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보기


오역 의역 많음

문장 오류 댓글로 제보해주면 감사


------------------------------













 눈썹을 숙이고 눈꼬리에 눈물을 머금은 미사토와 잠시 마주 본다.

 

 “……그런 얼굴 하지 마.”

 

 카와무라 미사토는 특별한 소녀다. 이 아가씨는 나를 순수하게 사모하고 있고, 그 감정은 굉장히 고귀한 것 같다.

 

 “미안, 티셔츠 좀 갖다줘……”

 

 이 소녀를 너무 놀리는 것은 좋지 않다. 젖혀진 시트를 어깨에 걸쳐 내가 몸을 숨기자 미사토는 약간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정을 모르는 토모의 방에서, 들뜨지 않은 표정의 미사토는 옷장 안을 들여다본 뒤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급기야 빨래통까지 끌어냈다.

 

 “……쿠로이와 선배의 옷밖에 없어요.”

 

 “뭐든지 좋아. 갖다줘.”

 

 “아니요, 어제 제가 사 왔으니까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그러는 사이 큰 쟁반을 든 토모가 돌아왔다.

 

 

◇◇

 

 

 “……뭐해.”

 

 힐끗 나에게 시선을 돌린 후, 토모는 미사토에게 돌아섰다.

 

 “아…… 미카게 선배의 속옷은……”

 

 “……미카게의 옷은 빨았다. 지금은 옥상에서 말리고 있어.”

 

 약간 퉁명스러운 느낌으로 내뱉은 후, 내게 시선을 돌린 토모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먹을까? 거기에 있어. 먹여줄 테니까.”

 

 “……”

 

 토모는 절찬 응석 모드.

 나를 응석받이로 삼고 미사토에게는 차갑게 대한다. 상냥할 수도, 잔혹할 수도 있는 그 마음은 모르겠다.

 

 늦은 점심을 얹은 쟁반을 테이블에 놓고 스르르 침대까지 온 토모는 곧장 내게 입을 맞췄다.

 

 “음……”

 

 색이 옅은 눈동자에, 나만을 비추는 사랑의 몬스터. 오늘 들어, 그 경향은 한층 강해지고 있는 것 같다.

 

 점심 식사가 차려진 테이블 앞 의자에 걸터앉아 고개를 숙인 미사토는 이쪽을 보지 않는다. 잔혹한 키스를 나누는 우리를 보지 않는다.

 

 키스를 마치고 떨어진 토모는 한쪽 눈썹을 치켜들고, 조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려 미사토와 나를 비교한 뒤 다시 미사토를 바라보았다.

 

 “……너, 잘 모르겠네. 키스 정도 했나 했더니 그렇지도 않아. 하지만, 미카게는 너를 신경 쓰는 것 같고……”

 

 “…………”

 

 생각에 잠긴 듯한 토모 앞에서 나는 피곤해서 고개를 흔들었다.

 

 “저 애는 2등이 되고 싶은 거야……”

 

 “……아아, 과연. 그런 건가…”

 

 짚이는 대목이 있는 지 토모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인가. 나라면 죽어도 실례지만 말야…… 미카게도 그런 비굴한 여자 싫어하지?”

 

 겁쟁이 미사토는 나의 약점이다. 사라질 것 같은 저 소녀를 내버려 둘 수가 없어.

 

 “……가엾게 생각한다. 동정인가……”

 

 입을 다물고 있는 내 표정에서 그것을 맡은 토모가 중얼거린다.

 

 “뭐, 나도 전부 아는 건 아니고, 분명 그것이 그렇게 만든 건가……”

 

 거기서 토모는 미사토에 관한 모든 흥미를 잃어버린 것 같다. 잔혹한 것은 무관심이다.

 

 문득 떠오른 것은 언제든지 으뜸이 되고 싶어 했던 토우코의 얼굴. 너덜너덜해지면서도 나를 좋아한다던 토우코의 얼굴. 왠지 모르게 미사토가 토우코를 괜히 싫어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랑이란 참혹한 감정.

 나는 조금 울고 싶은 마음이 들어, 그 이후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5번째 수신음 후--

 

 “유우 군?”

 

 “응, 할아버지는 어때?”

 

 전원을 끄고 있을 때의 일은 모른다. 숨기는 건 싫지만 지금 상황은 알리고 싶지 않아. 그래서 나의 첫 마디는 위독한 할아버지의 몸 상태를 언급하게 되었다.

 그런 내 말에 아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할아버지, 방금 돌아가셨어……”

 

 “그래……”

 

 할아버지와는 사이가 좋았던 게 아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입을 연 것은 아빠다.

 

 “……아빠 말이야, 결국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어……”

 

 “……응, 어떤 사람이었어?”

 

 “돈을 좋아했다나…… 나머지는……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쇼와시대 사람.”

 

 부자의 대화.

 약간 쑥스럽지만, 딱히 물어봐도 곤란한 내용이 아니라서 휴대폰은 스피커로 해서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워하듯 아빠가 말했다.

 

 “아들이었던 아빠가 말하는 것도 뭐하지만, 싫은 사람이었어.”

 

 아빠에게는 조금 나이 차이가 나는 남동생이 있다. 2형제. 참고로 삼촌은 아빠 이상으로 할아버지를 싫어하신다.

 

 “금방 화를 냈고, 바로 우리 형제를 때렸지…… 그러곤, 가끔 쉬는 날에는 통장 예금 잔액을 보고 히죽거렸어. 하지만……”

 

 “응……근데?”

 

 “옳은 점도 있는 사람이었어.”

 

 나는 할아버지가 싫다. 항상 화가 나서 입만 열면 미움받는 소리만 한다. 삼촌은 얼굴만 봐도 화가 난다고 했고, 나도 그렇다.

 

 “잘못된 일에 관해서는 금방 화를 냈으니까. 누구라도 아무렇지도 않게 호통을 쳤고, 바로 후려갈겼지. 그건 우리 형제에게도 마찬가지로……”

 

 “……”

 

 “근처에서도 소문이 날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라, 그 때문인지 아빠도 코지(삼촌)도 괴롭힘 받지 않았어……”

 

 나는 아빠의 기분은 모르겠다. 하지만 아빠는 울고 있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은 생각해. 만약, 아빠에게 할아버지 같은 무서운 점이 있다면…… 유우 군을 잘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그건……”

 

 “할아버지도 우리 형제를 싫어하셔서 유산 같은 건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런데, 세금 대책 같은 게 있어서…… 제대로 그 이후의 일을 생각하고 계셔서……”

 

 “……”

 

 “정말 싫은 사람이었어. 유우 군도 알고 있지……?”

 

 --나에게 폐만 끼치지 마라.

 

 나를 떠맡아 곤궁한 아빠에게 할아버지가 건넨 말. 삼촌은 불끈 화를 내며, “그럼 형과 유우를 내가 돌볼 거야!”라고 입을 열었다.

 

 여덟 살에서 열한 살이 될 때까지 삼 년 동안 삼촌과 살았다.

 

 “……아빠도, 유우 군도, 엄청나게 고생했지만…… 할아버지의 그 엄격함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일을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착각이야.”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아빠는 웃었다.

 

 “아하하, 코지도 그렇게 말했어. 절대 인정하지 않겠다고.”

 

 “……”

 

 “그래도 아빠는 생각해. 만약 할아버지와 아빠의 입장이 반대였다면, 할아버지는 더 잘했을 거라고…… 유우 군은 위기를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예를 들면, 의 가정에 의미는 없다. 할아버지와 아빠의 비교에도.

 

 “……예를 들어, 아빠가 미움을 받게 되더라도, 유우 군이 건강하다면--”

 

 “나는 아빠가 좋아.”

 

 혹은 그것이 『아버지』의 모습. 설령 미움을 받게 돼 혼자만의 노년을 보내게 되더라도 세상의 어려움을 가르쳐 제대로 제 발로 서게 한다. 아빠한테는 그런 갈등이 있는 것 같다.

 

 “아빠는 아빠야. 할아버지에게 그런 측면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하자.”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말없이 죽고 말았다. 사실은 이제 아무도 모른다.

 

 “……”

 

 조금 생각에 잠긴 듯한 침묵이 있고…… 아버지는 웃었다.

 

 “……그렇네. 고마워. 유우 군과 이야기해서, 아빠는 조금 힘이 났어.”

 

 “응, 그렇다면 다행이야.”

 

 대화가 일단락되고 문득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토모와 미사토는 우리들의 대화에 흥미진진하다.

 

 내가 ‘베에’ 하고 혀를 내밀자 두 사람은 입가를 꾹꾹 눌러 웃음을 참고 있었다.

 

 

◇◇

 

 

 그러고 나서 앞으로의 예정에 관해 이야기하고 아버지와 통화를 끊었다.

 

 “……뭐야?”

 

 토모는 내 무릎에 뺨을 문지르고 왠지 응석받이가 되어 있었고, 미사토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우의 아버지, 변함없이 성실하구나……”

 

 “미, 미카게 선배는 어른이에요……”

 

 “그래……”

 

 나는 이제 18살이고 아버지가 성실한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다. 두 사람이 거기서 뭘 느꼈는지는 몰라서 나는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여놨다.

 

 왠지 아늑한 분위기였다.

 나는 응석받이가 된 토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사토에게 손짓해 발밑에 앉혔다.

 

 “두 사람에게 얘기해 두려고 하는 게 있어. 들어줄래?”

 

 토모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미사토는 대답 대신 내 무릎에 손을 얹었다.

 

 이 타이밍에 말하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를 걱정하고 있는 이 두 사람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 어디서부터 이야기하면 좋을까……”

 

 샛길로 벗어나, 죽은 사람마저 나온 밤길. 보통과는 너무 다른 나의 청춘. 실수뿐인 나의 청춘.

 

 이러는 동안에도, 나는 새로운 실수를 저지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일로, 아빠로부터 토모에 관한 아주 중요한 정보를 듣지 못했다.

 

 그걸 알았다면, 이후의 일도 좀 더 어떻게 할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잔인하시고,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나 따위보다 훨씬 그것을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