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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15772251


 

이하과전 李下瓜田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으로, 의심받을 짓은 처음부터 하지 말라는 말. 





「기다려. 설마...」


메이쇼 도토의 설마 한 발언에 식은땀이 흐른다.


「이......이대로라면......」


뜻하지 않은 식은땀이 멈추지 않는 나와 마주 보고 있는 그녀는 그녀대로, 안색을 붉히거나 파랗게 하는 등 마치 신호등처럼 명멸시키며 이마에서 줄줄 땀을 흘리고 있다.


「......그, 얼마나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저……………」


빙글빙글, 정신없이 도움을 청하듯 이곳저곳을 방황하던 보라색 눈동자가 슬며시 시선을 피했다.


그렇구나.

유예는 이제 별로 없다고.

이거 오래 가지 못할 것 같다.


어째서.


조심스러운 성격인 것은 좋지만 좀 더 일찍 전해줬으면 도움이 됐을 거라는 생각과, 가능하면 쓸데없이 믿음직한 학생회 인원들에게라도 부탁했었으면 하고 간절히 생각한다.

맨해튼 카페가 아그네스 타키온을 찾아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건 아마 스스로는 이 줄을 끊거나 풀 수 없었다는 건데…정작 아그네스 타키온은 졸도해 있어 맨해튼 카페도 곤란했던 걸까.


......그렇다고는 해도 도대체 언제부터 이 상태를 강요당하고 있던 걸까, 이 아이는


「...혹시 걷는 것도 힘든 느낌이려나」


「.........ㄴ, 네에에.........」


얼굴을 붉히고, 끄덕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메이쇼 도토.

블랭킷을 걸치고 방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조금씩 떨고 있는 모습은 어딘가 작은 동물 같지만, 너무 절박해 보인다.


「알겠어. 밧줄을 풀어볼까...」


돕는 것 자체는 인색하지 않다고 할까, 이런 것을 못 본 체하는 것은 꽤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적어도 제삼자가 있을 때 말해줬다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어쩔 수 없이 다가가 메이쇼 도토에게 걸쳐두었던 블랭킷을 벗겨냈다.











「매듭은... 있다. 이거구나」


「저, 저.........너무 빤히 쳐다보시면, 그......」


사태가 사태다.

중등부의 나이인 소녀의 존엄성이 걸린 상황이라, 줄을 풀기 위해서 여기저기 확인하는 처지가 되었는데 자칫 잘못 보면 범죄 현장이다.


때를 놓쳐버린다면 뭐랄까 그녀의 존엄성이 훼손된다.

빨리 하야카와 씨가 도와주러 와주면 좋겠지만, 상당한 소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니 아직 한참 걸릴 것이다.


빠르게 가위를 잔해 속에서 찾아내면 좋지 않을까도 생각해봤는데, 방을 나가려니 메이쇼 도토가 쓸쓸하다고 할까, 버림받은 듯한 눈을 하는 것과 동시에, 쐐기를 박듯이 에어 그루브로부터 「가위로 절단할 수 없었으니 푸는 게 좋을 거 같다」 라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고마워 에어 그루브.

덕분에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끝났어.

근데 거기까지 알고 있었으면 왜 이때까지 방치한 거야.

잊고 있었어?


결국 그녀들의 힘으로 가위를 써도 절단할 수 없었으니 내가 해도 소용이 없으리라 판단해 매듭을 필사적으로 찾게 된 셈이다.


그런데 이런 걸 귀갑 묶기라고 하던가.

이름 자체는 몇 번 들어봤지만 이렇게 실물을 볼 기회 따위, 보통은 없다.

심상치 않은 상태인 것부터 매듭을 풀 수 있도록 열심히 시선을 피하면서 펜 같은 도구 등을 서랍에서 꺼낸다.


상당히 복잡한 묶기이긴 하지만, 밧줄은 밧줄이다.

매듭만 풀어버리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될 것이다.


...그럴 터인데


「......악의가 느껴진다」


저도 처음 알게되었는데 귀갑묶기?에서 매듭의 위치가 어디인지 다들 알고 계시는지요.


그래.




하복부다.

일부러 그런 곳에 만들어야만 하는 건가.

아무리 구조를 위해서라고 해도 매우 심리적인 저항이 크다.


「.........아, 저기.........괜찮아요.........만지셔도.........」


그런 속마음을 헤아렸는지 얼굴을 붉히면서도, 굳세게 각오를 다지듯 살며시 눈을 감고 가볍게 턱을 치켜드는 메이쇼 도토.

뒷짐을 진 채로 온몸이 밧줄에 묶이면서도 각오를 다지는 듯한 모습은 마치 처형을 기다리는 성녀 같다. 그게 침실 구석이 아니었다면.


내 침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려는 것처럼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매듭을 보기 쉽게 하려고 앉아서 몸을 펴보려고 한 거겠지만, 그 결과 강조된 것은 상반신이다.


이런 상태에서 오해를 살 만한 발언은 조심해줬으면 좋겠는데.


여기서 떠올릴 수 있는 최악의 케이스는, 그녀의 존엄이 훼손되는 순간에 하야카와 씨가 도와주러 오는 경우이다.

그럴 경우 내 어른으로서의 존엄도 함께 훼손된다.

한마디로 지옥이다.

하야카와 씨라면 메이쇼 도토의 존엄을 챙기기 위해 일을 크게 만들지는 않겠지만, 자칫 소문이 커지면 나는 사회적으로 죽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중등부인 여자아이와 침실에서 이상한 짓을 한 게 아니냐는 말을 들어도 뭐라 할 말이 없다.

완전히 무죄임을 이해하고 있다고 해도, 그림으로서는 완전 범죄다.


밧줄의 매듭에 손을 댄다.


「응읏」


「...이상한 소리 내지 말아줄래」


「죄, 죄송합니다......」


이래서는 마치 이상한 일에 손을 물들이고 있는 것 같잖아.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잡념은 모두 버리고 오직 이 난해한 매듭을 푸는 것만 생각해야 한다.


「앗」


지금 이때야말로 *고르디우스의 매듭의 고사처럼 척척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싶다. 지금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알렉산드로스 3세가 손에 쥐고 있던 검도 아니고, 사람의 힘으로도 잘 잘리는 가위다.

아시아의 왕이라던가 그런 것은 필요 없다.


(*고르디우스의 매듭: 풀면 아시아의 왕이 된다는 매듭. 알렉산드로스 3세가 풀려고 했으나 워낙 매듭이 복잡하고 정교하게 묶여 있어 화난 알렉산드로스는 칼로 매듭을 끊어버렸다. 자세한 내용은 꺼무위키 참조.)



굳이 원한다면 평온을 원한다.


무심이 되어 매듭에 도전한다.

머리 위에서 뭔가 관능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오지만, 도를 닦듯이 무시하면서 오로지 매듭을 풀려고 시도한다.


쭉쭉 잡아당기거나 하는 사이에, 조금 매듭이 느슨해졌다.

그러나 상당히 강하게 묶여있던 매듭이다.


슬픈 일이지만 밧줄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확실히 여러 가지로 서두르던 루돌프가 가져온 적이 있다. 방검 섬유로 인장 강도도 매우 높은 것이다. 확실히 *자일론이라 했던가.


(*자일론: 2007년 시점에서 유기계 섬유 중에서는 최고 레벨의 인장 강도, 탄성률을 가지는 섬유. 방탄조끼, 탁구 라켓, F1 드라이버 헬멧의 바이저 실드 등에 폭넓게 사용됨.)



매듭이 아주 느슨해진 곳에 볼펜 끝을 꽂는다.

정말 난처하게도, 우마무스메의 힘으로 힘껏 묶어버리면 푸는 것도 상당한 고생이다.

쭉쭉 이 원리를 최대한 사용하면서 그 틈새를 크게 만들어 간다.

빠직, 가벼운 소리를 내며 볼펜이 부러졌다.

비용이 자기 부담인 만년필 같은 걸 쓰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마음속 깊이 안도하면서 부러진 볼펜을 갈아 끼운다.

대량생산 대량폐기 시대는 그다지 환영할 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이럴 때는 감사하다. 이것도 고작 한 개에 10엔 정도다.

만년필은 거실에 있었으니까, 저 파멸을 피했는지는 운에 달렸지만.


몇 번인가 그런 일을 반복하는 사이에 풀리기 시작했다.


「좋아, 풀리고 있어」


「저, 정말인가요?」


그렇다해도 느슨해진 곳을 잡아당겨봤자 꿈쩍도 하지 않는다.

좀 더 경도가 강한 물건이... 아, 손전등이 있었구나.


예전에 여름 합숙의 담력 시험에 시험 삼아 루돌프와 참가하게 됐을 때, 깜짝 놀란 루돌프가 무심코 플라스틱 재질의 손전등을 두부 같이 쥐어 으깬 것을 보고, 튼튼하기로 정평이 난 이른바 플래시 라이트를 갖춰뒀었다.

군용으로 명성이 자자하다는 것은 곧 우마무스메의 악력이라도 짓눌리지 않을 정도의 단단함을 보장하고 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가는 것에 비해 중량감이 있는 데다, 동시에 비정상적일 정도로 밝기가 높아 평상시 사용하기에는 좋지 않다. 솔직히 늦은 시간에 훈련이 끝나도 돌아오는 길에는 가로등이 잘 설치돼 있고, 그런 시간에 굳이 길에서 벗어날 생각도 없다.

엄청 화가 난 루돌프가 기숙사 앞에서 진을 치고 있을 경우에, 인카운트 회피를 시도하기 위해 수풀 속으로 발을 들여 도주하는 정도.

하지만, 이쪽이 눈으로 인식한 시점에서 저쪽의 범위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무모한 도주극으로 산산이 밝혀져 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가방에 넣어두면 무거워서 어깨가 뻐근하고 의외로 길이가 있어 방해된다. 결국 「유사시에 사용하자」 라고 자신을 납득시켜 침대 옆 선반에 내팽개친 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선반에 손을 집어넣으니 의외로 커서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역시 상당한 무게가 있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가냘픈 목소리로 메이쇼 도토가 중얼거렸다.


「그런 거 들어가나요...?」


「무리해서라도 넣을게」


빨리 풀지 않으면 서로 큰일이 날 것 같고.


풀린 곳에 밀어 넣어 보니 아슬아슬하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틈에 끼울 수 있었다.

가능한 한 메이쇼 도토의 신체를 만지지 않고, 부담도 주지 않도록 하며 매듭을 느슨하게 해 나간다.


...로프의 강도가 비정상적으로 높다고는 하지만 매듭은 용접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풀려고 하면 풀 수 있다.

이 정도면 맨해튼 카페나 에어 그루브도 완력으로 풀 수 있었을 텐데.


「슬슬 끝날 것 같아」


「부,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원하면 원할수록 멀어지는 것이 트레이너의 평온이라는 말이다.

이럴 때만 구원의 손길인지 최후의 한 수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내밀어져 온다.


「뭐 하시고 계신 건가요 트레이너 씨!?」


쾅, 하고 큰 소리를 내며 침실 문이 활짝 열렸다.

활짝 열렸다고 할까 힘차게 열어젖혀진 결과, 빠직하고 문이 내서는 안 될 듯한 소리를 내며 문이 빠졌다.


하야카와 씨였다.

늘 싱글벙글 미소를 잃지 않는 그녀지만 오늘은 미소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이래저래 꽤 오래 알고 지낸 「화나게 하면 가장 무서운 직원」 넘버원 자리를 자행하는 이사장 비서는 왠지 화가 많이 난 듯했다.


문손잡이만을 잡은 채로 문을 허공에 매달고 있는 모습.

왠지 매달려 있는 문과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