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가 하나랑 처음 만난 건 약 1년 반 전, 재작년 12월 경의 일이다. 26살의 신임 교사, 3월 달 출근만을 기다리는 그는 고향인 I시에 돌아와 미리 자취방을 구해 놨었다. 


 ‘[프레시아 꽃집]…. 원래는 아마 [불숨 꽃집]이었지?’


 집 주변에 있는 작은 꽃집, [프레시아 꽃집]. 촌스러운 이름에서 그럴 듯한 이름으로 바뀌었다. 돌아온 지 거의 10년만이니 그 사이 상호가 바뀔 만도 하다.

 회상에 잠겨 있을 때,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어느새 성호에게 다가와 냄새를 맡는다. 귀엽지만, 탁한 눈만은 세상 다 산 노인의 눈동자가 연상된다.


 “에프, 멋대로 나가면 어떡하니? 정말 죄송합니다.”


 꽃집에서 뛰어나온 젊은 여성. 치렁치렁한 연갈색 생머리와, 눈 밑의 눈물 점.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성호에게 양해를 구한다.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태도.

 개를 좋아하던 성호에게 그다지 신경 쓰이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미인과 얘기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겨 행운이었다. 멋쩍게 말티즈의 이름을 칭찬하는 성호. 


 “에프, 좋은 이름이네요.”


 다행히 싱긋 웃으면서 친절하게 받아주는 하나. 앞치마가 정말 잘 어울린다. 


 “플라워의 에프에서 따왔어요. [프레시아 꽃집] 주인, 신하나에요. 에프가 폐를 끼쳤네요.”


 꽃집 아가씨라. 오, 분위기가 좋은 걸. 성호는 상황을 의심치 않고 순순히 본인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 향긋한 꽃 내음이 마치 하나로부터 나는 것 같아서 그랬을 지도 모르지, 지금이라면 후회할 행동이었다. 


 “아, 반갑습니다. 낙원초 신임교사, 오성호입니다.”


 “선생님이시군요? 저도 낙원초 나왔어요.”


 “우연이 다 있네요. 저도 낙원초 졸업생이거든요.”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 다니, 만난 적은 없겠지만 더더욱 접점이 생겼다. 성호는 미소를 지은 얼굴로 수줍게 제안하는 하나를 보고 넋이 나갈 뻔했다. 그에게 있어 정말 마음에 드는 여자는 처음이었다. 


 “아하하, 성호 씨, 자주 들려주세요. 저, 꽃점 잘 봐요.”


 “네, 꽃점이라 재밌겠네요.”


 “시간 있으시면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가시죠. 직접 키운 허브로 만든 티도 있답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 때는 왜 그랬을까, 그 만남 이후로 성호의 삶은 망가져 버렸다. 모든 걸 피해, 하나의 품으로 들어가기 직전 가르치던 제자의 죽음이 그를 반쯤 미치게 만듦과 동시에 무언가를 그에게 깨닫게 했다. 


 저 여자를 확실히 부셔버리고 나도 죽겠다고.


 신하나는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마녀다, 송호가 내린 결론이다. 


***

 

 ‘씨발….’


 애새끼들 말 한 번 더럽게 안 쳐 먹네, 성호는 퀭한 눈으로 교실의 아이들을 둘러본다. 본디 사랑스러워야 할 아이들. 작년의 성호는 사랑과 열정을 담아 힘차게 반을 이끌어 나갔을 것이다. 


 ‘씨발, 선생 노릇 때려 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의 성호에게 이 반은 징그럽고 위선적인 꼬마 도깨비들이 30명 모인 무리로만 보인다. 이제 성호의 수업 방식은 그저 인터넷에 올라온 보조 영상을 틀거나, 교과서를 읽는 게 전부. 아이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진 건 어쩌면 당연하다. 


 “조용히 하고 수업에 집중해주세요.”


 “선생님, 첫사랑 얘기나 해주세요. 재미없어요.”


 겨우 5학년이면서 발랑 까진 놈 같으니라고, 속으로는 이 학생을 수십 번은 패는 상상을 했지만 겉으론 그저 위선적인 미소를 지을 뿐이다. 그래, 해달라면 해 주지. 못 할 것도 없다. 


 “첫사랑? 얘기해드릴까요?”


 “”””네!””””


 점점 이성에 관심 가질 나이, 5학년 2반 학생들은 선생님의 첫사랑 얘기에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다. 

 그 기대를 산산이 부셔주지. 요즘 따라 성호도 남에게 상처를 줄 때 희열을 느끼게 되었다. 분명 하나에게 옮은 거겠지. 사랑하면 닮는다는 말도 있지만, 증오해서 닮기도 한다. 그는 느리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 여자랑 인연이 없어서 말이죠. 여러 분 나이 때 절 잘 따르던 여자아이도 제 눈 앞에서 죽어 버리고, 대학 때 썸이라도 타면 무슨 조화인지 다 다쳐 버리고. 그래서, 이 나이까지 연애는 포기하고 살다가,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어요. 한동안은 좋았죠. 이 여자라면 무슨 수를 써도 결혼하고 싶었어요.”


 “선생님…?”


 어두운 진행에 겁을 집어먹은 아이들, 존경하는 선생님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기대했지 이런 이야기를 바란 것이 아니다.

 아이들도 성호의 성격이 부정적이고 의욕이 없는 건 고쳤으면 했지만, 생기 넘치는 얼굴로 불행한 과거를 말하는 쪽은 바라지 않았다. 생명력이 넘쳐서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표정. 정상이 아니다. 


 “그런데요. 그 여자, 완전 돌아버린 것 있죠? 씨발, 잘 못 물렸다고요. 파리지옥 같은 아가씨였어요. 하나 씩, 하나씩 저를 옭아 메었죠.”


 “선생님, 그, 그만 해요.”


 처음 첫사랑을 말해달라고 한 학생이 제일 당황했다. 낄낄 웃는 성호. 이런 걸 바랬다고! 


 “여러분도 상냥한 꽃집 아가씨는 조심하세요. 사람 탈을 쓴 악마일 수도 있습니다.”


 성호의 시선이 닿은 반의 쓰레기 통에는, 흰 색 카네이션과 노란 카네이션 두 송이의 꽃이 살포시 놓여 있었다.


***


 시간은 오후 4시경, 이미 학교의 모든 수업은 끝났다. 퇴근한 선생님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공무가 바빠 5시까진 남는다. 교무실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오 선생, 미쳤나? 학부모들에게 항의 전화가 잔뜩 왔어! 왜 안 받는 거야? 부장인 내가 대신 사과 드렸잖아.”


 또 시작이군. 머리가 반쯤 까진 중년의 부장 선생이 성호에게 또 면박을 준다. 젊은 선생님도 말을 안 걸 정도로 성호는 이 학교에서 고립되었다. 특히 이 부장 선생, 별 노력도 없이 사립 초에 빽으로 들어온 주제에 제일 심하게 갈군다. 


 “그래요?”


 “그래요오오? 인사평가에 반영하겠네. 내년엔 여기서 못 일할 거야. 각오해. 다들 바라고 있어."


 낙원초에서 짤리면, 미달 난 시골 공립초나 알아 봐야지. 초등학교 선생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다. 오히려 멀리서 발을 동동 구를 하나의 모습이 생각나, 즐거운 헛웃음이 솔솔 나온다. 


 “이 좋은 어버이날까지 이래야 하나? 자네만 보면 징글징글해!”


 “어버이날? 아, 그랬죠.”


 아침에 있었던 일을 잠시 깜빡했다. 청초하면서도, 무언가를 숨긴 얼굴의 하나. 보기도 싫지만, 잊을 만하면 생각나 짜증나, 스톡홀름 중후군인가? 


 “오 선생처럼 막돼먹은 인간은 먹여 주신 부모님에게 드릴 카네이션도 준비 안 했지? 평범하게 살아, 좀.”


 직장 부하에게 패드립에 오지랖이라니 너무한 걸. 들어도 아무 생각은 안 나지만 일반인들은 화냈겠지. 성호가 망가져 버린 걸지도 모른다. 그는 실실 웃으면서 이야기를 돌린다. 


 “부장님은 사셨습니까? 카네이션?”


 “허, 요 놈 봐라? 한 소리 들었다고 대드는 거야? 저기, 내 책상 보이지? 10만원도 넘는 거야.”


 자랑스럽게 본인의 책상을 가리키는 부장 선생님. 성호는 처음에 보고 눈을 의심했다. 흰 색과 노란 색 카네이션이 빼곡히 담긴 바구니. 붉은 색이 아닌 것이 눈을 의심케한다.


 “흰색과 노란색?”


 “그게 왜. 빨간 색만 사라는 보장 있나? 저게 더 비싼 거야.”


 공짜로 얻었지만 불혹의 부장은 뻔뻔하다. 아침의 [프레시아 꽃집]을 방문했던 중년 남자, 바로 부장이었다! 


 “무슨 의미인 줄 아시나요?”


 노란 색은 ‘경멸’, 흰 색은 ‘죽음에 대한 추모’. 오늘 하나에게 설명 들었다. 하나가 말한 ‘꽃말’대로 ‘꽃점’은 이루어 진다. ‘경멸’은 이미 일어난 건가? 그럼 추모 차례다. 최악의 경우는 오늘 성호가 죽는다. 

 중년의 부장은 성호의 타는 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대한 비꼬면서 한 마디 한다. 


 “참 나, 꽃에도 의미가 있어? 예쁘면 됐지.”


 분명 꽃 바구니에 담긴 꽃들은 예쁘다. 꽃은 아름답지만, 담긴 악의(惡意)는 아니다. 자신의 꽃 바구니를 향해 다가가서 다시 확인하는 부장, 거리가 멀어진 건 그의 입장에서 다행이다. 


 “아뇨, 그게 아니라….”


 경멸과 추모의 의미야, 입 밖으로 내려고 하지만 부장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을 가로막는다. 


 “이 친구야, 시답지 않은 소리를!? 커, 커흐으으으으으윽, 크게에에에에에에에엑!”


 순식간에 일어난 일. 부장이 괴성을 지르며, 목을 부여잡았다. 목 안에서 꿈틀거리는 듯한 굵은 혈관. 성호를 포함해 교무실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얼어붙는다. 꽃 바구니를 향해 피 한 무더기를 토해 놓고는 균형을 잃어가는 부장. 다른 선생님이 그제야 달려가서 부축해보지만, 이미 새파랗게 변한 채로 숨은 끊어 졌다. 모든 게 1, 2분 안에 벌어진 일. 


 “부장님? 정신 차리세요! 어서 119를 불러 주세요. 어서!”


 죽었네. 별 감흥이 없다. 이번만큼은 하나에게 심했 었군. 갈구던 직장 상사를 죽여준 건가. 내색은 안 하지만, 이번 달 들어서 가장 하나가 사랑스럽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부장 선생님의 죽음에 묵념과 심심한 추모를!


 ‘나도 미쳐가는 군.’


 허탈해. 이 상황에 슬프지 않은 내 자신이 밉다, 성호는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


 자정을 넘긴 심야, [프레시아 꽃집]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초췌해진 꼴의 성호였다. 늦은 시간에도 열심히 리본을 묶고 있던 하나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앗, 성호 씨.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인가요? 꼴이 말이 아니에요. 라벤더 차라도 마실래요?”


 알면서, 아닌 척하기는. 장사도 진작 끝났는 데 남아있던 의도가 뻔히 보인다. 


 “직장 상사가 죽었어요. 지금까지 경찰에 조사받았네요.”


 죽은 사람에게 항상 갈굼 받던 유력 용의자, 부장의 수상한 돌연사에 바로 조사를 받았지만 병원에선 지병인 심장병이 사인이란 의견을 내놓아서 흐지부지 끝났다. 


 “저런…”


하나는 무표정한 성호에게 다가와 팔을 벌려 껴 안아준다. 따뜻한 포옹, 평소라면 바로 하나의 뺨을 갈겼을 일이지만, 이번만큼은 힘도, 의욕도 없다. 


 “힘들었겠네요.”


 “별로.”


 네 얼굴을 보는 게 더 힘들다. 성호의 마음은 잘 알고 있겠지만, 하나는 나긋나긋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부탁, 아니, 애원한다. 


 “저, 그분 장례식에 성호 씨를 따라가도 될까요?”


 “싫어.”


 단 칼의 거절. 젊은 여 선생들이 눈길조차 안 주는 성호에게 이런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주위의 시선은 다시 바뀔 터이다. 그러나, 성호 쪽에서 싫다. 그를 뒤에서 껴안은 채로, 하나는 입김이 귀에 닿는 위치에서 속삭인다. 


 “성호 씨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다른 분들에게도 알려드리고 싶어요. 무엇보다도 카네이션 재고가 많이 남았거든요.”


 재고? 무슨 재고가 남았는 지는 명확하다. [프레시아 꽃집]에 남아 있는 카네이션은 모두 흰색, 죽음을 추모하는 흰 색 카네이션. 역시 이 여자는 마녀다.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마녀. 


 어쩌면 성호는 미약하지만 그녀가 이해가 갈 것 같다. 그게 두렵다. 한숨을 쉬곤 그를 감싸 안은 하나의 손을 거칠게 밀어 낸다. 


“손 떼요.”


“네에.”


“입만 쳐 다물고 있으면 와도 좋습니다.”


“고마워요, 성호 씨."


 꽃집 아가씨는 눈물이 맺힌 얼굴로 활짝 웃었다. 꽃만큼이나 아름다운 미소였다


***


다음엔 가짜가짜 올리겠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