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야, 또 그 소리야?”

 

낮의 후덥지근한 열기가 남아있는 왁자지껄한 술자리에서 얀붕이의 친구들은 얀붕이를 질린 듯이 바라봤다.

 

“내 방 물건들의 위치가 바뀐다거나.. 없어지거나..”

 

“킥킥 야 그러니까 니 말은 집에 모르는 사람이나 귀신이 있다는거야?”

 

친구들은 벌게진 얼굴로 웃으면서 얀붕이를 바라봤다.

 

“뭐.. 그거까진 나도 모르겠는데..”

 

얀붕이도 자신있게 말하진 못했다. 

 

얀붕이 자기자신도 다른 친구가 자기 집에 모르는 사람이나 귀신이 있다 하면 코웃음치면서 믿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에게 일어나는일이 너무나 답답해했다.

 

“야, 그럼 니가 요새 건망증이 심해져서 물건 옮긴걸 까먹은거 아니야?”

 

“...”

 

확실히.. 그럴수도 있겠지만 얀붕이는 곰곰이 생각을 하자 그럴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왜냐면 어제 분명히 밥을 먹고 귀찮아 내일 설거지 할려고 그릇을 싱크대위에 올려놨는데 아침에 보니 설거지가 되어 있던걸 분명히 기억한다.

 

“그건..아닌거같은데..”

 

“야 가능성이 세 가지 중 하나인데 제일 가능성이 높은게 뭐냐? 1번. 귀신이 있다, 2번. 모르는 사람이 숨어 산다, 3번. 내가 건망증이 있다. 상식적으로 뭐겠냐?”

 

얀붕이는 친구들이 자기의 말을 믿어주지 않자 괜스리 짜증과 함께 친구들의 대한 실망감이 일어났다. 

 

“에이씨.. 술 맛 떨어지네.. 야 나, 간다!”

 

얀붕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를 도망치듯이 나가자 친구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야 야 쟤 잡아! 어디가!”

 

“야!! 돈은 내고가!!!!!!!!!!”

 

얀붕이는 뒤돌아 친구들을 보며 소리쳤다.

 

“좆까! 이병신들아!!”

 

얀붕이는 친구들을 향해 중지를 들며 그대로 뒷걸음질쳤다.

 

“하..씨.. 집에 가긴 싫은데..”

 

그렇게 술냄새 풍기는 밤골목을 미적거리면서 자기의 휴대폰을 들쳐보았다.

 

“하.. 새끼 누가 돈 안 보낸다고 지랄은..”

 

그렇게 말하며 친구에게 술값을 보낸 뒤 재워줄 사람 없나하며 카톡을 찾아보다가 한숨이 쉬어졌다.

 

“에휴.. 내가 이렇게 친구가 없었나.”

 

그러다 눈에 띈 이름

 

얀진이

 

“...”

 

말 없이 보다가 이내 마음을 정한 듯 택시를 불러 세웠다.

 

“택시!”

 

******

 

우중충 하지만 불빛은 켜져있는 빌라 앞

 

택시에서 내린 얀붕이는 우물쭈물 하며 유리문의 비밀번호를 치고 빌라안으로 들어갔다.

 

‘..여자가 혼자 자취하는 방에 재워달라 하면 걔가 날 어떻게 볼까..’

 

얀붕이는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그대로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탁..탁..

 

계단 올라가는 소리에 맞춰 규칙적으로 켜지는 복도의 전등

 

얀붕이가 사는 층에 도달하자 전등이 고장이 난건지 불이 안켜져 매우 어두웠다.

 

“하..씨.. 여긴 맨날 이런다니까 집주인한테 말해도 안고치네..”

 

얀붕이는 어쩔수없이 휴대폰을 들어 불빛을 앞세워서 자기집 현관을 찾아갔다.

 

삑삑..찰칵!

 

“...”

 

분명히 끄고 나왔지만 불이 켜져 있는 방안.

 

얀붕이는 신발을 휙 벗고 정리도 하지 않은채, 나갔을 때와 틀린 부분이 방안에 있나 확인을 했다.

 

“하.. 씨..”

 

부엌바닥엔 머그컵이 깨져 조각들을 흩뿌려져 있었다.

 

얀붕이는 빗자루를 가져와 조각들을 치우면서 주변을 훑어보았다.

 

‘오늘은.. 이거뿐인가..’

 

다행인지 아닌지 나갈때와 달라보이는 것은 불이 켜진것과 머그컵이 깨진 것 뿐이였다.

 

얀붕이는 취한탓인지 약간의 오한이 들었다.

 

“으.. 빨리 씻고 자야겠다..”

 

옷을 벗고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연채 따뜻한 물을 틀어 샤워를 시작했다.

 

‘귀신일리는 없고.. 진짜 여기 누가 사나? 아니면.. 친구들 말대로 건망증인가?’

 

끼익..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면서 샤워를 하다가 문이 살짝 닫히면서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으앗!”

 

차가움을 느낀 얀붕이는 수도꼭지를 온수로 틀지만 보일러가 고장난건지, 너무 온수쪽으로 많이 돌린 탓인지, 갑자기 뜨거운 물이 쏟아졌다.

 

“아 뜨거!”

 

얀붕이는 바로 물을 잠그고는 샤워를 마무리 했다.

 

“진짜 이 집 왜 이러냐.. 계약할땐 아무런 이상도 없었는데..”

 

돈만 모이면 바로 이사할 생각을 하며 화장실에서 나와 잠옷을 입고는 피곤한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무서우니 유튜브나 틀어놓고 자야겠다..”

 

얀붕이는 휴대폰에서 적당한 길이의 영상을 찾아 틀어놓으며 스르륵 잠이 들었다.

 

******

 

!@#$%^&

 

귀에선 잡음이 들려오고 몸은 움직여지지 않는다.

 

!@#$터벅%^&

 

잡음이 들려오는 가운데 무언가 소리가 들려온다.

 

불안감에 숨이 점점 가빠져만간다.

 

끼이익.. 끼이익..

 

집 근처 놀이터의 움직이는 녹슨 시소에서 귀를 긁는 소리가 들려온다.

 

똑.. 똑..

 

화장실의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귀를 때린다.

 

터벅.. 터벅..

 

점점 나에게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심장은 위협을 느껴 빠르게 뛰지만, 몸은 내 명령을 듣지 않는다.

 

제발.. 제발 일어나라.. 제발!

 

터벅..터벅..탁!

 

..나에게 다가오다가 멈춘것 같다.

 

탁.. 잘그락

 

나에게 다가오지 않고 내 물건을 만지는 소리에 한순간 안심이 되었지만, 이내 물건을 만지다가 다시 나에게로 다가온다.

 

터벅..터벅..탁!

 

...

 

지금.. 이 무언간 내옆에 있다.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아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

 

미칠거 같은 두려움에 이내 포기해 정신을 놔버렸다.

 

******

 

짹짹! 

 

아침 새소리가 집안의 창문을 때린다.

 

얀붕이는 멍하니 침대에 기대어 앉았다.

 

천천히 눈을 감아 어젯밤의 일을 생각해본다.

 

..기억나지않아

 

술을 많이 먹어서일까, 어젯 밤 친구들과 헤어진뒤 집에 온 뒤부터가 기억나지 않는다.

 

남아있는 것은 땀 흘린 침대와 무언가의 불쾌한 기억.

 

“하.. 목말라..”

 

얀붕이는 방을 나서 냉장고에 다가가 생수를 찾아 먹었다.

 

꿀꺽 꿀꺽

 

파하..

 

수분을 보충한뒤 생수를 다시 냉장고에 넣을려고 했지만, 냉장고 안엔 눈에 밟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숙취해소제

 

얀붕이는 자신이 사지 않은 숙취해소제를 발견하고 그대로 꺼내 탁자위에 올렸다.

 

냉장고의 냉기 때문일까, 아니면 기분탓일까, 얀붕이는 오한이 느껴져 닭살이 돋았다.

 

일단 휴대폰을 들어 자신의 카드사용내역을 확인하였다.

 

...

 

없다.

 

친구에게 돈을 보낸뒤 카드를 쓴 기록은 단 하나. 택시.

 

아무리 찾아봐도 심지어 이번달과 저번달의 기록을 살펴보면서 얻은 결론은 한가지였다.

 

난 숙취해소제를 산 적이 없다.

 

얀붕이는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소름을 느껴 잠옷을 입은 채 곧바로 옷과 지갑 휴대폰을 챙기고 그대로 집밖으로 튀어나갔다.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던 신발을 신고.

 

******

 

막상 나왔지만 갈곳이 없는 얀붕이는 일단 오늘 있는 강의를 위해 대학교로 갔다.

 

얀붕이는 대학교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는 강의실에 앉아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발.. 받아라.. 제발..’

 

어제 술을 먹었던 친구들은 술에 뻗은거 같아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

 

얀붕이가 탄식을 하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얀붕선배! 이시간에 웬일이세요?”

 

아침일찍 강의를 들으러 온 얀진이가 얀붕이를 발견하고 옆자리에 앉았다.

 

“아.. 얀진이니? 그게..”

 

얀붕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얀진이는 믿지 못하며 웃었다.

 

“아하하 그게 뭐에요 선배.”

 

“얀진아. 진짜라니까? 물건들이 사라졌다가 깨지거나 정리가 되어 있다니까?”

 

얀붕이는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거 같아서 절망했다.

 

“그럼 집에 카메라 설치해서 한번 보여줘요.”

 

“..!”

 

얀진이의 말에 얀붕이는 여태동안 생각하지 않은 뜻밖의 해결책이 나타났다.

 

“선배 집이 귀신들렸으면 유튜브에 올리고, 다른사람이 있으면 그대로 경찰에 신고하면 되죠.”

 

그렇게 말하면서 얀붕이와 얀진이는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내자, 얀붕이의 어제 술을 먹었던 친구 중 하나가 강의가 시작될 시간에 간신히 맞춰 나타나 말을 걸었다.

 

“안녕! 얀진아”

 

“안녕하세요..”

 

얀진이는 살짝 기분나쁜 어조로 말하며 뒷자리로 갔다.

 

“야 어젠 괜찮았냐?”

 

“아니. 어제도 집에서 컵이 깨져있었어.”

 

“또 그 소리다. 어제 술취해서 니가 물 먹다가 떨어져서 깨진걸 기억 못하는거 아니야?”

 

“아니야.. 분명히 내가 사지 않은 숙취해소제가 집에 있었어. 카드 내역도 다 살펴본걸.”

 

“야, 그거 니가 가다가 현금으로 산거 아니냐? 취해서 그것도 기억을 못하는거지.”

 

“...”

 

얀붕이는 침묵했다.

 

아직도 날 안믿어준 친구때문인것도 있지만, 정말 어제일은 기억이 안났기 때문이다.

 

“됐어 집에 카메라나 설치하게. 그거보면 이제 좀 답이 나오겠지.”

 

“그래. 그래라 좋네 그거.”

 

친구가 그렇게 말하자 곧이어 강의가 시작됐다.

 

******

 

강의가 끝나자 곧바로 편의점으로 달려가는 얀붕이를 친구가 불렀다.

 

“야! 김얀붕 잠깐만!”

 

“왜!”

 

얀붕이는 가다가 멈춰서서 친구에게 다가갔다.

 

“야.. 그..”

 

친구가 말하는 것을 머뭇거리자 얀붕이는 곧바로 뒤돌아섰다.

 

“야 안말할거면 간다.”

 

“야야 잠깐만 기다려봐, 말할게.”

 

“얀순이 실종된거 아냐?”

 

“뭐?”

 

얀붕이는 그 말을 듣자 바로 당황했다.

 

“얀순이 자퇴했잖아. 그리고 소식 끊겼잖아.”

 

“그치, 근데 실종되고 나서 경찰들이 얀순이 집에 왔다갔나봐.”

 

“그래서?”

 

얀붕이는 나와는 관계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서 얀순이 방안에 살펴보니 니 사진이랑 이름이 좀 나왔데.”

 

“...”

 

“그래서 뭐 아는거 있으면 경찰한테 연락하라고 알려준거다.”

 

“..고맙다.”

 

얀붕이는 찜찜한 기분을 느끼며 뒤돌려던 찰나 친구가 어깨를 잡았다.

 

“야.. 그.. 1학년때 너랑 얀순이가 사겼다가 갑자기 얀순이 자퇴했잖아.. 혹시 넌 뭔가 아나 싶어서.. 물어봤어”

 

“..나도 몰라 갑자기 헤어지고.. 그리고 소식 끊기고..”

 

“..알았다 잘가라.”

 

“응”

 

얀붕이는 여름의 높은 습도 때문에 불쾌한 땀이 나오면서 편의점으로 걸어갔다.

 

******

 

편의점에서 문제의 해결책을 구했지만, 영 기분이 찜찜했다.

 

얀순이의 실종, 집의 이상현상

 

얀붕이는 무어라 말 못할 기분과 함께 다신 그 집으로 가기 싫었지만,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었다. 

 

흔한 매미 소리 한 점 들리지 않는 거리

 

뜨거운 햇살이 하늘을 가로지르는데도 불구하고, 빌라는 내려앉은 분위기를 띠었다.

 

삑삑..스르륵!

 

유리문이 열리자 안에서 서늘한 냉기가 몰려왔다.

 

탁! 탁! 탁!

 

계단에서 발을 떼면서 나오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후우..”

 

얀붕이는 철제 현관문 앞에서자 어제 있었던 일 때문인지 어깨가 무거워 졌다.

 

그러나 마음을 이내 다 잡고 비밀전호를 이내 쳐 넣었다.

 

‘..이번 한번만..’

 

삑삑..철컥!

 

문이 열리자 곧 방안의 전경이 눈으로 들어왔다.

 

고요하고 아침과 다를게 없어보이는 방안.

 

얀붕이는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

 

슥 둘러보다가 특별히 없어지거나 이동된 물건이 없다는걸 확인하곤 편의점에서 사온 캠코더들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화장실, 안방, 거실, 주방 

 

곳곳에 설치하던 도중에 탁자위에 올려둔 숙취해소제를 발견했다.

 

“..”

 

얀붕이는 들고 바라보다 께름직해 방 한구석에 쳐박았다.

 

이제 모든 캠코더의 녹화버튼을 누르고, 한시도 집에 있기 싫어 집앞 거리로 나왔다.

 

그러자 얀진이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선배!”

 

“얀진아! 여기 어떻게 알고 온거야?”

 

“선배 친구가 알려줬죠! 그리고 아까 선배의 말도 안되는 소리가 살짝 걱정되기도 하고..”

 

“..진짜라니까..”

 

얀붕이는 얀진이도 자기 말을 안믿어주자 내심 섭섭해했다.

 

“아. 알았어요! 믿을테니까 그럼 일단 더우니까 근처 카페로 가요!”

 

“응? 내가 왜? 너랑?”

 

“아.. 아오..! 이 눈치없는.. 제가 살테니깐 그냥 따라와요..!”

 

얀진이는 그렇게 말하며 뒤로 돌아 카페로 안내했다.

 

‘..애가 더위를 먹었나.. 아까 보니 얼굴도 빨갛더만.. 뭐 근데 할 것도 없으니 따라갈까.’

 

그렇게 생각하며 얀붕이는 앞에 가는 얀진이의 옆으로 가 발을 맞춰 걸었다.

 

“..근처에 맛있는 커피집이 있어?”

 

“..풋! 커피집이라니.. 카페에요. 이 아저씨야. 카페라떼를 맛있게 하는 곳을 알고 있으니까 거기로 가요!”

 

얀붕이는 아저씨란 말에 정곡이 찔려 말을 잇지 못했다.

 

여름이였다.

 

******

 

쭙쭙

 

카페라떼를 마시고 있는 얀진이를 보고 있자니 강아지 한 마리가 물을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얀진아 더운데 왜 따뜻한 카페라떼를 시킨거야?”

 

얀붕이 손에 들고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대비되게 뜨거운 카페라떼를 마시고 있었다.

 

“..카페라떼는 뜨거워야 유지방과 커피가 잘 섞여서 맛있거든요! 그런 맹물에 커피 탄 아메리카노완 다르게 말이죠!”

 

“..”

 

얀붕이는 그런 얀진이를 보며 아메리카노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와 동시에 얀진이도 마지막 한 모금을 입 안에 넣었다.

 

“..그럼 이제 영화보러 가요! 마침 받은 영화표가 두 장 있어서요!”

 

“그래 뭐.. 할 것도 없으니 그러자.”

 

카페로 나온 얀붕이와 얀진이는 영화관으로 향했다.

 

‘이거.. 이 순서면 밥도 같이 먹겠는데... 이러면 데이트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며 얀붕이는 영화관에 먼저 들어간 얀진이를 따라 갔다.

 

“흠..흠! 팝콘이랑 콜라도 사야되니까.. 무슨맛으로 할레요? 팝콘은?”

 

“음.. 캬라멜로 할게.”

 

“알았어요!”

 

얀진이는 팝콘과 콜라를 양손에 들고 왔다.

 

“들어가요! 선배!”

 

“알았어.”

 

얀붕이와 얀진이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자리를 찾아 갔다.

 

그리고 팝콘을 자리 중간에 놓았다.

 

“..얀진아 왜 커플석이야? 그리고 팝콘도 하나고..”

 

“그..친구가 커플석 자리를 줘서.. 그리고 팝콘은.. 그냥 먹어요!”

 

“..알았어.”

 

곧이어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됐다.

 

얀붕이가 팝콘을 먹으러 팔을 뻗자 얀진이도 팝콘을 먹으려고 손을 뻗어 팝콘통 안에서 손끼리 부딪혔다.

 

“아.. 얀진아.. 미안”

 

“아! 그.. 괜찮아요, 선배”

 

둘이 조용한 목소리로 소곤소곤 말하였다.

 

******

 

“아! 재밌었어요? 선배? 저는 엄청 재밌던데.”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며 불이 켜지자, 얀진이는 옆자리에 앉아있는 얀붕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응 재밌었네."

 

“정말요! 엄청 재밌었어요!”

 

얀붕이와 얀진이는 영화관에서 서서히 어두워 지고 있는 거리로 나왔다.

 

“음..그럼 슬슬 여기서 헤어..”

 

“안돼요! 여기까지 왔으면! 밥도 먹고가야죠!”

 

얀진이가 얀붕이가 하려던 말을 눈치채고 칼로 절단하듯 말을 잘랐다.

 

“음.. 역시 그 순서려나.. 알았어 커피랑 영화도 사줬으니 이번엔 내가 살게.”

 

“오예! 그럼 저기 곱창집가요!”

 

 곱창집에 들어가자 구수한 고깃내가 퍼졌다.

 

“이모! 곱창 3인분! 그리고 맥주 두 병!”

 

얀진이가 능숙하게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얀붕이는 자연스럽게 수저와 물컵을 준비했다.

 

곧이어 곱창과 술이 나오자 얀진이는 여러차례 해본 듯 집게를 들고 곱창을 불판에 올리기 시작했다.

 

치이익

 

달궈진 불판에 고기가 닿자 새하얀 연기가 피어 올랐다.

 

“얀진아 너 여기 자주 와봤니?”

 

“네! 스트레스 받으면 혼자 와서 좀 먹고 가요!”

 

그리고 얀진이는 잔에 맥주를 따라 얀붕이에게 건네줬다.

 

“선배 짠!”

 

“짠”

 

쨍! 하는 경쾌한 소리가 술집에 울려퍼졌다.

 

******

 

“그으뤠서 선배! 딸꾹! 왤케 요즘 학교를 딸꾹! 안와요?”

 

얀진이는 술에 취해 발음이 늘어지면서 물어봤다.

 

“말했잖아.. 히끅! 요즘 집에..히끅!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니까..”

 

“킥킥.. 그거 설마 실종된 얀순 선배 아닐까요?”

 

흠칫

 

알코올 때문에 달아올랐던 몸이 그소리를 듣자 차가워진다.

 

“마침 얀순 선배 실종됐다던 날짜랑 선배 학교 안나오는 날짜랑 비슷하기도 하고..”

 

“야..얀진아 너 좀 취한거같아. 그만 일어나자.”

 

“아. 알았어요. 선배.. 농담이에요 넝담~”

 

얀진이는 가볍게 말한 것 같았지만 얀붕이는 그 말이 농담같지가 않았다.

 

“..얀진아. 아무리 그래도 실종된 사람으로 그런 말을 하면 안되는거야..”

 

“아 왜요~ 얀순 선배 소문 들어 봤는데 1학년때부터 선배 집착하면서 가스라이팅 했다메요?”

 

“..얀진아. 이 얘긴 그만..”

 

얀붕이는 얀순이를 주제로 얘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얀진이는 그것도 모른채 술에 취해서 얀순이를 깍아내리기 바빳다.

 

“선배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얀순 선배 그리워 하는거에요?”

 

“얀진아.”

 

“그러지말고 저한테 와요. 저 사실 선배 좋아..”

 

“김얀진!”

 

한순간에 술집이 전부 조용해졌다.

 

얀진이도 얀붕이의 외침에 정신을 차렸다.

 

“..얀진아 너 오늘 너무 취한것같아. 오늘 한 말은 잊을테니 일단 일어나고 다음에 보자.”

 

“..네 죄송해요..”

 

얀붕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카드를 계산하고 가게를 나오자 곧이어 얀진이도 따라나왔다.

 

“선배 죄송해요..”

 

얀진이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얀진아 택시 불러줄테니까 그거 타고 집에가. 오늘은 고마웠어.”

 

“..네”

 

얀붕이가 택시를 부르자 곧바로 택시가 나타났다.

 

그리고 얀진이가 차에 타자 얀붕이가 작별인사를 건넸다.

 

“잘가. 얀진아.. 괜찮으니깐 너무 울상짓진 말고..”

 

“..네 흐윽..”

 

얀진이는 금방이라도 울것같이 눈물을 참으면서 말했다.

 

“나중에보자, 얀진아!”

 

그렇게 말하며 차문을 닫자 이내 택시가 출발하였다.

 

“후우.. 집엔 또 어떻게 가냐.”

 

“..그래도 뭐라도 찍혀있겠지.”

 

비틀비틀 집으로 향하는 길에 지친 듯 걸어가는 얀붕이였다.

 

******

 

툭..툭..

 

밤거리에 하나둘 떨어지던 빗방울은 어느새 폭우를 이루고 땅바닥을 때리고 있었다.

 

“하.. 씨 이게 뭔 난리냐.. 갑자기 일기예보에도 없던 비가 내리네.”

 

찰박. 찰박.

 

얀붕이는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면서 집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집에 다다르자 얀붕이는 빠르게 유리문에 비밀번호를 넣었다.

 

스르륵..

 

유리문이 열리자 얀붕이는 빨리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하..씨 추워..”

 

물에 젖은 생쥐꼴인 얀붕이는 천천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터벅. 터벅.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에 젖었던 바지에서 빗물이 흘러 내렸다.

 

탁. 탁.

 

얀붕이의 움직임에 따라 전등이 켜진다.

 

얀붕이는 드디어 자기가 사는 층에 도달했지만, 여전히 전등은 고치지 않아 복도가 매우 어두웠다.

 

“...”

 

투둑투둑

 

세찬 비가 건물을 때리는 소리가 안쪽까지 울린다.

 

꿀꺽

 

얀붕이는 휴대폰을 들고 라이트를 켜 자기 불빛을 의지해 복도를 걷는다.

 

드디어 큰 철제현관문에 다다르자, 비밀번호를 치고 차가운 손잡이를 잡아 문을 열었다.

 

끼이익

 

방안은 불이 꺼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얀붕이가 문을 닫고 현관으로 오면서 방안을 비춰봤더니, 방안에선 물건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이고, 깨져있어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를 연상케 했다.

 

그러면서 얀붕이는 전등 스위치를 눌렀지만, 여전히 전등은 켜지지 않아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정전.. 인가”

 

“..카메라만 가지고 나가자.. 빨리..”

 

얀붕이는 바닥에 어지럽혀 있는 물건들 사이로 발을 넣어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얀붕이는 일단 거실에 있는 카메라부터 찾기 시작했다.

 

한걸음. 두걸음 천천히 발을 내딛으면서 카메라를 설치한 곳으로 갔지만,

 

없다.

 

카메라가 없다.

 

“..어라? 그게..왜 없지..?”

 

얀붕이는 적잖이 당황했다. 주위를 살펴봐도 깨진접시나 그릇뿐 카메라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침의 숙취해소제 만큼은 안 깨지고 구석에 쳐박아 둔 곳 그대로 있었다.

 

...얀붕이의 직감이 여기서 나가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얀붕이는 어떻게든 카메라를 찾으면 이 현상의 원인을 밝혀질 수 있다라는 유혹이 찾아왔다.

 

“..씨발.”

 

..얀붕이는 곧 몸을 돌려 카메라를 설치한 또 다른 장소인 화장실로 갔다.

 

한발. 한발. 옮길때마다 척추에선 소름이 올라오고 있었다.

 

끼이익

 

화장실의 문을 열고 휴대폰을 비추자 깨진 세면대와 변기뿐,

 

없다.

 

역시 카메라는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바로 뒤돌아 카메라를 설치한 주방으로 뛰었다.

 

잘그락. 잘그락.

 

바닥에 작은 조각들이 밟히는 소리를 무시하고 뛰면서 주방으로 향했지만,

 

없다.

 

깨진 유리컵들과 접시, 냉장고에 있던 음식들만이 널부러져 있었다.

 

...이러면 남은건 안방에 설치한 카메라뿐.

 

“..씨발! 씨발!!”

 

얀붕이는 미친사람처럼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무언가에 홀린것같이 안방으로 향했다.

 

끼이익

 

안방문을 열자 차가운 한기가 느껴지고, 닭살이 곤두섰다.

 

하지만 얀붕이는 눈에 뵈는 것 없이 다급하게 침대 주변에 설치한 카메라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없다.

 

카메라가 모두 사라졌다는걸 확인한 순간,

 

번쩍!

 

창문엔 벼락이 치고 곧이어 굉음이 울렸다.

 

쾅!!

 

얀붕이는 반사적으로 집을 빠져나갈려고 뒤돌아 안방문을 봤다.

 

그러나 문은 닫혀있었다.

 

그리고 어떤 여자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문앞에 서있었다.

 

얀붕이는 여자 형체를 한 ‘무언가’를 보자 발끝에서부터 두려움이 올라왔다.

 

“서..설마 얀순이니?”

 

얀붕이를 바라보고 있는 ‘무언가’는 자기를 알아봐줘서 기쁘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미..미안해 내가 그땐 너무 힘들어서..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그러자 갑자기 ‘무언가’가 달려와 얀붕이의 목을 잡아 조르기 시작했다.

 

“컥..야..얀순 미..미아..미아...”

 

바깥에선 세찬비와 강풍이 불어오면서 창문이 들썩거렸다.

 

그리고 곧이어 또다시 번개가 치자, 침대에 깔려있는 얀붕이는 번개의 빛으로 인해 ‘무언가’의 표정을 눈으로 봤다.

 

‘무언가’는 입이 찢어지게 웃고있었다.

 

거기서 얀붕이의 의식은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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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붕이집의 얀순이는 귀신일까? 사람일까? 아니면 이 모든게 얀붕이의 망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