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나랑 같이 다니지 않을래?"


그녀와 나눈 첫 대화였다.


"......"


"보니까 아직 풋내기같은데, 같이 모험하자."


"......그러지."


아직까지 모험가 특유의 피폐함이 없는 걸 보니, 기껏해야 3개월도 안 된 풋내기다.


자신이 뛰어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자만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있었지만, 그녀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내 이름은 티안, 잘 부탁할게."


"......샤인이다."


나는, 이 여자의 성장이 보고 싶어졌다.



***



"샤인, 거기!"


"알고 있다."


그녀와 함께 서로의 등을 맡긴 지 어느새 1년, 우리는 서로 순조롭게 성장의 길을 나아가고 있었다. 


고블린 토벌부터 시작해서 엘프 구출작전, 오크 섬멸, 마수 퇴치작전까지, 과장을 조금 보태서 우리를 모르는 모험가가 없을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티안, 이걸로 페어리 군림지대에 있는 마수들은 전부 퇴치했다."


"어, 수고했어. 돌아가면 술이나 마시자."


"안 마신다."


"또 그렇게 뒤로 뺄 거야? 오늘만 마시면 되잖아! 술을 마셔야 다음으로 나아갈 힘이 될 거 아냐!"


"그렇게 모험이 좋냐?"


"물론!"


가끔씩 이렇게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며,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이상적인 2인조.


내가, 꿈꿔왔던 생활이었다.


"여태까지 궁금했는데, 샤인은 뭐 때문에 모험가가 된 거야?"


"......"


"어라, 나 알면 안 되는 비밀을 파헤친 건가?"


"시끄러워."


나는 모험가가 좋아서 시작한 게 아니다.


내 정체가 밝혀지는 게 두려워서 이런 이름없는 모험가를 자처하고 있을 뿐.


"뭐, 나는 네가 뭐라고 하든 네가 마음에 들어. 샤인,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지 않은가.


"낯 간지러운 소리하기는."


나는 지금같은 이상적인 나날을 바라고, 또 바라왔다.


하지만, 


그런 나날은 영원히 이어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하늘은 내게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



비구름으로 어두워진 여관 뒷편에 있는 작은 쉼터정원.


세차게 내리는 비에도, 나는 끊임없이 걸었다.


내 옷가지와 짐들이 젖어도, 신경쓰지 않고 걸었다.


왜냐하면,


'저리 가, 샤인! 당신이 범죄자였다니, 내게도 무슨 짓을 하려고 접근했던 거야......?'


밝혀지고 싶지 않았던 과거사가 결국, 밝혀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나도 꼴사납구만. 이런 상황은, 이제 익숙해졌을 텐데."


차가운 가을비 사이로 노려보는 집 너머의 창문으로 노려보는 사람들의 매정한 시선, 


내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정말 아끼고 걱정해줬던 티안에게 버려졌다는 사실이다.


"......"


다시 과묵해져야만 한다.


아니, 과묵해질 수 밖에 없다.


이제부터는 말을 할 수가 없어질 테니까.


"여전히 비참해보이네."


"결국, 약속을 지키러 온 건가."


생각하기가 무섭게, 검은 날개를 펼친 붉은 드레스의 여자가 내 눈 앞에 조용히 나타났다.


이 여자가 바로, 죽음의 여신 [플러티오].


"조건은, 기억하고 있지?"


"그래...... 풋내기들 5명을 모험가로 키워낸다면, 나를 데려가기로 했지."


"좋아, 멋지게 성공했구나. 샤인, 아니......"


"말하지 마라. 내 진짜 이름같은 건, 이제 듣는 것도 질렸어."


이제, 자유다.


자유인데, 어째서 슬픈걸까.


"여신의 이름으로 그대에게 명합니다. 현세의 이름, 샤인이여. 그대를, [신대계약]에서 해방하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붉은 빛이 나의 팔다리를 감싸자, 내 안에 남았던 모든 감정이 사라지는 듯 했다.


"여신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나는, 기어이 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방의 기쁨에 젖어있을 때, 돌연 여신은 내게 걱정이 묻어나오는 말투로 내게 물었다.


"그런데 괜찮겠어? 저 티안이라는 아이, 당신이 한 일들을 알면 오히려 미쳐 날뛸텐데."


"상관없어. 저 아이도 언젠가 죽을 테고, 나를 잊을 테니까."


죽기 위해서 성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어렴풋이 들은 플러티오의 말을,


"진짜로? 쟤 진짜로 미치면 큰일날 것 같은데."


그때의 말을, 귀기울여 들었어야 했는데.



***



몰랐다.


나는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샤인? 그런 녀석, 몰라."


"모험가 되기 전에 범죄라도 저지른 거 아냐? 그런 쪽으로 신분세탁하려고 하는 사람이 많거든."


"그러고보니까 예전에 한 남자랑 파티를 맺은 여자들이 있었는데, 남자를 내쫒고 얼마 못 가서 전부 죽어버렸다는 사건이 있었어."


그저 떠돌아다니는 소문에 믿고 그를 내쳐버렸다.


"저리 가, 샤인! 당신이 범죄자였다니, 내게도 무슨 짓을 하려고 접근했던 거야......?"


"......"


"말할 것도 없어, 당장 나가!"


그때 쓸쓸하게 미소를 짓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그저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붙잡아야 했다.


그를 내쫓은 다음날 찾아간 교회에서 만난 한 여자에게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 분은 예전부터 한 여신께 저주를 받으신 분이셨습니다. 그 뒤로 여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네......? 아뇨, 그럴 리가요. 그는 범죄자일......"


"범죄라니, 무슨 소리신가요?"


"그때 그 남자랑 파티를 맺었던 여자들이 전부 죽은 건......"


"그건 전부 자살이었답니다. 모르셨나요?"


그제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는 내 손으로, 거대한 상처를 짊어진 파트너를 내쳤다는 것을.


"아냐......"


"모험가님?"


"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 아니라고!!!!"


교회를 뛰쳐나오고, 나는 미친듯이 울부짖었다.


"샤인, 기다려...... 당신에게, 사죄하러 찾아갈 테니까......!!"


그 후로 모험가를 그만두고, 아기를 잃어버린 어미처럼 필사적으로 제국을 뒤졌다. 거대한 대도시부터 이름없는 마을의 산 속 동굴까지 죽을 각오로 찾아다녔다.


5년이 지나도 그를 찾으려는 의지는 식지 않았고, 10년이 지나도 그를 보고 싶다는 욕망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하지만, 


신은 내게 용서를 할 여지를 주시지 않으셨다.


".........거짓말이지?"


제국의 땅끝에 있는 가파른 절벽.


거기에 작게 박혀있는 썩은 나무 십자가.


그리고,


"1390년, 샤인......"


10년 전에 희미하게 새겨진 그의 이름.


"샤이인!!"


울부짖었다.


다리를 잃은 늑대처럼, 연인이 죽은 잉꼬처럼 보는 쪽이 비참할 정도로 울부짖었다.


"흑, 흐윽...... 어째서 내게 사과할 기회도 주지 않고 떠나버린 거야......"


그러나 그를 버린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죽어버린 거군요."


어느샌가 푸르렀던 하늘은 피처럼 붉게 변해버렸고, 녹색의 풀들은 잿빛으로 그 색을 잃어버렸다.


"당신은...... 그때 교회에서 만났던 여자?"


"오랜만이에요, 티안 님."


분명히 그때 만났던 여자였지만, 위화감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달라보였다. 


"아니...... [금강석의 용병], 티안."


그리고,


내게 내려진 시련은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시작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그때 만난 그녀는 인간이 아니었다.


"반가워. 나는 죽음의 여신이자, 샤인이라 불리우던 남자의 다섯번째 여자인 플러티오라고 해."


애초에 인간이었다면,


여태까지 정체를 숨기고 다닌 그에 관해서 자세히 알 리가 없었을 테니까.


"여신님...... 샤인은, 제 파트너는 어디 있습니까......!"


"방금 말했잖아? 그이는 이제 내 남편이야. 또다른 신이 되어, 죽음의 종착점인 명계에서 나와 함께 지내고 있지."


그 말을 듣고, 나는 허탈함을 이기지 못하고 단검을 꺼내 목에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을 정도로 갖다댔다.


"샤인, 곧 만나러 갈게......"


하지만,


눈을 질끈 감고 칼로 목을 찔러도,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쉽게 죽게 내버려 둘 것 같아?"


눈을 떠 보니, 칼은 내 목을 뚫지 못하고 녹인 철처럼 구부러져 있었다.


"당신에게 영원히 죽지 않는 저주를 걸었어. 그이에게 상처입힌 만큼, 살아가는 내내 반성하도록 해."


아무리 단검을 목에 갖다대려고 해도, 단검은 오히려 더욱 비참하게 일그러졌다.


분노가 담긴 시선을 돌리려했으나, 여신은 저 하늘 너머로 날아가버렸고, 바뀌어버린 세상의 색은 원래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아...... 아아아아아아아!!!!!!!!!!"


이것이 어리석은 자에게 신이 내린 시련,


[광대]에게 내리는 시련이다.


이제 여기에 샤인이라는 이름의 남자와 전설같은 모험담을 써내린 모험심이 강하고 무모한 [금강석의 용병] 티안은 없다.


누군가를 버리고, 후회한 [어릿광대]만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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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 카드 재밌어보여서 썼음


순서대로 간다고 하면 다음은 마법사(The Magician)겠지


솔직히 타로 카드라는 게 재밌어서 쓴 건데 이것만큼은 안 묻혔으면 좋겠다


글은 좀 잼병이라 이해해줬으면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