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순이





시골에서 만난 소꿉친구가 조금 이상한 이야기 - 5






1화 : https://arca.live/b/yandere/77863942?p=1






2화 : https://arca.live/b/yandere/77928799?mode=best&p=2






3화 : https://arca.live/b/yandere/78451610?mode=best&p=2






4화 : https://arca.live/b/yandere/78832596?category=%EC%86%8C%EC%84%A4&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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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붕이가 몸을 떨었다.





한두 시간 전만 해도 끔찍이 더웠다가,


반은 유체이탈 상태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의 상태로 몸을 씻겨지고.





그렇게 젖은 몸을 채 닦지도 못한 채로 도망치듯 얀순이네 집에서 나왔다.





물에 젖은 생쥐 꼴로 집에 도착하니


그 사단이 나면서까지 몸을 씻은 의미가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얀붕이는 습기에 젖은 몸을 씻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심신 양면에 찌든 피로가 너무 심했던 탓이다.







자기 혐오와 부담, 그리고 미안함과 의문.





한 가지만 온전하게 떠올려도 부담스러운 것 여럿이 한데 섞여 얀붕이의 정신을 좀먹었다.





왜 더 빨리 거절하지 않았을까.


그 이전에 왜 어린 동생을 성적 호기심이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을까.





오빠로서 부모님 없이 자란 아이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지는 못할 망정,


무작정 직진해올 뿐인 호의에 이리저리 휘둘렸다.





오죽하면 도중에는 정신을 놓고 얀순이에게 제 몸을 맡겨버릴까도 생각했다.





이성에 대해 관심이 생길 나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를 변명거리로 삼기에는 제 자신이 너무 추했다.





꽈악-





얀붕이가 주먹을 쥐고 마룻바닥에 내지르려 했다.






- 오빠를 상처 입히려고 했어.


- 절대 안 돼.





호기롭게 내리친 얀붕이의 주먹이 마룻바닥 직전에서 멈추었다.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멈춘 주먹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왜. 왜-"





한심했다.





주먹에 찾아올 고통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관계의 단절.






이 주먹을 끝까지 내지르면, 관계가 끝날 것 같아서.


그렇게까지 해야만 분이 풀리는 관계가 되고 말 것 같다는 점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얀붕이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값싼 자기 혐오로 하여금 화가 나는 것도 한심하고,


또 그 분노를 이런 식으로밖에 표출할 수 없다는 사실이 한심했다.





이미 일어난 일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고 돌아선 것도,


그런 주제에 완벽히 돌아서지는 못해서 관계의 단절을 걱정하고 있는 꼴까지.


전부 다 한심했다.





뜨거운 울분이 얀붕이의 목젖까지 차올랐다.





얀붕이는 내심 자신이 어른스러워졌다고 생각했다.





반강제로 시골에 내려왔을 때에도


이런 작은 마을에서라도 무언가를 얻어가고자 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했으니


어머니와의 추억은 마음 한 켠에 잘 여미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런데 지금 제 꼴이,


꼴랑 몇 주간의 관계조차 떨쳐내지를 못해서 망설이고 있는 꼴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얀붕이가 벽에 기댄 채로 양 손을 들어 제 얼굴을 덮었다.





그리고는 어둠이 만연한 시야에 잠겨 얀순이와의 기억을 회상했다.






- 오빠.



혹시나 놓칠세라 그 작은 두 손으로 내 손을 잡고 반 보 뒤를 따라오던 네가.







- 오빠...



우산 밑에서 등에 업혀 내 고동을 느끼던 너의 숨소리가.







- 오빠!



땡볕 아래에서


언제 올지도 모르는 나를 기다리던 네가,


그럼에도 내게 보여주던 그 처절한 미소가.





네 집 앞 벽의 담쟁이덩굴처럼 얽혀온다.






아직 나에게는 굳어질 시간이 필요한 걸까.






시골집 대청마루 위로 색을 되찾은 노을이


굽어진 소년의 등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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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






할머니의 약한 숨소리.






논두렁의 두꺼비 소리.






녹이 슨 수도꼭지의 물방울 소리.






소녀의 고장난 심장이 뛰는 소리.







밤을 지새우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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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새벽과는 달리, 시골의 밤은 조용하다.





아마도 귀뚜라미의 울음소리일 그것은,


오히려 조용한 시골의 밤이기에 더욱 부각되어 들렸다.





얀붕이가 눈을 뜬 시점은 날을 훌쩍 넘긴 한밤중이었다.





얀순이네에서 돌아오고 난 이후,


제 마음에 가해지는 부담을 견디다 못해 그대로 누워 잠에 든 것이다.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한 얀붕이가 집 안을 눈으로 슥 훑었다.





할머니는 주무시고 계신 듯했고, 마냥 할 일도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누워 스마트폰이나 보고 있자니, 지금껏 자다 일어난 참이라 몸이 뻐근했다.





소리도 내지 않고 아침까지 보내기에는 답답하기도 했고,


그 김에 마음이나 정리할 겸 얀붕이는 산책이나 나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혹시 할머니가 저를 찾을 경우를 대비해 이부자리 위에 메모도 한 장 남겨놓고, 얀붕이가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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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랬지만, 얀붕이에게 시골길은 마음 가는 대로 걷는 것이 정답이었다.





가본 길이라고 다시 안 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아는 길만 골라서 가지도 않았다.





세상에는 그때그때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이러한 연유로, 목적을 두지 않은 산책길은 그 자체만으로 얀붕이에게 새롭게 다가오곤 했다.





도시로 올라가서도 산책을 즐길지는 미지수였지만, 


그 때 다녔던 한여름 밤의 시골길 산책이 나쁘지는 않았다며


추억으로 되새길 정도면 되었다고, 얀붕이가 자조했다.





사람이 없는 밤길 한가운데에 서서, 얀붕이가 심호흡을 했다.


도시와는 다른 시골의 맑은 공기가 얀붕이의 폐를 가득 채워나갔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밀려오는 자괴감과 서운함에 견디기가 힘들었는데,


잠을 자고 밤산책을 하는 것만으로 얀붕이의 심리 상태는 한결 나아졌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단순한 자의식 과잉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부모님도, 친한 친구도 없이 지낸 얀순이에게


자신은 처음으로 친해진 또래이자, 이성이었을 것이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 처음 받아본 호의, 놓치기 싫다는 소유욕이 한데 모여


얀순이로 하여금 제게 몸을 들이밀도록 만들었을 것이라고, 얀붕이가 생각했다.





똑부러지게 거절하지 못한 데에는 분명 책임이 있지만,


막상 이에 대해 사과해야 할 사람을 찾자니 마땅치 않았다.





사과해야 할 사람이 없다면, 제게 무슨 죄가 있다는 말인가.





생각을 정리하던 얀붕이의 시선이 지금껏 걸어오던 길을 향했다.





시골길이 다 비슷하게 생겨서인지,


얀순이가 밀짚모자를 건네주던 길을 연상케 하는 길.





이 곳에 내려와 보낸 즐거운 시간에는, 언제나 얀순이가 함께 있었다.





여기에서는 어디를 가나 얀순이 생각이구나 하고 얀붕이가 생각하던 그 때.





문득 얀붕이의 뒷목을 타고 한 방울 식은땀이 흘렀다.





한가지 불확실한 추측이 얀붕이의 뇌리에 스쳤다.





그것이 불확실한 추측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얀붕이는 저도 모르게 서서히 발을 움직였다.








마치 처음 얀순이를 만났을 때처럼 점점 빨라지는 얀붕이의 발걸음.





얀붕이는 어느새 속력을 올려 달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설마..."





방금껏 제가 걸어오던 시골길을 보고 얀붕이에게 문득 떠오른 생각.





시골의 길은 그 특색이 옅어서,


얀순이의 모습이 다른 길 위에 투영되어 보여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게 투영된 얀순이의 허상이 몇 시간이고 그 길 위에서 얀붕이를 기다려도,


그릇된 망상으로 치부하고 말 이야기였다.

  





- 오빠가 내일 보자고 했으니까, 올 줄 알았어.





"하아... 하아... 오늘은 안 그랬잖아."





하지만 늘 예상을 벗어나는 얀순이의 행동력이 얀붕이의 의심에 불을 지폈다.





새벽이라 잘 보이지도 않는 시골길을 달리며, 얀붕이가 숨에 차서 헐떡인다.





-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얀순이에게 무턱대고 내뱉은 이 마지막 말이,


혹 내일도 온다는 말로 받아들여졌다면.





자의식 과잉에, 망상에 그칠 것이 뻔한 기우.





그럼에도, 혹시


네가 오늘도 기다린다면.








얀붕이의 발이 돌부리에 걸렸다.





"아윽-"





듬성듬성 설치된 가로등 탓에 잘 보이지도 않는 길을 뛰어간다고


넘어진 얀붕이의 팔꿈치가 흙바닥을 시원하게 긁었다.





"저번엔 무릎이었는데, 이번에는 팔이네."





제 무릎을 딛고 힘겹게 일어난 얀붕이가 한 번 자조하고는, 다시금 분주히 발을 놀렸다.





이러한 제 걱정이 차라리 기우였으면 좋겠다고,


자의식 과잉으로 끝나서, 두 세번 이불을 차고 끝날 해프닝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얀붕이가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린 얀붕이가 얀순이네 집으로 가는 논두렁 길의 초입에서 멈춰섰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얀붕이가 얼핏 보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얀붕이는 무언가에 홀린 듯 어두운 일직선의 비포장도로로 나아갔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한 새벽 시골길에,


자박자박 모래를 밟는 얀붕이의 고무신 소리만이 낡은 가로등처럼 깜빡였다.





얀붕이가 얀순이의 집에 조금씩 가까워질 때마다


흙바닥에 쓸린 얀붕이의 팔꿈치가 아려오고, 반대급부로 마음은 편해졌다.





이대로 향한 목적지에 아무도 없다면,


그때는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타닥타닥-





얀순이의 집에 가는 길.


그 길에 설치된 마지막 가로등.


그 가로등에 날벌레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팅-





때마침 수명이 다한 듯, 낡은 가로등이 꺼졌다.





"하."





쓰라려오는 팔꿈치 언저리를 매만지며, 얀붕이가 날숨을 내뱉었다.





하필 지금.








가로등이 수명을 다해 어둠만이 즐비한 논밭 사이 길목 한가운데에서,


문득 얀붕이의 발이 움찔거렸다.









타닥타닥-





들려오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타닥- 탁- 잘박-





어두워진 시야를 뚫고 들려오던 소리가, 얀붕이의 근처에서 점점 잦아들었다.





"..."





얀붕이의 심장이 점차 크게 뛰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렇게 한동안 멈춰서있던 얀붕이의 시야가 점점 어둠에 적응했을 무렵,


얀붕이의 귓가에 얀순이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흐윽-"





얀붕이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얀순이는, 어느 때보다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자, 잘못했어요..."





얀붕이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외상을 갚지 못했던 청과물 가게에서 추궁을 당할 적보다,


계곡에 함께 놀러갔을 때보다도 더 구슬프게 흐느끼며


얀순이가 떨리는 손을 얀붕이에게 힘겹게 뻗고 있었다.





"왜-"





네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말하고 싶은데, 쉽사리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왜, 왜 또 나와있는 거야..."





얀붕이가 얀순이로부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잘못, 했어요... 흐으으윽-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고작 얀붕이의 뒷걸음질 한 번에 소스라치게 놀란 얀순이가


얀붕이에게 시선도 마주하지 못한 채, 숨을 헐떡이며 사죄했다.





배교(背敎)한 신자의 고해(告解)*가 그러할까,


일직선으로 부딪혀오는 얀순이의 마음이 곧 스러질 파도처럼 얀붕이에게 밀려들었다.





네 잘못은 뭐고, 내 잘못은 뭘까.





얀붕이가 이를 악물었다.





상실의 아픔을 알고 있는 것은 자신만이 아닐진대.



저보다 어린 아이조차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고 제게 손을 뻗고 있는데,


정작 자신은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야."





"네가 미안할 거 하나도 없어. 오빠가, 내가 미안해."





얀붕이가 숨을 헐떡이며 얀순이에게로 한 걸음씩 다가갔다.





그렇게 조금씩 얀순이와 가까워질수록 얀붕이의 눈가가 아려왔다.





마주하려 할 뿐인데도 이토록 힘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얀붕이를 힘들게 하는 것은


얀순이가 지금껏 그 무게를 혼자 짊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얀붕이가 제게로 힘겹게 뻗은 얀순이의 손을, 제 두 손으로 감싸올렸다.





"오빠도 얀순이가 너무 좋은데, 그래서, 얀순이한테 상처를 주게 될까봐 그랬어. 너무 미안해..."





얀붕이가 양 팔로 얀순이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눈가에 힘을 주고 고개를 치켜올렸다.





여지껏 몇 번이고 외면해왔다.





언젠간 끝내야만 할 마음이라도 이대로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면,


제 품에 안긴 두 살 연하의 소녀에게 지는 느낌이 들었다.





꼴사납게 울기 싫은데, 코맹맹이 소리로 들키지나 않았으면.





복합적인 감정들이 얀붕이의 볼을 타고 미지근히 흘러 턱에 맺혔다.





"흑, 흐에에엥... 크으읍-"





얀순이가 눈물 콧물을 흘리며 얀붕이의 품에 얼굴을 부벼대는 동안,


얀붕이는 연신 얀순이의 등을 쓸어내렸다.





터져버린 소녀의 눈물은


그 짐을 덜어냈기 때문인지, 아까보다 한껏 가벼워진 모양새였다.












* 고해(告解) :  세례받은 신자가 지은 죄를 뉘우치고 신부를 통하여 하느님에게 고백하여 용서받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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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여름해가 지평선에 걸리고 나서야,


얀붕이와 얀순이는 서로를 품에 안은 채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얀순이 너 얼굴 다 부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깰 요량으로 얀붕이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얀순이가 얼굴을 붉히며 양 손으로 얀붕이의 티셔츠 자락을 쥐었다.





"미안... 안 예쁘지."





울어서 부은 눈을 치켜뜨고, 코맹맹이 소리로 물어오는 질문에 얀붕이가 잠시 답을 잊었다.





예쁘다고 말하고 싶은데, 얀순이의 그 반응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얀붕이는 대답 대신 얀순이의 얼굴에 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쪽-








"이러면 이제 쌤쌤이야."





서로 맞닿았던 입술을 떼고, 얀붕이가 해돋이를 등진 채로 킥킥 웃었다.





이러면 꼭 자기도 한 방 먹인 것 같지 않냐는 듯한 소년의 통쾌한 웃음이


마른 땅에 물이 잦아들듯 얀순이의 세포 하나하나마다 스며들었다.





온몸이 아프도록 저릿저릿하고,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는데


주변의 소리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크게 울리는 감각.







어쩌면 숨 쉬는 것조차 잊었을지 모르는 상태로, 돌연 얀순이가 얀붕이의 뒷통수를 제 팔로 감았다.





"어."





그리고는 힘껏 까치발을 들고


얼빠진 표정을 한 얀붕이의 입술에 제 입을 맞추고는, 혀를 집어넣었다.







"하읍- 미안... 하움, 츄읍-"






부끄러운 일이라고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그저 같은 숨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기인한 행위.








허락없이 저지른 일이긴 해도, 이번에도 오빠가 먼저 잘못했다.





아닌가, 오빠는 잘못이 없는데.


나쁜건 난데.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얀순이의 뇌가 얀붕이의 색으로 물들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된 상태로, 서로가 서로의 타액과 숨을 들이마셨다.






그렇게 한참을 이어진 날것의 입맞춤은


얀순이의 몸에서 힘이 다 빠지고 나서야 끝을 맺었다.





"허."





힘이 빠져 맨 땅에 주저앉은 얀순이를 보며, 얀붕이가 영문 모를 감탄사를 뱉었다.





가녀린 어깨가 떨리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걸어서 돌아가기에는 그른 듯했다.





제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면서도, 힘이 다 빠져 일어나지 못하고 난처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얀순이를 보니


얀붕이는 무어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얀붕이는 힘이 빠진 얀순이를 등에 업고 얀순이네 집을 향해 걸었다.








팔꿈치는 쓰리지, 숨은 차지. 땀도 나지.


도무지 좋은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왜 이러는지.





얀붕이는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후련히 웃었다.







그 등에 짊어진 무게로 하여금,


소년에게는 역시 노을의 무게보다 해돋이의 무게가 더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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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붕이가 얀순이네 집 대청마루 위에 발라당 누운 채로


살짝 시선만 돌려 제 품을 바라보았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얀붕이의 가슴에 귀를 댄 채 잠든 얀순이의 표정은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이 꼭 말 잘 듣는 소형견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얀붕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얀순아. 오빠 잠깐 화장실 좀."





얀붕이가 나지막하게 말하자, 얀순이가 살짝 눈을 뜨고 얀붕이를 보고 웃었다.





"웅, 금방 와야 대..."





"응."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빠지는 얀순이를 뒤로 하고, 얀붕이가 복도를 걸어 화장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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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의 시야에서 사라질 무렵,


잠에 든 것 같았던 얀순이가 돌연 눈을 번쩍 떴다.





"오빠, 안 자네."





마치 뱀이 지나가듯 소리 없이 자세를 바꾼 얀순이는


방금까지 얀붕이가 누워있던 자리를 바라보다가, 순식간에 그 자리에 코를 박았다.





"슈으으읍... 하아, 하아... 스으읍..."





얀순이가 흐르는 침도 닦지 않은 채로 마룻바닥에 남은 얀붕이의 냄새를 맡았다.


그러다가, 제 머리카락과는 다른 짧은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얀순이는 얀붕이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집어들고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제 입에 넣었다.





한참을 얀순이의 혀 위에서 이리저리 구르던 얀붕이의 머리카락은


얀붕이가 돌아오고 나서야 얀순이의 목구멍 안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마치 사랑하는 오빠를 잉태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제 배를 쓰다듬는 얀순이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구겨진 사랑이 또 한번 끈적하게 맥동하며 그 몸집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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