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우리 집은 평범했지만 나름 행복했다.



아버지는 군인 중령 출신이었는데 군인답게 가부장적인 면이 좀 있었지만, 넉살 좋고 호탕한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가정적이고 아버지가 가끔 조금 엇나가려 할 때 진정시켜주는 사람이었다.


2살 연하인 여동생은 잘 웃고 초등학생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집안일을 도울 정도로 착한 아이였다.


하지만 이런 나날은 내가 고2를 앞둔 지 얼마 안 되고 끝나버리고 말았다.


취하면 기분이 좋은 상태로 오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화가 잔뜩 난 채로 술에 취해 집에 온 날이었다.


나는 걱정이 돼서 안부를 물어봤으나 처음으로 느껴진 건 복부에 느껴지는 구두 바닥의 감촉이었다.


회초리나 손이 아닌 거로 맞아본 건 그 날이 처음이었다.


그때부터 일상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나 왔어." 


여동생은 나를 보자 옅은 미소로 나를 반겨 준다.


`그 새끼는 아직 안 왔나 보네`


그 날부터 벌써 1년 정도 지났다.


그렇게 처음 잔뜩 두들겨 맞은 다음 날 치미는 화를 참고 뭔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다.


잔뜩 흥분한 상태로 온갖 육두문자가 섞여 있어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어머니가 바람을 피웠다고 했다.


이유는 들은 바로는 자기가 장성은커녕 대령도 못 달고 전역하는 바람에 


출세욕을 가지고 있던 어머니가 자기에 대한 기대를 끊고 다른 잘난 남자를 찾아 이혼통보를 했다고 했다.


그때는 우리를 늘 챙겨주던 어머니가 그랬을 리가 없을 거로 생각했고 제정신도 아닌 것 같아 무시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록 어머니는 정말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다.




사실 정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어머니가 우릴 버렸어도 아버지도 그렇게 해야 한단 법은 없었다.


그 새끼는 부모 역할도 다 하지 못하면서 술만 처먹고 욕하고 나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동생한테는 욕만 지껄이고 신체적인 폭력은 일절 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나랑 그 새끼 중 하나는 의식을 잃어야 끝나겠지.


엄마가 집을 나가고 나서 여동생은 많이 힘들어했다.


나는 엄마를 대신하기 위해 여동생한테 말도 열심히 걸어주고 놀아 준 결과 많이 밝아졌다.


여동생에게 많이 미안했다.


나야 이제 학창시절 막바지지만 여동생은 아직 고1이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바로 취업한 뒤 여동생에게 같이 자취하자고 했다.


여동생은 매우 기뻐하는 눈치였다.


근데 이런 작은 꿈도 나에겐 과분한 것이었나 보다.


졸업식을 앞둔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그 일이 터졌다.




그 날은 길거리에서 엄마라도 본 건지 유독 폭행이 심했다.


속으로 존나 욕했지만, 이 지옥도 막바지라고 생각하고 참았다.


그런데 갑자기 여동생이 내 앞을 막아섰다.


여동생은 울먹이면서 제발 그만 하라고 소리쳤다.


나는 울컥했지만, 그 새끼는 반성하는 기색이 조또 없었다.


그 새끼는 갑자기 눈을 가늘게 뜨더니 중얼거렸다.


"얀순이 이거 안되것네.. 세상 참 좋아졌다. 씨발년이 나한테 기어오르고 말이야 씨발 야.."


"하~ 진짜 이야.. 얀순아 너 후랴덜노무새끼네? 이야 씨발 계집년이라고 안 건드렸더니 아버지고 뭐고 없구만?"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식칼을 쥐었다.


그 순간 내 안에 줄이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 새끼한테 반격하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였다. 


주먹을 휘두르면 저 새끼랑 나랑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고 여동생한테 떳떳해질 수 없다 생각했다.


근데 이제 그딴 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여동생이 위험하니까.


나는 이성을 놓고 칼을 든 흉악범에게 달려들었다.




"으 씨발 머리야...."


두통을 호소하면서 머리를 일으켜보니 첫 번째로 눈에 보인 건 내 앞에 상체 여러 곳에 자상을 입고 쓰러진 아빠가 있었다.


순간 머리가 쭈뼛 선 나는 아버지의 동공과 맥박을 확인했으나 확실히 늦었다.


심호흡을 크게 들이쉬고 여동생부터 확인했다.


여동생은 내가 쓰러진 곳에서 3M 거리에 기절한 채로 있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고 피가 묻은 곳은 그 새끼의 피로 보였다.


방을 둘러 보니 내가 그 새끼한테 달려들었던 곳 주변에 피가 묻어있었고 내가 쓰러져 있던 옆에 식칼이 떨어져 있었다.


정황상 고3 남성인 내가 아빠를 살해했음이 확실했다.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 내려 해도 달려든 뒤부터 깨어나기 전까지가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이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가장 떠오르는 건 여동생이었다.


이제 여동생은 내가 구속되고 나면 혼자 지내야 한다.


가정환경 특성상 여동생은 어지간하면 다 할 줄 알았지만, 돈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러다 한 가지 떠올랐다.


`아무 일도 안 하면서 1년 동안 술만 처마신 거면 숨겨진 돈이 있지 않았을까?`


그 생각이 든 나는 미친 듯이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있었다. 게다가 금액을 확인해보니 얀순이가 독립할 때까지는 무리 없이 생활할 수 있는 돈이었다.


마음을 다잡은 나는 자수를 하러 경찰서를 갔다.




여차여차해서 나는 법정에 섰고 여동생은 나를 위해 열심히 증언을 해줬다.


여동생도 관여된 거 아닌가란 의심도 나왔으나 다행히 현장감식 결과 개인의 범행으로 밝혀졌다.


여동생의 증언과 그 새끼의 악행이 언론에 소개됨으로써 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 


결과적으로 나는 존속살해죄로 8년형을 구형받아 복무 중이다.


여동생은 수감 중인 상태여도 꾸준히 면회에 와줬다.


여동생은 처음에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책했지만 내가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열심히 달래준 덕분에 나아졌다.


여동생은 자기가 열심히 준비할 테니 석방되면 같이 살자고 얘기했다.


사실 나 같은 건 잊고 그 돈으로 생활하면서 멋진 남자 만나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다.


그래도 그렇게 하자고 하면서 웃어줬다. 여동생이 그 얘기를 할 때 눈을 빛내고 있었으니까.


사실 안 와줬으면 해도 내 유일한 낙은 얀순이와 만나는 거였다.


얀순이는 정말 열심히 사는지 전국 석차 100위안에 들었다면서 성적표를 보여줬다.


그렇게 수다를 떨다가 면회시간이 끝났다.


"아 벌써 끝났네... 아쉽다"


"그러게.. 오빠랑 얘기하면 1분이 1초 같아"


"잘 지내고 너한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운 것 같아 늘 미안하네."


"아니야 오히려 오빠 덕분에 이렇게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거야 오빠가 나를 구원해줬으니까"


"구원까지야.. 처음 면회 왔을 때보다 많이 밝아져서 다행이야."


"정말 힘들었지만, 오빠가 내 잘못이 아니라고 격려해줬으니까 버틸 수 있었어."


우리는 정말 아쉬운 듯이 계속 얘기하다 감독관이 제지하자 그제야 헤어졌다.


"오빠 잘 지내"


"그래 너도"


여동생은 집으로 가면서 중얼거렸다.




"그래.. 내 잘못이 아니야.. 그 개새끼가 감히 우리 오빠한테 칼을 내민 게 잘못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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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 소설 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