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개이지 않아, 어둑하고 흐린 하늘 아래


안개 낀 숲 속에서 한 아이가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레기온..? 왜 이런데서 울고 있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나무에 기대어, 그 바스러지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건지.

"으읏..."

겁 먹은 신음과 함께 더욱 무게감을 실어, 자신의 몸을 껍데기 쪽으로 밀어 넣는다.



"괜찮아... 경계 할 거 없으니까."




◇◇◇



한 시간 전

 
나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숲속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었다.



호수가라서 그런지 자욱한 안개에 방향감각 마저 희미해져 버리는 열악한 환경은 하늘의 존재를 의심케 했고



한참을 방황하며 애먼 심장만 괴롭 힐 때 쯤 ㅡ


"흑흑...."

귓가에서 희미한 울음 소리가 들려왔었다.




"흑.. 흑...."


너무나도 서럽게 우는 소리에 마치 홀린듯 발걸음을 옮겨가자 그곳엔 한 여린 소녀가 다리를 끌어안으며 절망하고 있었으니

"저기.. 애야..?"

이슬비에 새침하게 젖은 옷깃과 비단 같은 은색의 긴 머릿결,

한참이나 울었는지 뺨은 부어올랐지만 그래도 미인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릴정도로 예쁘장한 소녀였다.

"괜찮니?"

성인이 조금 안되어 보이는 여린 존재가 간절하면서도 설움을 담아내어 울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가여운지...



"괜찮아? 이름이 어떻게 돼?"

그 불쌍함을 지나치지 못하여 어떨결에 이름을 물었던 것이었다.


◇◇◇



"저는 마을로 가지 못합니다..."

한 참을 울고나서야 대답을 들어준 그녀는 나지막히 말했다.

추위 탓인지 새하에 보이는 피부와 입술을 뚫고 서글픈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마을로 못 간다고?"

길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 일까.... 



"가는 길을 잃어버려서야?"


"아니에요... 저는 마을로 가는 길을 뚜렷히 알고 있어요..."

허나 레기온은 그런 조심스러운 물음에 고개를 휘저었다.


"그럼 몸이 다쳐서, 제대로 걸을 수 없는거야?"

그리하여 제차 다른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아니에요.. 저는 두 발로 똑바로 서서 걸을 수 있어요..."

이번에도 고개를 저으며 이유를 부정했다.

"그러면... 주위에 들짐승이라도 있어, 나아가기 두려운 거야?"

"그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짐승들이 저를 피해다녀요..."

그렇게 계속되는 부정에 이유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아...


"그렇다면 왜 이곳에서 계속 울기만 하는 거야...?"

직접 그 이유를 묻게되는데 ㅡ



"모든 마을 사람이 저를 원치 않고 또 혐오해요..."

"그렇기에 있을 자리가 없어, 이런 외딴 숲에서 울고 있었던 거에요.."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에 처음에는 내 귀가 잘못 들은 줄 알았었다.

"정말..?"

솔직히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봐도 레기온은 미인이다.

조금 나쁜 말일 수도 있지만.... 성격이 못되도 외모만 바쳐준다면 왠만해선 남자가 꼬인다는 말을 줄곧 들어왔다.

그런데... 외면을 받는 것도 아니고 아에 내쫒기는 신세가 되다니...

파면 팔수록 궁금증이 거대해져만 갔다.


"어째서 모든 사람들이 너를 외면하는데..?"

솟구치는 의문들과 출처가 불분명한 불안감을 꾹 누르며 계속 이유를 묻는데.


"마을 사람들은 저를 악령이라 불러요..."

그 갈라지는 목소리엔 원통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악령이라고?"


의미심장하게 말을 되새기자 그녀는 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손가락질하며 욕하고.."

"또 실존해선 안되는 인물이라며 존재의 가치를 부정해요...."

조금은 황당하게 받아들여지는 증언에 기가찼다.



"뭐? 진짜?!"

"네... 하지만... 또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서..."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 말들이 아닌가 싶었다.


또 얼마나 자존심이 꺾였으면 그렇게도 심한 말들을 수긍하려 하는건지...


"나쁜 사람들이네, 그렇다고 이런 음산한 곳에 내쫒기나 하고."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녀의 편을 들어준다.

"저.. 정말요..?"


그러자 레기온은 마치 어둑함 속에 한줄기의 빛읗 봐라번 것 마냥 표정이 밝아지며


"하지만 전..."

한편으론 자신이 이런 소릴 들어도 될까 싶을정도로 곤란해 하는 분위기에 ㅡ


"아냐, 아무리 그래도 마을 사람들이 너무 했어."


"그야 이리도 미인인 여자를 이렇게나 내쳐버리다니, 말도 안돼잖아?"


더욱 더 자신감을 내세워 그녀에게 보이는 모든 것을 칭찬해 주었다.



그런데...

"히끗..?!"



그래도 너무 지나친 것 일까? 
놀라다 못해 딱꿀질을 해버리며 눈을 휘둥그레 뜨지만


"제.. 제가 예쁘다니... 그런...!"

또 내심은 기쁜건지 앵두빛으로 물들여진 뺨을 감싸며 쑥쓰러워한다.


"아냐, 넌 충분히 아름다워."


다 큰 남자가 여린 소녀에게 하는 말 치곤 의미심장하다는걸 뒷 늦게 깨달았었지만....

다행히도 딱히 싫은 반응은 아닌 것 같아서 안도하게 된다.



"으으....."


곤란하면서도 화끈한 얼굴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좀 처럼 곤란한 모습이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고.. 고마워요... 오빠는 참 이상한 사람이네요..."

"모두가 저를 경멸하는데도 유일하게 저를 긍정해 주시니까..."

호의에 대한 감미로움에 빠져있으면서도 지금까지 받아온 차별들이 스쳐 지나갔는지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지금까지 많이 힘들었겠어..."


마치 버려진 아기 고양이 같은 모습에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게 된다.


"우아..?!?!"

그러자 많이 놀랐는지 되리어 이상한 신음마저 내뱉어 버리는데...

이런 행동은 너무 간건가..?


"헤헤... 오빠의 손은 다정하고 따듯하네요.... 이런 정을 느껴본지가 언제인지...."


하지만 그런 불안과는 달리 이내 생긋 웃는 모습에 안심하고 계속해서 머릿결을 쓸어넘긴다.


"레기온? 같이 마을로 가는게 어때?"


그 후 어느정도 분위기가 좋아지고 처음보다는 한껏 좋아진 모습에 같이 돌아가는 것이 어떻냐고 물어보았지만 ㅡ


"으읏.... 그래도 그건 안돼요... 저는 여기 있어도 괜찮으니까 오빠만 돌아가요."


그녀는 다시 어둑한 표정으로 괴롭게 고개를 휘저으며... 자신이 앉은 나무 아래를 택 했다.


"...."

그녀가 그렇게까지 원한다면 굳이 말리진 않겠다만...

"정말 그걸로 괜찮겠어?"

그래도 이대로 두고가기에는 영 마음이 시원치 않았다.

이렇게 연약해보이는 여자를 홀로 내버려둬도 괜찮은 걸까....

그야 이런 숲 속 한 가운데에 있는건 너무나 많은 위험에 노출 되어 있었기에 걱정이 되면서도


괜한 정의감이 마음을 부추겨 버렸다.




"하지만 너 같은 여린 소녀를 음산한 숲에 내버려 두는 것도 마음이 시원찮아서 말이지..."

그래서 결국 솔직한 감상을 털어놓는데...


"정그렇다면 레기온을 또 만나러 와주실 수 있나요?!"

"언제까지고 이 숲에서 오빠만을 기다릴게요."


그러자 차디찬 손이 내 손을 감싸더니 조금 엉뚱한 부탁을 건내온다.

"뭣?!"


그녀의 생뚱맞은 질문은 둘 째 치더라도... 상상이상으로 서늘한 그녀의 손에 놀라고 마는데.


정말로 산 자가 맞는걸까?



'내가 무슨 소릴...'

순간 그런 섬뜩한 상상마저 들게 되었지만 이내 애써 부정한다.


"아니 그러니까 나는... 레기온이 이 숲에 있으면 여러모로 위험 할 것 같아 걱정을 ㅡ"

그리고 또다시 레기온을 설득하려 했지만...

"그럼 매일 마다 저를 만나러와주세요...!"


"......"

애시당초 말이 통하지 않는 대화였다...

마치 평행선에 놓인 대상에게 말을 건내는 것만 같은 대화....


"그러니까 왜 결론이 그렇게 되는건데..."

"결국 오빠가 원하는건 저의 안부잖아요?"

"그러니 매일 제가 무사한다는걸 확인한다면 목적성이 어느정도 맞아 떨어지지 않나요?"


"......"

결과만 보자면 그럴진 몰라도 그 과정을 고려한다면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

"하아.."

이쯤되면 말이 통하지 않는 것 같아, 할 말 마저 잃어버리고 한숨만 나오게 된다.


"제발요... 이해 하기 어렵겠지만은 저에겐 이것이 최선이에요..."


태도를 보아하니... 이대로 계속 타일러봤자 평행선의 대화가 이어질게 뻔 했다.


그래서 결국...


"그래그래... 알았어."


마지못한 분위기라도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데.

"진짜요?! 약속이에요!"


그런 대답이라도 레기온은 마치 세상만물을 다 얻은 얼굴로 신나했다.

"헤헷..."

이게 그렇게도 좋은걸까..?




◇◇◇





"아, 오빠! 오늘도 레기온을 만나러 와준거야?"


이젠 그녀를 만나는 것이 익숙해져 버렸다.


"기뻐! 요즘에는 오빠가 언제오나 생각하면서 시간을 인내 한다니까?"


내가 나타나자 레기온은 기뻐하며 내게 안겨드는데.

"후훗~ 헤헤~"


애교를 부리는 그녀을 보자면 마치 오라비를 잘 따르는 여동생을 연상케 했다.


"오빠~"

팔짱을 끼며 자신의 얼굴을 비비고 

"좋은 냄새가 나~"

부끄럽게 시리 숨을 크게 들이키는 등 그녀만의 방식으로 애정을 표시한다.

그녀와 내가 지내는 시간은 대체적으로 비슷했다.

레기온의 어리광을 받아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것이 전체적인 흐름이었는데.

특히 그녀는 내게 강하게 매달려왔다.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오랜 시간이 되도록 애정이라는 단어를 잊어 살아오다보니 내게 필사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도 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다보면 가여움을 느끼면서도

"그나저나 레기온은 평소 어디에 몸을 숨기는거야?"

한편으론 궁금한 것도 있었다.


그야 아무리봐도 레기온은 무기력한 소녀로 밖에 보이지 않건만

어떤 위험이 존재할지 모르는 이 숲속에서 언제까지고 멀쩡히 나를 기다렸기 때문이었다.


"응? 그건 왜?"

또 그녀가 정말로 애정에 몰말라해서

죽을 정도로 외로웠다면 차라리 내려가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된다.


"그냥... 여러가지 생각이 들어서."


하지만 그녀는..



"비밀~"

별로 깊게 생각해본적이 없어서인지 아님 일부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항상 가볍게 넘겨 지었다.






"헤에~? 그래? 그럼.."

그래서 이번만만큼은 장난기가 발동해서 ㅡ


툭..


"응... 오빠..?"


"아~ 이제 마을로 가봐야지~"

짖궃은 연기를 해보기로 했다.


"왜... 벌써?"

"아~ 다름이 아니라 마을에 있는 여자 친구가 날 기다리고 있어서 말이지~"

"...!"

즉석해서 떠올린 시나리오였는데 상상이상으로 좋은 반응을 보여버린다.


진심으로 충격 받았다는 저 표정에 웃음이 흘러나오려하지만 꾹 참고 연기를 계속한다.

"오빠... 애인... 있었어...?"

"응! 얼마 안가 결혼도 할 거야! 그러면 아마 레기온을 앞으로 못 만날 수도 있어!"

"뭐...어..?!!"

너무나 웃긴 태도에 장난기가 더욱 돗아나게 되고..


"아, 빨리 가봐야겠다~"

"만약에 레기온도 마을로 따라온다면 새로운 애인이라 소개하면서 헤어져 줄 수도 있는데~"


누가봐도 티가 나는 말투에 순간 레기온을 너무 만만하게 본 건가 싶었지만...


"오빠...! 잠시만...!!"



끝까지 당황하는 모습이 그저 귀엽기만 했었다.





"안녕~ 레기온~"


뒤에서 들려오는 괴러운 비명에 드디어 입꼬리를 올리며 즐겁게 마을로 내려가는데.




















나는 그러면 안됐었다...


처음 레기온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에는 그게 그녀의 이름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 살려주세요!!"

"아.. 악령이다!!"

"사악한 영혼이 마을을 덮친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과


촤악!

쩌적..!


콰직콰직!

그저 움직이는 석상들 처럼 묵묵히 학살을 벌여가는 '그녀들'...




"아아... 사.. 살려.."

몸이 공포에 잠식되는 바람에 다리의 힘이 빠져버린다.

"난 이런걸 원하서 한게 ㅡ"


"오빠..."

"히이익?!"

서늘한 한 마디에 추잡한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오빠가 잘 못한 거에요."

"레기온은 그저 오빠만 있었으면 됐는데..."

"오빠가 용납 못할 장난을 쳐버려서 그런거에요."

여러 명의 '그녀'가 일제히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으으.. 아아....."


결국 극한의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어린애 처럼 속옷을 적셔버린다.



무섭다...



미치도록 무서워....


도망가야해..


살고 싶다면 도망쳐야해...!!




"이제 어디에도 못가요."

"이제 레기온(군단)이랑 영원히 함께 해요."

"오빠를 마음껏 사랑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녀는 나를 놓치지 않겠다는듯 각자의 욕망을 내뱉으며 나를 감싸 안는데.

"....."

정신이 현실을 거부하는 것일까...? 

의식이 점점 어두워져만 간다...


"살려.. 줘..."

간절히 소원을 내뱉지만 ㅡ



"오빠~"

"사랑해요♡"

"이제 레기온에게서 도망칠 수 없어요."


부질 없는 바람이라는듯 그녀의 입김과 동시에 의식을 놓치고 만다.





레기온=군단

성경에 나온 악령으로


예수가, "네 이름이 무엇이냐?" 라고 묻자 악령 들린 자가 대답하길, "제 이름은 군대(레기온)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라고 답했다.


이게 원래 낼려했던 작품인데

다른게 먼저 회로 돌아서 나중에 마무리함


악령 이야기니까 이번엔 대회 컨셉에 맞겠지..?



https://arca.live/b/yandere/56901236

이거 참고하고 만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