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일이면 마왕과의 결전이 있는 날.


이대로 간다면 모두가 죽을 것이 분명하고도 자명한 일이다.

최소한의 희생을 치뤄야 앞으로의 대륙이 평온할텐데 그것을 생각해본다면 최소한의 인원으로 가서 해야함이 옳다.


이에 나는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옆에 있던 기사단원이 묻는다.


" 어디 가십니까? "

" 파르얀에게로 가려고. 그마저 희생을 할 필요는 없을테니까. "

" 예? "

" 제국에서는 내가 만일 없더라도 그 이후에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없어. 즉 신민들은 안전해. 하지만 라이쉴드 왕국은 달라. 그가 없다면 라이쉴드 왕국은 큰 타격을 받을거야. "


그 말에 기사단원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그는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 단장님께서 하시는 일은 옳으실테니. 다녀오십시오. "


답하는 그의 말에 나는 곧바로 파르얀 그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향한다.

저 멀리서 보이는 자신의 기사단의 가장 앞 큰 텐트 앞에 모닥불을 피고 앉아 있는 소탈한 모습이 그와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이 되었다.


내가 걷는 발걸음 소리가 이 공간을 메우고 있으니 그는 사색에 잠겼다 깬 듯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작게 입가에 호선을 그리는 것이 그의 분위기와 어울렸다.


" 무슨 일입니까? 왠일로 먼저 찾아오시고. "


그런 그의 말에 나는 건너편에 서서 잠시 그에게 먼저 다가간 적이 없었다는 것을 인지하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물러서라. 너가 능력이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이후는 힘들거야."


내 말에 그는 입가에 베어 문 미소를 더욱 짙게 만들고는 한동안 답이 없었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의 의중을 생각하고 있는걸까? 아니면 계산적인 무언가를 판단하고 있는 것일까


" 드디어 걱정이라는 것을 해주시는겁니까? 지금까지 가장 최전선에서 악전고투를 해도 한~마디도 없으셨던 분께서?"


나를 놀리듯 장난스런 어조와 표정으로 묻는 그의 말에 남의 속도 모른 채 답하는 그를 보자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

나를 붉은 여명으로 보는게 아닌 그레이스 데 팔레시아로 봐주는 느낌.

나쁘지 않아.


그리고는 불쏘시개로 장작불을 따스하게 지피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 너가 무슨 목적으로 여기까지 따라왔는지 모르니까. 대륙을 위해서인지 너의 명예욕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왕국의 은밀한 임무를 위해서인지. 나는 모든 것을 염두해 두었어야했어. "


그런 그에게 나의 속뜻과 그간 그럴 수 밖에 없던 이유를 말하니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 뭐. 이해는 합니다만... "


그리고는 나를 올려다보고는 고생했다는 듯이 격려하는 어조로 말을 잇는다.


" 지금 이렇게 말씀을 직접 전해주시러 오실정도라면 제가 정말 어떤 이유에서 온건지 몰라서 또는 혼란스럽기 때문에 오신거겠군요? "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다시 한 번 확인을 하는 것일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온전히 그를 위해서 말을 해준 것 뿐이다.


" 걱정마세요. 제 목숨 제가 잘 챙기니까. 그쪽과 같이 들어갔더라도. 위험해보이면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칠테니까 걱정마십쇼. 저도 제 목숨은 소중한지라. 그리고 왕국에 가족도 있거든요? "


그가 돌아간다고 하기에 안심하다 가족이 있다는 말에 잠시 굳어버린다.


아.. 가족이 있었던가...?

아내가 있는 것일까...? 하긴 파르얀 정도의 성격과 강함 그리고 옳은 신념에 대한 관철이라면 없는게 이상할 것이다.


분명 내가 조사하기로는 고아로 알고있었는데 말이지..

하지만 잠시 어지러운 나의 마음을 갈무리하고 다시금 그에게 하고자 하는 말을 해야만 한다.


" 그렇다면야. 그럼 적당한 선에서 돌아가도록 해. 왕국에서 이렇게 진심으로 대륙을 위해 일하는 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다행이야. "


그래. 내가 없더라도 그대가 있다면 분명 대륙은 전란이 아닌 평화가 올 것이고 만일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강자인 그라면 절대 악한 일을 행하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가 있기에 내가 여기까지 절망하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히 이겨내 올 수 있던 것이겠지.


그런 내 마음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그는 조용히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불쏘시개를 두고 주변에 고기가 꿰어져 있는 꼬챙이를 뽑아 나에게 건내며 말한다.


" 고기나 드십쇼. 내일 싸우려면 먹어야 힘이 나지 않겠습니까? 참고로 이 고기로 말할 것 같으면 제가 직접 손질하고 다듬은 이 대륙에서 하나 밖에 없는 품질의 고기라 이 말입니다. "


편안한 어조와 함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인 그는 미소를 띄며 내게 고기를 내민 채로 나를 올려다본다.

검은 머리. 갈색의 눈동자.

얇지만 부드러워 보이는 입술.


그리고 진심으로 나를 위하는 듯한 마음.


이에 점차 기분이 진심으로 좋아지는게 느껴져 그의 고기를 받아든다.


" 잘 먹을게. 최고의 품질이겠는걸? "


그런 나의 말에 그는 나를 잠시 멍한듯 바라보다 싱긋 미소를 지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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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그레이스 데 팔레시아와 함께 제국의 한 교회로 파견을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다그닥 거리는 말발굽 소리가 옆에서 들려오고 그 위에 앉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그녀를 바라보자니 잠깐 머리가 아프지만 지금은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다.


마왕의 재림을 꿈꾸는 자들.


현재의 봉건제와 함께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반항이자 반란.

그런 불온건하지만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신민 또는 대륙의 사는 자들의 특성을 생각해보자면 뭐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근데 왜 새로운 챕터인 것 마냥 나온거냐고. 특전이긴 한데 이게 뭐냐고.

이거 로그아웃도 안되고 진짜. 굴리냐? 굴려?

짜증 이빠이 나는데 어떻게 할 방도가 없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그들의 강세가 얼마나 되는지 또, 그들의 세력이 얼마나 커져있는지와 퍼져있는지가 중요하겠지.

물론 지금 내가 알고있는 부분은 없다. 그렇기에 나는 옆에있는 팔레시아 그녀에게 묻기위해 입을 열었다.


" 그들 단체의 이름이 `프리야의 비상` 이던가요? 꽤 심각한가 봅니다. "


그런 내 말에 사색에 잠긴듯 앞만을 바라보던 그녀의 적색의 눈에 빛이 잠시 돌아온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답한다.


" 찢어죽여도 시원치 않을 것들이야. 마왕의 재림..? 마왕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슬프고 마음이 찢겨졌는지 몰라서 그러는건가? "


뭔가 굉장히 감정적인 그녀를 바라보자니 뭔가 위험하다 싶어 말한다.


" 진정하십쇼. 저희는 그들을 박살내러 가는 것도 맞기는 하지만 일단 그들의 세력이 어디까지 퍼져있는지를 더 면밀히 파악해야합니다. "


그런 내 말에 그녀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말한다.


" 계속 말해봐.

" 마왕의 재림은 있으면 절대 안될일은 맞으나 현재 신민들이 그들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도 파악해야 합니다. 그런 평판들을 알아야 신민들의 협조도 받을 수 있을테고 그 협조로 더욱더 쉽게 그들을 잡아낼 수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제 바람이기는 합니다만 제발 평판이 좋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만일 좋다면 잡기는 더더욱 힘들어질테니까요. "


예전 스토리 중 마왕에게 충성을 하던 한 마을을 몰살시켜야만 했던 경험이 생각나니 머리가 아득해져온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를 처형하고 난 날. 

난 그 날 로그아웃을 한 뒤 침대에서 질질 짜고말았지.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현실과도 같이 느껴지는 이 곳에서 무정함을 보였어야했으니까.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 한 뒤 고개를 들어 다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날 지그시 바라보고있다.


붉은 색의 눈동자에는 의구심이 가득했고 그런 그녀는 나를 향해 입을 열어보였다.


" 비렌. 너.. 책사의 기질이 있었나? "

" 예? "

" ...내 충고를 잘 들은걸까.. "


갑자기 나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려 드는 그녀에게 빨리 말을 돌리기 위해 그녀가 가장 관심있어하는 화제로 돌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분노를 가지게 해야지.


" 그나저나 마왕뿐만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에 대한 적개심이 큰 것 같습니다. "

" 당연한 거잖아. 그게 왜? "


마왕이란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터지기 직전의 활화산마냥 타오르는 그녀에게 나는 조곤조곤 답한다.


" 그게 아니라 일을 할 때는 그 점이 불안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너무 감정적으로 하시려다보면 놓칠 수 있는 부분이 있을테니까요. 그것을 염두하여 말씀드리는 것 뿐입니다. "

" ..어쩔 수 없어. 마왕만 아니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쩌면 ... "


그렇게 말을 하던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고 이내 미소를 작게 베어문다.


" 그를 토벌전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나 행복하지 않았을까..? "


그 말과 함께 진심으로 행복하다는 듯이 웃어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격하게 찔려온다.

하지만 지금 내가 부여받았던 미션은 그녀 뿐만이 아닌 대륙의 사람들 모두가 행복한 길로 향하게 하는 것.

이건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받아들여 모두가 공평하게 된다해도 대륙은 불행할 것이고 자본주의를 들여와도 불행할건데 모두가 행복한 것은 도대체 뭐 어떡하란거냐.


애덤 스미스 형! 보이지 않는 손으로 좀 도와줘봐!


아무튼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일단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가 왜 그렇게 나를 찾는지 그리고 나를 찾아서 어떡하려는건지 부터 파악해야한다.


" 그 파르얀이라는 기사 말하는 겁니까? "


그런 나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말을 이어서 한다.


" 뭐, 단장님께서 그렇게 찾으시니 저와 기사단은 당연히 도울뿐이지만서도.. "


설마 나는 이 여자가 황제에게 조차 나를 찾는 것에 대해 최우선 적으로 행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문제는 그것을 윤허한 황제도 무언가 사연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이거는 다음에 한 번 깊게 알아봐야 할 것 같다.


" 어떤 것을 보고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그리 확신하십니까?  "

" .... 오늘은 꽤 조리있게 물어보네? "

" 뭐, 알아야 정확하게 돕고 또 공감도 해드릴 것 아닙니까. 저도 매번 기사단원들에게 둘러대기 힘듭니다. "


그런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는 내가 대륙을 지키게 해줄 수 있던 이유였어. 나의 이유. 나만의 이유... "


그렇게 말을 하던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고 내가 그려진 서책이 있는 자신의 가슴팍부분을 왼손으로 작게 감싸쥐어보인다.


" 그런 그는 나를 대신해 마왕의 마법을 막아주었고 내 품 안에서 쓰러졌었지. 그 심정 혹시 알아? 내 삶의 이유가 그렇게 한 이유가 자신의 소원이 나의 삶이 행복해지기를 바래서였다는 것을? 내가 행복하길 바랬던 자가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희생하는 모습을 눈 앞에서 보는 심정 말이야. "


담담히 하나의 서사를 읽듯 말하던 그녀는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하더니 말한다.


" 그런 그의 시체를 품안에서 잡고 몇날 며칠을 거기서 울었을까... 너무 억울했어. 대륙을 구했는데 나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못 얻잖아. 황제께서 하사하시는 금은보화..? 권력? 작위? 다 필요 없었어. 나는 그만 있었으면 됐었으니까. 그래서 빌었어. 신이있다면 정말로 마왕이 있다면 마신이 있는거고 마신이 있다면 선한 신도 있다는 거니까. 간절히 빌고 또 빌었어. 나의 소원을 "


그렇게 말하던 그녀의 눈은 점차 생기가 돌았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속이 점차 답답해져 갈 때 그녀는 작은 입술을 열어보인다.


" 그러자 이뤄졌어. 그의 시체가 나의 품에서 빛으로 화했어. 인간의 시체가 썩지않고 빛으로 화했다고. "


아무래도 그녀는 확신하고 있는게 확실하다.


"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왔어. 대륙 어딘가에 그를 놔두었다고. 갸륵한 나를 위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까지. "


그렇게 말하던 그녀는 자신의 가슴팍에 대고있던 손을 내려 말의 고삐를 잡는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점차 좋아지지 않았고 고삐를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간다.


" 그런데.. 있잖아..? "


목소리의 떨림이 느껴진다. 분노의 떨림인지 억하심정이 억눌려 있는 떨림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녀는 지금 무척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을 알 수 있었다.


" 쉽지않았어. 라이쉴드를 다 뒤져봤어. 그래서 알게되고 가지게 된건 그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 뿐이었어. 나를 위해 가족이 있다는 거짓말로 안심시키고. 나를 위해 죽고. 나를 위해... 나를.....나를 위해.. "

" 진정하십시오. "


나의 말에 정신을 차린 듯 그녀는 한숨을 작게 내쉬고 감정을 갈무리했고 이내 나를 다시 바라본다.


" 그래서 그를 찾는거야. 비렌. "

" 그래도 몇 년이 지났는데 벌써 다른 곳에서 잘 지내고 있겠죠. 신께서 안배하신거니 더 그렇지 않을까요? "


애써 나에대한 관심을 줄이기 위해 그렇게 말하는 말에 그녀의 표정이 날카로워진다.

마족을 바라봤을 때도 마왕을 바라봤을 때도 저런 표독스러운 눈빛이 아니었건만.


그 눈빛을 한 그녀는 나를 바라보더니 말한다.


" 누구랑? "

" 예? "

" 그가 누구랑 잘 지낼꺼라고 말하는거야? "


아.


" 그런 말 절대로 만일이라는 상황에서도 말하지마. 그는 나의 이유야. 나만의 이유라고. 알겠어? 다른 이의 이유가 되는건 용납할 수 없어. "


좆됐네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