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진아, 민진아! 너, 너 나 기억하지? 응? 빠,빨리 대답해 봐!!!"


"진정해 희나야. 걱정 마, 기억하고 있어. 이번이 아마... 62번째인가? 여기, 네가 좋아하는 코코아야. 마시고 잠깐 한 숨 돌려."


"...하아... 하아.... 다행이다...."


"진정해, 진정. 괜찮아, 나 여기 있어."


"정말 다행이야... 날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장희나.

내 오랜 친구인 그녀는, 회귀능력자다.


그리고 난 그녀의 회귀를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

.


어느 날부터인가 같은 날이 반복되는걸 느꼈다.


"민진아, 잠시 가게 좀 보고 있어라. 6월달 헌터 잡지 새로 들어왔으니까 잘 진열해놓고."

분명 전에도 들었던 사장님의 말씀,


"S급헌터 완장쨩의 아찔한 비키니 화보집 6월달호 언제 오나요?"

전에도 똑같은 질문을 한 똑같은 손님,


[이틀 뒤인 9월 16일, 바스타드 길드에서 새로운 길드장을 뽑는단 소식에 업계 관계자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전에 나왔던 뉴스까지.


반복되는 시간은 그때마다 달랐지만 확실히 반복되고 있었고, 이에 대한 의문감이 생길때쯤 난 얼마 안가 그 이유를 알수 있었다.


"넌... 나를 기억해?"


"뭐? 희나야,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그리고 그 꼴은 뭐고? 얼른 병원 가자."


"...아니야, 됐어. 난 괜찮아. 오랜만에 만난 건데 미안하다. 난 이만 가볼게."


갑자기 나타난 소꿉친구 장희나.


헌터일로 바빠 몇달동안 못봤던 소꿉친구가 갑자기 피투성이가 된 채로 가게를 들르더니 저 이상한 말만 남긴채 사라졌고,


다시 몇달... 아니, 몇달쯤 되는 시간이 반복된 후.


희나는 그때보다 더 심각한 부상을 입은채 우리 가게를 찾았다.


"희나야!!!!"


"하하... 민진아... 오랜만이야... 으윽...  우웨에엑....."


"얼른 병원 가자! 헌터 병원에 가면 괜찮을 거야, 얼른 가서.."


"나 거기 못 가... 지금 쫒기고 있어... 쿨럭...."


"희나야... 너 저번에도 다쳐서 오더니,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저번...?"


"기억 안 나? 너 저번에 갑자기 우리 가게 찾아오더니 나 기억하냐고 물었잖아. 그때도 다쳐서 오더니 대체.."


"!!!!"


그 순간, 그녀는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며 충격먹은 표정을 짓다가 날 붙잡고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때를 기억한다고? 정말이야? 날 기억해? 정말? 진짜? 너도 회귀하고 있어? 어? 어? 어?"


"회,회귀? ...그러고보니, 요즘 같은 시간대를 반복하고 있어. 요샌 월요일만 4번쯤 반복된거 같아."


"월요일... 세이브 포인트... 내가 4번 연속 자살한 구간... 틀림 없어..."


"희나야!? 자살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민진아. 다음에도, 날 꼭 기억해줘."


푸욱-


희나는 소매에서 제빠르게 단검을 꺼내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목에 박았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반복됐다.


.

.


"...그래서, 가장 오래 반복된건 약 두달 간의 시간이고, 가장 최근에 반복된 시간은 4번... 아니, 오늘까지 총 5번 반복된 월요일이야."


"역시, 너도 회귀중이구나...!"


다시 날 찾아온 희나가 말하길,


몇달 전 어떤 테러 조직을 쫓다가 회귀능력을 가지게 됐고,

그 조직을 저지할수록 다시 회귀되는 세이브 포인트가 갱신되고, 새로운 능력이 생기며, 현재 약 30번 정도 회귀한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몇가지 테스트를 해본 결과,


그녀가 회귀할때 나도 같이 회귀한다는걸 깨달았다.


"널 찾아왔던 그 날은... 소중한 동료가 날 못알아봐서 혼란스러울 때였어. 분명 목숨을 걸고 함께 싸운 동료 였는데... 회귀하니 그녀랑 적이 되버렸거든... 소중한 사람들도, 아닌 이들도 전부 날 기억 못해. 회귀하면 다시 남이 되어서, 그래서, 흑, 진짜... 미칠거 같았는데..."


그녀는 내 품에 안기며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너가...!! 너가, 너가 함께 있어서어... 흑, 정말 다행이아 민진아.... 너마저 없었다면, 분명 난..."


"괜찮아, 희나야. 괜찮아. 내가 있잖아..."


난 희나의 등을 토닥여주며 한동안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그녀의 회귀능력은 분명 강력한 능력이었지만, 반드시 사망해야만 회귀할수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참으로 끔찍하지 않은가. 죽어야만 발동하는 능력이라니.



회귀로 인해 매번 바뀌고 다시 시작하는 인간관계, 죽어야만 돌아갈수 있는 회귀,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테러조직까지.


희나는 이 끔찍한 상황 속에서 점점 망가지고 있었고, 난 그녀를, 내 소꿉친구를 도와주기로 마음 먹었다.



"43번째 회귀. 9월 30일, 알데바란 길드, 금고번호 4885. 전부 적었어?"

"응, 적었어."


영혼의 필기.

나만 쓸수 있는 노트에 무언가를 기록할수 있는 능력.


보다시피 정말 사소하고 하찮은 능력이지만, 영혼에다 새긴다는 특성 때문인지 회귀 해도 노트에 기록물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점을 발견했고,


회귀내용을 전부 기억해야 하는 그녀의 부담을 조금 덜어줄수 있었다.


필기능력 말고도 나란 존재 자체가 희나에게 꽤 큰 도움이 됐다.


"으흐으으으, 그, 그녀가 죽었어, 내가, 죽여야만, 했다고! 그,그치만... 안죽이면... 그.. 녀는.... 으으으...!!"


"민진아... 나 기억하지? 너도 같이 회귀중이지?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하아... 하아..., 지금, 이거 꿈 아니지? 그 순간 아니지? 난, 난, 아직... 하아.... ....미안. 요새 회귀를 계속해서 잠시 혼란스러웠어....."


힘들때마다 서점으로 찾아오는 희나에게 그녀가 좋아하는 코코아 한잔과 다과를 주며 진정시키고, 격려했다.


자신과 같이 회귀를 해주는 유일한 존재.

복잡스런 상황 속 믿고 의지할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


희나에게 있어 이 점은 상당히 큰 위안이 되주었고, 그녀를 힘든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버티게 해주었다.



내가 버팀목이 되준 뒤로, 희나는 더 열심히 조직을 쫓았다.


회귀를 거듭할수록 희나는 점점 유명하고 강력한 헌터가 되었고, 조직은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민진아, 앞으로 내 식사 좀 해줄수 있어? 아침 점심 저녁 전부 다."


"식사는 갑자기 왜?"


"저번 회차에서 누군가가 내가 먹은 음식에 독을 탓었거든. 당분간은 안전한 음식만 먹어야 겠어."


"아... 응. 알겠어."


희나에게 가해지는 위협과 압박도 점점 심해졌고, 날 찾아오는 날도 늘었다.


회귀하고, 망가지고, 치료하고, 

회귀하고, 망가지고, 치료하고, 

또 회귀하고.....


반복되는 회귀 속에서 그녀는 점점 유일한 휴식공간인 서점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네가 그 망할 헌터의 애인이지? 네 놈 가죽을 뜯어가면 그 년 얼굴이 참 볼만하겠어, 흐흐흐흐...."


결국엔 희나를 추적하던 조직이 나와 서점을 습격하는 일까지 생겼다.


"미안해, 민진아. 나 때문에... 흐윽...으으윽...."


"괜찮아, 서점도 크게 안부숴졌고, 나도 멀쩡하잖아. 너야말로 괜찮아? 많이 피곤해 보여."


"...내가 전부 끝내고 올게. 그러니, 다시 왔을땐... 또 코코아 타 줘."


그 날 뒤로 한동안 희나는 찾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몇번 반복되며 그녀가 회귀를 했다는 사실은 인지했으나 딱 그것뿐. 


그러다 갑자기 지진과 게이트가 터지는 재난이 일어났고, 


며칠 뒤 뉴스에서 오랜만에 희나를 볼수 있었다.


[몇달전 갑자기 행방을 감춘 장희나 헌터가 게이트 폭발테러를 일으킨 수수께끼의 범죄 조직을 전부 잡았다고 합니다.]


뉴스가 보도되고 얼마 안가 희나가 찾아왔다.


조직은 완전히 끝났고, 회귀를 통해 얻은 힘과 능력들은 있지만 회귀능력은 이제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니, 이제 여기서 살수 있어."


"....뭐?"


"야, 민진이 왔냐! 인사드려라, 여기 이 분께서 서점이랑 주위 건물을 전부 사셨어! 난 이제 서점 접고 유럽여행이나 갈 생각이니 새 사장님이랑 잘 해봐라!"


"에...?"


"민진아.... 내 안식처... 되줄... 거지....?"


.

.


"민진아, 앞으론 장 같이 보자. 너 없으니까 너무 힘들었어."


"겨우 30분 밖에 안됐는데? ...잠만, 내가 장 보러 갔다는건 어떻게 알았어?"


"천리안으로 훔쳐봤어."


"....."




"민진아, 영혼노트에 내가 말하는 것좀 적어줘. 중요한 거야."

"알겠어. 뭐 적을까?"


"혼인신고서. 나와 내 민진이."


"....."


"헤헤... 이러니까 꼭 부부 같다... 진짜 신고서도 100장 정도 만들었는데, 우리 진짜로 도장 찍을래?"



"민진아, 나 화장실."


"너도 위치 알잖아."


"넌 안마려워?"


"나? 마, 마렵긴한데..."


"우리 소변 같이 보자. 나 잠시도 떨어지기 싫어. 내가 앉아서 볼테니까 네가 다리 사이로... 아, 불편하면 나한테 싸도 돼."


"....."



"민진아, 숨 뱉어봐."


"어? 어, 이렇게? 후우-"


"스으읍... 하아.... 스읍.... 하아...."


"......"


"헤헤... 민진이가 뱉은 공기.... 안전해... 좋아...."


"........."



장희나.

내 소꿉친구는 수많은 회귀로 망가져 버렸고,

유일한 안식처였던 내게 집착한다.


아직까진 잠은 손만 잡고 자기로 합의 했지만,


요즘 따라 잡은 손을 자기 음부로 끌어당긴다.


아무래도 난 좆된거 같다.


.

.


라는 내용의 전 회귀자가 집착하는 얀데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