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으로 조져버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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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아내가 있었다.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소중했고, 소중히 하려고 생각했던 존재가 있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이웃하며 살던 우리는 초,중,고를 모두 같은 곳으로 다녔었다.


그러다 수능이 끝나고 너와 내가 다른 대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을때, 서로 호감이 있으면서도 드러내지 못하고 속만 삭히고 있었는데


나를 공원으로 불러낸 아내가 먼저 나에게 고백했다.


나 역시도 그녀를 좋아했으니까 당연히 허락했고, 그렇게 수줍게 웃는 너의 모습을 보면 너무 행복했다.




 대학교를 서로 다른 곳으로 갔다고는 하지만, 둘 다 집에서 가까운 대학교로 갔기 때문에, 하교하고 나선 너의 집으로 가는게 당연했다.


이렇게 동거와도 같은 생활을 계속하다보니, 너의 점 갯수가 몇개인지도 다 알게 된 나로써는 취직을 하게 된 시점부터 너와의 결혼을 생각했고,


준비를 마친 2년 뒤, 너에게 프로포즈했다. 흔했지만 촛불을 열심히 세팅한 나의 노력에 너는 눈물을 흘리며 받아주었고, 그로부터 반년뒤,


우린 부부가 되었다. 너무 행복한 결혼 생활이었다. 힘든 회사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사랑스럽게 맞아주는 네가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근데 너는 이 생활에 어딘가 불편한 점이 있었던걸까. 어느 순간부터 나를 피하기 시작했었다. 집에 들어와도 없는 날도 많았고,


집에 있어도 별로 나는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엔 그냥 내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너는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불편해 하는 눈치를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좋아하던 긴 생머리를 자르고 갈색으로 염색했다.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건지 싶어 물어보았지만 너는 그냥 아무 의미도 없다고 하였다.




 어느 날, 너 몰래 일찍 퇴근해서 집에 온 날이 있었다. 현관문이 열려있어서 강도라도 당했나싶은 생각이 들었었는데,


차라리 강도를 당했으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는 충격적인 광경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그 사람은 아무 사이 아니라더니,


결국 그 수영 강사랑 교성을 지르는 너의 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부족해서 그런게 아니었구나.


그냥 니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로 떠났으니까 나에게 상대적으로 부족한 모습을 많이 보였던거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냥 들이쳤다. 당황해하는 너랑 그 수영 강사. 별로 오래 보고 싶진 않아서 그 수영 강사는 위자료를 받기 위해 번호만 받아냈다.


너는 그새 태도를 바꿔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더라. 그래서 뭐 어쩔거냐고, 니가 부족해서 자기가 이러는거 아니냐는 너의 말을 듣고 나서


너에게 나는 아무 것도 아니게 되어버렸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걸로 말싸움을 오래해봤자 나만 피곤하고 나만 상처받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혼하자고 면전에 대고 말했다. 조금 당황한 티를 내보이는 너. 하지만 이내 받아들이는 너를 보며 다신 만날 일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순조롭게 이혼은 진행되었다. 우리 사이에 아이는 아직 없었으니까, 그래도 그냥 생각나는건 너희 아버지랑 어머니에게 죄송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사랑해주고 행복해주겠다고 했는데, 아저씨랑 아주머니께는 죄송한 생각밖에 안들었다. 오히려 그 분들은 본인들의 딸을 원망해주었다.


우리 가족은 다 내 편을 들어주었다. 별로 가족에게 무심하게 대했던 나지만, 그 날 이후부터는 가족들에게 좀 더 헌신적이 되었다.




 그렇게 너와 이혼하고 3년 뒤, 반년 전부터 사귀게 된 의사랑 결혼하게 되었다. 두 번째 결혼이 될거라고 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아했다.


오히려 나를 버렸던 너에게 감사하면서 나와 그녀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하였다.


그 점에 한 번 더 반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이 여자와 함께 자라왔었다면, 그렇게 너와 만난 것조차 경멸하는 나날들이었다.


우리는 아이를 낳고 잘 키우며 생활했고, 중소기업에 다니는 나는 벌이가 그렇게 시원하지 못했지만, 


의사인 그녀는 벌이가 엄청났기 때문에 그렇게 허리띠를 졸라가며 생활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재혼한지 5년 뒤, 어느 날 네가 나를 찾아왔다. 


나랑 결혼했을 때처럼 내가 좋아하던 긴 생머리를 한 상태로 문 앞에 서있는 너를 보고 귀신이라도 본 것 같았다.


하지만 움직이는 너를 보면서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제와서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너는 우리 관계를 다시 시작하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아니, 빌었다. 


자기가 너무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느니, 나를 너무 가볍게만 생각했다느니,


결국 본인을 그렇게 사랑해줄만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느니, 하는 역겨운 소리만 꺼냈다.


이제와서 뭘 어쩌라는건지, 나는 재결합 의사는 전혀 없고, 너랑 같은 공간에 있고싶지도 않다고 내쫓았다.




 그렇게 침울해져서 돌아가는 너. 돌아가는 뒷모습을 봐도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너와의 관계를 모두 끊어버렸다고 생각했을때, 뉴스에서 살인 사건 속보가 들어오더라.


피해자는 30대 남성, 용의자는 그와 7년전에 헤어졌던 20대 여성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경찰에서 심문을 해도 계속 그 새끼만 없었어도... 라는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치정 싸움이라는 결론이 난건지 법원에서는 그냥 일반 살인죄를 적용해 징역 2년을 구형했다.


그 날을 기점으로 니가 나를 찾아오는 날은 없었다. 혹시나 하고는 있었지만 역시 그 살인 사건의 범인은 너였다.




 그리고 어느새 2년이 지났다. 너에 대해서 완전히 잊고 있었던 나는 방심하고 있었다.


택배기사로 위장한 너에게 속아 현관문을 열어주고 말았고, 그대로 둔기로 가격당해 너에게 납치당했다.


그리고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감금당해 너에게 애정을 갈구당했다. 하지만 나는 오래전에 식어버렸으니까, 


너에겐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너는 이제 참을 수 없게 되었는지 내 발톱들을 하나하나 뽑기 시작했다.


죽을만큼 아팠다. 신경세포를 송곳으로 반복해 찌르는 듯한 격통이 계속되어도, 너에겐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옥같던 생활이 이어지던 중, 너는 빈틈을 보였고, 그대로 너를 쓰러뜨리고 도망쳤다.


발톱이 뽑혀 죽을 것 같이 아파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죽을 만큼 뛰어서 경찰서로 들어갔고,


미친듯이 나를 쫓아오던 너를 그대로 경찰이 체포했다. 그렇게 계속 자기에게서 도망가 봤자 자기는 계속 쫓아올 거라며,


나를 향해 저주와도 같은 말을 퍼붓는 너는 무서웠다. 




 그 사건으로 너는 사형을 언도받게 되었다. 알고보니 그 전에도 다른 이들을 무참히 살해했던 전과가 있었던 것이다.


그 중에는 나에게 이혼할 것을 말리지 않고 오히려 너에게 꾸지람을 준 아저씨, 아주머니도 계셨다.


존속 살해라는 중범죄까지 저지른 너에게 세상은 일말의 동정도 주지 않았고, 내 아내는 너를 죽여버리려고까지 하였다.


하지만 아내가 살인자가 되는건 싫었던 내가 어떻게든 말렸고, 그렇게 너는 죽을때까지 교도소에 박혀있게 되었다.




 3년 뒤, 교도소에서 내게 연락이 왔다. 니가 자살했는데, 나에게 쓴 편지만 3장이 나왔다면서,


그리고 감옥 벽에 내 이름과 니 이름을 잔뜩 새겨놓은 사진도 보여주었다.


그래도 사람이었던지라 니가 죽었다는 사실에 후련하다기보단 조금 씁쓸했고, 그렇게 너의 시체를 발인까지 해주었다.


그렇게 너와 있었던 모든 일들은 마무리 되었다. 아주 어린 3살 때부터 만났던 니가, 30대가 되어서 생을 끝내기까지.


조금은 감사하고 있다. 지금의 아내와 자식들을 만나게 해주었으니까. 그렇게 그녀는 내게 추억이 되어 잊혀져갔다.




 그리고 60년이 지나, 나는 나이들어 죽게 되었고, 생각보다 아프지 않은 죽음에 조금 놀랐었다.


그래도 아직 내 아내가 살아있는데 나 먼저 죽은게 조금 미련이었다. 같은 날에 죽어서 같이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저승에서 누가 날 데리러 왔나 싶어서 돌아보았다.


거기엔 긴 생머리를 한 상태로 나를 향해 미친듯이 달려오는 네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