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이강민, 오픈 북 시험에서 컨닝이라… 거기다가 평소 잦은 지각까지.”


“…죄송합니다 교수님. 한 번만 봐주십쇼. 이번 학기마저 망하면 본가 가서 부모님 얼굴 뵐 자신이 없습니다.”


“허, 너무 당당한 거 아니야? 퇴학까지 고려해볼 수도 있는데요.”


“…진짜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제발 한 번만, 발이라도 핥으라 하면 핥겠습니다. 개가 되라면 되겠습니다!”


“흐음…”


“…”


“뭐 굳이, 내 발을 핥거나 할 필요는 없고. …아 그래, 이거 어때요?”


“예?”


“우리 연구실로 와요. 와도 별로 할 건 없고, 내 조수 일만 잠깐 맡아주면 되는 거지. 그리 오래 할 필요도 없으니까 임시 조교 같은 느낌으로.”


“아… 예, 예.”


“하기 싫으면 말고. 등록금 2년 치 다 날리고 싶으면 그렇게 하세요.”


“따르겠습니다 마스터!”



백연화.


이 대학에서 최연소 교수이면서, 27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S대 박사 학위까지 전부 따내며 교수라는 자리를 차지한 여자다.


명석한 두뇌 뿐만 아니라 자기 관리를 꾸준히 해왔는지 그 외모나 몸매 등은 늘 우리 대학에서 충분히 논란 거리였다.


그리고 난 얼마 전 시험 도중, 남의 답을 힐끗거리며 컨닝하려다가 걸려 퇴학 당할 위기에 처한 사람이고.


그녀랑 평소에 접점은 잘 없었다.


강의를 들으러 오가는 도중에 잠시 마주치는 것 정도?


젊은 교수인 만큼 인기가 많았다.


남자들에겐 겉모습으로, 여자들에겐 본인들의 이상향인 커리어우먼이라며.


각자 다른 방식으로 그녀를 동경했다.


학력도 좋고 얼굴도 예쁘고 관리까지 철저하며 심지어 심성까지 좋다는 소문이 도니, 그야말로 이 시대의 알파 피메일이란 말까지 나오긴 해도….


나는 크게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나의 부정행위 건은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걱정마요. 내 역량껏 대충 처리할 테니까.]


라는 말과 함께 현재까지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고 있고.


확실히 기묘한 사람이긴 하다.


‘어떻게 사람이 저리 완벽하지?’


내가 생각해도 이런 의문은 도저히 우습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들 수 밖에 없는 의문.


심성이 좋다는 말도 부정하지 못하겠다.


내가 저지른 부정행위는 중대한 것이 맞다. 살짝 억울한 것이 있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본인의 조교를 하라는 걸 조건으로 내 죄를 참작시켰다.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그녀가 내 죄를 그냥 넘어가주었다는 부분이 주목해야할 부분이지.


‘딱히 큰 소리를 내고 싶지 않아선가.’


뭐가 어찌됐든 간에 나는 그녀에게 감사해야할 입장이다.


“아… 맞다. 나 거기 문서 좀 갖다주실래요?”


“아,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타다다닥―


“강민 학생은 뭐 졸업하고 할 거 있나요?”


“아니요… 딱히 없습니다. 지금처럼 알바나 하면서….”


“그래요…. 아, 혹시 강민 학생이 연구실 온 지 얼마나 됐지?”


“아마 오늘 부로 한 달 정도 됐을 겁니다.”


딱히 형식적으로 조교가 됐다거나 그런 건 없다.


말만 임시 조교지, 그냥 무급 노예다.


“처음 약속한 기간이 두 달이었죠.”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혹시 뭐 제대로 해볼 생각은 없어요―?”


“예? 아… 그게….”


“아직 못 구하기도 했고 한다면 나름 오래 같이 있었던 강민 학생이 적격이지 않을까 싶어서요.”


대학원에 뼈를 묻을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탐내는 자리라고요? 이런 기회 흔치 않으니까 잘 생각해보는 게 좋아요.”


“…아,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건 그냥 조언인데.”


백교수는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내 귀로 슬며시 다가와.


“…부탁하고 명령이랑 잘 구분하는 것이 사회 생활에는 꽤 도움이 될 거예요.”


라고 속삭였다.


심히 무서운 사람이다. 무서운 사람 정도가 아니라 그냥 아예 대놓고 …하라고 협박하는 꼴이지 않은가. 하지만….


“아 혹시, 그때 그 컨닝 건이 아예 처리됐다고 믿고 있는 건 아니죠.”


“설마….”


“뭐야 진짜예요? 그렇게 안 봤는데 의외로 순진한 면이 있네. 그래도 제 나름 당신을 컨트롤 할 수단이 필요했거든요.”


“협박…입니까?”


“협박이라 봐도 좋고. 난 그래요, 협박이란 게 딱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 뭐 어감이 조금 그러면 통보라는 것도 괜찮고. 그렇죠.”


“…궁금한 게 있습니다.”


“네, 편히 말하세요.”


“대체 무슨 수를 쓰신 겁니까? 아무리 교수라 해도 그런 사건까지 덮을 능력은 안 된다고….”


“…강민 씨가 남의 가정사까지 파고 들 정도로 나와 가깝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살짝만 말해주자면, 여기 총장님이 나랑 상당히 인연이 깊거든.”


쉿―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와 함께.


“아, 그래도 교수 직은 오로지 제가 열심히 해서 단 거예요. 뭐 더 알고 싶으시면 나랑 가족하면 되는 이야기고.”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그게 무슨….”


“아무튼, 잘 생각해봐요~ 우리 연구실 문은 늘 열려 있으니까.”


일방적인 ‘통보’를 내게 툭 던지듯이 하고는 연구실을 나갔다.


지금 상황이 되어서야 나는 근 한 달 전부터 묵혀뒀던 의문이 떠올랐다.


‘어째서 이곳에는 나 하나 뿐인거지?’


언제든지 그런 의문은 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서야 모든 이상함들을 깨달았다.


랩실에 교수와 제대로 된 조교도 아닌 놈, 둘만 있다는 건 솔직히 이상하다.


‘총장이랑 가족인 건가….’


금수저까지 몰고 태어났구나.


백연화가 떠나간 연구실 안에서 나는 한참동안 어안이 벙벙한 채로 멍하니 서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그저 그녀가 만들어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총장이 부모면 이런 것도 되나?’


본인 개인의 랩실을 만들어 그곳을 본인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다.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사립대기도 하고, 애초에 그렇게 커다란 공작도 아니다.


그저 공간을 하나 만들고 그곳을 다른 이들이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일 뿐이니까. 아마 이쪽에 들어오는 예산도 최대한 줄였겠지.


그게 아니라면 그냥 아예 아무 사람들도 들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고.


탈세같은 의혹도 감수하면서까지….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만약… 의도는 무엇일까?


나를 붙잡아두기 위해서?


왜?


수많은 의문들이 내 머리속에서 하나둘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 해답을 찾을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자 금방 사그라들었다.


그 무엇을 생각해도 답과 연관지을 수 없다.


“하아아….”


마른 세수를 했다.


손이 눈을 스치며 감기고 백연화 교수의 얼굴이 떠올린다.


늘 차갑고 무뚝뚝해보이는 얼굴, 무채색을 떠오르게 하는 회색 단발. 그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며 밋밋하나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입담은 상대를 뱀처럼 꽉 조이듯 말해 압박한다.


‘어떻게 해야하나.’


컨닝은 온전히 내 잘못이고, 그때도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살짝 억울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은… 고개를 돌리다가 눈에 들어온 것 뿐이다. 그것이 눈에 들어간 거고. 애초에 대부분이 다 서술형 문제인데.


그렇게 생각해봤지만, 지방에 계시는 부모님의 얼굴은 나의 어깨에 죄책감을 더 얹게 만들었다.


고등학교 때 꾸준한 노력 끝에 인서울을 할 수 있었고 근근이 알바를 하며 학자금 대출을 갚아 나갔다.


그랬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일단은 그녀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다음 날이 됐다.


“잘 선택했어요. 그래, 나는 현명한 사람이 옛날부터 좋더라~”


“그럼 이제….”


“늘 하던대로 해요. 뭐 어차피 임시 조교 느낌이었잖아? 뭐 대신에… 평소랑 달라지는 게 조금 있기야 하겠죠….”


그렇게 말끝을 흐리며 보던 업무를 마저 본다.


잠시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옆에 서서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응? 이제 가봐도 되는데요.”


“묻고 싶은게 있습니다.”


“강민 학생이? …평소에 말도 잘 안 걸더니, 웬일이래요? 뭐 아무거나 물어보세요. 다 대답해줄게요.”


어제의 그녀와 다르게 활발한 분위기였다.


“왜… 아니 어째섭니까.”


“뭐가요?”


“저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유가 궁금합니다. 굳이 협박까지 하시면서 저를 데려온 이유가요.”


“복잡한데… 뭐 그 이유까지 협박으로 해둘까요? 모르는 걸 일부만 알면 나머지가 더 궁금해지는 법이거든요. 지식욕은 끊기지 않아요.”


그녀의 대답에 할 수 없이 백기를 들었다.


“알겠…습니다.”


“쉽게 수용하는 태도도 마음에 드네요. 아, 가기 전에 부탁할 게 있는데.”


그만 등을 돌리고 원래는 임시였던 내 자리로 가려 했으나 그녀가 나를 불러세웠다.


“어깨 좀 주물러 줄래요? 점심도 안 먹고 하니까 어깨가 많이 뭉치네.”


“….”


무어라 반박하고 싶었다.


그녀는 그저 눈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입가만 올린 채로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릴 수 밖에 없었다.


“오, 의외로 손이 작네요. 이름만 보면 내 얼굴만 할 거 같은데.”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죄송합니다.”


“아하하 사과하라고 한 말 아닌데. 나름 칭찬이었어요.”


“…감사합니다.”


“아아… 거기 조금 더 세게 해주세요. 좋아요.”


다소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반응.


작은 손으로 작은 어깨를 살살 주물렀다. 천 너머로 느껴지는 살결은 …의외로 부드러웠다.


“강민 학생. 나 사실 그쪽 본지 되게 오래된 거 알아요?”


도저히 일반 사무용으로 안 보일 가죽 의자에 편히 몸을 기댄 채로 그녀가 말했다. 


“네?”


“반응 보니 모르나보네. 됐어요.”


백연화를 처음 봤던 건 분명 강의 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후후 굳이 기억해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요. 나는 기억하는데… 그때 꽤 인상적이었거든.”


그거 말고도 만난 적이 있었나?


“어? 손이 점점 멈추는데요.”


저런 모습이 살짝 얄미워 손아귀에 힘을 조금 줬지만, 그녀의 어깨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좋다는 듯 고개를 더욱 뒤로 젖힐 뿐.


“후우… 이제 됐다. 좋았어요. 맞다, …그 …혹시 오늘 저녁에 약속 있어요?”


“…없습니다.”


“그럼 나랑 같이 고기나 먹을래요? 여기랑 살짝 떨어져 있는 소고기 집이 맛이 일품인데….”


그녀는 마치 언뜻 내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봐도 그녀가 내게 호감을 가질 이유는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게, 그녀와 나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간단히 나올 수 있는 답이다.


인서울 대학의 교수인 커리어 우먼과 그저 아직 알바로 전전긍긍하는 대학생일 뿐인 나.


“소고기는 제가 부담스러워서….”


살짝 말을 돌리는 걸로 거절해보려 했지만.


“에이, 아까 마사지 비용이라고 생각해요. 오늘부터 정식적으로 내 대학원생이 됐는데. 그거 기념으로도 하고.”


내가 잠시 착각한 걸까.


그녀의 눈빛이 잠시 탁해지더니 원래대로 돌아왔다.


‘잘못 본 거겠지….’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결국 따라가게 됐다.



치이익―


“어떻게 소고기는 좀 입에 맞아요?”


“…예 교수님.”


하마터면 거절했다가 큰일날 뻔 했다.


살치살… 업진살… 등심… 채끝….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진짜 존나 맛있다.


백연화가 아무리 미심쩍고 그래도 소고기는 절대 못 참지. 갑자기 이 사람이 이전 내게 무얼 했었던 간에 천사로 보이기 시작했다.


순간 ‘앞으로 노예 생활, 할만하겠는데?’라는 생각이 떠오르고 말았다.


아아 이런 게 가스라이팅이라는 건가… 그렇다면 가스라이팅은 좋은 게 아닌가? 


“저기… 교수님,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많이 시키면 비용이 부담….”


“후후, 괜찮아요. 강민 학생이 이렇게 잘 먹는 거 보면 전혀 아깝지 않은 걸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밖에서는 교수라 안 불러도 되는데?”


백연화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말한다.


“…예?”


순간 당황한 탓에 얼빵하게 반응했지만, 곧장 우리는 아무런 술도 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의 의중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늘 그랬던 것처럼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내도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유일하게 하나 떠오른 답이 있기는 한데.


‘이 여자가 나를 좋아한다.’


현실적으로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래, 고작 교수라 부르지 말라는 걸로 뭘 이렇게 포장하면서 과대망상을 하는 건가.


“그냥 편하게 하라고 한 건데. 뭘 그렇게 생각하고 그래요.”


“…아닙니다. 평소대로 부르겠―”


“―하라고. 편하게.”


“…네.”


그녀의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압도당했다기보단 찍어 눌러졌다는 말이 더욱 어울리지 않을까. 동시에 눈빛도 변했다는 걸 느꼈다.


‘사람을 보는 느낌이 아니야.’


도저히 방금 저것은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다. 오히려 벌레나 동물같은 걸 보는 듯한….


“그, 그럼 뭐라고 부르면…?”


우선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그 눈을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흐음… 편한 대로 하면 되는데. 누나는 어때요? 해봤자 5살 차이 정도 아닌가? 5살 차이면 궁합도 안 본다는데~”


“누나요?”


“네 대신에 저도 밖에서는 말 편하게 할게요, 어때요? 아니. 어때 강민아?”


이미 놔버린 거구나.


“네… 누나.”


그렇게 한참을 먹고 마셨다.


중간에 술을 더 시키시려고 하시길래 끝까지 만류해봤지만 결국 우리 테이블에는 소주들이 놓일 수 밖에 없었다.


술이 점점 들어가니까 나는 해롱해롱해졌고 백연화는 술에 강한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끄으윽.”


쾅!


정신이 혼미하다… 이마도 아프고.


“많이 취했나 보네. 머리 괜찮아?”


“아으… 네 누나….”


술이 조금 들어가서 그런가, 누나라 부르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조금 어색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최대한 부르는 걸 자제했는데….


“…그래? 집까지 혼자 갈 수 있어?”


“네… 갈 수 있어요. 누나, 죄송한데 택시 좀….”


교수님한테 음주운전시키는 건 조금 그렇지.


잠시 전봇대를 짚고 몇 번의 울렁임을 참자, 저기 멀리서 택시가 오는 게 보였다.


“어디까지 가세요?”


“강민아?”


“신림역에만 가주세요… 나머지는 알아서… 들어갈….”


눈이 점점 감겨왔다.


택시 기사님이든… 교수님이든… 간에 보이지 않게 됐다.



처음에는 별로 커다란 관심이 없었다.


“쿠우우….”


“아이고, 곤히 잠드셨네. 남자친구에요?”


“네~ 그럼요.”


강민은 내 이상형이다. 본인은 딱히 의식하지 않는 것 같지만 나와 비슷하게 감정이 없는 듯한 얼굴에다가 큰 키, 운동 꽤나 한 것 같은 다부진 몸.


강의실 들어가던 도중 복도에서 이 남자와 부딪히고 말았고 내가 흘린 휴대폰을 주워주었다. 그 도중에 살짝 손이 닿았었나.


그때부터 흥미가 조금씩 동했던 것 같다.


“강민아… 도착했어.”


후우웅―


쌀쌀한 바람이 혹여나 그를 숙취에서 깨울까봐 걱정됐지만.


“에에…? 아, 왜 여기 계시는….”


“그런 건 신경쓰지 말고, 집 어딘지 말해줄래?”


“아… 저기 골목쪽으로 들어가서… 유광빌라… 405호… 3095….”


아무래도 다른 년이랑 술을 마시는 일을 만들어서는 안되겠다.


“다른 여자한테는 이렇게 말해주면 안 돼…?”


“네…….”


띡띡띡띡!


띠리링.


그 후로 계속 지켜봤다. 그는 모르겠지만, 그는 그저 강의 때 처음 만난 걸로 기억하고 있겠지만.


흔히 말하는 첫눈에 반했다, 가 맞겠다.


그러다가 마음은 점점 커져서 집안의 힘을 빌려서 그와 함께할 공간을 만들었고 그를 끌어들일 방법을 모색하던 도중.


나는 그가 치르는 시험에 감독관으로 들어가게 됐고, ‘우연히’ 그가 고개를 돌리던 걸 발견했다.


솔직히 부정행위라 말하기도 뭐한 것이었다.


제대로 답을 보지도 않은 것 같고, 바로 고개를 자신의 책상으로 돌렸으니까.


억지로 엮었다.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침대 좋네.”


탕―


그는 내 어깨에 부축당한 채로 있다가 침대에 던져졌다. 다소 취급이 너무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이런 것이 더 마음에 든다.


‘차는 내일 가지러 갈까.’


아무리 집안이 빵빵해도 음주운전까지는 커버쳐줄 수 없으니까.


밖은 추웠지만, 안에 들어오니 몸이 뜨거워졌다. 그의 흐트러진 모습을 봐서 그런가.


“아 맞다.”


휴대폰 카메라를 녹화 모드로 키고 침대 구석에 뒀다.


가디건을 대충 벗어둔 뒤 밴딩 치마를 내렸고, 스웨터도 벗어 방구석에 던졌다.


…평소 성격이었다면 전부 갰겠지만, 지금은 이게 더 급하다.


“쿠우우우…….”


“아무것도 모르고 잘만 자는구나. …지금까지 미안해? 협박같은 거 해서. 그치만, 네가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 거 같으니까…. 그도 그럴게 넌 나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도 보여주지 않았잖아.”


혼잣말을 시작했다. 이미 잠들어버린 그에게.


“다른 남자들은 나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였어. 타 과교수들도 그렇고, 심지어 학생들까지. 그렇지만, 너는….”


나또한 침대에 걸터앉아 이미 골아떨어진 강민을 내려다보며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물론 그 어떤 반응을 보였어도 네게 관심을 보였을 거야.”


뺨, 코, 입….


슬며시 상체를 낮추어 거리를 좁혔다.


“하아… 하아….”


나답지 않은 천박한 숨소리가 울려퍼진다.


나와 그의 입을 조금씩 포개어갔다. 따뜻했다. 그는 처음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처음이니까, 무언가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아, 혹시 처음이 아니라면 조금 짜증날지도.


혀를 넣어 그의 안을 탐하자 나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 게 느껴진다.


그렇게 나는 그날 밤, 내가 지금까지 염원했던 것을 이루었다.



아침이 밝아와 내 눈을 두드렸다.


“끄으으아악….”


숙취로 인해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게 느껴졌고 그걸로 어제 술을 진탕 마셨다는 걸 깨달았다.


‘교수님은… 잘 들어가셨나.’


전화라도 해보려고 했지만 전화번호조차 없었다.


‘…? 내가 옷을 벗고 잤었나.’


겨울이라 추울 만도 한데 이상하게 몸이 따뜻했다. …포근하다고 해야하나?


일단은… 학교로 가봐야겠지.


늘 하던 대로 씻은 뒤 옷을 갈아입고 바쁘게 집을 나섰다.


…침대에 무언가 묻어있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왔어요 강민 학생?”


“예 누… 아니 교수님.”


“안색이 안 좋아보이는데 괜찮아요?”


“아뇨 숙취가 조금 심해서….”


“숙취해소제라도 사먹어요.”


“알겠습니다….”


잠깐만, 왜 교수님에게서 내 샴푸향이 나는 거지?


그저 우연인가? 아니면 내가 헷갈린 건가?


그제서야 내 몸에 새겨진 이상을 깨달았다. 급하게 금방 씻는다고 그냥 피부 트러블이겠거니 하고 나왔는데. 아무리 봐도 그건 립스틱 자국이었잖아. 그 뿐만 아니라 온몸이 좀 쓰라렸다.


이 증거들로 추론할 수 있는 사실은 하나밖에 없다.


아무리 눈치 없는 나라도… 이건.


“…교수님. 혹시 어제, 저희 집에 오셨습니까.”


나는 혹시나 하는 가능성에 물었다.


그녀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녀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냥 넘기려고 한다. 제대로 된 물증도 없는 상황이니까….


“….”


고개를 돌리려던 그때, 강한 힘이 담긴 손아귀가 내 어깨를 부여잡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는 것처럼 바닥에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그녀가 능숙하게 나를 업어친 것이었다.


“아… 그래도 조금 늦게 알아챌 줄 알았는데.”


“지금 이게 무슨…!”


그녀가 나의 위에 걸터앉았다. ‘능숙하게.’


“아, 언성 높이지 마요.”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꺼내 영상을 튼다. 그곳에는 무의식 중의 내가 그녀를 격하게 탐하는 장면이 나왔다. 서로의 욕망을 나누고, 몸을 뒤섞으며….


“대체 어떻게….”


“강민 학생… 힘이 좋더라고. 으으, 아직도 아랫배가 쑤셔.”


“교수님!!!!”


순간 너무나 화가 나 목청 힘껏 소리를 질렀다.


“아, 씹 소리 지르지 말라니까. 아기가 듣잖아?”


그렇게 말하며 자기 배에 손을 올린다.


어안이 벙벙해 입을 제대로 닫지 못하고 있었다.


“…!!!”


“아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우와, 표정 봐. 전에도 그렇고 강민 학생은 참 순진한 면이 있다니까. 뭐 돈을 달라거나 그런 거 아닌 건 당연히 알죠?”


“….”


“협박인 것도 많이 당해봤으니까 알겠죠?”


“….”


“정식으로 말할게요. 나랑 애인 하자고.”


“….”


“아까 했던 농담을 진실로 만들 때까지 진득하게 해봐요….”


“아, 아아….”


내가 했던 생각이 맞았다는 건 기분이 좋다.


그러나 내가 당연히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게 맞아버리면, 그건 상당히 놀랍다. 그리고 충격적이지.


“열심히 해봐요. 누가 알아? 나를 한 번씩 보낼 때마다 성적이 달라질 수도 있잖아요…?”


나는… 노예가 됐다.





똥글봐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