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커를 잡아달라고?"

사냥꾼은 파이프를 피우며 되도 않는 이야기를 지껄이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지미럴, 술집 게시판에는 괴물 사냥이라길래, 보상도 괜찮아 보여 넙죽 받아놨더니 고용주라 말하는 사내놈이 갑자기 팔을 이끌고 개인실로 끌고 간 것이었다.
괴물 사냥이라 의뢰를 올려놓고 스토커? 스토커라니, 놀리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기가 찬 사냥꾼은 연기를 남자의 얼굴에 뱉고는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치정 싸움은 위병대한테 얘기하시오, 바쁜 사람 발목 잡지 말고."
"선생님, 제발 의뢰를 받아주십시오. 선생님 같은 괴물 사냥꾼 말곤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이런 놈들은 으레 있기 마련이다. 내놓기 부끄러운 의뢰들을 대놓고 보이기 싫어 괴물 사냥이라 써놓고 알고 보면 치정 싸움이나 암살 의뢰나 하는 것들. 사냥꾼은 눈쌀을 찌푸리며 쏘아붙였다.

"뭔가 괴물 사냥에 대해 오해를 한 모양인데, 나는 괴물을 사냥하지 괴물 같이 우악스러운 남의 마누라를 사냥하지는 않소. 이혼 소송과 절차는 가까운 교회를 찾아 가시오."
"그 위병대와 교회를 찾아갈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의뢰를 걸어놓은 것이 아닙니까!"
"그래, 의뢰지엔 '괴물 사냥'이라 쓰여 있었지. '귀찮은 아낙네 떼어놓기' 가 아니라!"

사냥꾼은 남자의 얼굴에 의뢰지를 던지고는 불쾌한 기색을 내뿜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남자는 허둥지둥 사냥꾼의 팔을 잡으며 매달렸다.

"그냥 스토커가 아닙니다, 선생님. 괴물이오! 제기랄, 날 쫒아오는 년은 괴물이란 말입니다!"

문을 열고 나가려던 사냥꾼의 발걸음이 멈췄다.
괴물이 스토킹을?
근처에 위협적인 괴수라고는 목장을 습격하는 그리폰, 벌목을 방해하는 작은 코볼트 무리밖에 없는 이 촌구석에 남정네 하나를 스토킹할 정도로 지능적인 괴물이 있었던가?
숲 속에 남자를 꼬시는 드라이어드라도 생긴 건가?
아니면 마녀?
그렇게 생각하니 골치가 아팠다. 마녀 사냥꾼들이 들이닥친다면 피곤해질텐데.
그냥 여기서 자리를 뜨는 게 상책일까?
아니, 혹시라도 이 놈이 앙심을 품고 나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면 꼼짝 없이 지명 수배를 당하게 될 것이다.
우라질, 그 꼴은 절대 못 본다. 내가 어떻게 그걸 풀고 도망쳤는데.
사냥꾼은 문을 닫곤 몸을 돌려 책상에 걸터앉았다.

"언제부터 시달렸던 거요?"
"바... 받아주시는 겁니까, 선생님?"
"고민 중이니 묻는 말에 대답하시오. 언제부터 이 년이 달라붙은 거요?"
"그게... 일주일 전부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남자는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겼다.

"처음엔 죽은 박쥐나 뱀 같은 것들이 집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처음엔 동네 꼬마들이 장난을 쳤겠거니, 넘어갔지요. 그런데 며칠 전부터 제 주변의 아낙네들이 괴한에게 해코지를 당했다는 얘기가 들려왔지 뭡니까? 심지어 어제는 죽은 사람까지 나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제가 역마를 끌고 왔다니, 뭐니 하며 저를 피하기 시작하고, 꼬마들은 돌을 던지고..."
"시체는 어떻게 했소? 위병대가 수습했소?"
"그것이... 일단 현장 보존을 해 두겠다며 그 처자가 죽은 곳에 두고 갔습니다. 며칠 뒤에 수습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시체를 조사할 시간은 얼마 되지 않다 이건가. 사냥꾼은 어금니를 딱딱 부딪혔다.

"시체의 상태는 어떻지? 그리고 위병대가 당신을 의심하진 않았소?"
"아닙니다. 도저히 사람이 낼 수 없는 상처들이었지요... 발톱 자국에, 머리통은 으깨지고, 늑골은 산산조각이 나 있고..."
"괴물이 당신을 스토킹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어쩌면 그 아낙네들이 불행하게도 괴수를 맞닥뜨린 걸 수도 있지 않소."
"사건 당일에 저희 집에 협박이 적힌 편지가 와 있었습니다. 저희 집에 있으니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발톱 자국이라. 사냥꾼은 생각에 잠겼다.
지성이 있고, 사람에게 호감을 가질 수 있는, 발톱을 무기로 쓰는 괴물.
대략적인 괴물들의 이름이 사냥꾼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만티코어, 악령, 스트리가, 드라이어드, 뱀파이어, 사이렌...
스쳐지나간 이름만 해도 상당히 버거운 괴물들이다. 그래도 값은 두둑히 쳐낼 수 있겠지. 사냥꾼은 파이프에서 연기를 빨며 남자를 돌아봤다.

"지능이 뛰어나고, 사람을 반죽처럼 으깨버릴 강력한 힘에, 한 사람에게 집착하는 괴물이라... 의뢰지에 적힌 액수로는 부족하지 않겠소?"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쳐다보자, 사냥꾼은 의뢰지를 툭툭 치며 말을 이어갔다.

"목장 털어먹는 그리핀이나 무덤에서 시체 퍼먹는 구울들만 해도 추적하는 데에 이틀에서 사흘이 걸리오. 더욱이 사람을 해치는 년이라니, 세상에. 하루빨리 퇴치하지 않음 안 되겠구만. 게다가 이런 강력한 년이면 상대하는 내 목숨도 남아나지 않을 텐데, 위험 수당이 더 붙어야 하지 않겠소?"
"얼마를 더 원하십니까? 제가 금전적으로 낼 수 있는 금액은 그것이 전붑니다."

남자는 경계하는 낮빛을 띄우며 물었다.

"은식기, 하얀 밀빵이나 육포, 결혼 반지. 돈 되는 건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다오."

사냥꾼은 연기를 내뿜으며 남자에게 기분 나쁘게 이죽거렸다. 남자는 한숨을 푹 쉬었다.

"저는 저 길 끝에서 약방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 도움이 되는 약품이 몇 개 있겠지요."
"아, 약사셨구만."

사냥꾼의 얼굴에 사악한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얘기가 더 빨라지겠군."

그는 파이프를 사내에게 들이밀며, 이게 뭔지 아나? 눈 앞의 사내에게 물었다. 약사는 파이프 안의 담배를 기웃거리더니, 안색이 시퍼래지며 펄쩍 뛰었다.

"세상에! 이건... 이건 아편이 아닙니까!"
"약사라면 의료용 아편은 있을 거라 생각하오만."
"미쳤어요!? 아무리 의료용이라 해도 이렇게 기호품으로 소비하는 건 범죄입니다! 유통도 마찬가지구요! 이 미친 년을 잡기 전에 제 목이 교수대에 걸릴 거라고요!"
"이봐, 약사 양반. 난 지금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오. 몸뚱이에는 며칠 전에 코볼트가 긁은 상처 때문에 아픔이 가시지를 않는구만. 고통에 시달리는 이 늙은이에게 진통제를 처방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오만... 어떻소?"
"아무리 그래도 범죄는 안 됩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에요!"
"그렇다면 마녀 사냥꾼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지. 나야 처자식 없는 떠돌이니 여기서 뜨면 그만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꽤나 험한 꼴을 보게 되겠소? 유감을 표하지."

약사는 입술을 앙 다물었다. 위병대나 마녀 사냥꾼들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음에도 사람들이 이렇게 괴물 사냥꾼을 찾아오는 이유는, 그들은 고용비가 비싸긴 해도 '뒤탈'이 없기 때문이다.
보나마나 위병대는 사후 처리비와 치안비를 이유로 세금을 더 때리겠지. 추수철에 먹을 것도 없이 검은 호밀빵만 먹으며 겨울을 나게 될 것이다.
마녀 사냥꾼은... 더 끔찍할 것이다. 일단 일의 발단이 된 약사는 무조건 마녀와 내통했단 이유로 교수형에 처할 것이다. 그와 친하게 지내던 아낙네들, 노인들, 어린 아이들에 들짐승들까지 모조리 사형에 처하게 되겠지. 마을 외곽에 주렁주렁 매달린 시체의 열매를 맺은 풍경을 생각하니 약사의 몸이 오싹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오기 전에 그의 몸이 버티지 못하리라.

약사는 핏기어린 피곤한 눈으로 사냥꾼을 노려보았다.

"조건을... 수락하겠습니다. 하지만 일처리는 최대한 빨리 끝내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보수에 대해선 비밀로 부쳐야 할 것입니다."
"역시 배우신 분이라 말이 빨리 통하는구먼."

사냥꾼은 클클 웃으며 옷자락에 걸린 약병의 수를 세곤 힘차게 문고리를 잡았다.

"일단 부검을 하러 가 보세. 어떤 놈이 당신의 정조를 위협하는지는 알아야 할 테니."



위쳐 소설 보다가 얀데레 뱀파이어 보고 갑자기 삘받아서 싸지름
얀데레가 안 나오는데 얀갤에 올려도 되나 모르겠고 후편을 쓸 수도 있고 안 쓸 수도 있고
얀갤에 올리기에 좀 부적합하거나 후편 안 쓸 거 같으면 걍 글삭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