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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짚고 넘어가야겠군요."


맥슬런 케이트의 도발적인 발언에 대한 답으로 이렇게 말하고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도련님께서 급히 날 부르셨다.


"파르샤.....!"


반사적으로 도련님을 돌아보니, 도련님께서는 한 시도 눈을 떼지 않고 날 바라보시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날 부른 이유를 알 수 있었기에 그리 하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께서는 여전히 날 믿고 계시지만, 그래도 지금 처해있는 상황이 상황인 탓에 정말로 마음을 놓지 못 하신다.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해한다.


아무튼 맥슬런 케이트의 바로 앞까지 다다른 나는 허리를 숙여 그녀에게 눈높이를 맞춰주는 척을 했다. 안 그래도 키도 작은데다가 의자에 앉아있기까지 한 맥슬런 케이트는 내가 허리를 많이 굽혀줬는데도 여전히 날 올려다보는 모양새일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이 여자를 깔보려고 어린 애를 대하는 것 같은 말투로 친절하게 대하기는 했지만, 이제는 그 가식적인 친절조차 베풀기 싫어졌다. 다시 말투를 원래대로 고치고서 말했다.


"원래 일은 끝나기 전까지 다 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의식 또한 일이라고 할 수 있고, 결혼식은 의식의 한 종류입니다."


"다 아는 이야기를....뭘 그렇게 잘난 듯이....주절대는 거야...."


"그 다 아는 이야기를 모르는 것 같길래,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아직 결혼식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맥슬런' 케이트 양."


일부러 성씨를 더욱 강조해서 불렀다. 만약 결혼이 끝났더라면, 그래서 이 여자가 도련님과의 결혼식을 정말로 끝낼 수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나는 이 여자를 '블라크' 케이트라고 불러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 부르지 않았다. 아직 결혼식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 이 여자도 차마 그 사실을 부정하지 못해 날 향해 험악할 대로 험악한 표정만 지으며 분통을 터뜨릴 뿐, 내 말 자체를 부정하지 못 했다.


"그래, 네가 우리 결혼식을....이렇게 망쳐버리는....바람에....!"


맥슬런 케이트의 말이 끊어지는 횟수가 눈에 띌 정도로 확연하게 줄어 간다. 깨어날 때부터 회복이 빠를 것 같은 기미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 놀라워 하는 마음을 굳이 겉으로 티 내지 않았다.


"네, 망쳤습니다."


얼굴을 더 가까이 들이밀면서, 그리하여 내 그림자가 이 여자의 머리 꼭대기까지 드리워지게 하면서 말한다.


"그래서 뭐, 어쩔 겁니까?"


"그만."


맥슬런 영감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지금 당장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으면 더 이상 타협 같은 건 기대할 수 없을 거라고 경고하는 듯한 엄중한 목소리로, 딱 한 마디 했다.


그리고 그 한 마디는 그 목적을 아주 보기 좋게 이뤄낸다. 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의 시선이 저절로 맥슬런 영감 쪽으로 향했고,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자신에게 쏠린 것을 확인한 영감이 이어서 말한다.


"케이트, 이야기를 새게 하는 건....이쯤에서 멈추렴. 


네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건.....잘 알겠지만, 그래도 '부인' 인 네가 '남편' 의 말을 멋대로..끊어서는 안 되지 않겠니?"


맥슬런 영감은 일부러 부인과 남편이라는 단어를 강조해서 그리 말했다. 누가 부인이고, 누가 남편인지 일일히 가리킬 것도 없다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말했다는 점이 내 기분을 몹시 불쾌하게 했다.


하지만 기분이 몹시 불쾌했다고 해도 상대가 상대여서, 그 딸을 대할 때처럼 섣불리 나서지는 못 한다. 그러지도 못 하게 영감이 곧장 내게도 관심을 기울이며 말했다.


"그리고 자네도 마찬가지일세. 이름이.....파르샤라고 했던가?"


"바르가예프 파르샤입니다, 맥슬런 어르신."


"그럼 바르가예프 양이라고....부르면 되겠군, 문제 없겠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했다. 영감이 계속해서 말했다.


"아무튼 바르가예프 양, 자네도 그렇네. 비록 내 딸이 먼저 사위의 이야기를 멋대로....끊고 다른 쪽으로 새어나가기는...했지만, 새어 나간 이야기를 길게 끌고 가버린다면 자네 또한....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나?"


맥슬런 영감은 눈 한 번 안 깜빡거리고 자기 할 말을 다 했다. 자기 딸만큼 빠르게 말을 끊지 않게 되는 것도 놀랍지만, 단숨에 상황을 휘어 잡은 그 존재감 또한 대단하다.


그 탓에 하마터면 영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나한테 달려들지도 모른다고 착각할 뻔 했다. 하지만 말을 완전히 정상적으로 할 수 있도록 회복한다고 해도,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거기서 한참은 더 기다려야 했다. 


그 사실을 머릿속에서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나는 내가 아직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따님한테도 이미 말하기는 했지만, 결혼식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맥슬런 어르신."


이목을 끈 맥슬런 영감 쪽으로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리며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뒤에서 맥슬런 케이트가 내게 성질을 낸다.


"잠깐, 갑자기 어디 가는...거야? 날 무시하지 마아....!"


"뒤돌아 보지도 않고 답했다.


"어차피 원래부터 당신한테는 큰 볼 일이 없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께 볼 일이 있었죠.


그러니 시간 낭비하는 것도 이제 그만둬야겠습니다. 더욱이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지 않았습니까? 이 이상, 이야기를 새어 나가게 하는 건 그만두라고 말이죠."


자기 아버지가 직접 했던 말을 언급하니, 맥슬런 케이트도 뭐라 대꾸하지 못 하고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등 뒤에서 무척 불편한 기운이 느껴지지만, 말 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이 그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그리하여 맥슬런 영감에게 가까이 간 나는 그의 딸을 대할 때와는 다르게 허리를 숙여가며 눈높이를 맞추지는 않았다. 하지만 딸을 대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중한 태도를 갖추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도련님께서 굳이 자초지종을 해명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도련님께서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계셨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그냥 제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아까 말했듯, 이번 일은 제가 한 겁니다. 저 혼자서 다 한 일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내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서 묵묵히 귀를 기울이던 영감은 매우 무겁게 말문을 열어 답했다.


"그렇지만 난 분명 사위한테 먼저 설명을....부탁했다네. 그러다가 자네와 딸 때문에 사위가...하던 이야기를 도중에 멈출 수 밖에 없었지.


그러니 사위가 하던 이야기를 대신해서 하고....싶다면, 그 전에 양해부터 구하는 게 옳지 않겠나?"


이래저래 생각이 많은 티를 내다가 무겁게 입을 연 맥슬런 영감은 내 말을 믿지 않는 속내를 숨기지도 않는 눈빛을 보내며 그리 말한다. 그러고 나서 그는 도련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시선을 쫓아 나도 도련님을 돌아보니, 도련님께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복잡한 마음으로 끙끙 앓고 계셨다.


그러자 맥슬런 영감이 도련님께 대답을 요구했다.


"사위, 그래도 되겠나?"


단순히 허락만 구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맥슬런 영감의 질문에는 추궁하려는 의도 또한 분명히 깃들어 있었다. 이 심각한 질문을 받은 도련님께서는 맥슬런 영감이 그랬던 것보다 더 무겁게 입을 열며 대답하셨다.


"....알겠습니다."


도련님께서는 무척 복잡한 심경이라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는 목소리로 그리 미묘하게 답하시지만, 그 미묘한 대답에서 거짓 같은 건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맥슬런 영감도 순순히 알겠다는 말만 하며 도련님의 대답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도련님을 이야기로부터 제외시킨 나와 맥슬런 영감은 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맥슬런 영감이 먼저였다.


"한 가지 묻지. 일단 지금 상황에서....다른 조직이 이번 일을 알고 찾아올 걱정은....없나?"


"말씀드렸다시피, 이번 일은 오직 저 혼자서 한 일입니다. 준비부터 실행까지, 누구의 도움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기 뭣하지만, 장소부터 사전 단속까지 다 잘 철저하게 하셨으니 더욱 문제가 없을 겁니다."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군. 그래, 그래서....왜 이러지?"


맥슬런 영감의 질문에서 그가 묻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지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오직 한 가지만 물어봤고, 그러니 나는 그 한 가지에 대해서만 대답하면 됐다.


"이번 결혼, 취소해주십시오."


내가 한 진지한 요구가 주위에 있는 이들을 모두 얼어붙게 만든다. 맨 처음으로 반응을 하는 사람은 맥슬런 케이트였고, 그 여자가 반응할 때까지 한참이 걸렸다.


"허, 허허.....헛소리 하지 마!!!! 켈록, 켈록!"


"케이트! 진정해! 무리하게 화내지 마! 네 마음은 알겠지만, 네 몸을 먼저 챙겨! 부탁이니까!"


"케이트....! 이봐요, 지금....무슨 말도.....안되는 요구를.....하는 건....가요....!"


억지로 고함을 치며 무리를 하던 맥슬런 케이트가 결국 각혈이라도 할 것처럼 기침을 터뜨렸고, 그걸 듣고 놀란 도련님은 급히 진정시키며 걱정하시고, 맥슬런 부인은 딸이 이렇게 화내다가 무리하는 걸 보고 분노하여 내게 단단히 따졌다.


나는 누구에게도 반응하지 않았다. 


맥슬런 케이트는 원래부터 마음에 안 들었으니 저러는 걸 보는 게 고소해서 그랬고, 도련님께서 저 여자를 저리 걱정해주시는 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랬다.


맥슬런 부인이 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걸 요구를 하냐며 따지는 건, 나로서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질문이기에 그저 무시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내 주의는 맥슬런 영감에게 쏠렸다. 맥슬런 영감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묻는다.


"바르가예프 양, 자네가 지금....뭘 하려고 하는지 알기는....아는가?"


내가 지금 뭘 하는지 너무 잘 아니까 대답이 바로 나온다.


"잘 압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실패라는 결과에 결코 다다를 수 없도록. 마지막 수단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한 번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