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습한 밤이었다


아침에 시작된 폭우는 끈질기게도 밤까지 계속되어 환한 가로등 사이로 빗발치고 있었다


그는 하늘에서 떨어진 빗물이 하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창문 너머로 지켜보면서 크게 하품했다


장마철과 함께 시작된 그의 불면증도 벌써 일주일째그는 핏발이  눈을 깜빡이며 무거운 몸을 침대로 움직였다


날씨가 더운 탓인지 목에 있던 염증이 재발한  같았다그는 목을 벅벅 긁다가 피가 새어 나오는 것을 보고 짜증스럽게 손을 내렸다.


현재 시각은 새벽 3 23그는 3시간이라도 제대로 수면을 취할  있기를 빌며 눈을 감았다.





.   .   .






어딘가 막힌  탁한 기침만을 콜록거리던 에어컨은 탈진해 멈춰버렸다


사라진 에어컨의 존재를 메우려는 듯이유난히도 덥고 습한 공기는 슬그머니 그의 전신을 침범해 그는 땀으로 축축해진 침대에서 선잠을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온통 검은  안에서는 시계 초침 소리와 빗물이 창에 부딪히는 소리그리고 그의 숨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고있었다.



째깍


째깍


째깍


투둑


투둑






꿈속의 이상하리만치 비현실적인 풍경과 땀범벅이  침대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신 사이를 비집고 들리는 빗소리와 끊임없이 반복되는 시계 소리는 그의 현실감각을 마비시켰다.


암전하는 창문 너머 보이는 진창 아래에서 그는 어느 순간부터 그가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몽롱한 상태에 접어들었다


벽과 시계가 일렁이면서 겹쳐지고그의 머리 위로 시리도록 차가운 비가 쏟아졌다가로등의 붉은 빛이 그를 환하게 비추었다그의 머리 위로 검붉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졌다어느새 방안을 가득 채운 빗물은 침대 위로 차오르기 시작했다온몸을 덮치는 오한에 그는 몸을 웅크렸지만빗물은 어느새 그의 목까지 차올랐다그는 소리를 질렀지만누구도 듣지않았다빗물은 계속해서 떨어져 그의 머리까지 차올랐다그는 숨을 쉬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보았지만방의 천장까지 침범한 빗물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너무나도 붉고 밝은 빗물 속에서 그는 덜덜 떨며 필사적으로 숨을참았다하지만 빗물은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그의 코와 입을 통해 짓쳐들어오기 시작했다질식당하는  끔찍한 기분에그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밖에서는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투둑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그는 눈을 떴다



새벽인가.


그렇게 생각하며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전에   탓인지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는 비몽사몽인 정신과 무거운 머리를 들고 창문을 보았다.


푸르스름한 빛이 어스름히 방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그의 옆에는 어느 여자가 앉아있었다.



“......“



검은 머리에 검은 대리석같이 하얀 피부는 새벽녘의 빛과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가 그녀를 바라보자그녀도 그를 바라보았다.


분명 모르는 얼굴인데기묘하게도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혹시 누구..”



하지만 그녀는 그의 말을 손을 들어서 막고는미소 지었다그러고는 입술을 달싹였다.





“......”



“......






 한마디를 끝으로 그의 정신은 암전되었다.




.   .   . 




그는 눈을 떴다


흐린 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는 무심코 침대 옆자리를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어질러진 침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왠지 모르게 개운한 기분을 느끼며그는 외출을 준비했다.


밖에는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   .   .




 이후로 며칠 동안그녀는 그의 꿈에 등장했다첫날과 다르게그녀는 그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그가 어떤 질문을해도 그녀는 가만히 웃기만 했다.


밤이 되자그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침대에 누웠다 여자의 미소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시 그녀를   있을까 궁금해하면서그는 눈을 감았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와 시곗바늘 소리에 그의 정신은 혼탁해져 다시 한번 그는 잠에 빠져들었다.












어두운 거리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노란빛의 가로등만이 형형히 빛나며 잿빛의 아스팔트와  위로 내리는 빗물에 노란색을 덧씌우고 있었다그는 아스팔트 위에 맨발로  있었다.

우산을 쓰지 않은 탓인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에  젖어 있었다


오른손에 잡히는 물체의 감각에 그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손잡이의 식칼이 보였다 식칼에선 붉은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당황하여 식칼을 떨어뜨렸다오른손은 붉은 액체로 흥건했다그는 내리는 빗물로 손을 씻어내려 했지만액체는 씻겨지지 않고 왼손에 묻어났다그의 코와 눈에서 따뜻하고 끈적한 감각이 느껴졌다그는 손을 눈가에 가져다 대었다.

눈에서는 붉은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목의 상처를 긁었다 위로 붉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그는 소리를 질렀다너무나도 역겨웠다 액체가그리고무언가가


어느새 그의 입에서도 붉은 액체가 역류해 쏟아지고 있었다그는 경기를 일으키며 온몸을 비틀었다숨을   없었다가로등이아스팔트가그의 손이 붉게 물들었다새빨간 빗물이 그의 몸을 때리면서 흘러내렸다.


그가   있는 일은 없었다


 세상이 붉게 물드는 것을 느끼며그는 눈을 감았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는 어둡고 습한 공간에서 눈을 떴다


그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확인하려 하자 금속성의 물체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아래를 보니그의 목에 둘린 목줄과 목줄에 연결된  쇠사슬이 보였다.



너무나도 목이 마르고 허기져서그는 옅은 신음을 내었다


그의 앞에는 누군가  있었다


하얀 얼굴에 검은 머리카락검은 



그녀다



흐릿한 얼굴의  여자는 그에게 무언가 말했다.




“...“




......하지? “




”.........




그는 땀에 번들거리는 얼굴로 그녀의 손을 핥았다그녀에게 칭얼대고 추하게 자비를 빌었다벌벌 떨면서 조아리고 그녀의 발에 얼굴을 부비며 아양을 떨었다뜻도 모르는 말을  번씩 미친 듯이 반복하고  반복했다


그녀는 그에게  맞췄다.


목줄에 연결된 쇠사슬에서 금속성의 마찰음이 울렸다.



















그는 눈을 떴다.


창문 밖에서는 여전히 지긋지긋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목이 극심하게 간지러웠다.


 




.   .   .



그날 그는 침대에 누워 지난밤 그가  꿈들에 관해 생각했다


너무나도 이상한 일이었다그는  이런 꿈을 꾸는 것이며그녀는 누구인가?


꿈속에 나왔던 거리 역시 그녀처럼 어딘가 익숙했다하지만  느낌의 근원이 되는 기억을 떠올리려 해도 어딘가 막힌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꿈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왜인지 모를 두려움을 느끼며 그는 서서히 잠에 들었다.















그의 옆자리에는 그녀가 앉아있었다눈부시도록 아름답게 웃으면서.


하지만 그는 그녀의 미소가 처음처럼 기껍지 않았다.


그녀는 누구인가 그의 꿈에 나타나는가


모든 것이 의문스러웠고혼란스러웠다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소리쳤다.



당신 뭐야  꿈에 나타나는 거지 피는 뭐고 나에게 그런 짓을 하는 거야



나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나에게  그러는 거야!“





그녀는 그저 웃고 있었다


변함없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그를 조롱하는  같았다그의 불안감은 어느새 두려움으로 변해 그는 다시 악에 받쳐 말을 토해냈다.




 뭐냐고!! 말해!“






그녀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웃음은 계속해서 커져 어느새 그녀는 거의 폭소하고 있었다이상한 쇳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고그녀의 몸은 기괴하게 비틀렸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었다그가 원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그는 아연실색하며 침대에서 뛰어내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문밖에는 온통 비가 내리고 있었다빗물과 가로등 사이를그는 미친 듯이 질주했다그는 팔과 다리가  이상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달렸다.






 거리였다지난밤 그가 칼을 떨어뜨린 익숙한 거리가 그를 비웃듯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앞에익숙한 인영이 빗물을 맞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 머리에 새까만 .


그녀다.




그녀는  발자국씩 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그녀의 새하얀 피부 위로 새빨간 빗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도망치려 했으나공포에 질린 몸은 그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그는 그저 그녀를 바라보는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덜덜 떨리는  위로 눈물이  오듯 떨어졌다



새빨간 비가 그녀의 눈에서 흘러나왔다.  


그녀의 입이 귀에 닿을  찢어지며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어느새 그의 앞에  그녀는 그의 얼굴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그와 눈을 맞추었다그의 눈물과 콧물이 그녀의 손에서 흘러내리는 검붉은 액체와 만나 붉게 변했다.




그녀는 말했다.





아직도 기억나지 않는 거야자기가  저질렀는지도 모르고개새끼처럼 도망만 치는 꼴이라니.





...정말 기억나지 않아



네가  죽였잖아.


비오는 밤에목줄을 풀고  배를 칼로 쑤셨잖아


 자리에서 흘러나온  창자를 보고 비명을 질렀잖아


쓰러지는 나를 버리고 도망쳤잖아.“




그녀의 검디검은 눈동자는 창문 너머의 어둠처럼 새까맣게 타올랐다




그거 알아 새까만 곳에 던져지고 나서도   계속해서 생각했어기억이 희미해질  같으면  상처를 안쪽까지도 헤집으면서  칼이  물렁한 몸속으로 들어오던 순간을 떠올렸어너는  모든 것이니까네가 없는 곳은 어디든 의미가 없으니까




나의 작은 .



귀여운 살인마



나의 모든 .




하지만 이제  괜찮아여긴 우리 둘뿐이니까다시 사랑할  있어처음부터 시작하는거야네가  이상 도망칠  없게너도  사랑하게 만들어 버릴거야


영원히영원히 나의 곁에 있어줘.




.... 사랑해.”









그녀의 손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변함과 동시에그는  안쪽으로 무언가 들어오는 듯한 섬뜩한 감각을 느낀다그의 복부에서피가 흘러나온다상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피를 토해내어 그와 그녀가 기괴한 모습으로 엉킨 자리에 붉은 웅덩이를 만든다.



그녀는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진득한 핏물이 묻어난다.





사랑해




사랑해




영원히.




그녀는 그에게 입을 맞춘다 사람의 혀가 끈적하게 섞인다비릿한 피가 입에서 흘러나온다.












.   .   .













그는 눈을 뜬다.


밝은 빛이 창문 위로 하얗게 퍼진다.



파란 하늘 위로  한두마리가 지저귀며 날아가고 있다.


그는 가려움이 가신 목을 만지면서 옆자리를 본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새까만 눈을 빛내며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그에게 미소짓는다.



 이상 비는 내리지 않는다.



그는 그녀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