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선왕 때부터 시작된 전쟁은 몇년전부터 급격한 변화를 보여왔다.

적군은 아군의 움직임을 꿰뚫어보다시피 움직였고 그 결과 전쟁에서 점해왔던 우세는 벌레가 먹이를 갉아먹듯이 서서히 없어져갔다.

군부나 왕궁 인물 중에 스파이가 있을 거라고 짐작한 나는 스파이 색출에 열을 올렸지만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던 사이 우세는 적에게 넘어갔고 이제는 왕성이 점령당하여 산으로 도망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전하. 일단 추격대는 따돌린 것 같습니다."

"그런가."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이자 충직한 기사인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는 뒤돌아 성을 보았다.

내가 어렸을 때 자라는 성은 적들의 손에 넘어갔고 곳곳이 불타는 것을 아련히 보자 그녀는 애써 나를 위로했다.

"그래도 살아남았습니다, 전하. 힘을 키워 다시 돌아가면..."

"모든 것을 잃었는데 무슨 힘을 키운단 말이냐."

"...."

"그대야말로 이제 나를 떠나거라. 비록 적이라하나 그대가 그동안 보여준 능력이 있으니 받아주긴 받아줄 것이다. 그것이 나 따위를 따라 허송세월하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아닙니다, 전하."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고 마치 나에 대해 충성맹세를 했을 때처럼 열정적인 어조로 말했다.

"제가 충성할 대상은 오직 전하밖에 없습니다. 설령 전하가 노예가 되어도 저만은 전하를 따를 것입니다."

"...그대가 그런 결정을 한다면 그대는 명예도 영광도 무엇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따를 것인가?"

"기꺼이."

그녀는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기분 탓일까. 왠지 그녀의 입매에서 조그마한 웃음이 보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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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이 점령한 성에 입성한 여왕은 책상에서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막 즉위했을 때만 해도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적국의 기사가 몰래 접선해온 시점에서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왕의 최측근이자 신뢰받는 기사로 어떤 아쉬움 하나 없을 기사는 주군을 배신했고 나는 진정으로 궁금해 그녀에게 물었다.

어째서 배신하느냐고. 왕을 증오해서인지 물었으나 그녀의 답은 뜻밖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단 한가지를 요구했다.

왕의 신변. 그를 데리고 산골에서 조용히 사랑을 나누게 해주는 것.

신분의 차이에 의해 사랑을 이루지 못하자 존경하고 사랑하는 주군을 배신하고 땅바닥에 쳐박다니 참으로 웃기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녀의 주군은 그녀를 의심하지 않고 그녀가 누설한 정보를 누가 누설했는지 그녀에게 조사케 했다.

참으로 삼류 희극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현실에서 벌어진 것을 다시 생각하며 그녀는 웃음을 터트렸다.

후기:얀데레 욕구 충족하고 싶어서 써봤는데 살짝 마음에 안드는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