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은 부활했지만 용사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마족의 침공에 의해 대부분의 인간들은 죽임을 당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소수의 인간들만이 쥐새끼처럼 땅 속에서 숨어들어 가뿐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3백 년이 지났다.

 

 

****

 

 

“카일, 오늘도 쥐고기야, 난 못 먹겠어.”

 

떼를 쓰는 소꿉친구 에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꺼 후추 조금 남았는데 나눠 줄까?”

 

“어? 정말?! 아, 하지만 카일은…”

 

“난 괜찮으니깐 먹어.”

 

고이 보관해둔 후추가 들어간 작은 유리병을 던지자 에리아가 두 손으로 받았다.

 

“헤헤, 고마워!”

 

“뭘.”

 

자리를 떠나 이 마을에서 촌장과 수리를 담당하는 게일을 찾았다.

그는 원래라면 희미하게 켜져있어야 할 꺼져버린 가로등을 고치고 있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게일 씨. 뭐 도와줄 일 있을까요?”

 

내 말을 들은 게일은 사다리를 내려와 땀을 닦으며 한숨을 쉬었다.

 

“후우. 카일 왔구나. 안 그래도 널 부를 참이었다.”

 

“절 부를 생각이었으면 마석이 문제군요?”

 

“옆 마을에 가서 비싼 돈 주고 사온 놈인데. 에잉, 불량품을 준 모양이다. 썩을 놈들.”

 

흰 머리가 거뭇거뭇하게 난 게일은 침을 퉷 뱉었다.

 

“이리 줘보세요.”

 

게일이 내민 손바닥만한 마석을 잡았다.

마석은 본래 갖고 있던 마력을 잃어 색깔을 잃은 상태였다.

눈을 감고 온몸을 도는 피에서 마력만을 솎아내 마석에 집중시켰다.

잠시 후, 눈을 뜨자 마석은 색깔을 찾았다.

푸른 색이었다.

 

“오! 대단하다, 카일. 네가 없으면 이 마을은 돌아가지 않으니 참말로 다행이야! 하하!”

 

내가 태어나지 않았을 때는 귀한 가축 두 마리와 충전이 필요한 마석들을 모두 들고 가 충전해주는 마을에서 등가 교환을 했다.

우리 마을의 마석을 충전해준 사람은 한동안 탈진했겠지만 그 마을은 마력이 회복되는 동안 가축 두 마리를 얻었으니 등가 교환이지만 등가교환이 아닌 셈이다. 

 

“근데 이거 불량품 맞는데요?”

 

“뭐?!”

 

“일주일도 안가 다시 꺼질 거예요. 

 

”개 자식들! 이 마석 녀석들을! 확!“

 

우리는 마석이 나오는 광맥을 차지한 옆 마을을 본래 이름 대신 마석 마을이라고 불렀다.

우리보다 훨씬 규모도 크고 사람도 많고 정비도 잘 되있다.

그곳을 가면 처음 놀라는 점이 지하임에도 지하 같지 않은 엄청난 밝기의 가로등이다.

희미한 밝기에 의존하는 우리 마을과는 달랐다.

 

”게일 씨, 참으세요. 싸워봤자 좋은 거 없어요.“

 

”흥. 카일, 그거 아느냐. 왕년에 우리 마을에 저들이 빌붙었다. 하지만 운 좋게 마석 광맥이 터지고…“

 

”네네. 귀 터지게 들었어요. 더 고칠 건 없죠? 스쿱 씨는 오늘 안 쉬나요?“

 

말을 끊은 내게 언짢은 표정을 지은 게일은 툴툴 거리며 말했다.

 

”개? 보나마나 땅이나 파고 있겠지. 개는 왜?“

 

”왜긴요. 밥 먹을 시간이 왔으니깐 그렇죠.“

 

”냅둬! 배고프면 어련히 오겠지!“

 

게일의 말과는 다르게 스쿱은 배가 고프다고 올 사람이 아니다.

나는 왼손에 든 희미한 빛을 지닌 마석에 의지한 채 구워진 쥐 고기 몇 개와 약간의 견과류를 들고 스쿱이 작업하고 있을 북서쪽으로 걸어갔다.

깡!깡!

거대한 못과 망치로 암석을 뚫는 스쿱이 보였다.

위에는 아무런 안전 장치가 없었다.

자칫 붕괴되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다.

깡!깡!

 

”스쿱 씨. 아직도 일 하세요?“

 

“카일이냐.”

 

“밥은 먹고 해야죠. 식사 가져왔으니 드세요.” 

 

”고맙다.“

 

스쿱이 마스크를 내리자 그가 만든 먼지에 기침을 했다.

 

”켁켁, 제길. 이놈은 얼마나 파야 하는 건지.“

 

”얼마 전 샀던 암석 분쇄기는 어디 가고 왜 못과 망치로 파시는 거예요?“

 

나는 보따리에 든 쥐고기를 스쿱에게 내밀었다.

스쿱은 쥐고기를 한 차례 뜯어 먹고 말했다.

 

”고장났다. 얼마 쓰지도 않았는데, 제길.“

 

”마석 마을에서 산 거죠? 앞으로 거기서 사면 안 되겠네요.“

 

정부가 없기 때문에 물물 교환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인력을 제공하는 물건을 사기도 한다.

스쿱은 암석 분쇄기를 사기 위해 한 달간 마을을 출타했으니 그 비통한 심정을 가늠할 길이 없어 위로의 말을 꺼내기 힘들었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스쿱은 껄껄 웃음을 지었다.

 

”괜찮아. 난 원래 못이 더 편해. 그리고 이번엔 느낌이 좋아. 분명 여기가 길일 거야.“

 

이 애기를 게일의 ‘운 좋게 마석 광맥이 터지고…’ 보다 더 지겹게 들었다.

하지만 다혈질의 게일보다 느긋한 성격의 스쿱이 난 더 좋다.

 

”지상으로 가는 길이요?“

 

스쿱은 쥐고기 세 마리 뜯고 인상을 썼다.

하루 종일 지겹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암석을 파대는 스쿱도 쥐 고기는 익숙하지 않나 보다.

 

”응. 위쪽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 그걸들으면 더 신명 나게 파게 돼.“

 

”저번에도 그 말씀 하셨잖아요. 근데 결국에는…“

 

지상으로 가는 길은 단순히 위쪽을 판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애초에 지상 기준으로 어디가 동이고 서인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금 파는 길이 엇각으로 가는지 산을 뚫고 가는지 아무도 모른다.

스쿱은 그 방향성을 자기만이 들리는 바람 소리로 찾는다던데… 솔직히 아무도 믿지 않는다.

스쿱의 할아버지 대부터 이 작업을 대대손손 물려져 진행됐다.

 

”이번에는 틀림 없어. 보라고. 분명 우리들이 먼저 햇빛을 보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괜히 돼지기름을 값비싸게 사 먹을 필요 없어. 햇빛만 째면 돼. 신기하지?“

 

마석만큼 비싼 게 돼지 기름이다.

이유는 선조들이 남겨줬다.

 

-앞으로 햇빛을 볼 날은 없을 테니 우리가 가져온 돼지를 키워라. 성장이 필요한 아이들에겐 이 틀에 한 번, 어른들은 사흘에 한 번 들이켜라. 명심 해라. 돼지기름을 먹지 않은 아이는 후에 성장이 제대로 되지 않고 몸이 허약하며 쉽게 골병이 들고 수명이 단축 된다. 돼지 기름을 금으로 알고 소중히 다뤄라. 

 

뒤에는 돼지 기름에는 햇빛이 갖고 있는 영양소가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햇빛을 쬔다고 몸에 영양소가 만들어진다는 걸까?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선조들이 땅을 매꾸지 않았으면 스쿱 씨가 이 고생을 하지 않았을텐데…“ 

 

지하 깊숙이 숨어든 선조들은 흔적을 지우기 위해 뚫고온 흔적을 마법으로 도로 메꾸고 마을을 만들고 각 마을마다 공기 정화 제어 장치를 만들었다.

선조들의 지혜와 노력 덕분에 후대의 우리가 그 터전에서 살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3백 년이나 지났다.

 

”게일은 나를 쓸모 없는 사람 취급하지만 카일 잘 들어. 그 사람은 늙었어. 지상을 장악했다는 마족이란 것들이 두려워하는 게 분명해. 넌 어때?“

 

”마족이 있으면 죽이면 되죠.“

 

”어? 하하하하!“

 

느긋한 스쿱은 예상외의 답변을 들었다는 듯 배를 잡고 웃었다.

스쿱은 웃음을 멈추고 먼지가 묻은 장갑 낀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꼬마는 그래야지! 꿈을 크게 가져라! 우리 어른들을 본받지 말고.“

 

”꼬마 아닌데요. 14살이면 다 컸어요. 그것보다 뭐가 웃겨요?“

 

”카일, 난 마족을 잡으러 길을 뚫는 게 아니야. 난 숨구멍을 찾으러 가는 거야.“

 

”숨구멍이요?“

 

”그래. 듣자 하니 지상은 우리가 사는 마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넓고 크다고 하는 구나. 너도 봤지? 소 만 마리를 초원에 풀어도 하늘에서 보면 너무 작아서 안 보인다는 구절.“

 

”<약크의 일기장>에서 봤어요.“

 

”그 넓은 곳에서 마족이 얼마나 있다고 우리가 뚫는 곳에 기다리고 있겠어? 안 그래?“

 

”듣고보니 그렇네요.“

 

”카일, 검이나 배워둬라. 혹시라도 내가 뚫는 곳에 마족이라도 나타나면 네가 베어버리면 되니.“

 

이쯤 되면 많이 들어줬다.

답답하고 어두운 지하에서 우울증을 앓고 기력을 상실한 사람보다 불가능한 꿈을 꾸는 스쿱 씨가 좀 더 낫다.

 

”네네, 전 가볼게요. 스쿱 씨, 적당히 파고 집으로 돌아오세요.“

 

”그래. 잘 가라.“

 

스쿱은 손 대신 못을 내게 흔들었다.

꼬르륵.

그러고 보니 나도 밥을 못 먹었다.

아껴놨던 후추를 쓸 타이밍이….

아! 게일을 만나기 전에 에리아에게 줬지!

이런, 당분간 간 없는 쥐고기를 폭식해야 되겠구만.

후추에 대한 아쉬움은 에리아의 환한 웃음이 덮었다.

나는 천천히 마을로 돌아갔다.

 

 

****

 

 

스쿱은 농담 삼아 내게 검을 배우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것을 직접 실천하고 말았다.

이유는 시간이 비었기 때문이다.

마력을 배운 이후로 내 할당량은 쉽게 채워지고 말았다.

내 나이대 아이들은 가축을 보살피거나 쥐를 잡거나 기술과 문자를 배우는 식으로 할당량을 채우고 촌장이 계획 하에 나눠주는 배급품을 받는다.

배급품이라고 해봐야 별 게 없다. 하루를 겨우 날 만한 식량이 전부다.

하지만 그 식량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2~3개월에 한 번씩 원기를 북돋는 축제가 열린다. 열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마을을 세운 ‘약크’의 탄신일, 마을에서 아기가 태어나거나 다른 마을로 시집을 가는 처녀가 있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를 갖다붙이고 고기를 먹는다.

이번에는 나와 에리아를 귀여워하던 처녀 ‘마그‘가 제법 먼 마을로 시집을 간다고 한다.

그 때문에 아침부터 돼지 멱따는 소리에 눈이 뜨였다.

눈이 뜨이자 할 게 없다.

 

”심심하네.“

 

’약크‘가 우리 마을에 남긴 서적들이 내 머리맡에서 뒤척거렸다. 물론 원본이 아니라 몇 부 만들어둔 사본이다.

그가 글 서두에 자신을 자화자찬 하는 말에 따르면 지상에 있을 때 그는 ’검의 제왕‘이라 불렀다고 한다.

믿기지 않는다. 설령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검제가 마족한테 쫓겨서 지하에 숨어드나? 영 폼이 살지 않는다.

 

”쿠울… 카일… 나 그만 머고시퍼…“

 

밤중에 내 집에 침입해 이불 속으로 들어온 에리아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약크가 남긴 기본 전투술을 배운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서 화목한 경우는 거의 없다.

법이 있는 옛날 왕국끼리도 전쟁을 벌이는 판국에 마을을 다스리는 왕국이 없는 상황이다.

가끔 긴 지하를 횡단하는 여행객의 말에 따르면 살육을 일으켜 옆 마을을 집어삼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끔찍하다. 다행이라고 해야할 지, 우리 주변은 아직 그런 일은 없다.

마석 마을과의 관계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아니, 나빠지고 있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스쿱이 말한 검을 배워보라는 말은 약크의 검술 교본을 파헤쳐보란 뜻이다.

하지만 교본을 들여다보면서 따라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알맹이가 아닌 껍질을 핥는 기분이다.

그 이유를 게일에게 여쭤보니 돌아오는 대답은 당황스러웠다.

 

”뭐? 그건 사본이 아니라 엉터리야! 게다가 약크의 교본은 사라졌어!“

 

”네?“

 

”처음 들었나? 하긴, 그 엉터리 양반의 검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으니 모를 만도 하지. 그 양반은 검사가 아니라 마법사야. 근데 마법서가 아니라 검술서를 남겼으니 이 얼마나 황당하냐. 쯧쯧. 그나마 전투술은 쓸만하지만.“

 

”다 처음 듣는 애기지만 원본이 없어진 건 저만 모르는 애기가 아닌 것 같은데요?“

 

“아차.”

 

게일의 입에서 술냄새가 났다.

그는 트름을 하고 잠이 오는 듯 마루에 다시 몸을 누웠다.

이럴 수가. 게일이 약크의 검술서 원본을 술과 바꿔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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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교사 1~2화안에 결말 냄. 이번엔 연중런 안함. 현타 쌔게 옴. 글을 넘모 못써서.


껄껄. 조만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