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2편


"도련님, 큰 소리를 내시면...."


"알아."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잘 안다. 벼룩을 잡자고 개미를 끌어들이려 한 것이나 다름없는 꼴이지. 하지만 그런 짓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살인 만큼은 막아야 했다. 그것도 파르샤가 그런 일을 저지를 뻔 했다면 더더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파르샤, 내가 지금까지 너를 비롯한 조직의 모든 이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한 번이라도 살인을 요구했던 적이 있었나?"


"....없습니다."


파르샤가 잠시 망설이다가 사실대로 말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항변하듯이 한 마디 덧붙인다.


"도련님께 해를 끼치려 했습니다. 그것도 흉기를 들고서 말입니다."


"흉기라."


나는 바닥에 떨어졌던 날붙이에 다가갔다. 녹슨 금속과 합성 재질로 만들어진 손잡이, 식칼, 분명 날붙이가 맞았다. 하지만 이 낡아빠진 식칼은 날붙이라고 말하기 창피할 정도로 날은 닳아있고, 끝은 뭉툭해진 지 오래였다.


"그래, 흉기는 맞아."


흉기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본질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위해를 가할 목적으로 사용하려 한 모든 물건은 흉기가 될 수 있다. 그런 뜻에서 말했지만, 아쉽게도 그 뜻이 그다지 잘 전달되지 않았나 보다.


"아무리 날이 닳고 끝이 무뎌졌다고 해도..."


파르샤가 스스로를 변호하려고 뭐라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나는 주워 든 식칼을 챙기면서 그 사실을 전했다.


"결과만 보고 과정을 따지는 것보다 더 질 나쁘게 폄하하는 방법도 없지. 난 위협을 받았고, 너는 그런 날 지켜줬어. 


이번에 지켜줘서 정말 고마워, 파르샤."


"...과찬이십니다."


예상했던 것과 다른 말이 나오자 파르샤가 적잖게 당황하여 말을 버벅였다.


평소였다면 그러는 걸 보고 싱긋 웃으며 즐겼겠지만 지금은 그럴 분위기가 절대 아니었다.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살인은 안돼, 절대로 안돼,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어. 죽이면 안 되니까 죽으라고 하지는 않지만, 그것 이외에는 용납할 수 없어."


".....명심하겠습니다."


내 말을 들은 파르샤가 눈을 지그시 감으며 머릿속에 그 말을 새기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끼어들어서는 찬물을 끼얹듯이 분위기를 작살냈다.


"꼴같잖은 뒷골목의 깡패 새끼들이 착한 척하고 자빠졌네....!"


신랄한 비웃음, 살기가 서린 독설, 독기 어린 눈빛, 목소리는 분명 우리보다 한참 어린 여자 아이의 목소리이건만, 그 말과 행동은 훌륭한 뒷골목 사람처럼 거칠고 독한 것이었다. 


파르샤가 얼른 추적자의 후드를 벗겼다. 이제서야 그 추적자가 머리에 쓰고 있던 펑퍼짐한 후드가 눈에 들어온다.


뒤집어 쓴 후드를 벗겨 드러낸 얼굴은 목소리와 어울리는 어린 아이의 것이었다. 뒤늦게 후드가 눈에 들어온 것에 이어, 그 작은 체구 또한 이제서야 인식되는 것이었다.


"살인은 안돼? 절대로 안돼? 돈 못 갚는다고 사람을, 엄마랑 아빠를 쥐 새끼 잡듯이 때려 죽인 주제에....그런 주제에...."


귓구멍을 통해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온 여자애의 말이 내가 알고 있는 것들과 알아서 아귀를 맞춰가며 한 가지 사실로 조합되어 간다. 그 인간의 일이다, 내 아버지일 뿐인 그 괴물 같은 인간, 언젠가는 자식인 나를 잡아먹었을 그 괴물.


내가 직접 죽여버린 그 괴물.


이 여자애 또한 그 괴물에게 부모를 잡아먹힌 희생양일 것이다. 돈을 빌려주고, 탐욕의 크기만큼 이자를 불리고, 받아내지 못한 이자와 잔금을 끝내 목숨을 대신 뜯어내는 것으로 받아내는, 그러고도 한 푼이라도 더 뜯어내려고 혈안이 된 그 이야기 속에서도 있지 말아야 할 끔찍한 괴물.


그 괴물을 내 손으로 직접 죽여서 핏줄을 끊어냈는데도, 그것과 나 사이에 연결된 혈통을 완전히 부정했는데도, 그런데도 그 괴물이 내 아버지라는 사실은 여전히 날 붙잡는다.


"도련님은 사람 안 죽였어."


파르샤는 붙잡은 여자애처럼 내 아버지인 그 괴물에게 똑같이 부모를 잡아 먹혔건만, 그런데도 날 진심으로 두둔해줬다. 하지만 여자애한테 파르샤의 말이 그닥 믿어질 리가 없다.


"그래, 그런 것 치고는 넌 아까 날 잘만 죽이려고 하던데? 너무 빨라서 하마터면 모를 뻔 했는데, 네가 그렇게 착하다고 한 저 잘난 도련님께서 방금 전에 네가 날 그렇게나 순식간에 죽이려 들었다고 말하던데, 틀렸어?"


"그러는 너는 도련님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 주제에, 그리고 도련님께서 내가 널 죽이려 했다고 지적하신 걸로 날 비난하는 주제에, 그런 주제에 도련님이 사람을 안 죽였다는 말을 그렇게 비아냥 대면서 코웃음 치는 거고?"


"데리고 다니는 경비견 꼬라지가 이 모양 이 꼴인데 사람을 안 죽였다는 개소리를 누가 어떻게 믿....!"


악에 받쳐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대들던 여자애를 파르샤는 강하게 끌어당겼다가 땅에 내리 꽂는다. 힘 조절과 자세를 잘 잡아서 뒷통수를 내려찍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등짝에 크게 충격이 꽂힌 지라 여자애는 짧은 신음을 토해내며 말문이 막혔다.


"다른 건 모르겠고 너, 목소리가 너무 커. 도저히 그냥 넘어가 줄 수가 없을 정도로 크다고, 알아? 더는 경고하지 않아, 제 입으로 험한 꼴로 만들어 달라고 빌고 싶은 게 아니라면, 일단 그 쓸데없이 큰 목소리부터 낮춰."


파르샤가 말문이 막힌 여자애의 목울대를 손으로 콱 움켜잡는 시늉을 하고는 나지막하게 경고했다. 다음에 또 손이 나가게 한다면 그때는 그 시끄러운 성대를 아예 뜯어 내버리겠다는 무시무시한 의사가 확실하게 전해졌다.


여자애는 이미 보여준 그 싹수에 걸맞게 쉽게 굴하지 않고, 오히려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며 씩씩거렸다.. 하지만 나이를 뛰어넘은 건 아니어서 어린 아이답다면 그렇게도 눈물을 글썽거렸다.


내가 할 소리가 아니지만, 그래도 애는 애다. 정신을 다 잡은 나는 분위기를 조금 누그러뜨릴 필요를 느껴서 나섰다.


"파르샤, 고생 많았어. 그러니까 긴장 좀 풀고, 일단 자리부터 옮기자."


"알겠습니다."


내가 부탁하자 파르샤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차분해져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붙잡혔던 여자애도 일어나는 파르샤의 손에 덩달아 자리에서 일으켜진다. 여자애를 데려간다는 말은 안 했지만, 굳이 그런 말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파르샤는 내 속내를 잘 헤아렸다.


그나마 흔적으로 남을 만한 식칼조차도 일찌감치 챙겼기 때문에 뒷정리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 나는 그대로 근처에 있는 내 소유의 건물로 향했다. 파르샤도 여자애를 단단히 붙잡고서 날 따라왔다.


인근에 있는 내 소유의 건물은 임시 사무실로 쓰는 건물이었다. 잠깐 머물렀다 갈 정도의 살림을 갖춰놓은 건물은 지금 같은 경우에 쓰기에 안성맞춤이다. 다만 관리를 소홀히 한 탓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묵은 먼지가 아주 열렬하게 환영해주는 것이었다.


"쿠우허업...! 먼지가...환기, 환키이!"


"창문을 열기 전에 입구 쪽부터 환기를 시켜야겠습니다. 들어가지 마시고 문을 여러 번 열었다 닫으십시오."


"케헉, 케헉, 커헉!"


"이딴 병신을 도련님이라고 모시는 거냐?"


여자애가 난데없이 내지르는 험악한 욕설에 나는 눈을 부릅뜨며 그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화가 나서 그런 게 아니다. 날 욕하는 말을 듣고 혹시나 뚜껑이 열린 파르샤가 안 그래도 으르렁대던 여자애한테 제대로 손을 댈까 봐 걱정한 탓이었다.


다행히도 파르샤는 여자애한테 제대로 손을 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러기 딱 한 걸음 전이었다. 입을 콱 틀어막은 채로 여자애의 관절을 꺾으려는 시늉을 하던 파르샤를 나는 얼른 손짓으로 말렸다.


슬슬 파르샤도 인내심에 한계가 오는지 내키지 않아 하는 기색을 보이며 여자애를 풀어줬다. 그러자 풀려난 그 여자애는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할 뻔 했는지 다 내다본 듯이 벌벌 떨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두려움에 버금가는 분노 또한 확실하게 드러냈다.


나는 얼른 문을 여러 번 여닫아서 입구의 환기를 마쳤다. 조만간 일이 터질 걸 예감했고, 그 예감은 참 유감스럽게도 들어맞았다. 환기를 끝내고 일단 나와 다른 두 사람 다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불을 채 켜기도 전에 가면 갈수록 씩씩거리는 소리를 크게 내던 여자애가 기어이 일을 터뜨렸다.


"이거 봐, 데리고 다니는 딱지 년이 이 꼬라지인데, 그런데 사람을 안 죽였어? 그럼 내 엄마랑 아빠는 왜 죽었는데, 어?"


용기일까, 그냥 악에 받쳐서일까, 날 향해 눈에 불을 켜고 폭언을 쏟아내는 여자애의 무모한 언행에 결국 인내심이 바닥난 파르샤가 심문할 가치조차 없다며 처리하려 했다.


"심문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말도 못하는 꼴로 만들어서..."


"딱 한 번."


그런 두 사람을 멈추게 한 건 내가 난데없이 내뱉은 한 마디 말이었다. 뭐가 한 번인지 제대로 지칭하지도 않고 말하기는 했지만, 나와 대화하고 있던 다른 두 사람이라면 저 한 번이 무슨 뜻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쐐기를 박듯, 뭘 한 번 했는지 재차 말했다.


"딱 한 번, 죽여봤어."


"도련님...."


파르샤가 날 향해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은 눈빛을 보내온다. 내가 지금 말하는 건 오직 나만의 비밀이 아니었다. 그녀 또한 알고 있는 비밀이다. 나와 파르샤가 공유하는 비밀을 멋대로 풀어내는 독단을 저지른 걸 사과한다.


"걱정 끼쳐서 미안해."


"한 번? 지..."


하지만 내가 말한 비밀은 그저 나의, 그리고 파르샤만 알고 있을 뿐인 일이다. 여자애 하고는 하등 상관이 없는, 지나가던 개미가 밟혀 죽는 것보다도 더 관심이 안 갈 남의 일이다.


그러니 부모를 빼앗긴, 그것도 끔찍하고 잔인한 폭력의 끝에 부모를 저항 한 번 못 하고 무력하게 빼앗긴 어린 아이의 원한, 세상의 추악함을 접하고는 강제로 어른이 되어야만 했던 꼬마는 그 울분을 담아 내 감정을 부정했다.


너 따위가 무슨 감정이냐고, 너 같은 게 누구를 걱정하냐고, 네가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정을 주고 받을 권리조차 있냐고, 네 주제에 뭐가 그렇게 당당하게 살아있냐고, 여자애가 내게 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하려고 했던 말들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러니까 나는 이 여자애에게 빚이 있다. 그녀의 부모의 목숨 값이다.


"부모님이 두 분 다 돌아가셨다고 했지? 그 일은 정말로 유감이야."


내 말에서 심상치 않은 뭔가를 느낀 여자애의 말문이 턱 막혔다. 나는 기다려주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데 그거 알아? 나도....그래."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여자애는 알고 싶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알고 싶지 않다고 해서 몰라도 되기에는 이미 늦었다.


"딱 한 번, 살인을 저질렀어. 내 아버지일 뿐인 그 괴물 같은 인간을 죽였어. 그 뒤로....단 한 번도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어.


내가 한 적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시킨 적도 없어. 허용한 적도 없어. 적어도 나와 관련이 있는 선에서는 단 한 번이라도 살인을 용납하지 않았어.


죽이면 안 되니까 죽으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경우만 빼고, 그러는 것 또한 따지고 보면 살인이니까."


부모를, 아버지를, 자신을 낳아준 그 뿌리를 괴물이라고 서슴없이 부르고, 심지어 제 손으로 죽이기까지 했다는 괴물을 눈 앞에 둔 여자애는 과연 어떤 심정일까? 확실한 건 여자애의 두 눈이 날 향했다가 다른 곳으로 돌리지도 못하도록 단단히 못 박혀서는, 보는 내가 안타까워 할 정도로 흐릿해져서는 덜덜 떨고 있었다.


여자애는 그녀의 부모님에게 듬뿍 사랑을 받아오면서 자랐다. 자신을 사랑해준 부모를 그토록 잔인하게 빼앗은 원한을 이토록 활활 불태울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니 그녀는 날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자신의 아버지를 그렇게도 사랑했는데, 나는 내 아버지를 그렇게도 미워해서 죽여버리기까지 했으니까. 조금 심술이 났다. 이 와중에도 말이다.


"괴물을 죽이는 건 어렵지 않았어. 난 그래도 그 괴물의 자식이거든. 깜깜한 밤의 어둠이 무서워서 겁에 질린 아이가 엄마랑 아빠를 찾아가는 건....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잖아?"


자세를 낮추고, 여자애와 눈높이를 맞춰가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나는 내가 감춰둔 비밀을 알려줬다.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에게 선물 대신 비밀을 하나 알려주는 그런 느낌으로, 소곤소곤.


"엄.....마, 아.....빠아."


여자애는 울먹이면서 이미 돌아가신 지 한참도 더 된 자신의 엄마랑 아빠를 불렀다. 처음으로 보는 그 나이 대의 아이다운 면모였다. 이렇게 부르면 당장이라도 여자애를 사랑해준 엄마랑 아빠가 달려와서는 자신을 지켜줄 거라는 믿음마저 느껴졌다. 심지어 여자애가 아닌 내가 그녀의 부모님이 찾아올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을 정도다.


이토록 사랑받은 여자애가 정말로 부러워서, 그래서 이 여자애한테 정말로 죄송하다.



그리고 파르샤한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