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까 이 상황은?

나는 지금 진미와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앉아있다.

내 앞에 앉아있는 이 여자, 김진미는...

분명 두 달전에 나를 차버리고 다른 남자에게로 떠났었다.

그런데 왜 지금 와서 다시 찾아온걸까.



"... 그래서?"

"응?"

"두 달만에 갑자기 이 오밤 중에 불쑥 찾아온게 뭣때문인데"

"그게... 그..."

"뭐"

"... 미안해. 우리 다시 만나면 안될까...?"

하!

하도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나왔다.

얘 지금 뭐하자는거야?

"야"

"어?"

"봐라. 너 두 달전에 헤어지자고 했을때 나한테 뭐라고 하고 떠났냐?"

"..."

"나한텐 비전이 없고, 그 남자한텐 비전이 있다고. 그래서 떠난다고. 네가 그랬어"

"..."

"그렇게 떠났으면 끝이지. 오밤중에 갑자기 찾아와서 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렇게 끝나고 나서 내가 어떻게 지냈는 줄은 아냐?"

뭔가 점점 열이 뻗쳐서 그런지 그동안 담아왔던 말들이 줄줄이 터져나왔다.

"..."

진미는 계속 아무말도 없이 고개만 처박고 있었다.

"하아... 됐다. 이제 그만 가라"

"잠깐, 제발 내 얘기 한 번만..."

진미가 고개를 들었다.

진미의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뚝 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눈물을 본 순간 마음이 흔들릴뻔했다.

그래도 한 때 정말 사랑했었는데...


아니야, 얘는 다른 남자 만나려고 날 찼던 여자야. 정신 차려.


"아- 이거 왜 이러실까. 너 구차하게 질질 끌고 그런 성격 아니었잖아"

"그 뭐냐... 추억은 가슴에 묻고, 지나간 버스는 미련을 버려"

좋아하는 영화 명대사를 이럴때 써먹게 될줄이야. 나도 참 또라이네.

"그럼... 이제 가라. 문 열어 줄게"

라고 말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진미가 달려와 무릎을 꿇고 내 다리를 부여잡았다.

"뭣...! 뭐하는거야!"

"잘못했어요. 제가 나쁜년이에요. 제발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

이렇게 말하고는 진미는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

나는 당황하는 것을 넘어서 이젠 소름이 끼치기 시작했다.

대체 두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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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회사에서 그 사람이 다가왔을때부터 이미 마음이 넘어갔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나에게 점심 시간에 잠깐 옥상에서 볼 수 없냐고 물었었다.


"진미 씨... 저... 사실 진미 씨 좋아해요"

갑작스러운 고백이였다.

"저랑 한 번 만나보실 생각 없으세요?"




"..."

이 남자, 이형근 대리는 실적도 우수하고, 성격도 참 좋은 남자다.

"혹시... 싫으신가요?"

그에 반해 하민이는... 뭔가 태어나서 사는 듯한... 그런 남자였다.

"... 진미 씨?"

하지만 난... 아직 하민이를...



"...네! 저희 한 번 만나봐요"



그렇게 난 하민이를 떠났다.


처음 일주일간은 너무나도 행복했었다.

업무가 끝나고 퇴근하면 나와 그는 항상 어딘가 들러서 데이트를 했다.

화요일은 꿈의 숲을 같이 걸었고.

수요일은 Y스퀘어에 가서 구경을 하고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 오늘은 돈암동에서 영화를 보기로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설레고 행복한데...

왜 가끔 하민이 얼굴이 자꾸 아른거릴까?



"형근씨가 여기 근처에서 기다린다고 했는데..."

근처에 대학로가 있어서 돈암사거리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인파를 피해 일단 영화관 건물로 들어가기로 했다.

영화관 내부도 사람들이 많아 시끄러웠다.

형근씨에게 전화해야 되는데...

비상계단 쪽으로 가면 좀 조용하겠지.



"고객이 통화중이여서 삐 소리 이후..."

아까부터 계속 통화 중이네... 곧 있음 영화 시작하는데...

"그래 인마. 크크큭-"

윗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형근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뭔 통화를 저렇게 오래하냐 생각하면서 형근 씨한테 올라가려고 했는데,

"어어, 오늘 걔랑 영화 보기로 했어. 조금 있다가 가야돼"

어? 내 얘기 나오는거 같은데?

"거의 다 넘어왔지. 곧 따먹을 수도 있을거 같은데. 흐흐흐"

...뭐?

"하... 진지하게 고백하니까 바로 받아주던데. 존나 쉽더라 크큭"

... 나는 이런 놈이랑... 도대체...

이 자식이 있는 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그러니까... 어.. 어? 진미 씨?"

빡- 하고 정강이를 세게 걷어찼다.

"으악!"

"개새끼..."

나는 그 길로 영화관을 나와버렸다.



집에 도착하니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나는 이런 놈을 만나려고... 하민이를...

아... 내가 무슨 짓을 한거야...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계속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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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엉 우는 진미를 달래느라고 1시간 동안 진을 뺐다.

조금 진정이 됐는지 진미는 울음을 그치고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나는 오늘은 늦었으니까 다음에 다시 만나서 얘기해보자.

이렇게 말해주고 일단 진미를 돌려보냈다.


세수를 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하아... 잠이 다 깨버린거 같다.

에이씨. 오늘은 진짜 일찍 자려고 했는데.


눈을 감으니 진미가 목놓아 우는 장면이 떠올랐다.

허, 참. 사귈 때는 이렇게 눈물 흘리는걸 본 적이 없었던거 같았는데.


"..."


이젠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 떠났으면 잘 살것이지, 왜 이제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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