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랄, 어디서 또 애새끼를 들여와서. " 


" 보스, 이래보여도 그 악랄한 새끼 딸년입니다. 그냥 죽이기에도 아깝지 않겠습니까? " 


더러운 침을 질질 흘리며 금방이라도 저 여인의 몸을 탐할 것처럼 눈을 흘기던 거구의 남성은 다시금 내 눈치를 살피었다. 


" 내가 데려간다. 니들한테 줬다간 구멍이란 구멍은 다 쑤셔지겠구만. " 


아쉽다는 듯이 불평을 토하려던 남성들은 눈이 마주치자 그저 고갤 돌려 본래의 제 위치로 돌아갈 뿐이었다. 


하여간, 일을 벌리는 것엔 제주가 있는 놈들이다. 한동안 이 구역을 멋대로 점거하고 강간을 일삼던 놈들이 있던 조직의 수장은 결국 죽었지만… 어째, 그 악랄한 새끼의 딸년은 어찌 이리도 무고해 보이는 걸까. 

하기야, 지 딸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다 애비를 잘못 만난 탓이겠지.


또한 그새끼의 습성만 본다면 아마 어미라는 년은 어디에서 구르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무슨 의미냐 하면, 내가 지금 저년을 어떻게 손을 보던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 얘기이기도 했으니까. 

부하들이 손을 쓰려 하는 것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었다.


뭐가 됐건, 차라리 요 근래 이짓거리도 질리던 찰나에 잘됐다고 생각했다. 


슬슬 후계자건 뭐건, 멀쩡한 물건을 키우는 것에 흥미가 있었으니 말이다. 

또한 그것은 이 모든 것에 싫증이 났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흔히 인간이라는 것이 느낄 수 있는 쾌락이란 것은 살인이라는 배덕감에 있어 그저 한낯 조잡한 유흥거리에 불과할 테니까. 


단순히 생각하자면 지금까지 해 왔던 모든 것이 질려버렸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어쨌든, 외관으로 보기엔 평범한 사무실처럼 보이던 이곳은, 따지고 보면 물건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란 모든 곳에 마약과 총기류가 즐비한 무기 창고와도 같은 곳이었다. 


암막 커튼 너머로 오는 햇빛은 모두 차단된 상태였으며, 오로지 이곳을 비추고 있던 것은 은은한 붉은 빛의 조명이 전부였다. 


그 아래에서 온 몸이 결박당해 싸늘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저 여성에게 나는 어째선지 이유 모를 흥미를 품고 말았다. 

당장이라도 소리를 치고, 발버둥을 치며 살려달라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어찌 저리도 평온히 있을 수 있는가. 


이질적인 공기 틈을 가르고,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입에 붙어있던 테이프를 거칠게 잡아 뜯었다. 

고통 때문인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했던 것인지 숨을 두어 차례 몰아쉬던 그녀는 말 없이 차갑게 날 올려다 볼 뿐이었다. 


나는 시선을 맞추고자 자세를 낮추어 조곤히 물었다. 


" 가족은? " 


" … 하. " 


어이없다는 듯이 숨을 한번 내뱉던 그녀는 이윽고 내 얼굴에 침을 뱉을 뿐, 더 이상의 답변은 꺼내지 않았다. 


뭐, 솔직히 상관 없었다. 아무런 탈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으니 이깟 수모 정도는 귀엽게 봐줄 수 있었으니까. 어디까지나 내 입장에서 말이다.


말 없이 정장 바깥 주머니에 있던 수건으로 볼따구를 닦아낸 후 손수건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 동시에 빠르게 움직이던 오른손.


짝─ 


일 순간 살갗이 맞부딪히는 마찰음이 들리고, 그녀의 얼굴은 손을 뻗은 방향대로 돌아가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고갤 돌려 사납게 내 눈을 응시하던 차가운 눈동자. 

그런 그녀의 눈빛에서 난 도대체 무얼 느꼈던 걸까. 


그저 자그맣던 흥미가, 어느 순간 한 동안 잊고 있었던 쾌락으로 변질되기라도 한 것일까.

나도 모르는 새에 안면 근육이 제 멋대로 움직인 것을 보아하니, 즐겁다는 듯한 표정을 띄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의지가 있는 장난감. 참으로 재밌는 물건이 아닌가.


나는 말 없이 그녀의 몸을 구속하고 있던 결박들을 전부 풀어주었고, 도무지 이 상황을 알 수 없다는 듯이 여전히 날카로운 눈매로 날 바라보던 그녀에게 애용하던 단검 한 자루를 건네었다. 


어디 해 볼 거면 해보라고. 


턱을 한번 까닥인 정도로 여성은 칼을 거꾸로 쥐었고, 그것은 곧 공격이 온다는 신고이기도 했다. 

허나, 예상치 못한 칼날에 방향에 나는 급히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일순간 내 손을 뒤덮은 고통. 마치 불에 타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뜨거운 감각이 곧장 손에서 머리로 전달되고 있었다.


" … 미친년이 따로 없군. " 


칼날을 타고 떨어지던 붉은 핏방울은 내 손을 타고 손목으로 흘러 내려가, 소매부터 천천히 옷을 검붉게 물들여가기 시작했다. 

당황이라도 한 것인지 그녀는 쥐고 있던 칼을 놓아버렸고, 나는 느긋이 떨어진 칼을 주울 뿐이었다.


" 찌르라고 준 칼을 자살하려고 쓰다니, 그렇게 죽고 싶은가? "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내 손을 바라보던 그녀는 처음으로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 왜… 왜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게 하는 건데? 왜? 니새끼도 똑같은 거지?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도구처럼 다루고, 하루 종일 쳐 쑤셔대고… . " 


얼마나 충격적이었던 건지, 그녀의 눈물샘은 참을만큼 참다 한번에 터져버린 것처럼 연신 물방울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공포 때문이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두려움일까. 

자신이 곧 죽은 어미가 당했던 일들을 똑같이 당할 거라는 좌절감에 슬퍼하는 것일까. 


나라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이구나 싶었다. 

한 평생 동안 부모의 온정을 느껴본 적도 없고, 사람으로써 갖춰야 할 온정을 지녀본 적도 없다고 생각했건만 내가 한 행동에 나조차도 의문을 품을 뿐이었다. 


도대체 왜? 왜 그녀를 죽게 놔두지 않았는가. 

내가 생명을 이토록 아꼈던 적이 있던가? 

아니, 분명 아니다. 그랬을터인데.


욱씬거리며 피로 물든 손은 어느샌가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고 있었으며, 당황한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는지 차마 나를 뿌리치지 못한 채, 눈물이 가득 맺힌 눈으로 날 올려다 보고 있었다. 


" 살아.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 


내 부하중 한 명이 이 광경을 지켜봤다면 곧장 나를 죽여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슬슬 이 자리에서 내려올 때가 됐나 싶었다. 

정을 가지지 않았던 것은 내가 이 자리에 올라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무자비하고, 또 잔혹해야만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그랬던 내가, 나조차도 예상 못한 행동을 한 것이었다. 






*






" …… 조준해봐. 정확히 머리를. " 


누군가 이 상황을 본다면 분명 나를 미친놈이라며 욕하며 혀를 찼겠지.


내 앞에 서있는 그녀는 리볼버를 두 손으로 꼬옥 쥔 채로 내 머리를 조준하고 있었으며, 방아쇠에 놓인 손가락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듯 했다. 


" 당겨. " 


그 한마디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기던 그녀는, 당황이라도 한 것인지 총구를 돌려 이리저리 총을 살펴볼 뿐이었다. 


내가 넣어둔 총알은 단 한발. 아마 그녀가 여러번 방아쇠를 더 당겼더라면 나는 분명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가능성을 보았다. 본래 사람이라는 것은 같은 종족을 살해하는 것에 있어 망설임이 있을 터인데, 그녀는 그런 모습따윈 보이지 않았으니까. 


모순적이게도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하고. 날 죽여줄 사람은 이 사람으로 하기를. 


삶에 있어 더 이상 느낄 감정도, 행복도 고통도 남아있지 않다면 어찌 인간으로써 살아있다고 하겠는가. 

이제 전부 질렸다. 모든 것을 맛봤으니 이제 디저트를 맛 볼 차례가 아니겠는가. 


천천히 다가가 그녀가 손에 쥐고 있던 리볼버를 뺏으려 하자, 그녀는 한 차례 저항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다 큰 성인 남성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허나, 그런 모습마저도 마음에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악착같이 살아야 한다. 본인이 살아남고 싶다면.

그녀의 행동 하나 하나에서 그런 점을 느낄 때마다 묘한  감각이 날 자극하는 것 같았다. 과거의 나를 보는 느낌 때문일까? 단순한 동질감으로?

뭐, 시간이 지나면 차차 알게 되지 않겠는가. 


노리쇠를 다시 당기고, 방아쇠를 당긴다. 

그리고 들려오는 총성. 


바닥의 나뭇판자는 총알의 흔적만 남긴 채로 구멍이 뚫려 있었고, 나는 내심 아쉽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한 발만 더. 그랬다면 여기에 난 서 있을 수 없었을텐데.


총성에 놀랐던 건지, 얼탄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그녀의 입장에서는 날 어떤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 대충 어림짐작이 가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기로 했다. 어차피 날 죽여줄 사람에게 줄 정도, 말도 딱히 없으니까. 


나는 말 없이 총알이 남아있지 않은 리볼버를 그녀에게 내던지고, 등을 돌려 걸음을 떼었다. 

그런 나를 쫓아오며 조용히 뒤따라오던 그녀에게 내심 고맙다는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산속에 있는 이 작은 오두막엔 나와 그녀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고 도망치려는 생각을 한다면 어디든 근처 풀 숲에서 숨을 수 있었을 터인데. 귀찮음을 덜어줬으니 나로서는 싫어할 이유도 없지.


슬 허기가 느껴지던 터라 나는 그녀를 조수석에 태우고 말 없이 시내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룸미러로 바라본 그녀는 여전히 힐끗거리며 내 눈치라도 살피듯 흘겨볼 뿐이었고, 결국 서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로 담당하던 구역 중의 어느 음식점에 도착했다. 


이후로도 이렇다 할 대화는 전혀 없었다. 

뭐가 그리 맘에 들지 않는지 음식을 깨작거릴 뿐인 그녀와, 알빠 아니라는 듯이 식사를 마치던 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를 나올 뿐이었다. 


아까부터 좋지 않은 시선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건대, 아마 내 부하들이 내 뒤를 캐고 있음이 분명했다. 

도대체 저 양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즐기고 있나 싶겠지. 


저 기둥 뒤에 숨어서 조용히 날 곁눈질 하던 이에게 나는 말 없이 직선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망설임 없이 들려오던 목소리.


" 답지 않네요. 그렇게도 여자가 고프셨던 겁니까? " 


" … 뭐, 멋대로 생각해. 그리고, 애들한테 전해. 저 애가 이제 차기 보스다. " 


" 잠깐, 지금 뭐라고… . " 


슥 뒤를 흘기니 그녀가 식사를 마치고 나와, 누군가를 찾는 듯이 두리번 거리기에 나는 남성의 발을 지끈 밟고 몸을 돌려버렸다.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그들 입장에선 꽤 당황스런 상황이 되겠지만 나에게 있어선 모든게 다 질려버렸으니까.

살인을 수도 없이 저질렀다는 점에선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살인으로 느낄 수 있는 쾌락은 이미 무뎌진 상태였다.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버린 내가 앞으로 얼마나 이짓거리를 반복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피를 봐도 별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고, 죽기 직전에 애타게 명줄을 붙잡고 애원하고 있는 사람을 봐도 별 감흥조차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어느 날 갑자기 부하들이 반란을 일으켜 날 죽여도 괜찮겠다 싶었지만, 어째선지 묘한 고집을 부리게 되는 것이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겠다 싶었다.


뭐가 됐건, 둘 중 하나겠지. 이 사실을 알아버린 부하들이 날 죽이고 자리를 차지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시간이 지나 증오라는 씨앗의 싹을 틔운 그녀에게 죽거나. 


어느샌가 나를 발견했는지 내가 있는 곳으로 걸어오던 그녀를 지나쳐 다시금 차에 올라탔다. 

말 없이 내 걸음을 쫓던 그녀는 마찬가지로 조수석에 올라탔고, 그제서야 나는 목소릴 흘려보냈다. 


" 잘 들어. 내일부터 누군가 너를 매일 죽이러 갈 거다. 살고 싶으면 일을 배워. "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이 입술을 달싹거리던 그녀를 무시한 채, 나는 시동을 걸고 정처 없이 도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내게 질문을 건네던 그녀. 


" 싫다면요? 지금이라도 당장 핸들을 꺾어버리면 여기서 다 죽어버릴 텐데. " 


" 할 수 있으면 해봐. 교통사고로 죽을 만큼 니년 인생은 쓸모 없던 인생이 되겠지만. " 


" 하… . " 


어이없다는 듯이 날 째려보던 그녀를 무시하고, 나는 조용히 운전대를 잡고 어디론가 향할 뿐이었다. 

부하들도 알지 못하는 공간. 요컨데 내 자택이라는 곳이다. 

집이라고 해 봐야 딱 필요한 물건들만 있을 뿐 그 이상의 물건은 아무것도 없지만, 둘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다는 점이 그녀를 이 곳으로 데려올 이유로는 충분했다. 


아직 그녀를 내가 서있는 자리에 앉히기에는 부족한 점이 너무나도 많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부하 중 한 명이 그녀를 쫓는다면 금세 발각되어 죽는 것은 일도 아닐테니 그저 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니 우선은 그녀를 성장시켜 둬야 했다. 사람을 증오하게 만들고, 본인의 의지로 사람을 죽이고. 그리고 그것은 언젠가 나를 죽일 수 있을때까지.


어쩌면 세뇌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평범하게 살게 해주어도 모자랄 판에 생사의 기로에 던져두고 모르는 척 하는 꼴이라니. 


허나 고작 이딴게 내 머릿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었다. 그야, 난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리고 그녀도 그러했던 늪에 인생이 반 쯤 빠져있었으니까. 


지 애미의 길을 걷지 않고, 누구도 자신을 해하지 못하려면 남들을 짓밟고 올라가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가지려면 단순히 그에 걸맞는 능력이 필요하겠지.


그러니 이런 더러운 방식을 써서라도 앞으로는 걱정 없는 여생을 살게 해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 자그마한 동정심에 이렇게 까지 한다는 것이 조금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미 저질러버린 건 어쩔 수 없겠지.


허나 이 모든 과정에서 나는 한가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 


그녀에게 정을 주지 말아야 한다. 


자신에게 정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증오는 무뎌지고 무뎌져, 어느덧 둥글게 깎여나갈 터. 

나를 대하는 그녀는 항상 증오로 가득 차있고, 분노로 채워져야만 한다. 그래야 날 망설임 없이 죽일 수 있을테니.


그렇기에 가혹하게 대했다. 


작은 실수에도 내 손은 몇 번이고 그녀를 가격하고 있었고, 증오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을 나는 묘하게 흐트려 회피할 뿐이었다. 


그렇게 몇 주, 그리고 몇 달. 꽤 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







" … 멍청한 놈. " 


아직도 헛된 꿈을 꾸고 있는 병신들이 내 조직에 있을 줄은 솔직히 몰랐다. 

아니, 정확히는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벌써 그녀의 손에 쓰러진 이만 10명 가까이 되어버리니 나로써는 미칠 노릇이었다. 

그와 더불어, 성장이 너무나도 빨랐던 그녀는 수없이 많은 피를 봐왔던 조직원들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나갔다는 점에서 나는 한 차례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반란을 일으키려는 자의 눈은 관통 당해 질척한 피를 뿜으며 웅덩이졌고, 나는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까딱일 뿐이었다. 

게다가 옆에서 대기중이던 이들은 왠지 모르게 공포에 젖어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내가 아닌, 그녀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빴고 당연히 이를 그녀가 모를리가 없었다. 

사람 한 명의 명을 끊는 순간까지도 귀찮다는 듯이 혀를 차던 그녀였으니, 지금 저들을 보고 있는 그녀의 눈빛은 안봐도 짐작이 갈 정도였다.


버러지 같은 놈들. 고작 이딴 어린년한테 다 죽어버리니, 이 조직의 미래도 어둡구나 싶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문제점이 생겼다면 마치 잘했냐고 칭찬이라도 바라는 듯이, 방금 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내게 달라붙어 오며 머리를 기대던 그녀의 모습이었다.

동시에 내 손이 곧바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금방이라도 싸늘히 식은 눈빛이 날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보지 않아도 느껴질 정도였으니… . 


그렇게 말 없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그제서야 눈이 풀렸는지 방금 전까지 느껴지던 차가운 시선은 이미 사라진 채, 한 마리의 강아지처럼 웃는 것이 아닌가. 


과거의 나를 몇 번이고 후회했다. 이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는데. 

분명 내 입장에서는 정을 준 적이 없었다고 확신했건만… . 





**







그녀의 복부엔 항상 상처가 가득했다. 

멍이 든 흔적부터, 가볍게 베인 상처까지. 

이모든 원흉은 나에게 있었다. 


무언가 실수할 때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를 가격했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말 없이 다시 일련의 행동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렇게 꽤 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어느덧 총과 칼을 다루는 것엔 이미 능숙하기 그지없어 일개 조직원 따윈 일대 다수로 상대해도 이길 정도의 수준이었으며, 솔직히 말하자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뛰어넘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불현듯 찾아왔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실수 없이 완벽한 동작을 보였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말 없이 날 쳐다보는 것이 전부였다. 마치 무언가 갈구하는 듯한 눈빛으로. 


칭찬이라도 바랬던 건지, 나는 무표정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허나, 이는 정답이 아니었다.


이후로 그녀는 실수를 반복했다. 

그것도 일부러.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완벽했던 행동들은 마치 자연스럽지 못하게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그럴 때마다 그녀의 신체 부위가 어디가 됐건, 손이 닿는 곳을 때리기 일쑤였다. 


고통스러워하던 그녀의 모습과 달리, 늘 그녀의 입가는 웃고 있었으며, 자신이 맞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녀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그저 이 상황을 즐거워하는 듯 했다. 


미친년임을 분명히 깨달았건만.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던 이때라도 멈췄어야 했는데. 

내 의도는 이딴게 전혀 아니었는데.


내가 그녀를 체벌했던 것으로는 고통에 강하게 만드려던 것이 첫 번째 이유이며, 두 번째로는 공포를 느끼지 말라는 점이었으나 오히려 그녀는 이것을 어느 순간부터 역이용 하는 수준에 이르렀던 것이다. 


나로써는 골치 아프기 짝이 없었다. 

그녀를 때리니 오히려 좋아하는 식이니, 차라리 잘 할 때 칭찬을 해보자 했더니 처음엔 당황하던 그녀가 어느 순간부터는 이것마저 익숙해져 버렸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남아있던 조직의 찌꺼기들을 제거할 때에도,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내게 머리를 들이밀었고, 나는 부하들이 보는 눈 앞에서 그것을 받아줄 수 밖에 없던 것이다. 


한 번은 이를 거절하고, 무시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오니 보이던 수 많은 머리통은 마치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듯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고, 그녀는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속옷만 입은 상태로 이제는 옅어진 멍 자국을 가르키며 고혹스럽게 미소짓고 있는게 아닌가. 마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마든지 때려보라는 듯이.


당장 치우라는 내 말에, 금세 싸늘히 식은 표정으로 내게 천천히 걸어오던 그녀에게 화가 났던 건지, 내 주먹은 어느 순간 그녀의 복부에 닿아 있었다. 


고통스러웠는지, 일순간 숨을 쉬지 못해 켁켁거리던 그녀는 황홀하다는 듯이 웃으며 그제서야 만족했는지 잔혹한 광경을 치우기 시작했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결국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그고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괴물을 만들어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는 내가 먼저 그녀를 죽여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해야 그녀가 날 죽여줄지도 이제 확신이 서질 않았다. 


한참을 과열된 머리를 식히고 방 문을 여니, 그녀가 정좌 자세로 문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것이 아닌가. 

무언가 원한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조금씩 좌우로 머리를 흔드는 모습에, 더 이상 내 본성이라는 것은 참을 수 없었던 걸까.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거칠게 잡아 끌어 방 침대에 내던지듯 눕혔고, 여전히 속옷만 걸치고 있던 그녀의 천쪼가리를 거칠게 잡아 뜯었으며, 곧장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 히읏, 하응… . " 


야릇한 신음을 흘려대던 그녀가 맘에 들지 않아서였을까. 오히려 더 강하게 움켜쥔 가슴과 더불어, 다른 손은 이미 거칠게 그녀의 보짓구멍을 쑤셔대고 있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흥건히 적신 애액을 나는 허탈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도, 애달프다는 듯이 홍조를 띄운 채 날 바라보던 그녀 탓에 이미 희미해진 이성은 곧장 끊겨버리고 말았다.


짐승과도 같았던 섹스를 이어나가던 도중 몇 번이고 그녀의 배와 뺨을 때렸다. 그 외에도 살갗이란 살갗은 모두 내 손자국으로 벌겋게 그을려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웃고 있었다. 마치 기쁘다는 듯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게 아닐까 하던 이 시간은, 몇 번이고 그녀의 질내에 사정을 반복했음에도 그치지 않았고, 결국 그녀가 몇 번이고 절정 후 경련을 맞이해 실신한 상태에서야 마무리 될 수 있었다. 


사랑따윈 전혀 찾아볼 수 없던 교미. 침대 위를 적시다 못해 웅덩이진 백탁액들. 


정신을 차렸을 때엔 이미 늦었었다. 


나는 후회할 짓을 반복하고야 말았고, 이는 그녀가 더 큰 쾌락을 원하게 된 계기가 되고 말았으니까.





*





조금 더 시간이 흘러, 그러면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한 가지의 방법을 채택했다. 

그저 무관심. 


그녀가 무얼 하던, 신경쓰지 않았고 무얼 하려 하던 건드리지 않았다. 


몇 몇 인원을 끌고 거슬렸던 옆 조직을 괴멸시키고 와도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조직 내의 스파이를 잡아 고문 시킨 후, 모든 정보를 내게 가져와도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매일 내 곁에 딱 붙어서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면 그럴 수록, 그녀의 눈에 생기는 점점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그녀가 나를 증오하는 단계에 이른다면, 아마 본인의 손으로 죽여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가 오히려 그리웠다. 

당시엔 자그마한 이유라도 있었건만. 

이제는 공허하디 공허했다. 


내가 해야 할 일도 이젠 전부 그녀가 처리하고 있었다. 

심지어 평판도 상당히 좋아진 것이, 이제는 내가 필요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상황은 흘러가 있었다.


오히려 무기력해지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직접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나갔을 때에도 흥미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차라리 죽어버리면 어떨까 싶었지만, 내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인지 그녀는 누구보다 먼저 내게 달려왔고, 날 지키기 급급했다. 


생명을 구해주었다 한들, 나는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차라리, 누군가 쏜 총알에 맞아 죽어버렸으면 하는 바램조차 생겼다. 


그런 하루가 계속 되고, 또 계속되어. 어느 순간 나는 자살을 꿈꾸고 있었다. 이제, 내가 원했던 방법으로 죽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처음으로 그녀에게 부탁을 했다. 


" … 내가 없는 곳을 잘 부탁해. " 


그녀와 말을 섞지 않은지 얼마나 지났던 걸까. 

그리고 처음으로 꺼내었던 따스한 어조. 


내가 먼저 말을 건네자 그녀는 놀란 듯이 흠칫거렸지만, 이내 내가 꺼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그녀는 나를 멈춰 세웠다. 


" … 내가 살고 있는 이유는 당신 때문이에요. 그러니 당신이 없는 곳을 제가 지킬 이유는 없어요. " 


조금은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온 것인지, 그토록 새까맣던 눈동자에선 한 줄기 빛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동시에, 나를 올려다보던 시선이 내려오고 그녀는 내 품에 안겨왔지만 나는 말 없이 그녀를 밀어낼 뿐이었다. 


그녀가 내게 꺼낸 대답은 날 당황케 했지만, 어쩌면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나에게 이유도 짐작가지 않을 묘한 연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그 모든 것이 확신이 되었을 때, 이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 꺼져 이제. 니년은 이제 필요 없으니까. " 


일부러 모진 말을 내뱉었다. 그녀의 어깨가 한 차례 부르르, 하고 떨린 것 같았다.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지금까지 당해왔던 수모를 전부 몰아 날 죽여주지 않을까. 

혹여 화를 내지 않을까. 


허나, 예상 범주에서 크게 벗어난 그녀의 행동에 나는 적잖이 당황하고 말았다. 


그녀는 내게 입을 맞추어 왔고, 도망치지 말라는 듯이 내 목을 감싼 상태로 곧장 혀를 들이밀어 거칠게 타액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 츄으읍, 파하… 그래서요? 나는 당신이 필요한데. " 


그 잠깐의 키스로 아쉬웠던 건지, 새빨간 입술을 혀로 쓸어 올리던 그녀는 내 입술을 쓸어간 자신의 검지 손가락을 한 차례 핥아냈고, 한마딜 덧붙였다. 


" 왜요? 이제 안 때려주는 거에요? 아니면 저번처럼 거칠게 박아줄 거에요? 으응, 난 그것도 너무 좋아요. 그러니 어서── "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두 팔을 벌리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결국 등을 돌려버렸다. 


혐오스럽고, 또 허탈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해왔던 건지도 모르겠고, 되려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버린게 아니냐고. 


또 한번 네게서 등을 돌린다. 

그래야만 했는데. 


" 어딜 봐요? 이제 가게 두지 않아요. " 


내 몸을 다시금 돌려 시선을 마주하는 그녀의 눈에는 무언가의 희망, 그리고 집착,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뒤덮어 버릴 것 같은 행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와 같이 행복함을 느낄 수 없었다. 

그야 나는 이제 그녀에게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으니까. 


마치 모든 걸 내려둔 듯한 내 눈빛을 읽은 것인지 그녀는 날 말 없이 안아주려 하였고, 나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결국 손을 올려버리고 말았다. 


그 어느 때보다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어쩌면 진즉에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때린 건 나지만, 내 손이 더 아프다는 것을. 


돌아간 고개와 달리, 해맑게 웃으며 나를 쳐다보는 저 눈망울을 차마 바라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렇게 심한 짓을 하는데, 너는 웃으며 날 바라보고 있다니. 


더 이상 나 자신이 너무 혐오스러워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 찾지 마. 더 이상. 진짜 죽여버릴 거니까. " 


마지막으로 꺼낸 말에는, 진심과 부탁이 적잖이 섞여있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간절했다. 


몇 번이고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음에도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돌아보지 못했다. 


두려워서 였을까. 내가 키운 어느 한 아이가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것에. 

그럼에도 나를 붙잡으려 오는 듯한 발소리에, 나는 안주머니에 있던 권총을 꺼내어 하늘에 발사했다. 


이윽고 발소리는 멈추었지만, 그녀가 놀라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이제는 익숙한 소리였을 테니까. 그 어느 누구보다도. 


도망치듯 자리에서 빠져나왔고, 솔직히 말하자면 진심으로 달렸다. 

이제는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버린 차로 들어온 나는 곧장 시동을 켰고, 목적지도 명확히 없이 일단 밟았다. 


멀어지고, 또 멀어지고. 어떻게 해서든 그녀라는 늪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리고 어느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다. 


어쩌면, 이제 그것만이 내 마지막 희망으로 자리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정리되지 않는 생각은 오히려 나를 화나게 만들었고, 수도 없이 울려대는 클락션은 마치 이런 나에게 질타를 보내는 것처럼 들려왔다. 








*








한적한 시골 바닷가. 

얼마나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벗어났는지 모를 펜션. 

펜션 내부는 적막함을 달래려 틀어둔 뉴스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누군가의 절망 가득한 한숨소리가 전부였다.


한 때 임시 거처로 삼았던 곳을 다시 올 줄은 몰랐다. 

죽음을 맞이하기엔 딱 좋은 곳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느 누구도 내 죽음을 모르고, 찾지 못할 거라 생각했으니까. 


새하얀 담배 연기가 공중에 흐트러지고, 그 틈 사이로 보이던 파란 스크린을 응시하던 내 눈이 한 순간 일그러졌다.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 어젯밤, 국내 최악의 조직 두목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더불어, 조직원으로 추정되는 인원 모두 숨진 채 발견되어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 』 



미간이 좁혀졌다. 

분명 나의 사진을 간판으로 내걸고 있던 뉴스 화면 배경에는, 분명히 내가 지냈던 자택 내부의 모습이 송출되고 있었으며 심지어 내부는 온통 피로 얼룩져 있었다. 


수 없이 많은 이들의 시체가 즐비했고, 모자이크 처리된 시체의 모습을 하나 하나 살펴보던 나는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많은 사체 중, 여성의 사체는 하나도 없었단 것이다. 

당연히 범인이 누구인지는 의심이 아닌 확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나 오랜 악연을 길게 이어온 이들이 모두 참혹히 살해 당했다는 사실에 놀랄 틈도 없이, 온전히 그 공포는 나에게로 뻗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 씨발… 씨발. "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온 욕짓거리. 


분명 그녀의 짓이다. 사체 중 한 구를 나처럼 꾸며 보스가 죽었다는 듯이 조작해 경찰에 신고한 것이 분명하다. 

경찰에 뒷덜미를 잡히지 않기 위해 수도 없이 많은 신분을 소지하고 있던 나는,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상황이 그녀가 원하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 


허나, 도대체 무엇 때문에? 어째서 나를 죽은 사람으로 만들고 본인은 그 자리를 떠버린 것인가. 

조직원은 도대체 왜 죽였지? 기밀 누설을 목적으로? 아니, 이렇게 흔적을 남긴다면 분명 잡혀버릴 터인데… . 


그럼에도 나는 금방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수법을 전부 알려준 나를 능가하던 그녀의 솜씨가, 이럴 때 철저하지 않을 리 없었으니까. 


곧장 바깥으로 나갔다. 트렁크에 놓여 있던 가방엔 항상 현찰이 가득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서웠다. 

조직의 두목이었던 내가 무섭다는 감정을 느낀 것이 도대체 얼마 만일까. 


하지만 그런 시답잖은 감상에 젖어있을 시간조차 없었다. 

왠지 모를 불안감. 

금방이라도 여길 떠야 한다는 불안감이 엄습했기에. 


떠날 채비를 하려 밀항 파트너에게 전화를 걸던 찰나였다. 



" 어딜 그리 급하게 가시나요. " 



손에 쥐여 있던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등골이 오싹해져 목소리의 근원지를 눈으로 좇으니, 아니나 다를까. 


" …… 너 어떻게 여기에 온 거지? " 


" 어떻게냐니. 직접 알려주셨잖아요? 지금 들고 있는 그거. 위치 추적기를 심기엔 충분하다 싶었거든요. "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퍼를 열어 가방을 거꾸로 드니, 수도 없이 흩날리는 지폐와 맥아리 없이 툭, 하고 떨어지는 검은색 소형 물체. 


" …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 


"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는지 모르겠네요. … 말 했잖아. 난 당신이 필요하다고. " 


왜 자꾸 도망치려는지 모르겠네. 라며 짧게 덧붙이던 그녀는 천천히 내게 다가오고 있었고, 무의식적으로 내 걸음은 그녀에게서 도망치려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을 뿐이었다. 


" 그리고, 내게 고마워 해야하지 않을까? 당신이라는 사람을 역겨운 세상에서 해방시켜준 건 난데. 그토록 당신이 원해서 자유롭게 해줬잖아? 이제 우리가 여기 있단 것도 아무도 몰라. 단 둘이… 영원히. "


얼어붙은 것처럼 차가운 냉소를 띄우던 그녀의 시선은 미동도 없이 나에게 고정된 상태였다.


썩 좋은 죽음은 아닐 것 같았다. 우습기 그지없었다.

누군가에게 이유도 모른 채 쫓기다 결국 죽음은 본인이 자처하는 편이라니. 어쩌면 차라리 이 편이 나은 걸까. 


이제 전부 다 끝났다 싶어 아끼던 단검을 꺼내었다. 

조준점은 정확히 내 심장. 


잘 있으라며, 허탈히 웃으며 칼날이 번쩍인 순간이었다. 




탕── 




칼을 쥐고 있던 손에서 단검은 힘 없이 떨어졌고, 구멍이 뚫려버린 것인지 상상조차 못할 고통에 머리가 아찔해졌다. 

축축했던 흙은 금세 피로 덧씌워지기 시작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그녀에게 전해주었던 리볼버 한 정이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조준한 곳은 결국 머리가 아니었구나. 


업보였을까? 이미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마냥 전부다 우습기 그지없었다. 

쓰레기의 말로는 고작 이딴 걸까.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 인생이라니. 

죽음의 문턱에서, 눈 앞에서 죽음의 경계를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고통이라니.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내 앞까지 다가와 걸음을 멈추었던 그녀는, 땅에 떨어진 단검을 주워 그윽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 … 이제는, 반대의 상황이 돼버렸네. 당신은 이제 마음대로 못 죽어. "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였나. 그때처럼 내 손엔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양의 선혈이 옷깃을 적시고 있었다. 


뭣보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상황이 전부 역전되어버렸다는 것이다. 


" …… 이번엔, 나를 위해 살아줘. 내가 당신을 위해서 그래왔던 것처럼. 실수했다고 생각해? 그때 날 죽이지 않은 것을. "


" … 미친년. "


조용히 나를 내려다 보던 그녀는, 쪼그려 앉은 상태로 손목의 동맥을 움켜쥐고 있던 내 손을 떼어내 새빨간 피를 제 혀로 쓸어 올리기 시작했다. 


" 츄읍. 미쳤지… . 당신이라는 사람에게. 난 참 당신에게 고마워. 사람을 지배하는 방법을 알려줬으니까. " 


프히히- 하고 기분 나쁜 웃음을 짓던 그녀는 가늘게 뜬 눈으로 날 마주했다. 

차갑디 차가웠던 그 눈동자는 황홀경에 찌들어 붉게 물들어 있는 것 같았으며, 속내를 알 수 없을 정도의 오만 감정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마치, 더 오랫동안 바라보았다간 분명 빠져버리지 않을까 하는 깊은 심연처럼. 


그렇기에 고개를 돌리려 했으나, 그녀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잡은 채 크게 뜬 눈으로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 … 괴롭힌 것에 대한 복수인가? " 


" 괴롭혔다니, 무슨 당치도 않는 소리일까. 난 당신이라는 사람이 좋았어. 그거 알아? 날 때리고 난 뒤에 항상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단 걸. 항상 나를 바라보던 눈이 어딘가 어두워 보였다는 걸. 그건 당신이 나를- " 


그녀의 팔이 점차 깊숙이 들어오고, 어느덧 목을 감싸던 그녀의 팔을 나는 뿌리칠 수 없었다. 

이미 팔 한쪽은 출혈 때문인지 쉽사리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그토록 뿜어져 나오던 아드레날린도 효력이 다했는지 고통이 뇌를 잠식하기 시작했기에.


" …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거지? 그냥 죽이면 될 일을. " 


" 절대로, 절대로 그건 안돼. 있잖아. 당신은 내게 세상 일이 마음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의 편견을 깨어준 사람이 당신이야. 내게 무엇이던 할 수 있는 힘을 주었고,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줬으니까. 난 당신 덕분에 살아있는 걸. 당신을 사랑하게 됐는걸. " 


" … 그건 사랑이 아니야. " 


나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온정을 준 적이 있냐 하면 정답은 부정이었으니까.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던, 분명 그것은 사랑이 아닐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내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녀의 어두운 뒷배경에서부터 만들어졌던 감정들은 분명 정상적인 감정이 아니었다는 것을. 


" 내게 살아갈 방법을 알려준 건 당신이잖아? 내가 살아있길 바란 거 아니였어? 

항상 내 곁에 있어줬잖아? 나와 함께하고 싶단 것 아니었어? 

전부, 전부 나를 곁에 두기 위해서 그랬던 거잖아. 당신이 날 사랑하니까.

나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했어. 당신이 나를 때릴 때마다 아직 당신에게는 닿지 못할 사람이란 것을 알면서도 안심했어. 왜인줄 알아? 내가 완벽해지지 않는 이상 당신은 날 버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당신에게 맞을 때마다 난 행복했어. 내가 아직 당신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점점, 점점 변해가더라. 어느 순간부터 왜 나를 멀리하는지 몰랐어. 이젠 내가 필요 없어진 걸까? 

이래놓고 날 버린다고? 당신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버린다니,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가 어딨어? " 


지금껏 본인의 감정표현을 얼마나 참아왔던 것인지 숨 한번 고르지 않고, 숨결이 맞닿을 거리에서 몇 번이고 자신의 울분을 토해내던 그녀의 모습에 나는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누구에게는 정 반대였던 목적이, 이토록 변질되어 전달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머릿속은 그저 미련하게 후회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 그리고 깨달았지. 아아, 너무 늦었어.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거야. 내가 당신을 가져버리면 되는 거잖아? 히- … 정말 쉬운 이야기 였는데… . 

실은 이미 알고 있었어. 당신은 이미 모든 걸 내려놓을 준비를 하고 있단 걸. 그런데 어쩌나. 난 당신을 놓을 준비가 안됐는데. 오히려 당신을 붙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 


이제는 정확히 알 것 같았다.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결코 사랑이 아니다. 

분노와 절망에서 비롯된 잘못된 감정이 싹트고 만 것이다. 

화를 풀어낼 상대를 고르고 고르다, 그것이 내가 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두운 감정이. 


" 나 이제 당신 없이 살아갈 수가 없어. 난 도대체 누굴 위해 살아야 하는데? 당신이라는 사람이 사라지면 난 무얼 하며 살아야 하는데? 내게 있을 유일한 안식처는 이제 당신 곁이야.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영원히. 영원히 당신과 함께 해야 한다고. " 


이 차갑고도 싸늘한 공기 탓일까?

손에서 흐르던 피가 멎은 건지, 그게 아니라면 심장이 멎어버린 것인지. 

사고가 느려지고, 허탈함이 가득 차오른다. 

처음부터 잘못된 연이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녀를 죽였어야 했는데. 



" 더 이상 도망치려 하지 마. 당신은 내가 필요하고, 나는 당신이 필요해. 서로 사랑하니까. 당신이 날 이렇게 만들었으니까. "



책임져. 


그 짧은 말과 함께 서로의 입술은 다시금 맞닿는다. 


일방적인 입맞춤. 

서로의 온정 따윈 느낄 수 없는, 그저 상대를 탐닉하기 위함일 뿐인 야릇한 입맞춤. 


그러한 키스에 금방 질려서 였을까. 

그녀는 입술을 떼고 싸늘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대뜸 웃기 시작했다. 


" 아… 이게 아니지. 프흐, 그랬어. " 


짝- 


생소한 감각에 상황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내 고개가 돌아갔다. 

사고는 정지했고, 자신이 맞았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 듯 했다. 


태엽이 맞물리지 않아 고장난 것처럼, 나는 삐걱대며 고개를 정면으로 돌릴 뿐이었다. 


" 이렇게 했었나? …… 아, 미안, 아팠어? 당신이 알려줬는데. 괜찮아. 금방 기분 좋아질 테니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 


또 한번 그녀의 입술이 부딪힌다. 

거칠게 내 입술을 탐하던 그녀의 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멈추고 만다. 


길게 늘어진 은빛의 타액. 

뚝, 하고 방울져 떨어짐과 동시에 내 얼굴은 한번 더 돌아갔다. 



" … 안 듣네 잘. 뭐 됐어. 될 때까지 하면 그만이니까. 날 사랑할 때까지.



몇 번이고 살갗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주변에서 몇 번이고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몇 번이고 반복되고 나서야, 나는 허탈함과 공포에 짓눌려 나 자신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때 아닌 후회는 되려 나를 괴롭게 만든다.


내가 했던 잘못들은 그대로 내게 돌아오고 있었으며, 이 모든 것들이 온전히 내 업보였기에. 


그 이후로는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는다. 쉽사리 초점이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껏 강자로 군림해있던 나는 이토록 쉽게 무너지는 약자였구나. 

고작 감정 따위에 휘둘리는 여성에게 조차 이길 수 없는 병신이었구나. 


… 그녀에겐, 고작 감정 따위가 아니겠지. 



침대 위로 옮겨진 내 손은 어느샌가 처치가 끝난 상태였지만, 가장 중요한 신체는 이미 결박당해 자유를 잃어, 한 없이 하찮게 꿈틀거릴 뿐이었다.


비참한 인생은, 끝내 끝을 맞이하지 못하고 가늘게 이어진다. 

언젠가 내가 누군가에게 그랬던 것처럼. 


천천히 다가오는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 

그저, 그저 사랑한다며 다가오는 그녀를 부정할 수 없었다. 

아니, 부정하지 못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그녀의 손에 들려져 있던 새하얀 가루 포장지가 무엇인지는 떠올리기조차 싫었다. 


이게 내 운명이라면, 그저 받아들이기를. 

받아들일 수 있기를. 


얼마나 될 지도 모르는 길고 긴 영겁의 시간을, 제발 버틸 수 있게. 


아니, 제발 죽을 수 있기를.


입안에 가루를 전부 털어놓던 그녀는 내게 한 차례 입을 맞추어 온다. 

새하얬던 가루들은 그녀의 타액과 섞여 끈적히 내 혀를 타고 흘러 넘어온다.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몇 번이고 그녀는 내 위에서 야릇한 신음소릴 내며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녀를 마주보지 않을 때마다, 내 뺨은 돌아가기 일쑤였다. 황홀하다는 듯한 붉은 빛의 눈빛으로.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모를 정도의 살갗이 맞부딪히는 소리와, 교성이 공간을 가득 메워가고 있었다. 

점점 소리가 가득 차오를 수록 내 머릿속도 흐려져만 갔다. 


끝났다. 전부 다. 

이 약으로 이성을 놔버린 수많은 이들을 봐왔기에. 

그저 약에 찌들어 평생동안 성욕을 탐하다 망가져 버린 이들을 수도 없이 봐왔기에. 


어둡기 짝이 없었던 인생은 마찬가지로 어둡게 닫히고 마는구나. 

수 많은 생명을 앗아갔던 이의 말로란. 


결국, 남에게 생명을 붙잡힌 상태로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돌아간 시선 틈으로, 창밖의 붉은 꽃 하나가 보였다. 






호랑이꽃. 





문득, 호랑이 꽃의 꽃말이 떠올랐다. 





그러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사랑해줘요. 라고. 


마치, 그녀가 외치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