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https://arca.live/b/yandere/73630614


캄캄한 어둠, 내 심장박동 소리밖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한 방.


간만에 편안한 꿈을 꾸고 눈을 뜨자마자 보인 풍경이다.


"나, 얼마나 잔 거지..?"


눈이 점차 어둠에 익숙해지니 조금씩 방의 모습이 보였다.


언뜻 보이는 방의 모습은 내 방도, 그렇다고 늘 신세지던 병원의 병실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창문이 없다는 게 이질감이 들었다.


낯선 풍경이었다.


"으윽.."


일단 몸을 일으키려 하자, 장용수한테 칼로 찔린 데가 저릿저릿했다.


"개자식, 누가 깡패새끼 아니랄까봐 칼을 들고 다니네."


그래도 다행이었다. 


만약 그때 트라우마로 계속 몸이 굳었었다면, 난 또 가족을 똑같은 문신을 가진 놈한테 잃었을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죽어도 내가 죽는 게 맞았다.


그녀는 격투계의 초신성이고 나는 일개 학생에 불가하니까. 그리고 난 양아버지의 친가족이 아니니까.


"..."


이런 생각을 하니 좀 쓸쓸하네.


나는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엇"


나는 일어서자마자 휘청거렸다.


얼마나 누워있던 건지 몸은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았고 칼로 무자비하게 쑤셔진 오른쪽 허벅지가 너무나 아파 걷기 불편했다.


그래도 겨우겨우 방 문 앞까지 걸어갔다.


방 문은 이상하게도 철문이었다.


덜컥. 덜컥.


"뭐야 이거 왜 안 열려?"


내가 많이 야위어진 탓인가? 아니면 너무 오랫동안 누워있어 몸에 힘이 안 들어가는 건가?


그렇다기엔 문고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혹시, 밖에서 잠그는..."


철컥. 끼이익.


내가 계속 문이랑 씨름하는 사이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열었다.


"...드디어 일어났구나!"


문을 연 사람은 바로 이소연이었다.


이소연은 눈물을 글썽이면 나에게 뛰어들며 안겼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나는 뒤로 자빠지면서 이소연의 포옹을 받았다.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 니가 깰 때까지.."


이소연은 나를 꽉 끌어안았다.


나를 안고있는 힘을 보니 당분간은 놔주지 않을 기세였다.


"미안해.. 근데 나 얼마나 오랫동안 누워있던 거야?"


"2주.."


2주동안 누워 있던 건가?


나는 내 몸 위에서 울고 있는 이소연의 얼굴을 보았다.


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왔고 많이 피폐해진 몰골이었다.


... 이게 '퇴폐미'란 건가?


그럼에도 이소연은 새로운 느낌으로 이뻐보였다.


"크흠. 일단은 비켜줄래? 지금 몸에 힘이 안 들어가서 너무 힘들어."


나는 괜한 생각에 헛기침을 하며 이소연에게 비켜달라 했다.


이소연은 그제서야 새하얀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일어났다.


"다리는 좀 괜찮아? 의사 선생님이 앞으로 걸을 때 불편할 거라 했는데.."


나는 아까 일어났던 침대로 걸어가서 걸터앉으며 말했다.


"불편하긴 한데, 걸을 정도는 돼. 괜찮아."


"흐음~ 그래?"


기분탓인지 이소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여긴 어디야? 내 방도, 그렇다고 병실같지도 않은데?"


이소연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스몄다.

"음~ 어딜 것 같아?"


이소연의 반문에 나는 모르겠다 답했다.


"잘 모르겠는데..?"


이소연은 내 말에 웃으며 여기가 어딘지 말해줬다.


"여기는 우리 둘만의 공간이야!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둘만의 사랑의 보금자리지! 여기선 나쁜 해충도 없고 아무런 위험도 없어! 오직 우리 둘만이야!"


이소연은 내 곁에 앉아 팔짱을 끼며 나를 바라봤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맑은 눈에 광기가 섞여 있었다. 


그것이 너무나 소름끼쳤지만 2주동안 내가 일어나지 못해 살짝 정신이 나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어, 그래..?"


"응!"


아무래도 이소연의 정신상태가 많이 안 좋은 것 같았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며 화제를 바꿨다.


"근데 여기 너무 어둡다. 햇빛도 쬘 겸, 우리 '밖'에 나가서 산책이라도 안 할래?"


이럴 땐 햇빛을 쬐면서 산책이라도 하는게 상책..


"안돼..안돼..안돼..안돼.. 절대 안돼!!!!"


"!!!"


내가 산책하자고 하자 그녀의 표정이 점차 굳어지더니 갑자기 크게 소리쳤다.


"절대 안돼!! 밖은 위험해!!"


이소연은 나를 침대 위로 밀쳐 쓰러 뜨려 눕혔다.


그리곤 내 위에 올라 타면 두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여기서 나갈 생각하지마!! 어디에도 갈 생각하지마!! 나에게서 떨어지려 하지마!! 그냥 이곳에만 있어!! 딴 건 내가 다 해줄테니까!!"


그녀의 엄청난 히스테리에 나는 겁을 먹었다.


여태까지 겪어왔던 이소연의 상태 중에서 제일 위험한 것 같았다.


지금 장난으로도 반항하면 어떻게 될 지 모른다.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리고 이소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알겠어. 계속 니 곁에 있을게."


내가 계속 곁에 있겠다는 말에 그녀의 싸하게 굳었던 표정이 한순간에 밝아졌다.


지금 이소연이 이러는 거 보면, 한수아도 많이 걱정하고 있었겠지..


"대신.. 내 휴대폰 좀 주라."


하지만 이어지는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은 다시 싸해졌다.


나를 바로보는 그녀의 두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휴대폰은 왜?"


"전화할 때가 있어서."


이소연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년이야..?"


"어?"


"그년이냐고!!"


이소연이 소리치자 그제서야 내 실수를 깨달았다.


이소연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내 폰을 꺼내더니 그대로 바닥에다가 세게 던져버렸다.


그리곤 부서질 때까지 발로 밟았다.


"왜!"


쾅!


"내가!"


쾅!


"곁에!"



"있는데!"


쾅!


"그 년을!"


쾅!


"생각!"


쾅!


"하는 건데!!"


쾅!


내 휴대폰을 짓밟는 이소연의 모습이 무서웠다.


짓밟힌 내 휴대폰은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각하게 부서져 있었다.


"휴우.."


부서진 휴대폰을 본 이소연은 시선을 돌려 나를 보았다.


ㅈ됐다.


이소연은 내게 다가와 앞에 섰다.


나는 본능적으로 가드를 올리며 움츠러들었다.


"왜 그래~? 내가 뭘 했다고 그렇게 무서워 해~?"


철컥. 철컥.


이소연은 가드를 올린 내 손목을 잡으며 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내 침대에다가 채웠다.


"무슨.."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이소연은 내 위에 올라타 고운 두 손으로 내 목을 졸랐다.


"커헉!"


그녀의 표정에 희열이 가득해 보였다.


"괜찮아~. 무서워 할 거 없어~. 이건 '사랑"이야. 사랑. 너가 나만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내 '사랑'이라고."


아름다운 얼굴로 웃으면서 저 말을 하는게 공포였다.


숨쉬기가 어려워 내가 발버둥치자 이소연은 더욱 거세게 목을 조르며 말했다.


"저항하지마. 내 사랑을 받아들여."


"커헉..! 끄억..!"


"딴 년 생각하지마! 오직 나만 생각해!"


"그..그만.."


"밥 먹을 때도, 양치할 때도, 화장실 갈 때도, 씻을 때도, 모든 순간에도! 항상 나만 생각해!"


이소연은 내 목을 조르던 두 손을 놓았다.


"컥..! 컥..!"


머리에 산소가 공급되자, 멈춰있던 사고에 그녀를 향한 공포가,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소연은 공포에 질린 내 얼굴을 두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니가 '잘못'만 안 하면~ 지금처럼 '벌'받는 일은 없을 거야~. 뭐, 지금이 제일 약한 벌이지만."


이거보다 더한 게 있다고..?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지금 이러는 거, 아버지가 아시면 어쩔려고 그래?"


그러자 내 말을 들은 이소연은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흐하핫! 흐흐! 하하하핫!"


"..?"


"지금 이곳 아빠가 마련해 주신거야."


"...뭐?"


양아버지가 허락했다는 이소연의 말에 나는 몹시 당황했다.


"아빠가 허락했다고. 너와 내 사이를."


"그래도 이런 건..!"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든, 일절 관여 안 하실 거래. 그러니 저번처럼 제지 당할 일은 없을 거야.ㅎㅎ"


"..."


무언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역시.. 나보단 자신의 딸이 소중했던 건가..


순간 알 수 없는 배신감이 몰려왔다.


이소연은 내 얼굴을 자신의 얼굴 앞으로 가져와 두 눈을 똑바로 마주치게 했다.


"그러니 도망칠 생각하지마. 도망치다 걸리면.. 알지?"


마주보는 그녀의 죽은 눈이 무서워 몸이 떨렸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더였다.


"좋아. 지금 많이 배고프지? 잠깐만 기다려. 내가 곧 만들어 올게."


더이상 이소연은 내가 알고 있던 그 츤데레같던 이소연이 아니었다.


쪽.


그녀는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추고는 밝게 미소지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이 죽어 있어서 그런지 그 미소마저 무섭게 느껴졌다.


"흠~ 흐흠~"


그녀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콧노래를 부르며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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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랫동안 잠적해버렸네. 바쁜 것도 있었지만 나태한 게 제일 컸던 것 같아. 늦어서 미안. 면목이 없다.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