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우리 그만 헤어져요..."



이슬비가 이따금씩 내리는 흐린 하늘 아래에서 조곤거린다.


멋구름의 어둑함이 섞여 대낮이지만 마냥 푸르진 않은 창공


"저 더 이상 못 하겠어요.."


인생에서 이리도 용기를 짜본적이 있으랴 두 주먹을 움켜쥐며 참아왔던 바람을 드디어 토해낸다.



"후우....."


허나 그런 내 결심을 들은 여인은 숨결 한번으로 각오를 무너뜨리듯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담배 연기를 내뱉었으니.


"그래?"


자연스러움에서 베어나오는 여유와 악의 없는 위화감,

한 치의 흐터러짐도 없는 표정과 내면이 꿰뚫릴 것 같은 날 선 눈매가 심장을 요동치게 한다.




"우리 강아지, 뭐가 불만이길레 그리도 목줄을 답답해 할까?"




하지만 ㅡ


"바로 그 태도 입니다..!!"



지금 여기서 결전을 내지 못 한다면 다신 기회가 없다는걸 본능적으로 알았기에


죽음에 저항하듯 필사적으로 외쳤다.





"저는 동물 따위가 아니라 사람 입니다...!"

"그리고 누나... 알고 있다고요?!"

"누.. 누나는.... 깡패 같은.. 거죠..?!"



나는 그녀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을 몇 번이고 되내이며 연습하고 생각을 정리했었는데...


하지만 막상 대면하게 되니 긴장감탓에 그런 노력이 허무할 정도로 단어가 뒤죽박죽으로 튀어나온다.



"......"




이어가던 말에 어정쩡한 마침표가 찍히자 찾아오는 정적 ㅡ


"흐음"


내 말을 들은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숨을 크게 한번 고르지만 여전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그래서...! 더 이상 못하겠어요!"


"더 이상 참는 것도 한계고..."

"그러니 우리 헤어져요!!"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어떻게든 말을 이어나가는데.





"알았어."




돌아오는건 허무 할 정도로 간단한 승낙.


"네...?"

내가 생각해도 싱거운 마무리에 얼이 나가버리고 만다.



"알았다고 했다."


"개가 주인을 떠나려는건 관리를 소홀히 한 주인의 탓."



"산책이 적어서든 어째서든 답답해 한다면 한 동안은 자유롭게 풀어줘야지."



문드러진 담뱃꽁초를 바닥에 던지며 마지막 연기를 뱉어낸다.


물 웅덩이엔 재와 함께 버렸던 담배가 떠다니며 그녀의 매서운 표정이 고스란리 비춰진다.



"그러니까 저는 개가 아니에요! 누나가 저의 주인도 아니고요!"

"또... 다신 누나를 원할 일도 없을 거에요!"

끝 까지 나를 하대하는 태도에 진절머리를 내어 몰아붙히지만.


"그럼 너의 입장에선 어차피 마지막 아닌가? 그럼 기왕 이별인거 마지막으로 한번 불러보면 어디 덧나나?"




"....."


오히려 내 소원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농락한다.




실제로 그녀의 말대로 생각보다 쉽게 이별을 허락해서 남남이긴 하지만....



"......"


"왜? 또 무슨 할 말이라도?"


뭘까... 저 필요 이상으로 여유로워 보이는 분위기는...


마치 뒤가 구린 꿍꿍이가 감춰진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 그게..."


정말로 헤어져도 되는걸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 속을 휘젖는다.


막상 헤어지자니 그녀에게 끌린다는 것 보단...

지금까지의 행실이 머릿 속을 스치니 의구심이 들기 때문 이었다.


만약 그녀가 나를 정말로, 그리고 손쉽게 놓아준 것이 맞다면...


그렇다면 지금까지 지내며 내게 속삭였던 모든 사랑은 무엇일까...

내가 없으면 안된다며... 그 누구도 나를 대신 할 수 없다며 원해놓곤

이제와서 미련 없이 놔준다는 것이 너무나 부자연스러웠다.



지금껏 나눴던 연민이 전부 거짓인 걸까?


그게 아니라면 겉으론 쿨 한척, 뒤에선 무언갈 꾸미고 있는 걸까...



그녀의 본심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니, 없어요... 이만 갈게요."


일단 그녀에게서 드디어 벗어 날 수 있으니 도망치듯 빠져나가려는 찰나에



"잠깐."



지금껏 느껴 볼 수 없는 진중함에 발목이 잡힌듯 멈춰버린다.


"연락해."


그리고 이어지는 의밈심장한 한 마디 ㅡ


단 3글자...


허나 그런 단어 하나에 오만가지 망상들이 내면을 소용돌이 친다.


도대체 무슨 뜻을 품고 하는 말인걸까.


답지않게 상냥한 미소와 어우러지니 더욱 더 이질적이고 불안했다.




"......."



하지만 나는 그런 누나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금 발걸음을 내딛는다.







◇◇◇



그녀와 헤어지고 3달이 지났고.

드디어 평범한 일상을 만끽하게 되었다.



대학 공부에 다시 전념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평범한 여자와 만나서 어디에나 있을 법한 달콤한 연애를 할 수 있었다.


나 보다 한 살 어린 연하로


나를 개 취급하는 누구와는 너무 비교가 될 정도로 소중히 여겨주고 귀여움도 많은 여자 친구인데.




항상 나를 먼저 위해주고

자기가 양보 할 줄도 알며

너무나 사랑스러운 존재로서 내게 매달린다.



하지만...



"오빠, 무슨 생각을 그리해?"


"으응..?!"



도대채.... 

어째서일까....?



"어.. 그... 아무것도 아니야..."


계속해서 그녀의 얼굴이 눈가에 아른거린다.

현 여자친구와 밥을 먹을 때도


손을 잡고 길을 걷다가도

심지어는 같이 시간을 보내는 그 순간순간마다.


왠지 모를 부족함과 아쉬움이 뇌리를 툭툭 건드리고...

"왜 이러지...."


그리고 그런 허무함 끝에는 항상 누나의 모습이 남아있었다...


도대체.. 왜...

뭐가 아쉬워서 그러는걸까.


범죄에 몸을 담고 나를 애완 동물 취급하는 그녀보단 내게 밝게 웃어주고 항상 신경써주는 현 여친이 100배는 더 나을터인데.


하지만...


손을 붙잡으면 느껴지는 두근거림이나

얼굴을 마주 볼 때면 화끈 거리는 얼굴의 온도

몸을 접촉 할 때 밀고들어오는 자극, 그 모든 것이.


그녀에 비하면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확실히 성격으로나 나를 대하는 태도로나 모든 것이 현 여친이 좋은건 맞으나...


하지만 그녀가 아니면 만족 할 수 없는 이 기분은 뭐지?


"아냐.. 아닐거야..."

그래도 처음엔 애써 이런 마음을 부정했다.


"오빠, 표정이 왜 그래...? 오늘은 뭔가 컨디션이 안 좋아....?"

하지만... 현 여자친구와 진도를 나갈 수록 불안감은 점점 현실이 되고 말았다.


어떻게든 범죄계의 그녀를 내 안에서 떨쳐내려고, 현 여친과 손을 강하게 붙잡고 포옹도 해 보며 나중에는 입술도 나눠봤지만...


"이런게 아냐..."

어딘가 허전한 마음에 항상 그것을 채워주는 것은 지난 날의 추억들이었으니...

그런 발악들은 오히려 관에 못을 박는 격이 되버렸다.





왜... 도대체 왜 잊을 수가 없는 걸까.

싫다고 걷어찬건 나 잖아... 분명 헤어지기 전 까지는 기피하고 싶었잖아....

하지만 어째서 원하는 마음이 들지...?


이래선 마치 내가....




.......

























"미안해요 오빠...."

"우리 여기까지만 해요...."

"최근 가정사 때문에 연애가 어려워서... 그 이상은 묻지 말아주세요!"



정신을 차렸을 땐 현제의 여자 친구... 아닌 이젠 전 여자 친구라 해야겠지....


아무튼 그녀가 내게 이별을 통보하여 헤어지게 되었다.



"....."


헤어진 직후 내가 느끼는 기분은 무엇일까.


슬픔? 원망함?

아니었다...



기대였다.


지금의 나는 여자 친구도 없을 터.


그렇다면... 다시 누나와 시작 할 수 있는 명분 ㅡ



"헛..?!"

급하게 이성을 되찾은 나는 머리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잡념을 떨쳐낸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나...


분명 싫다고 먼저 떠난건 나잖아.

그런데 왜 이제와서 이런 말을 하는거야?

정신 차려...





라며 스스로를 타일렀지만.


'연락해.'


마치 이 모든 상황을 예상한듯 그녀가 던져놓은 미끼가 생생히 떠오른다.



"......"


무엇일까...


마치 미래를 내다본듯 던진 그 수는 ㅡ


역시 알게 모르게 뒤에서 무언갈 꾸민 것이 있던건가?



그런데 그걸 알더라도.


"....."


어느센가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메신저에 들어가 있었다.


'누나? 잠시 시간 되요...?'

미리 입력된 메세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전송 버튼을 누를지에 대한 고뇌의 연속이었다.



눌러야 될까, 말아야 될까.


누르게 된다면 내 모든 자존감은 깎여나간다.


그리고 더욱 더 선명해진 갑을 관계에 더 이상 빠져 나올 수 없게 되겠지.


그러면 역시... 그만두는게 옳은 선택이겠지?



"......."



그런데 어째서 머리론 그런 생각을 해도 행동으로 옮기기가 힘든 걸까....











◇◇◇




내가 순순히 그를 보내준건 정이 식어서가 아니다.

다른 여자에게 넘겨도 상관 없는건 더더욱 아니었다.



어차피 내게 돌아올 거라는걸 알기에 순간의 일탈을 허락한 것 뿐 이다.


어떻게 그리도 자신만만하냐고?



내가 그럴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 놨으니까.




인간의 뇌는 생각보다 속이기 쉽다.



원인이 어떻든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착각 해 버리고 마니까.


사랑이란 감정을 억지로 심어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흔들다리 효과(Suspension Bridge effect)



흔들리는 다리 위에서 만난 이성에 대한 호감도가 안정된 다리위에서 만났을 때 보다 더 상승한다는 말로

대상을 좋아하기에 심장이 튀는 것이 아니라 심장이 튀기에 대상을 좋아한다고 착각해버리는 현상을 뜻 한다.


놀이기구 위에서 이루어진 커플이 대표적인 예시겠지.



그가 결국 나를 찾아 올 수 밖에 없는 이유도 그러했다.

그와 만날 때 마다 우리 조직이 개발한 특산품을 조금씩 사용했으니까.


매번 나와 만날 때 마다 아마 터질듯이 심장이 뛰었을걸?

그러니 나의 대한 기억이라 한다면 아주 자극적인 것 밖에 남지 않았을 테고.

그런 시점에서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과 다름 없었다.


다른 여자를 만나봤자 더욱 큰 쾌락을 쫒으려는 원초적인 본능에 의해 분명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 뻔 했으니까.

애초에 기껏 해야 손 좀 잡아보고 많이 가봐야 입술을 가볍게 포개는 것이 전부인 미약한 짜릿함이


몸을 뒤섞고 뇌가 타들어가는 쾌락을 이길 순 없을 뿐 더러

인공적으로 증폭된 감정에 오히려 극심한 차이를 체감하고 좌절 할 테니까.

그러니 그는 나에게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주인을 잃은 개가 어떻게든 흔적을 쫒아, 찾아오는 것 처럼.






"그 계집도 잘 처리했고, 이제 남은건 ㅡ"


뭐 솔직히... 그렇다고 조금의 걱정도 없는건 아니었다.

감히 내 남자와 키스한건 당장 찢어죽여도 마땅했지만.


그 계집의 친부가 다니는 직장이 우리 조직과 아~주 관련 깊은 사이였다는건 운이 좋았다.






위이이잉


그러자 때 마침 울리는 핸드폰


'누나? 잠시 시간 되요...?'

익숙한 번호로 입력된 간절한 메세지였다.


"헤에~ 3달인가."


꽤나 잘 버텼네.


나 말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욕망에 가득찬 미소로 몇 번이고 메세지를 되읽으며


뚜루루루...


곧 바로 가까운 부하에게 전화한다.

"네, 보스. 연락 받았습니다."


"지금 당장 아래에 차 대기시켜, 운전수는 필요 없다고 전해주고."







◇◇◇



이슬비가 이따금씩 내리는 흐린 하늘 아래...

그 때와 비슷한 풍경이었다.



"누나..."

데자뷰가 느껴지는듯한 기분을 제쳐놓으며 나는 힘들게 입을 여는데...


"후우...."

그녀는 말을 끊는 것 처럼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세상 쓴 맛을 보니, 다시 주인 품으로 돌아오고 싶어졌어?"



여전히 불쾌한 말투가 내 고막에 때려 박는다.



"윽.. 전...!"

너무나 불친절한 태도에 역시 이건 아닌건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

그녀를 보자마자 튀기 시작하는 심장 탓에 증오심이 사그라든다.


"돌아가고 싶으면 타."


그녀는 내 표정을 살피더니 옅은 미소와 함께 피던 담배를 어디론가 던져버리며 고급져 보이는 외제차에 시동을 건다.


나는 안다, 저기에 탄다는 건 곧 그녀의 종속을 스스로 택한다는 뜻 이라는걸.

하지만...


"나를 보자는건 너 아니었니?"

허나 그녀의 독촉과

"으윽..."

계속해서 콩닥거리는 본심에 이끌려버린 나는


"........"


결국 말 없이 그녀의 옆 좌석에 타게 된다...



"오늘 밤은 안 재울거야."



꼬리를 말고 우리 안으로 들어가듯 조용히 탑승하자 그녀는 요염한 미소로 내게 속삭였고


"....."

"후훗♡"

허나 마냥 나쁘지 않는 느낌에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악셀을 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