀왕이 안심하고

그를 상찬하려는데, 얀순이가 듣더니 이내 방방 뛰면서 말해


"아냐! 이 남자는 분명이 나와 약조 했단 말야!"


그녀의 과격한 반응에 서로 당황한 얀왕과 얀붕이

서로 아무 말 못하고 그녀의 다음 행동 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내 얀순이가 얀붕이의 옷깃을 잡아 끌어 당겨 입을 맞추고는 말해.


"아바마마, 보셨나요? 소녀, 벌써 이 사내에게 입술까지 뺏겼습니다.

다른 남자에게 시집 갈 수도 없으니 저는 꼭 이 사람과 혼인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