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 진입한다."


두꺼운 강철로 만들어진 문에 붙여놓은 플라스틱 폭탄이 폭발하고, 경첩이 떨어져 나간 문은 천천히 쓰러지기 시작한다.

민준은 전술 조끼에 걸려있던 섬광탄 하나를 빼내어 벌어진 문틈 사이로 밀어 던졌다.


잠시 후 형광등이 꺼지는 것처럼 파석-거리는 소리와 함께 형광등 100개를 킨 것처럼 환하게 밝아지는 방의 내부.

이럴 때를 대비해 미리 특수 제작한 선글라스를 낀 민준과 그의 동료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이 작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동작 그만, 무기를 내려놓으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레이저 포인터를 단 k2로 다시 어두워진 실내를 겨누는 민준, 무기를 내려놓으면 목숨은 살려주겠다는 민준의 말이 무안할 정도로 

방 안에는 쥐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놓친 건가?


눈살을 살짝 찌푸린 민준, 경황이 없어서 잘 몰랐지만 이제 보니 방 안의 여러 도구에 새하얗게 먼지가 쌓여있었고,

바닥에는 알 수 없는 도표와 그래프가 그려진 종이들이 민준의 발 아래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민준은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숨바꼭질 같은 상황을 이제는 끝내고 싶었다.


인신매매, 사람을 주고받는 행위.


노예제가 폐지된 지 아연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 사회에서는 노예를 거래하는 게 암암리에 성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민준과 그의 동료들은 그러한 행위들을 근절하기 위해 이곳으로 파견된 것이고.


"아아…. 여기는 알파, 오소리는 없음. 원점 분석 후 베이스로 복귀하겠음"


자신들을 제외하고는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없는 방을 한번 둘러보는 민준.


코를 찌르는 것 같은 썩은 냄새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시체가 썩는 냄새, 그리고 다시 한 번 바닥을 바라보니 아까는 신경 쓰지 못한

말라붙은 피딱지가 새하얀 리놀륨 바닥을 잔뜩 더럽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민준의 검은 군홧발에 언제 붙어 있었는지 모를 더러운 피가 끈적하게 달라붙었다가, 한번 착하고 떨어진다.


"대장, 여기 좀 와보십시오"


"어? 뭔데?"


군화 바닥에 달라붙은 피딱지를 떼어내려고 벽에 군홧발을 잔뜩 문지르던 중 그의 부하 중 한 명이 그를 불렀다.

벽에 나 있는 문. 굉장히 위화감이 든다.

 

두꺼운 잠금장치는 입구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두꺼웠다. 


손으로 한번 스크린을 한번 쓸어보는 민준, 그가 스크린을 한번 쓸자 반짝 빛나며 0을 포함한 10개의 아라비아 숫자가 스크린에 뜨기 시작했다.


아마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것이겠지만…. 오늘 이 시설에 처음 온 민준이 비밀번호를 알 리 없지 않은가?


함정은 없겠지?


잠시 꼼꼼하게 두꺼운 철문 쪽을 한번 훑어보는 민준, 이 문을 열면 뭐라도 건지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이런 곳에서 쓸데없이 부비트랩에 밟혀 목숨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원래 부비 트랩이라는 것 자체가 이렇게 상대가 방심하고 있을 때 확-하고 터지는 법이니까, 


꼼꼼하게 문 주위를 확인해본 민준, 그는 문에 아무런 장치가 되어 있지 않았음을 확인하자마자 손을 들어 부하들에게 이 문을 날려버리라는 수어를 날렸다.


아직 방심할 수 없었다. 혹시 문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 무언가를 설치했을까 봐 문 자체를 박살 내라고 명령을 내린 민준이었다.


다시 한 번 그의 부하들이 문에 플라스틱 폭탄을 붙이고 점화할 준비를 하고 있을 동안 민준은 뒤를 돌아보며, 방 내부를 확인해보았다.

어두침침한 채광창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빛만 아니었으면 낮인지 범인지도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실내는 어두웠다.


천장에 걸려있는 갓 전등은 이미 제 역할을 하지 못 한 지 오래였고, 거무죽죽하게 말라 붙인 핏자국들이 낭자한 바닥은 이 실험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것 같았다.


시체 썩은 내. 민주는 시체 썩는 냄새가 어떤 냄새인지 너무나도 잘 알았다.


"특이 사항 발견, 확인 후 베이스로 복귀하겠음"


그는 짧은 보고 후, 고개를 한번 내저었다. 


이런 식의 자질구레한 상념은 별로 좋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눈에 보이는 위험 요소가 아무것도 없어 보여도 막상 까보면 목숨을 잃을만한 것들이 천지라는 것을 민준은 너무 잘 알았다.

안전해 보인다고 마구잡이로 제집처럼 방심하고 있으면 염라대왕과 독대할 기회를 얻게 되는 게 바로 그가 하는 직업이니까.


그는 다시 한 번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 크게 다른 건 없었다.


여전히 리놀륨 바닥은 핏자국으로 더러웠고, 방안은 더럽게 어두침침하고 또 벽면에 있는 각종 알 수 없는 도구들은 새하얀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들 하나하나가 전부 민중의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대체 이런 썩은 내는 어디서 올라오는 거지?


어딜 둘러보아도 자신의 코가 얼얼해질 정도로 풍겨오는 냄새의 근원지를 발견하지 못한 민준.


코를 몇 번 킁킁거리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부하들이 플라스틱 폭탄을 부착한 뒤 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한 민준, 다시 한 번 쿵 소리가 나는 소리와 함께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지기 시작하는 문.


그리고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섬광탄을 하나 던지고 바로 들어가는 민준과 부하들, 그들이 날려버린 문 너머에는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다. 


선글라스 대신 나이트고글을 착용한 후 가장 먼저 앞장서서 혹시 모를 위험 요소가 있는지 확인하는 민준, 

녹색 화면으로 나오는 계단에는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벽면에 붙어 있는 전등이 모두 꺼져있는 것을 보아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 시설은 아주 오래전에 폐쇄당한 것 같았다.


최소 몇십이군.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아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조금씩 진해지는 썩은 내에 눈살을 찌푸린다.


작은 돌계단을 완전히 내려가니 그 아래에는 베니어 합판으로 이루어진 얇은 문이 있었다.

안을 확인할 수도 없고 그냥 단순하게 출입 금지라는 심심한 문구가 적혀져 있는 문을 바라보는 민준, 딱히 뭐 특별 해 보이는 건 없어 보였다.


그는 살짝 뒤축에 무게를 실은 뒤 몸의 무게를 앞으로 옮기면서 자신의 발로 얇은 문의 손잡이를 강하게 걷어찼다.

마각 거리는 소리와 함께 통통 튀기 시작하는 손잡이. 그리고 다시 한 번 강하게 발로 문을 걷어차는 민준이었다.


아무래도 썩은 내의 근원지를 찾은 것 같군.


욱, 웩.


눈앞의 광경은 산전, 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특수 부대라도 버티기 힘들 만한 그런 것 부류의 풍경이었다.


자신의 예상대로 좋게 봐도 몇십구의 시체가 바닥에 쌓여 있는 것을 확인한 민준, 그는 뒤에서 들려오는 토악질을 무시한 채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시체를 총구로 쿡쿡 찔러보니 별로 힘을 주지 않아도 마치 스펀지처럼 힘을 주는 대로 쉽게 짓물러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후경직도 없는 것을 보아하니, 죽은 지 오래된 그런 시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민준에게 있어서 이런 풍경은 별로 새로워질게 없었다.


그저 그는 늘 하던 것처럼 천천히 현장을 둘러보며, 혹시 모를 위험 요소가 있는지 확인하였다.


그러다 그는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를 보아하니, 전부 다 어린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그런 것들이었다.


민주는 잠시 위층에 굴러다니던 용도 모를 수술 도구와 이 아래층에 있는 어린아이의 시체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특별히 그것에 관해 관련 학습을 받지 않은 민준은 그 두 개가 가지고 있는 상관관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런 일들은 감식반이 해야 할 일이지 민준이 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민주는 군인이었고, 군인은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존재였다.


뭐…. 시체 말고 특이한 건 없네


지하 1층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음. 그것도 아주 많이.


머릿속으로 보고해야 할 점 하나를 기억한 다음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려고 한 민준, 그때 그는 손에 쥐고 있던 k2를 다시 한 번 고쳐 쥐었다.

벽 구석을 향해 레이저 포인트를 가져다 대는 민준


무언가 있다.


녹색 나이트 비전에 보이는 두 개의 안광.

마치 고양이의 그것처럼 환하게 불타오르는 두 개의 안광은 민중을 뚫어지라고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민중의 앞을 지나가는 두 명의 부하, 자신들의 발아래에 깔린 시체들을 지르밟으면서 두 개의 안광이 비치고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간다.


"어린 아이예요, 어린아이"


아. 뭔가 꾸물꾸물하게 쭈그리고 있어서 뭔지 한참 바라봤는데 어린 아이였구먼.


"기다려 일단 함정일 수 있으니 한번 주위를 둘러보자"


그렇게 말하는 민중의 말에 토씨 하나 달지 않고 민주니 시키는 대로 주위를 둘러보며 혹시 수상한 점이 있는지 확인해보는 부하들.


그 어떤 이도 대장인 민준의 말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민준이 시키는 데로 안 하고 자기 멋대로 하던 사람들은 전부 다 목숨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이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은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그, 누구 하나도 민준의 말을 거스르지 않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꼼꼼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후에 어떤 특이점도 찾지 않은 그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민준을 바라보았다. 


민준은 자신의 부하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한 그 길을 지나가, 눈앞의 어린아이를 바라보았다.


8살? 9살? 나이트 비전의 구질구질한 화질로 보아도 알 수 있을 만큼 굶은 흔적이 역력하였다.

입술이 갈라지고, 볼이 움푹 들어간 탓에 나이가 몇 살인지 어림짐작할 수도 없었다.


8살이니 9살이라고 생각한 것도 그냥 눈에 보이는 체구만 봤을 때 그렇게 단정 지은 거지, 막상 확인해보면 다를 수도 있었다.

원래 어린 시절에는 어떻게 먹고 크느냐에 따라서 많이 바뀌어 보이는 법이거든.


"누구세요?"


오랫동안 다른 사람과 말을 안 한 듯, 잔뜩 잠긴 목소리로 민준을 올려다보는 아이.


민준은 자신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어린아이를 바라보았다. 쭈그리고 앉은 체 녹색 안광을 빛내며 자신을 바라보는 그 모습에서 민준은 왠지 모르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다.


"따라와"


민준의 말에 어린 망아지가 일어서듯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어린아이, 그러나 오랫동안 굶은 탓일까? 사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탓에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어떻게든 두 발로 일어서면 무릎이 후들 후들거려서 금방 바닥에 풀썩 쓰러지고, 네 발로 걷자니 이번에는 또 젓가락처럼 가느다란 팔이 문제였다.


민준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손에 쥐고 있던 총을 어깨 걸러 바꾼 뒤 두 팔을 들어서 마치 공주님을 들듯 그 아이를 들어보았다.


민준의 팔에 안긴 체 아이는 풍선처럼 가볍게 들렸다. 나이트 비전으로 본 풍경 속의 그 아이는 녹색 안광을 반짝거리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심해라, 다 끝났으니까"


다 끝났다는 말은 민준에게도 포함되는 말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번에도 오소리는 발견하지 못했다.


아마 다음 작전까지 쉴 시간이 많겠지, 잔뜩 긴장하고 있던 탓에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어깨가 잠시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 전에 내려온 계단을 다시 올라간 뒤,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방을 지나, 맨 처음 들어왔던 좁은 복도를 빠져나오니 바다가 보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 너머로 조금씩 저물어가고 있는 노을, 붉은 태양이 저물어져 가면서 푸른 바다를 황금빛으로 물 들이고 있었다.


"와아…."


그리고 그 아름다운 풍경이 감명 깊은 듯 민준의 품에 안겨 있던 아이가 연신 탄성을 내뱉었다.


민준은 이런 광경은 처음이라는 듯 입을 벌린체 눈을 깜박거리는 아이를 잠시 바닥에 내려놓은 뒤 본부를 향해 임무가 끝났음을 알리는 보고를 내렸다. 


투타타타타-


잠시 후 공기를 가르는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소음과 함께 흙먼지를 잔뜩 흩날리며 평평한 곳에 착륙을 시도하는 헬리콥터.


아이는 풍경을 감상하던 중 흩날리는 흙먼지가 거슬리는지 눈을 살짝 찌푸리며 헬리콥터 쪽을 바라보았지만, 그 멋있는 모습에 다시 한 번 눈을 초롱초롱 빛내기 시작한다.


다행히 겁을 먹지는 않았나 보군, 민준은 다시 한 번 아이를 안았다.


이번에는 마치 포대를 짊어지듯 아이를 둘러매는 민준, 헬기에는 아이가 앉을 만한 자리를 따로 마련할 수 없어서 민준은 그의 허벅지 위에 아이를 앉히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사람이 탑승한 이후 다시 한 번 흙먼지를 풀풀 풍기며 공중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하는 헬리콥터.


어린아이의 시선에는 그것조차도 색다른 풍경으로 보이는지 헬리콥터의 유리창에 얼굴을 박은 체 방금까지 자신이 있었던 서해안의 조그마한 섬을 바라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