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현아 글 쓴다더니 이런거나 쓰고 있냐...?


새로 올라온 댓글을 읽자마자 머리 속에 피가 전부 말라붙었다. 누가 댓글을 썼는지, 왜 이런걸 올렸는지, 그런걸 알아볼 생각도 없이 바로 코멘트 삭제버튼을 눌러서 댓글을 삭제했다. 어떻게 알아냈을까? 


...내가 소설을 쓰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정민아랑 이세희밖에 없다. 그것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고 술자리에서 잠시 스쳐지나가는 이야기로 말을 한 것밖에 없는데.


...나는 그제서야 내가 플랫폼에 소설을 올리는 닉네임이랑 내 메일 주소랑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생각해도 같은 닉네임을 쓰고 있으니까, 한번은 찔러봐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댓글을 올린것 같은데... 너무 방식이 비겁하고 저열하기 그지 없었다. 


이거랑 비슷한 일이 언젠가 한번 있었다. 고등학교때 있었던 일인데 그 당시에 나는 자습시간에 소설을 썼다. 별 생각 없이.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공책에 끼적끼적 낙서를 하듯. 나는 그림을 잘 못그리니까 낙서 대신 소설을 썼다. 가까스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기는 했었지만 그때 이후로 공부를 아예 완전히 손을 놔버렸는데, 학교 선생은 야간 자율학습을 무조건 참여해야한다면서 부모님이 허락해도 선생인 자기가 허락을 못한다는 되도 않는 말을 명분삼아 억지로 자율학습에 참여를 했지.


나는 아직도 그 선생이 왜 그렇게 한지는 모르겠다. 어차피 그렇게 학교에 가둬놔봐야 안 할 사람은 죽어도 안하는게 공부인데. 어쨌거나 저쨌거나 공부는 하기 싫고 10시 30분까지 시간을 보낼 방법을 생각했었다. 나는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그 당시에 애들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도 없었고, 휴대폰도 없는데 따로 만화책이나 그런걸 빌릴 돈이 있을리가 없잖아. 그래서 소설을 썻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나는 이불을 돌돌말고 공상이나 망상을 하는걸 좋아했으니까, 내 머리 속의 상상을 소설로 써보면 어떨까? 소설을 쓰는데는 따로 돈이 필요하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생각보다 재밌었다. 7시에 앉으면 10시 30분까지 계속 집중해서 글을 쓸 정도로 열정적으로 글을 썻던것 같다. 아주 옛날에 초등학교 때도 이랬었는데, 혼자 공책을 펼쳐서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어렸을때부터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했고. 그 순간은 정말 행복했었는데, 행복한 순간은 짧디 짧았다.


정확히 누가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이세희때문일거라. 나는 생각해.


가끔, 자습실에서 소설을 쓰고 있으면 나랑 눈이 마주쳤던적이 있었거든.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같은 반일때 항상 짝꿍이었으니까. 내가 쉬는 시간에 뭘 하는지 다른 애들보다 더 주의깊게 봤을수도 있고. 나쁜 마음은 없었겠지만 원래 사람이 살다보면 꼬리가 밟히는 법이다. 계속 자습시간에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소설만 쓰다가 결국에는 학교에서 제일 성격이 더러운 싸이코 선생이 공책을 압수했고. 그리고 나서... 자습을 듣는 모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내가 쓴 소설을 낭독하게 됐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불을 뻥뻥 걷어찰만큼 흑역사였는데, 뭐 그런 일이 있었던 것 치고는 이지메나 왕따같은건 안 당했어. 가끔 글쟁이니 뭐니 그런 이야기가 나왔던것 빼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고, 원래 그 선생이 이미지가 개차반이었으니까. 대신에 그 날 이후로는 소설은 안 쓰고 하루종일 책상에 엎어져서 잠만 자거나, 아니면... 대충 사탐책이나 들고와서 훑어보고 그랬지. 그래서 내가 공부를 아예 안한것 치고는 사회탐구는 언제나 성적이 좋았다.


-우웅...우웅...


다시 정민아가 내게 전화를 했다. 이번에도 그때처럼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을까? 소설의 내용이 다르잖아 내용이... '준현'이라는 이름의 고등학생이 트럭에 치여서 판타지 세계에서 모험을 떠나는거랑 그냥 남녀역전 세계에서 남자가 엉망진창으로 당하는 펨돔 야설은 말 그대로 하늘과 땅차이였다. 고등학교 때도 평범한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펨돔 야설을 썼다가 걸렸으면... 아마 그 당시의 나는 자퇴를 하지 않았을까?


전화를 안 받는다.


사실 그런 생각도 했는데, 그러면 내가 이 소설을 썼다는 정민아의 확신만 더 깊어질뿐이잖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나는 이런 소설을 쓰지 않았는데?라고 잡아떼는게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다.


-준현아 지금 뭐해?


전화를 받은 정민아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가득하다.


-나는 지금 게임하고 있는데..?


정민아가 듣기에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을까?


-게임? 무슨 게임 하는데?


-단풍잎 이야기라고...


-아? 그거 나도 많이 하는데, 서버는 어디야? 닉네임은 뭐고? 환산 얼만데? 같이 보스나 돌까?


-...

 

나는 단풍잎 이야기같은건 하지도 않는다. 원래 게임같은걸 한다고 하면 여자들은 그냥 넘어가는거 아니었어? 환산은 또 뭐고... 갑자기 서버 이름을 데라고 하니까 생각도 안 난다. 


-...크로아?


-야 됐고, 준현아. 어차피 내일 주말인데 할거 없으면 술이나 먹자. 내가 살게.


-나는... 지금 못 나가..


-왜?


-어머니가 집에 계셔...


내 안에 있는 자존심이 조금씩 깎여나간다. 이제 조금 있으면 30살이나 되는데 아직도 엄마를 핑계 삼아서 정민아와의 만남을 피하려고 드는게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내가 너네 동네로 갈게, 그냥 간단하게 이야기만 하자... 내가 뭐 때문에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알지?


-...알아


-니가 뭘 아는데?


-그건...


-됐고, 너 영대 살잖아. 아냐? 나 지금 육교 건너서 너네 동네로 가고 있거든? 우리 어디서 만나?


-...홈플러스


-홈플러스..? 아아.. 보인다, 야 바로 나와 나 지금 거의 다 도착했으니까.


결국에 또 불려나가고 말았다.


정민아랑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까? 벌써부터 마음이 갑갑하다. 침울한 심정으로 방바닥에 널부러진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간다. 


"준현아 나가는거냐?"


"응.. 엄마, 친구가 밖으로 나가라고 해서"


"요즘에는 친구도 많이 만나고 보기가 좋구나. 그래도 너무 마시지 말고..."


식당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와 짧은 대화를 했다. 엄마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어쩌면 잠을 자고 있는 와중에 내가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내면서 움직여서 잠에서 깨버린걸수도 있겠다. 최대한 큰 소리가 나지 않게 현관문을 열고 닫았다. 12월이라서 그런지 롱패딩을 걸쳤는데도 너무 추웠다. 


우리 집에서 홈플러스까지 가는 길은 어두웠다. 낡은 주공아파트 단지를 지나가는 동안 바람은 또 얼마나 많이 부는지, 원래 같았으면 금방 도착했을법한 거리인데 오늘따라 너무 멀었다. 바람도 많이 불고, 기온도 평소보다 더 떨어지고... 그래서 그런지 눈물이 찔끔 나왔다. 아주 살짝... 저 멀리 홈플러스가 보였다. 그것은 푸르스름한 빛을 내며 어두운 도시를 지키고 있었다. 꼭 망망대해의 한복판에 서 있는 등대처럼. 


"야, 김준현... 여기야, 여기!"


그리고 홈플러스의 앞에는 정민아가 서 있었다. 복실복실한 털옷과 털 모자 그리고 벙어리 장갑을 끼고 있는 그녀는 발랄해보였고, 글래서 이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어이가 없겠지만 나는 정민아를 보자마자 다시 눈물이 한번 찔끔 나왔다. 이상한 일이다. 이제 알고 지낸지 몇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가깝게 느껴지는지.... 너 그런거나 쓰냐....? 뭐 그런 이야기를 하거나, 아니면 나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물을게 분명한데...그녀를 보자마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내가 나 스스로도 너무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어휴... 야, 생각보다 많이 춥다. 밥은 먹었냐..? 일단은...아무데나 들어가자. 배고프다"


자연스럽게 정민아가 나와 팔짱을 꼈다.


"뭐? 왜...? 너 이 동네 살잖아. 춥다, 준현아. 아무데나 좋으니까, 빨리 들어가자"


오늘 날씨가 춥긴하다. 밖에 얼마나 있었다고 정민아의 코가 새빨갛게 변해있었다. 그리고... 샌들만 신은 내 발도 떨어질 것처럼 추웠고. 그래서 나는 정민아를 데리고 진짜 동네 치킨집에 갔다. 근처에 보이는데가 치킨집밖에 없었거든...


"우리, 간단하게 순살 한마리에 생맥 500cc만 먹자? 아. 그리고 이번에는 준현아 니가 좀 사라, 지금까지 맨날 내가 샀잖아. 맞지?"


나는 그러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 주문을 했다. 순살 한마리에 맥주 500cc 두 잔.


"인테리어가 생각보다 레트로하네...?"


아주 옛날부터 있었던 치킨집이었으니까. 모든게 다 구닥다리일수밖에 없지. 어둑어둑한 조명... 기름때로 바닥과 벽의 색이 바래져있었어서 사실 정민아를 이곳에 데리고 온게 실수는 아니었을까? 걱정이 들었지만 정민아는 생각보다 이곳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입고 있는 하얀색 털옷을 벗어서 옆에 있는 의자에 걸어놓은 정민아가 나를 바라본다.


"...뭐"


아무 말 없이 빤하게 쳐다보는 정민아의 눈빛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준현아, 소설 니가 쓴거야?"


"...."


3~40화정도 연재하면 끝날듯 ㅎㅎ


미스터 비스트라고 유튜버있는데 재밌으니까 꼭 보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