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라는 이름의 여인을 아시나요? 

시커먼 붕대로 몸을 칭칭 감은듯한 착 달라붙은 원피스 위에, 눈처럼 새하얗고 푹신한 퍼코트를 즐겨 입는 여자래요.

그녀에게는 재미있는 별명이 있는데요. 그 별명, 시체마녀래요.

조금 짓궃죠? 여자에게 시체마녀라니.

근데 시체마녀란 별명 말이죠, 참 재미있어요.

그녀의 피부는 창백해요.
그녀의 얼굴은 언제나 무표정해요.
그녀는 언제나 조용해요.

시체처럼요.

재미있는건 여기서부터에요. 저 시체마녀란 별명 말이죠, 저건 피부나 얼굴, 적은 말수 때문에 생긴 별명이 아니에요.

그 여자, 살인마래요.

그냥 살인마도 아니고, 살인청부업자래요. 왠만한 연쇄살인마보다 살인을 많이 해본 프로라는거죠.

근데 이 여자가 진짜 무서운게 말이죠, 임무 중에는 타겟 외에도 그냥 눈에 보인다 하면 다 죽여버린대요.

그 여자가 있던 곳이 시체로 깔린다 해서 시체마녀인거죠.

그 여자 눈에는 자신을 제외한 지구의 모든 인간이 다 고깃덩어리로 보인대요.

그래서 죄책감도 없대요. 그냥 눈에 보이는건 다 죽이고 보는거죠. 무섭지 않아요? 

근데 있잖아요, 그 여자가 저지른 범죄 현장에서 이번에 생존자가 한명 나왔어요.

쑤셔지고 잘려진 시체들이 바닥에 쫙 깔린 건물에서 한 남자가 멀쩡히 살아있는채로 발견됐대요.

얀순은 어째서 그 남자를 살려뒀을까요?

순간의 변덕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냥 재미로?

어쩌면, 그녀는 남자에게서 무언가를 느꼈을지도 몰라요.

평생 고깃덩어리들 사이에서 살다가, 처음으로 인간을 만난거죠.

참 재밌죠?

있잖아요, 인간씨.

이제 이 문 좀 열어주면 안돼요?

나, 당신같은 사람 처음봤어요. 딱 보는 순간 느김이 찌르르 오더라고요.

이게 사랑이구나! 하는걸 딱 느꼈다니깐요? 

웃기죠? 평생을 아무것도 못느껴왔던 내가 당신같은 남자한테 사랑을 느끼다니.

왜 하필 당신이냐고요?

글쎄요, 왜 하필 당신이었을까요.

있잖아요, 우주가 태어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지구는 어째서 생겨났고, 공룡은 어째서 멸종했으며, 인간은 어째서 생겨났죠?

왜?라는건 중요하지 않아요. 이유와 상관없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 세상이니까요. 

사람들은 이런걸 운명이라 부른다죠?

운명인거죠, 우리의 만남은.

세상이 그렇게 정한거에요.

당신이 조폭 두목의 딸인 얀진씨랑 만나게 된 것도, 내가 그녀를 죽여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 것도. 그 결혼식장에서 우리가 서로를 만나게 된 것도.

당신은 애초부터 날 만날 운명이었던거죠.

그리고 있잖아요? 지금 세상이 당신과 제가 서로 사랑하게 된다고 정한 것 같아요.

그러니 이제 그만 이 문을 열어요. 나한테 이 문 여는거 정도는 아주 쉬운 일이라는걸 당신도 알거 아니에요.

당신은 그저 인간이니, 세상이 정한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는거에요. 

당신에게 세상을 줄게요. 그러니 문을 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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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액정 고장나서 터치 안돼서 키보드 블루투스 연결해서 씀... 독수리 타자로 씀.... 힘들었음......


다 쓰고 읽어보니까 병신같아서 버릴까 생각했는데 아까워서 걍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