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재밌는 일이 많다.


아침이었다. 밥을 먹고 양치를 하는데 쓰던 칫솔이 하나 사라진것을 알았다. 칫솔 정도야 구하기 쉬운 물건이라 별 뜻 없이 넘겼다.

칫솔질을 하는데 이질감이 들었다. 사용감이 조금 틀리다. 그래도 이빨만 닦이면 그만이니 신경쓰지 않았다.


학교로 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는데 양말이랑 속옷 몇 개가 보이지 않았다. 속옷은 다른걸로 갈아입고 양말도 예비는 많으니 신경쓰지 않았다. 교복에서 이상한 향수냄새가 났다. 생각보다 향이 좋아서 그냥 갈아입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었다. 이상하게 신발 위치가 어긋난 느낌이다. 없어지지 않은게 어딘가 싶어서 그대로 신고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대문앞에 서서 정확히 5초를 세보았다. 딱 맞춰서 반대편 골목에 한 여자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 안녕 ~ ! "


나는 손을 들어 화답했다. 단발머리 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 어제는 잘 잤어 ? "


" 너는 맨날 그것부터 물어보더라 "


" 인사치레 하는거야, 인사치레, 어제 밤에 잘 잤나 확인해야지 "


" 그런걸 뭐하러 확인하는건데 ? "


" 그거야 얀붕이는 한창 끓어오르는 나이잖아. 매일 밤마다 그렇고 그런짓 하면 학교에 못 나올텐데 ? "


소녀는 웃음을 참으면서 말했다. 잔망스런 표정을 한채 나를 보는게 아주 놀려먹지 못해서 안달이다.


" 여자애가 못하는 말이 없어 "


" 당연히 너니까 이런말 하는거지 멍청아 "


주먹으로 내 팔을 가볍게 치고는 웃음소리를 냈다. 그녀는 내 눈치를 한번 보고는 다시 쾌활한 말투로 혼잣말을 했다. 아 - 이참에 머리 한번 길러볼까. 저기 너는 긴머리가 좋아 ? 별로 상관없다고 대꾸하자 처진 목소리를 냈다. 아. 재미없어 진짜. 그녀는 반대편을 보며 툴툴거렸다. 어릴떄부터 봐왔지만 참 귀찮은 성격이다. 우리 두 사람은 아버님끼리 같은 회사에 다녔다. 저쪽 집안은 아이를 낳던중 산모가 죽어버렸다. 출근 할떄마다 혼자 있을 딸이 걱정 된건지 우리 집에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떄부터 함께 지냈다. 그녀는 어머니가 없어서인지, 뭐라해야할까.... 자랄떄 사랑을 받지 못한 느낌이 든다. 관심을 위해 칭얼대고 떼쓰는 일이 많았다. 가뜩이나 저쪽 아버님이 상사인지라, 어릴떄부터 나와 그녀간에 미묘한 수직관계가 있었다. 하지만 남녀칠석부동석이라고 했던가. 중학교에 올라갈떄 즈음 발길이 뚝 끊어졌다. 이제는 다 큰 남녀가 하루종일 들러 붙어있는게 좋게 보이지는 않은것 같았다. 문제는 그녀의 황소고집을 아무도 몰랐다는거다.


" 나, 오늘 밤만 좀 재워줘, 아니 이번주, 아니 기왕이면 한달 "


그녀는 바리바리 등짐을 싸매고 현관에 서 있었다. 옷이랑 화장품, 휴대폰과 테블릿, 헤어드라이기에 고데기, 여름 이불까지 아예 살림살이를 들고 왔다. 그날 아버지는 전화를 받으면서 허리를 연신 굽혀야했고, 어머니는 식사준비를 하지 않아서 멋쩍은 웃음을 지어야했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듯 말했다.


" 괜찮아요, 제가 직접 해먹죠 뭐 "


그리고는 캐리어 가방에서 미니 밥솥을 꺼내들었다. 그걸보고 어이가 없었는데, 다음으로 쌀 주머니를 꺼내는걸 보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 너 도대체 뭐 하는 애야 ? "


" 맨날 같이 지내다 혼자 자려니까 무섭단 말이야, 나한테는 여기가 집인걸 "


그녀의 대답이 너무 당돌해서 어쩌면 진짜 숨겨진 가족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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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일주일이 지나고 그녀의 아버지가 백기를 들었다. ' 제발 좀 집에 들어와라. 내가 잘못했어. ' 전화로 들었지만 목소리가 너무 불쌍했다. 그녀는 흥 하는 콧소리를 내더니 쏘아대듯이 말했다. 됐네요, 제가 왜 집에 들어가야하는데요 ? 거기 가봤자 아무도 없는데. 아빠는 하나뿐인 딸이라고 하면서 맨날 혼자뒀잖아요. 저는 거기 있는것보다 여기서 지내는게 훨씬 편해요.


" 야야 말이 너무 심하잖아 "


내가 제지하자 그녀가 한쪽 눈을 감으면서 소근거렸다.


" 원래 이렇게 해야해, 독설에 약하시거든 "


수화기에서 끄응...하며 기어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봤지 ?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그걸 보고 그녀를 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다짐했다.


' 그럼 뭘 어떻게 하라는거냐 ? 정말, 뭐든지 다 할테니까 제발 집에는 들어와라. ' 수화기에서 애처로운 부탁이 들려왔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진짜 ? 진짜로 해달라는거 다 해줄거지 ? 맞는거지 ? 안 지킨다고 하면 나 밤마다 어디 시내로 가서 노숙할거에요. ' 그래. 말해봐라. ' 수화기로 들리는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 그럼, 애랑 만나는거 아빠가 뭐라하지 마세요. 만나서 뭘하고 놀든간에 신경쓰지 마시라고요. 걱정마요 선은 안 넘을테니까 "


" 뭐야 ?! "


아버지보다 내가 더 놀랐다. 나는 이게 무슨 소리냐는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뭐 문제있냐는 표정으로 어꺠를 으쓱했다. 다음으로 놀란건 수화기 너머 있는 그녀의 아버지다. '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거냐 ? 그리고 방금 목소리 뭐야. 그 기생오라비놈 옆에 있는거 아니야 ?! '


" 뭐어어어? 기생오라비 ? "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대화는 여기서 끝나겠네요 전화 끊어요. 그녀는 단칼에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팔을 밴채 바닥에 엎드려서 나를 보았다.


" 야, 너보고 기생오라비래 "


" 그래서 전화를 끊었다고 ? "


" 그럼 뭐 어쨰, 니 욕을 하는데 "


"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씨발, 우리 아빠 승진은 이제 망했다. "


" 아. 그걸 생각못했네 "


" 이걸 진짜 그냥 "


내가 화가나서 덤벼들려고 하자 그녀가 꺅꺅거리는 비명소리를 냈다. 온동네에 다 들릴 지경이다. 나는 물러설수밖에 없었다. 헤헤. 그녀는 웃더니 농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망하면 뭐 어떄 ~ 내가 너 델구 살면 되지 "


" 재미 없어 "


쳇. 내가 정색하자 그녀는 혀를 찼다. 다시 전화가 울렸다. 봤지 ? 결국에는 전화하신다니까. 그녀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 내가 잘못했다. 내가 미안했어. 우리 처음부터 다시 대화하자 ' " 우리 아버님 그러하시군요. 제 요구사항은 말이죠 ~ " 그녀가 머리를 손가락으로 꼬면서 말했다. 어쩐지 코미디 영화에 나오는 인질극 장면같다.


" 아까 전이랑 똑같고요, 아 혹시나해서 하는 말인데 이걸로 애네 아빠 괴롭히면 저 또 집 나갈거에요 "


' 그래그래. 알았다 '


됐지 ? 그녀가 나에게 윙크를 했다. 나는 한숨을 한번 쉬었다.


' 그래서....오늘 들어올거니 ? '


으음 - 그녀는 한번 고심하더니 말했다. " 오늘은 말고 내일! 그리고 갈떄 애도 데리고 갈거에요. " 이 말을 듣고 나는 두려워졌다. 대체 이 여자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걸까. 도무지 종 잡을수가 없다. 그녀의 아버지는 한참동안 말이 없더니 알았다고 말했다. 화를 참기 위해 머리를 짚고 있던게 틀림없었다. 그럼 끝난거죠 ? 내일 갈게요 ! 삑. 전화가 끊어졌다. 그녀는 어떄 ?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 내가 거길 갈수있을리가 없잖아 "


" 왜 안돼 ? 엄밀히 따지면 너도 관계있잖아. 이참에 눈 앞에서 약속을 받아야지 "


" 나는 그런 약속한적 없다고 "


" 아아- 진짜 남자답지 않게 뒤로 뺄거야 ? "


그녀는 내 품으로 폭 쓰러지면서 말했다. 원래부터 자주 하는 행동이다. 나는 아무 반응없이 할말을 이었다.


" 너희 아빠 골프 치시지 ? 내가 문을 열자마자 채로 머리를 박살내실걸 "


" 미쳤니, 그 비싼 골프채를 너 때리자고 써먹게 ? 걱정하지마. "


정말 그녀의 말대로 골프채로 머리가 박살나지는 않았다. 그녀는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처럼 당당하게 거실로 입성했다. 나는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해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녀의 아버지가 우리를 맞았다. 내 기억보다 훨씬 나약한 모습이었다. 분명 이마에 핏줄을 세우며 화를 내시던 분이었는데 이렇게 돼버린게 안쓰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녀는 생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했다. 나는 그런 상황이 미안할 뿐이고, 그녀의 아버지는 하나뿐인 딸의 일탈로 기운이 빠져있었다. 오직 우리 셋중에 그녀만 썡쌩한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그녀는 이런 여자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툴툴거리던 그녀가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떄 나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 재미도 없고, 관심도 안 주고, 그렇게 하다가는 여자랑 아무것도 못해요. 나 정도나 되니까 같이 다니는거지. "


" 그러게, 너 정도나 되는 여자가 뭐하러 나랑 다닐까 "


" 에 ? "


그녀는 얼굴을 붉히더니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힐끔 이쪽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 행운으로 아셔, 이제야 자기 주제를 아는구만 ? "


" 뭐, 그렇지 "


" 크흠, 나도 어디가서 안 꿇린다고 ? 나 참, 나도 뭐하는건지. 잘생긴 남자들은 냅두고 너랑만 다니는데 "


" 맞아. 나랑 다니는게 너무 신기하다. "


" 그래 더 신기해하라고 "


" 너 같이 예쁘고 돈도 많고 센스있는 여자가 나랑 같이 다니는건 싫을거 아니야 ? "


" 어..? 어어..뭐어.. "


유래없는 칭찬에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귀까지 빨갛다.


" 솔직히 나 정도면 너가 좀 아깝잖아 "


" 그건 그렇지, 그래서 내가 만나주는걸 감.... "


" 그러니까 쪽 안 팔리게 가줘야겠다. "


나는 길가에 있는 전동킥보드를 집어들었다. 한번 타고나면 시간당으로 금액을 내는 킥보드였다. 시내권에는 이런게 많다. 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 먼저갈게, 곧 있으면 지각이야. "


" 뭐... 어 ? "


" 미안해, 이거 1인승이라서 "


나는 악셀을 당겼다. 힘 좋은 전기모터가 소리를 낸다. 순식간에 그녀가 뒤 편으로 사라졌다. 미안. 이번에도 늦으면 좀 심각하거든. 넌 맨날 이야기하느라 걸음이 늦잖아. 보이지않는 그녀에게 사과하고는 그대로 갈길을 갔다. 왠지 그녀가 뒤에서 소리치고 있을거란 상상을 했다. 아니 상상이 아니라 정말로 그럴게 분명하다. 아 맞아, 그러고보니 집안 다 헤집고 다니는게 재 맞겠지. 열쇠도 가지고 있고 원래부터 제집 다니듯이 했으니. 근데 아무리 그래도 속옷이랑 양말은 대체 뭐냐 ? 이상하다니까.



얀붕이가 떠나자 그녀는 씩씩거리며 떠나간 곳을 빤히 보았다. 저게 진짜. 나 속인거였어 ? 어쩐지 이쁜 말 해주나 싶더니. 그녀는 화를 내다가 숨을 깊게 마시고 뱉었다. 진정하고나자 조금 슬픈 눈으로 같은곳을 보았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면 좋았을텐데 말이야. 그녀는 잠시간 서있다가 다시 걸었다. 얀붕이가 없는 그녀는 쓸쓸하고 어딘가 기운이 없어보였다.


이 모든걸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 둘 보다 조금 작고, 조금 어두운 분위기의 여자였다. 그녀는 떠나는 뒷모습을 보고 웃었다.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의심 받지 않거든요. 그녀는 얀붕이의 집으로 향했다. 저번에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그가 입은 옷에 코를 박고 몇시간씩 있었다. 이대로 가는게 너무 아쉬워서 서랍장을 뒤져 속옷을 훔쳐갔다. 기념으로 칫솔도 가져가고 내가 사용하던걸로 몰래 바꿔놓았다. 아침마다 나랑 하는 간접키스겠지. 그녀는 신이나서 웃었다. 이번에는 뭘 해줄까나. 조금은 위험한 짓을 해도 될거 같은데.그녀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집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보니 두 사람 아직 키스같은거 안 했죠 ?


그럼, 내가 그 여자보다 더 가까운 사이인거네 그녀는 숨죽여서 웃었다. 물론 그래도 성가신 존재이기는 하다. 저렇게 대놓고 어필을 하는 여자는 뭔가 불안하니까. 그래도 얀붕이가 지조있고 멋있는 남자라서 다행인거지. 저런 싼티나는 년한테는 눈길도 주고 있지 않잖아. 그녀는 얀붕의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었다. 현관에 있는 신발장을 열어보았다. 그녀는 어릴떄부터 얀붕이의 집에 자주 들르다보니 신발같은것도 함께 정리해두었다. 일전에 왔을떄는 전부 어딘가로 숨기고 어지럽혀두었다. 신발은 다시 가지런하게 정리되었다. 그것도 얀붕이가 자주 신는 신발 바로 옆 자리를 차지한채로.


아. 분명히 다 버리고 어지럽혔는데. 정리해두셨네요. 역시. 성가신게 맞기는해요. 나중에 천천히 없애줄거지만....일단은 냅둘게요. 일단은 그래야하니까. 그녀는 다시 신발장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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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쓰던 글 반응이 넘 저조해서 기분 좀 풀어볼려고 쓴 작품이다.


단편으로 쓰려했는데 분량이 좀 많아졌다. 이건 아마 고질병인듯.


얀챈에 써서 올리는 글이지만 막상 얀순이는 맨 마지막에 나오는게 함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