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데레물로 쓰려고 하는데 빌드업 때문에 그냥 양판소가 되네


그냥 설정이나 단편으로 찍 싸고 끝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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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소리가 들렸다. 익숙하지만 뜬금없고 낮선 목소리, 그 비명은 분명 세실리아의 것이었다. 성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 데미안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오두막을 향해 날아올랐다. 데미안은 거친 손짓으로 문을 벌컥 열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세실리아가 무언가에 목덜미를 붙잡힌 모습이 보였다. 그 추악한 짐승에게 피부는 없는 것만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피부는 있었지만 그 두께가 매우 얇았고, 그렇기에 거의 근육에 달라붙다시피 하는 모습이었다. 입술이 없는 놈의 입이 벌려지고 역겨운 숨이 뱉어졌다.


틀림없는 구울의 모습이었다. 구울은 탐욕스러운 혀를 내밀어 세실리아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울 준비를 했고, 세실리아는 막혀오는 숨을 몰아쉬고 꺽꺽거리며 가녀린 손으로 구울을 애써 밀쳐내려 하였다.


데미안의 이빨이 뿌득 갈리고, 동시에 팔이 뻗어졌다. 한 줄기 은빛 섬광이 호를 그렸다.


구울은 죽었다.


놈의 추잡스러운 머리통은 데미안의 검에 맥없이 잘려나갔고, 머리통은 검은 피를 뿜어내며 신전의 나뭇바닥을 굴렀다. 놈의 입이 약간 움직이며 피거품이 이는 소리를 냈다. 그 사이로 희미하게 말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데미안은 그런 것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건 세실리아의 안전이었다.


"세실리아!"


데미안은 황급히 세실리아의 어깨를 붙잡았다. 다행히 그녀는 목이 졸린 것 빼고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그녀는 움츠린 눈으로 데미안의 품에 안겨 기침을 했다. 그녀의 얇은 목에 새겨진 붉은 손자국을 보자 데미안의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데미안은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구울의 시체를 번쩍 들어올려 신전 밖으로 내던져버렸다. 그는 숨을 씩씩거리며 화를 다스리고 다시 세실리아를 돌아보았다.


"어째서 신전에... 이런 역겨운 놈이 나타난 겁니까?"


세실리아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데미안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저었다. 그는 신전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도, 무언가 움직이는 듯한 기척도 없었다. 그런데 어찌 저 흉물이 성스러운 신전에 침입하여 세실리아를 위협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로선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 곳은 지체의 축복을 받는 성스러운 장소가 아닙니까? 왜 저런 흉물이 이 곳에······."

"하아, 하아······. 저도······ 잘 모르겠어요."


고개를 가로젓던 세실리아는 문득 무언가가 떠오른 듯 책상 위에 놓인 책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책을 바라보는 세실리아의 안색이 시퍼래졌다. 데미안은 뭔가 이상한 기류를 깨닫고 책을 향해 손을 뻗었다. 평범한 책들과는 달리 그녀가 바라보던 책은 황금과 백금을 엮어 만든 사슬로 봉해져 있는 상태였다.


데미안은 손으로 책을 집고, 꾸물거리는 불길한 기운에 눈썹을 찌푸렸다. 귀하디 귀한 황금과 백금으로 봉해진 책, 엄습하는 검은 기운을 뿜어내는 책. 이건 틀림없는 금서였다. 데미안은 책을 기울여 좀 더 자세히 살폈다. 자물쇠 부분에 금이 가 있었다. 그 사이로 역겨운 기운이 물씬 풍겨왔고, 데미안은 책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금서가 왜 신전에 있는 겁니까?"

"금서는 어느 신전에나 있답니다, 데미안."


세실리아가 애써 웃음을 지었지만, 그 웃음은 인위적인 빛을 띄웠고, 그렇기에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 처량한 빛을 더했다.


"위험한 자의 손에 금기의 힘이 들어가지 않기 위해, 그리고 이단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선 신전에서 금서를 보관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지요. 신성한 땅에선 저 추악한 죽음의 힘이 쉽게 닿지 못하니까요. 다만······."


세실리아는 눈을 흘겨 금서를 바라보았다.


"봉인이 오래된 것이었나 보네요. 많이 약해졌어요."

"이 금서는 대체 뭡니까?"

"예언서에요."


세실리아는 잠시 뜸을 들였다.


"사제들이 말하길 묵시록이라고 하더군요."

"종말론자들이 신봉하는 금서 말입니까?"

"네, 세상의 종말에 대해 적은 책이죠. 게다가 고작 예언서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악한 기운을 뿜어내는 책들도 더러 있죠."


데미안은 깊게 한숨을 내쉬고 금서를 집어들었다. 처음 보는 언어로 제목이 쓰여 있었기에, 데미안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알 필요도 없었다. 굳이 머릿속에 이단들의 지식을 들여보낼 생각은 그에겐 추호도 없었다.


"이건 제가 사제들에게 전해주고 오겠습니다."

"아뇨, 제가 갈게요."

"아닙니다. 자매님은 방금 봉변을 당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혹시라도 상한 곳이 있을 수 있으니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손님을 번거롭게 할 순······."

"손님이라뇨, 여기가 제 집입니다."

"······그럼 같이 가죠. 어때요?"


세실리아는 싱긋 웃어보였다. 그 웃음은 이것 외에 타협할 방법은 없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데미안은 고민했다. 생각하는 데 쓰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세실리아를 마주보았다.


"그럼 제 옆에 꼭 붙어 있으십시오. 그 금서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요."

"고마워요, 데미안."


좋아아아아아아


데미안은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방금 신전의 문 앞에서 들었던 것과 똑같은 목소리였다. 목소리는 처음 들었던 것보다 한 층 더 요염하게, 섬뜩하게, 기괴하게 울려퍼졌다. 데미안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세실리아를 바라보았다.


"방금 들으셨습니까?"

"뭐를 말이죠?"

"'좋아' 라고 읊주리는 목소리 말입니다. 못 들으셨습니까?"

"어머, 갑자기 애정 표현을 하면 좀 곤란한데."


세실리아가 입을 가리며 조용히 웃었다. 데미안은 그녀의 말에 맥이 빠져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확실히 그녀는 목소리를 듣지 못한 듯 했다. 데미안은 손에 쥐인 금서를 흘겨보며, 벌써부터 이단의 책이 그에게 헛수작을 부리는 게 아닌지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 책이 저를 홀리나 봅니다. 빨리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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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지체의 움막에 작게 마련된 마굿간에서 말을 골랐다. 검붉은색 가죽에 윤기가 흐르는, 훤칠한 적마였다. 세실리아는 이 말에게 '헤르만'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말 이름에 별 관심이 없었던 데미안은 최대한 감상에 젖은 척을 하며 "좋은 이름이군요." 라며 그녀의 작명 센스를 칭찬하는 데 힘을 쏟아야 했다.


그 고생은 곧 결실을 맺었다. 둘은 적마의 힘찬 발굽 소리에 몸을 들썩거리며 숲 속을 질주했다. 숲에서 풀을 뜯고 자란 덕인지 헤르만은 숲 속을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빠져나갔고, 둘은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웃음을 흘렸다.


특히 데미안의 웃음은 입꼬리가 귀에 걸릴 정도였다. 세실리아의 고운 손이 그의 허리를 붙잡고 들썩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손이 체온을 전할 때마다 데미안은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그는 이런 시간을 원했다. 대신전에서 기사 수행을 받을 때부터 꿈꿔왔던 일을 하고 있으니 감개가 무량해져 그는 숨을 크게 들이셨다.


"데미안, 지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거, 알고 계시죠?"

"물론, 알고 있지요."

"거짓말. 계속 히죽히죽 웃고 있잖아요."


데미안은 깜짝 놀라 말고삐를 놓칠 뻔했다.


"눈치채셨습니까?"

"데미안이 웃을 때마다 허리가 들썩거리는걸요."


안장의 흔들림도 그의 웃음을 가려줄 순 없었다. 데미안은 이번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헤르만의 고삐를 힘껏 쥐었다. 헤르만은 그에 맞춰 속력을 높였고, 둘의 몸은 안장 위에서 더욱 크게 흔들렸다. 데미안은 다시 웃음을 지었고, 세실리아의 목소리를 들었다.


"데미안······."

"집중하고 있습니다, 세실리아, 아무렴, 아무렴요."

"집중하세요. 그러다 말에서 떨 라도 하면 쩌 라 요."


데미안은 흠칫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일까? 데미안은 말고삐를 더욱 힘껏 쥐며 세실리아에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세실리아. 뭐라고 하셨죠?"

"집중하지 않으면 말에서 떨어질 거에요."

"하하, 알겠습니다."


데미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벌써부터 귀가 먹은 건가? 그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귀를 후볐다. 전혀 기사다운 행동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이 숲엔 그와 세실리아밖에 없으니까. 그녀 역시 그의 행동을 보고 쿡쿡 웃었다.


"기사다운 행동은 아니네요."

"그럼 기사답게 수녀님을 품에 안고 말을 달릴까요?"


그의 농담을 세실리아가 웃어넘기는 동안, 둘을 둘러싸던 나무의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곧 숲길이 끝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헤르만은 이히힝, 힘찬 기합을 넣으며 힘차게 숲을 빠져나왔고, 곧 넓은 초원이 펼쳐졌다. 곧장 앞으로 말을 달리면 아마 10분 내에 작은 마을이 나올 것이다. 둘은 지체의 신전이 있는 도시로 가기 전에, 그 곳에서 필요한 것들을 구하기로 했다.


"그런데 좀 이상하네요."

"뭐가 말입니까?"

"한여름에도 밭을 태우나요?"


데미안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히랴!" 기합과 함께 발로 헤르만의 옆구리를 쳤다. 헤르만이 그 신호에 맞춰 숲을 빠져나왔을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어마무시한 속도로 초원을 질주했다. 마을을 향해 달릴수록 연기는 더욱 커졌고, 곧 마을 입구가 보이자 검은 연기는 초원을 집어삼킬 듯 엄청난 기세로 뿜어져나왔다.


"젠장!"


데미안이 신음을 흘렸다.


"습격이군요."


데미안과 세실리아의 눈에 보인 건 우락부락한 남성이 다른 남성의 머리를 망치로 두들기고, 뇌수가 터질 때까지 그 행동을 반복하는 모습이었다. 데미안의 이가 뿌득 갈렸다. 그는 재빨리 말고삐를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고쳐잡고 검을 뽑았다.


그래애애애애


또다시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