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그정도의 관계.


나는 너를 좋아했지만 너에게 다가갈 용기가 없어 매번 뒤에서 서성일 뿐. 딱 그정도의 관계였다.


3년 연속 같은 반이라는 어쩌면 운명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행운에 기뻐하며, 네가 먼저 다가와주길 바라며 하루하루를 망상에 젖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그래서 내가, 한 걸음 앞서기로 했다.


그녀는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해 같은 반이 지정 된 이후 3년간 매번 노을이 질 때까지 학교에 남아있고는 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처럼.


누굴 그렇게 기다리냐고 물어보아도.


"글쎄. 어느 중요한 인연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같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고는 했다.


뭐 어쨌든 고백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내 인생 첫 고백. 나는 최대한 완벽한 환경에서 그녀에게 마음을 전하기로 했다.


피부에 트러블이 있어선 안 됐다. 혹여나 우스꽝스러울 수 있으니까.


날씨가 우중충해선 안 됐다. 혹여나 그녀에게 차인다면 괴로워 죽을 것 같으니까.


그렇게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 나는 느꼈다. 오늘이 유일한 기회라는 것을.


그렇게 방과 후. 여전히 아무도 없는 텅 빈 교실에 있는 그녀를 두고 노을이 질 때까지 학교 어딘가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냥 마음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느새 시간은 오후 6시. 나는 그녀가 있는 4층의 복도 왼쪽 끝에 위치한 교실로 향했다.


문 사이 창문으로 보이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차분히 앉아 고고한 눈을 뜨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한 편의 그림 같은 이 장면은 나만이 알고있는 그야말로. 절경이였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이미 심장은 마치 증기기관처럼 엄청나게 박동을 하고 있었다.


마음의 한 편에선 다음을 기약할까? 하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왠지 이번에도 도망친다면 영원히 그녀에게 마음을 전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숨을 꾹 참고 문을 열려던 찰나. 그녀가 나를 보고 있었다.


마치 끝없는 어둠이 자리 잡고 있는 듯한 그녀의 눈은 절로 소름이 돋게 했다.


"······?"


무표정하게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얼굴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꺼름칙했지만 한 편으로는 몹시 아름다웠다.


그렇게 마음 다짐을 하고서, 눈을 꾹 감은 채로 문을 열었다.


-드르륵.


눈를 뜨었다. 익숙한 교실의 광경은 그대로.


하지만 왠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중요한게 있었다.


그렇게 그녀에게 마음을 전하고자 입을 열려던 찰나, 그녀의 입술이 먼저 움직였다.


"드디어 왔구나. 기다리고 있었어."


"···으응?"


나는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녀도 나를 좋아하기에 내가 고백하길 기다렸다는건가?


다른 의미일 가능성도 있긴 했지만 지금 상황으론 암만 생각해봐도 그 가능성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생각 할 생각을 주지 않겠다는 듯 그녀가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평범한 일상은 사라질거야. 너는 그 준비가 되었을려나?"


나는 그녀의 말을 자신은 인기가 매우 많으니 앞으로의 학교 생활이 험난 해질 것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자신감에 차있는 발언이었지만 그녀의 인기로 보아하면 틀린 말은 아니였다.


"으..응..."


그러자 그녀의 얼굴에서, 3년간 그녀와 한 반으로 지내며 보지 못했던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관대해. 그렇기에 너에게 기회를 준 거지. 하지만 기회를 마다한 것은 너야. 그러니 시간이 지나고 너의 정신이 무너지면, 너를 취할게."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전혀 뜻을 알 수 없는 괴상한 말.


그렇게 그녀에게 그게 무슨 탓이냐고 물어보려는 찰나.


"···그게 무슨..."


-번쩍!


눈을 떴을 때는 내 방 침대였다.


'······?'


나는 어제 있었던 일을 되새기기 시작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더라... 맞다.'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그녀가 받아준 후 그녀와 함께 하교 했었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나는 볼을 꼬집어 보았다. 얼얼하게 느껴지는 고통은 이것이 꿈이 아님을 증명했다.


마치 하늘에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였다.


나는 세수를 하기 위해 매일 들락거리는 화장실로 가려고 했다.


"어라?"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 화장실은 방에서 나와 바로 왼쪽에 위치 했다.


하지만 변기와 세면대가 있어야 할 화장실은 사라지고 왠지 모르게 창고가 있었다.


"맞다. 화장실은 이 쪽이였지?"


내가 착각했던 것 같다. 우리 집 화장실은 거실을 지나 내 방 반대편에 위치했다.


그렇게 화장실에서 세안을 마친 뒤 화장실을 나섰다.


"······??"


나는 분명히 화장실에서 나왔지만 어째선지 뒤를 돌아보니 창고의 모습이 있었다.


"이게 무슨..."


대놓고 이상한 상황에 나는 창고를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근데 우리 집에 이렇게 짐이 많았나?"


창고에는 박스로 감싸져 있는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많았다.


그렇게 별 다른 걸 찾지 못하고 다시 문을 열려던 찰나. 문 한 가운데엔 메모가 있었다. 그것도 마치 피로 적힌 듯한.


"······!!"


나는 이러한 괴현상에 깜짝 놀랐고 천천히 떨리는 손으로 메모를 떼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 이게 무슨"


누가 이렇게 괘씸한 장난을 치는 건지 도통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갑자기 눈이 간지러워 손으로 잠시 눈을 비비자 메모의 문구가 바뀌었다.


-하늘을 보지 마라.


"···!!"


'그래... 그냥 잠을 못 잔 것 뿐이야...'


그렇게 방을 나가려던 찰나. 어느새 메모가 사라져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그대로 기절했다.



* * *



"······."


여긴 어디지. 눈을 떴을 때는 전혀 알 수 없는 장소였다. 익숙한 장소긴 했지만 눈 앞에 흐려 아무 것도 인식 할 수 없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나를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야!"


몸에 전해지는 작은 충격이 눈이 번쩍 뜨였다.


'아 맞다... 나 학교였지.'


나를 흔들어 깨운 이 녀석은 내 친구.


'근데 얘 이름이...'


기억 나지 않았다. 떠올리려 할 수록 머리가 아파올 뿐.


그리고 지금 반 분위기를 보니 지금은 시험 시간으로 앞자리에 있는 반 애가 시험지를 뒤로 넘기며 이윽고 나에게 왔다.


'시험인가...'


나는 자연스레 이름을 쓰고 문제를 확인 하고 OMR카드에도 이름을 적으려던 찰나.


"이건 또 뭔..."


OMR카드에는 그저 한 문구가 적혀 있을 뿐 이었다.


-존재 하지 않는 것을 떠올리려 할 수록 정신은 무너진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잠시 고민 하던 찰나.옆에서 친구가 말을 걸었다.


"빨리 이름 적어!"


OMR카드를 확인하러 오는 선생님이 오자 친구가 귀띔을 주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중요한 것을 떠올렸다.


'그런데... 나에게 친구가 있었던가?'


분명 나는 반에서 왕따였다. 하지만 남몰래 그녀를 연모했고 고백이 성공해 그녀와 교제하고 있었다.


그렇게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치켜들어 친구의 얼굴을 확인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친구의 얼굴은...


"······."


나는 심호흡을 했다. 이미 심장은 마치 대형 축구장의 열기처럼 쿵쾅쿵쾅...


'어라?'


분명히 중요한 순간임에도 아무런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문 사이 창문 너머에선 조용히 책상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주체 없이 문을 열었다.


-드르륵.


당당하게 교실로 들어선 나는 저번과 같은 실수를... 아니지 당당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안녕."


그러자 그녀가 해맑게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드디어 와줬구나! 네가 오길 몇 년을 기다렸는데..."


"어... 뭐라고?"


"내가 고백하라고 그렇게 눈치를 줬건만!"


그런가. 그녀도 나를 좋아했던건가.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채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설렘을 가득 안고 그녀에게 제대로 마음을 전하려던 찰나.


"······."


나는 "무언가"에 시선을 뺏겼다.


그러자 내 고백을 기다리고 있었던 그녀가 내가 아무 말이 없자 내게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아무 것도 아냐. 잠시 피곤해서."


"라고 하기엔 엄청 겁이 난 얼굴이던데?"


그러자 나는 멋쩍게 대답했다.


"후... 갑자기 하늘이 막 퍼즐처럼 알록달록하게 보이길래... 얼른 집에 가자."


"그게 무슨 소리야?"


역시 헛소리처럼 들리겠지.


"음... 역시 아무 것도 아냐."


"하늘은 원래 알록달록하잖아?"


"······?"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다시 창 밖을 보았다. 마치 여러 색의 가죽을로 실로 꼬맨 듯한 어찌 보면 기괴한 광경.


나는 그런 괴상한 하늘을 본 후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


무언가 이상했다. 그녀의 얼굴. 그녀의 머리. 그녀의 눈 밑에 있던 눈물점까지.


그녀의 머리는 허리까지 차분하게 내려오는 검은색의 생머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핑크색으로 꼬불꼬불거리는 머리였다.


그녀는 오른쪽 눈 밑에 작은 눈물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얼굴에 아무런 점이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이해하려 머리를 쓰자.


"···으윽..!"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분명히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던...'


"야!"


"으응..?"


"그래서 고백 할 거야 말거야?!"


그녀는 내 답답한 모습에 복장이 터지는 지 빼액 소리쳤다.


"···할 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신경 쓰이던 이질감에서 이제는 명백한 괴현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자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분명히 마주보고 있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를 감추려는 듯이.


"왜? 내 얼굴에 무슨 문제 있어?"


참을 수 없는 구토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내가 들어온 문을 향했다.


무언가 이상했다. 우리 교실은 복도 끝에 존재한 교실로 이렇게 문 너머 창문으로 당연히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여야 했다.


"자.. 잠깐만!"


나는 그녀를 뒤로하고 빠르게 반을 뛰쳐 나간 후 문 앞에 있던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왔다.


"······?!"


갑자기 느껴진 이질감에 뒤를 돌아 보았지만 내가 내려온 계단은 온데간데 없었다.


'뭔가 이상해... 빨리 나가야...!'


더 이상 이 곳에 머무르다간 미쳐버릴 것 같았기에 나는 빠르게 정문으로 뛰어갔다.


"······."


"저.. 저기 저를 부르신 이유가 혹시 무엇인지..."


눈 앞의 그녀가 자신을 불러낸 이유가 무엇인지 수줍게 묻고 있다.


기억 났다. 나는 그녀의 이런 소극적이지만 정성이 가득한 모습에 반했었다.


그렇게 준비했던 고백 멘트를 날리고지 입을 열려던 찰나.


교실 밖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야!"


그것은... 나였다.


"······."


이상했다. 내가 나를 부른 다는 것 자체가 무언가 잘 못 되었지만 더욱 눈에 띄는 것은 나의 상태. 탁해진 동공과 어딘가 망가진 듯한 내 모습은 마치 이 상황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듯 했다.


그렇게 "나"에게 다가가려던 때. 그녀가 내 옷깃을 잡았다.


"저기... 이런 말을 하는게 실례일 수 있겠지만... 당신을..."


옷깃이 잡아당겨지는 촉감에 뒤를 돌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왜냐 하면 뒤를 돌아보니 창문에는 한 문구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진짜인가. 자신을 믿지 말라. 이해 하려 하지 말라.


마치 어디선가 본 듯한 피로 써진 문구.


문구에는 이해 하지 말라고 써있었지만 내 뇌는 이미 해답을 찾아내고 있었다.


그러자 내 본능이 경종을 울렸다. 내가 찾아내고 있는 것을 알아내면 안된다고.


그렇게 생각을 어떻게든 멈추기 위해 머리에 충격을 가하려던 찰나.


'안 돼... 안...'


그렇게. 모든 걸 떠올려 버렸다. 세상이 무너진다. 흐물흐물하게.


더 이상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는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제 가시는... 거에요...?"


분명히 그녀의 입은 닫혀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말을 하는 걸까.


마지막까지도 이상한 현상에 또 다시 내 뇌는 해답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 * *



노을이 붉고 아름답게 지는 오후 6시. 나는 책상에 앉아 있었다.


"이제 집에 갈까..."


6시까지 반에 남아있는 것에는 아무 의미가 없었지만 고등학교에 입학 한 이후로 매일매일 꾸준하게 6시까지 남아있는 것이 내 하루 일과였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려 짐을 싸던 찰나. 그녀가 들어왔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어떻게 한 걸까."


"···응?"


무언가에 의문을 표한 그녀는 자기 스스로 해답을 찾아내더니 줄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신의 자동방어체제... 인가. 축하해. 너는 자신의 정신을 지켜냈어."


"으응...?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허둥지둥했지만 그녀는 그러거나 말더나 설명을 이어갔다.


"너의 경각심은 너에게 최선의 조언을 해주었어. 그리고 너는 그것을 따랐지. 덕분에 거짓된 경종을 무시하고 결국 버텨내었네."


"······."


이제는 무슨 말을 할지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계속해서 듣고 있자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악마와 천사를 믿고 있어?"


"···?"


"나는 악마야. 그것도 성질 더러운. 때문에 갖고 싶은 것은 무조건 가져야 해."


"어 음... 그래."


"그리고 너는. 악마가 약속을 지키는 거 본 적 있어?"


"······?!"


그녀의 말에는 매우 함축적인 의미가 들어있었다.


그전에 나는 그녀의 말에 함축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안 걸까.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쩐지 익숙한 이 느낌에 나는 이질감을 느꼈다.


이윽고 내 정신도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또 다시 시험이야. 너는 언제까지 자신의 정신을 지켜낼 수 있을까? 네가 최대한 버티길 기도 해 줄게. 그리고 네가 완전히 무너지면―"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었지만 깊은 심연 속으로 정신이 흐릿해져만 갔기에 잘 들리지 않았다.


깊은 심연 속으로 빠지며 느껴지는 것은 사방에서 울리는 경각심 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