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이 관뒀다고?”

 

“그래.”

 

“왜?”

 

최서현은 대답하지 않고 단순히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아무리 물어도 말해주지 않을 눈치다.

최수연은 방으로 돌아와 김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 띠-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

 

“씨댕.”

 

풀썩.

최수연은 침대에 누웠다.

달려오느라 땀에 젖은 교복도 불쾌하고 이 상황도 불쾌했다.

 

‘내가 왜 쌤한테 휘둘리는 거지?’

 

자기 기분과 행동은 스스로 결정한다.

그것이 최수연의 모토이자 행동원칙이다.

그런데 지금 그 원칙이 깨지고 있다.

불과 한 달 겨우 넘게 만난 남자에 의해서.

 

‘불쾌해.’

 

최수연은 교복을 벗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에 몸을 녹이고 생각을 정리했다.

자신이 과외를 받지 않겠다고 마음대로 한 것처럼 그도 마음대로 할 권리는 있다.

자신이 불쾌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다만 이유를 말하지 않은 점이 언짢았을 뿐이다.

샤워를 마친 최수연은 머리에 묻은 물기를 닦기도 전에 최서현이 있는 거실로 걸어갔다.

터벅터벅.

 

“엄마.”

 

최서현은 자신의 딸을 바라봤다.

최수연은 굳은 얼굴로 자신의 불쾌함을 토로했다.

 

“내일부터 다른 과외쌤 붙여줘. 그 인간, 관뒀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

 

 

****

 

 

과외를 그만둔 지 2주일이 지났다.

다른 말로 하면 이혜린의 방에서 지낸 지 2주가 지났다.

생활은 편리하고 풍족하다.

내 스스로 이혜린에게 걸어들어오자 그녀는 하던 일도 휴가 내고 내 옆에서 날 수발들고 있다.

이혜린이 준 돈으로 토토를 하고, 차려준 고급진 음식을 먹고, 같이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본다.

밤에는 두 마리의 짐승이 서로를 집어삼킨 듯 껴안았다.

마치 그것 말고는 스트레스 풀 일이 없는 것처럼.

밤의 거사가 끝나고 이혜린이 옆으로 누운 내 등을 쓰다듬었다.

 

“행복해.”

 

“….”

 

“매일이 오늘 같았으면 좋겠어. 도영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나는 대답 대신 휴대폰을 바라봤다.

첫 날을 제외하곤 최수연에게도 전화가 끊켰다.

지금 수업 진도였으면 중1 수학 기본기는 어느 정도 때졌을 때인데. 쩝.

 

“또또. 딴 생각한다.”

 

“아니야.”

 

“아니긴, 그렇게 그 애가 마음에 들었어?”

 

“아니라니깐.”

 

“후후. 포기해. 개 너 관두고 다음 날 바로 다른 남자쌤한테 과외 받는다더라.”

 

“…그래?”

 

“어. 너도 알 걸? 우리 과 1학년 후배 중에 모델로 유명했던 애 있잖아.”

 

알지.

공부도 잘하는 놈이 얼굴도 연예인 할 것처럼 잘생겼고 운동도 해서 엄친아 소리 들었으니깐.

잠만, 이름이 뭐였지?

 

“서준…? 강서준이었나?”

 

“맞아. 지금은 졸업반이더라. 시간 참 빨라. 그치?”

 

나를 꼭 껴안으려는 이혜린의 손을 슬며시 떼어냈다.

 

“근데 개가 과외도 했어?”

 

“집이 어렵나 봐, 여기 저기 기웃거린다고 하고.”

 

기웃거린다는 말이 거슬렸지만 프라이버시를 구태여 캐낼 필요는 없다.

 

“그렇구나. 개가 수연이 과외 쌤이 됐구나.”

 

“딱 여고생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지. 귀공자 스타일. 성격도 제법 괜찮고.”

 

“최수연한테 그런 감정 없으니깐, 괜시리 날 자극해서 떠보려고 하지 마. 혜린아.”

 

”어? 들켰네. 후후.“

 

그녀의 웃음 소리가 거슬려 뒤로 돌아 이혜린의 양팔을 억세게 잡았다.

그러자 꺄- 거리며 반항하는 척 떨림을 감추지 못하는 진동이 내 팔까지 느껴졌다.

 

‘거칠게 해야 좋아하는 이 마조년.’

 

하지만 이혜린을 안으면서도 어째서인지 성적 충족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심장에서 느껴지는 이해 못 할 이 허한 기분은 그날 하루 종일 이어졌다.

 

 

****

 

 

”레드오프 오늘 올라온 직캠 영상 봤어?“

”봤지! 지인짜아 미치겠더라.“

 

쿵쿵.

세 명이 모여 앉은 책상은 여고생들의 떨림에 진동했다.

 

”이번에 월드 투어 한다더라! 시이발. 아직 한콘도 못 갔는데.“

”덕질할 돈도 없으면서 뭔 콘서트 타령이야, 덕질할 거면 수연이정도 여유있는 집…“

 

멍.

최수연은 멍하니 책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민서는 책상을 쾅! 때렸다.

 

”아, 깜짝이야. 뭐야?“

 

김하은이 안경을 한 번 고쳐썼다.

 

”우리 방금 무슨 애기했어?“

 

”어? 무슨 애기?“

 

”이럴 수가.“

 

정민서는 활동하기 편한 체육복 차림으로 의자에서 일어서 혀를 찼다.

 

”방금 <레드 오프>애기 했잖아. 수연아. 너가 죽고 못 사는 레드 오프 말이야.“

 

”레드 오프? 아, 그렇지. 맞아. 나 그거에 죽고 못 살아.“

 

”근데 딴 생각을 해? 2주 전부터 이상하더라, 너. 과외 쌤이랑 싸웠냐?“

 

그러자 반응 없던 최수연이 발끈했다.

 

”싸,싸우긴 뭘 싸워! 여기서 과외쌤 애기가 왜 나와!“

 

김하은이 웃으며 말했다.

 

”어? 진짜 싸웠나 보네?“

 

”안 싸웠어!“

 

정민서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애도 못 속이겠다. 왜 싸웠어? 레드 오프 오빠들보다 잘생겼어?“ 

 

이상향보다 가까운 현실 연애 애기는 두 친구의 눈을 빛냈다.

처음엔 무시하던 최수연도 친구들의 독촉에 질렸는지 휴대폰을 들었다.

 

”자, 봐봐. 우리 과외쌤 사진이니깐.“

 

”와와.“

”드디어!“

 

그 둘은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휴대폰을 낚아채 화면에 눈을 들였다.

그리고 경악했다.

 

”…헐.“

”…대박.“

 

”다 봤지? 이리 내놔.“

 

”진짜 과외쌤 맞아?“

”연예인보다 더 잘생겼는데.“

 

”듣자하니 모델일도 한다더라. 뭐 나랑 상관 없는 애기지만.“

 

시큰둥한 최수연의 모습에 둘은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봤다.

 

 

****

 

 

”나 왔어.“

 

학교 끝날 시간이 좀 지나 최수연이 집에 오자 최서현이 반갑게 맞이했다.

”이제 오니? 선생님 벌써 와계신단다.“

 

”뭐? 뭐 이리 빨리 와?“

 

”수연이 네가 공부에 열심히인 모습이 보기 좋다나… 참, 듣기 좋은 말만 하더구나.호호.“

 

”아, 그래?“

 

최수연이 방문을 열자 수업 준비를 하던 강서준이 몸을 돌려 반갑게 맞이했다.

 

”미안, 환복 해야지? 나가 있을게.“

 

”알면 말하지 말고 미리 나가.“ 

 

“응.”

 

문을 잠그고 최수연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풍덩 누웠다.

 

“공부 재미 없어.”

 

최수연은 충동적으로 다음 날 새 과외쌤을 들인 걸 후회했다.

그것은 반항심이었다.

멋대로 관둔 김도영에 대한 반항심.

 

“부르지 말고 그냥 놀 걸. 아니, 노는 것도 재미가 없네.”

 

어째서인지 노래방도 게임도 수다도, 좋아하는 아이돌 남그룹 애기도 흥미가 사라졌다.

그 빈 자리를 멍한 한랭전선이 차지할 뿐이었다. 

 

‘왜 이러지?’

 

깊게 고민하면 왠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기 싫었다.

그러기 싫은 이유도 반항심이었다.

기분이 컨트롤이 안 된다.

불쾌하다. 기분 나쁜 불쾌함이다.

똑똑.

 

“수연아, 선생님 기다리고 있으신데 아직 멀었니?”

 

“아.”

 

최수연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냥 공부하기 싫다고 돌려보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김도영에게 그렇게 하고 해선 안 될 짓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잠시만. 기다려 봐.”

 

최수연은 교복을 장롱에 쑤셔박고 편한 반팔과 반바지를 입었다.

문을 열자 거실에 앉아있던 강서준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방으로 들어왔다.

 

“실례할게.”

 

“멋대로 들어왔으면서 뭔.”

 

“거실에서 기다리려고 했는데 어머니께서 안에서 수업 준비 하셔도 된다고 해서… 미안, 불쾌했니?”

 

“…아니, 넌 웃으면서 사과하는 구나. 하긴, 그런 얼굴이니깐 그게 효과적이겠네.”

 

그 말에 강서준은 웃음을 감췄다.

 

“흠흠. 그러면 바로 수업하자. 오늘부터 중2 수학으로 넘어갈 거지만 그전 수업처럼 어렵지 않을 거야.”

 

“예이예이.”

 

최수연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좋아, 그럼 시작하자.”

 

강서준이 설명을 하기 위해 무심코 의자를 붙이자 최수연이 살짝 떨어졌다.

 

“…그러니깐 연립 방정식에서 가감법은 곱하거나 나눠서 문자를 소거하는 방식이고, 대입법은 한 미지수를 다른 미지수에 관한 식으로 나타내는 방법이야.”

 

“….”

 

최수연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이걸 풀이로 해보면… 이렇게 돼. 이때 양변에 2를 곱하는 과정은 저번에…”

 

“이해를 못 하겠네.”

 

최수연의 눈은 문제에 가 있었지만 생각은 딴 곳에 가 있었다.

 

“응? 어디가 어려워?”

 

“아니, 미안한데 쌤. 오늘은 이만 가줘. 나 오늘은 더 이상 공부할 기분이 아니야.”

 

“어?”

 

“가. 가라고. 엄마한텐 내가 설명할 테니깐.”

 

최수연은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강서준은 이런 상황이 처음인지 당황했다.

 

“아니, 그래도 공부는…”

 

“쌤. 잘 생각해봐. 나한테 밉보일지 아니면 내 말을 잘 들을건지. 난 한 번만 말해. 어쩔 거야?”

 

강서준은 감히 최수연의 무서운 눈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그에겐 이런 학생도, 자신에게 이렇게 대하는 여자도 처음이었다.

 

“…갈게.”

 

“잘 생각했어. 빨리 가. 엄마 지금 방에 들어가 있을 테니깐.”

 

최수연의 말대로 거실엔 최서현이 없었다.

강서준은 하는 수 없이 내쫓기듯 문을 열고 나갔다.

 

“하아.”

 

최수연의 기분은 풀리지 않았다.

깊게 고민하지 않았지만 결국 방금 알아버렸다.

최수연은 이해 못할 문제에 들이박는 스타일이다.

잠그지 않은 최서현의 방문을 열자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보던 최서현은 깜짝 놀랬다.

 

“응? 수연아?”

 

“엄마, 일 하는 중에 미안한데, 그 전에 김도영 쌤 있잖아.”

 

그 이름에 최서현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저기 수연아, 그 애기는 더 이상…”

 

“아니, 들어야겠어. 왜 관뒀는지, 아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지 않으면 공부가 안될 것 같아. 엄마.”

 

그 말에 최서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 애기를 하는 것이 아이의 정서에 어떨지 생각했다.

고민을 마친 그녀는 최수연을 침대에 앉히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수연아, 널 맡았던 그 선생님… 아니, 그건 선생님도 아니야.”

 

“뭐?”

 

“잘 들어보렴. 천천히 애기 할 테니…”

 

최서현의 애기를 들으며 최수연의 놀란 입은 점점 벌어졌다.

 

 

****

 

 

저녁 바람을 쐬러 잠시 베란다에 나왔다.

이 빌어먹을 낡은 빌라는 매너도 밥 말아먹어 담배 냄새가 위로 솟구쳤다.

혼자 있는 시간이 없다.

산책이라도 하려고 하면 이혜린이 찰머거리처럼 따라붙을 테니 담배 냄새가 풍기는 이 베란다가 어쩌면 유일한 휴식처였다.

이 휴식처도 오래 있지 못 하지만…

 

“빌어먹을. 2주밖에 안 됐는데 내 방이 그립네.”

 

이혜린에게 항복하고 스스로 찾아가서 신세 지고 있는 이상 내 방도 더 이상 의미가 없는 단어다.

슬프다. 참 슬퍼.

웅웅.웅웅.

 

“응?”

 

스팸 전화인가 싶어 차단하려고 했더니 아는 이름이었다.

귀찮아서 아직까지 지우지 않은 그 번호.

최수연이란 이름이 휴대폰 화면에 적혀졌다.

 

“갑자기?”

 

최수연이 후배 강서준에게 과외를 받은 지 2주가 지났다.

그동안 감감무소식이길래 이렇게 잊혀지나 싶었는데 전화가 오니 가슴이 순간 두근거렸다. 

근데 이거 받아야 되나?

 

“받지 말까…”

 

아무리 봐도 좋은 소리 들을 가능성은 0%다.

최수연의 성격을 고려하면 불가능에 제곱이 더해진다.

고민을 한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진동이 꺼지나 싶더니 다시 웅웅 전화가 걸렸다.

 

“그래도 한 때 선생 역할을 했었는데 바로 차단하기도 그렇고… 하아, 그래. 욕은 먹고 차단하자. 도영아.”

 

초록색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이 이렇게 무겁다니,

그래도 아직 양심의 가책이란 걸 느끼는 구나. 나도.

전화를 받았다.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달랐다.

전화 받은 걸 눈치챈 그녀는 귀를 찌르는 목청을 힘껏 소리쳤다.

 

-너 미친 놈이냐?! 우리 처음 커피 마신 데로 당장 튀어와. 지금 당장! 

 

뚝.

최수연은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 얼굴에 욕을 박아야 직성이 풀리는 듯 했다.

그러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 같다.

이혜린이 어느새 베란다 문을 열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가운 눈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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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네.

잠을 3시간밖에 못 자서 피곤.

수면제 먹어도 잠을 못 자. 

불치의 병, 불면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