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저편. 


타인은 언제나 감각의 저편에서 살아간다.


공감이라는 방식으로 감각의 저편을 건너가보려 해도, 

결국 상대와 나는 맞닿을 수 없다. 


감각의 저편이란 그런 것이다. 


단순히 말해, 내가 느끼고 있는 고통과 

상대가 느끼는 고통의 크기가 같을거라는 보장도 없다.


내가 손을 베이고, 상대도 손을 베였어도, 

내가 느끼는 것과 상대가 느끼는 것은 같을거란 보장이 없다.


내가 공포를 느꼈어도,

다른 사람은 다른 감정을 느낄지 모른다.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이 여자도 그렇다. 


내 얼굴에 저 섬뜩한 눈을 들이대며, 

내 안을 꿰뚫어 보는 것 같다.


감각이라는 이름의 장벽이 한꺼풀 밀어내고 있음에도, 

그녀가 바라보는 눈빛은 내 감각의 저편을 들여다 보는 것 같다.


"떨고 있구나."


그 섬뜩한 검은 두 눈동자가 나의 눈을 깊게 들여다보며 말했다.


사방은 어둠에, 의자에 묶여 있고, 

눈 앞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가 서 있다. 


당연하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공포다.


"내가 예전에 그런 말을 들었어."

"타인은 감각의 저편에 있다고."

"그래서 무슨 수를 쓰든 상대를 이해할 수는 없다고."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어째서?


라고 생각하던 찰나, 

그녀의 매혹스럽지만 공포가 담긴 입이 열린다.


"근데, 난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해."

"난 이렇게 널 느낄 수 있는걸."


그녀의 손길이 나의 가슴팍을 한번 훑고 지나간다.


여전히 심연을 담아놓은 것 같은 두 눈동자는, 

나의 감각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손가락이 나의 목을 스윽 훑는다. 


목덜미에 깊은 소름이 돋아오르고, 

그녀가 내쉰 숨에 담긴 차가운 냉기가 나의 목에 닿았다.


"널 느끼고 싶어."


그녀의 눈동자가 날 깊게 바라보다, 

점점 그녀의 얼굴이 밀착해온다.


나의 얼굴 살갗에 그녀의 얼굴이 닿고, 

그녀의 차가운 혀가 나의 입술을 살짝 핥고 지나간다.


"어때? 내가 느껴져?"

"이런 방식으론 내 감각의 장벽 너머를 느낄 수 없겠지?"


그녀가 점점 몸 전체를 묶인 나에게 밀착해온다.


피부와 닿은 피부가, 정말 부드럽지만,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을 나의 살갗에 밀어넣는다.


무섭다. 


공감은 자신을 죽이는 의지다. 

나는 그녀를 공감하고 있다. 


강제로.


그녀가 내게 품어온 감정이 무엇인지 느껴진다.


녹았지만 굳은, 차갑지만 뜨거운, 강렬하지만 부드러운.


그런 감각이자 감정에 익숙해질수록, 

나의 감각은 서서히 죽어간다.


그녀도 알고 있다. 


이제 난 그녀의 목적을 알고 있다.


그녀는 날 죽이려 한다.

정신적인 죽음.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수 없는, 그런 개념의 죽음.


그녀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나의 얼굴을 다시 바라본다.


"이제 알았어?"


감각의 저편은 이제 나와 그녀에게 의미가 없어졌다.

그게 아니더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의미가 없어졌다.


차가웠던 살갗이 이젠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건 내 감각이 아니다.

이건, 그녀가 느끼고 있는 감각이다.


검은색의 옅은 두 눈동자를, 심연이 담긴 눈으로 바라본다.


이것은, 내 감각이 아니다.


차가운 손가락이, 따스한 가슴팍을 더듬는다.


이것 역시도 내 감각이 아니다.


손가락들이, 살을 헤집는다.


이건, 내 감각이다.


"내가 느껴져?"


이젠 알고 있다.


감각의 저편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