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얀 교수가 사람을 잡아먹었다.


여교수에 대한, 마법 대학 내 파다하게 퍼진 소문이었다.


대상은 제자였다.



"그래서 20년 전 그날 이후로, 그 조교를 다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더라."



대학교의 잔디밭 아무 곳이나 깔고 앉은 여학생들이 조잘거렸다.



"진짜야? 무섭다, 무서워!"


"어떻게 쿠키 밀가루 안에 사람을 넣어 먹어! 징그러워!"


"얘는, 그 말을 믿니?

얀 교수 액면가를 떠올려봐."



소문으로야 20대 후반이 아니냔 말이 떠돌기도 한다는 얀 교수.


얀 교수의 외모는 젊고 젊었다.


한번은 짓궃은 학생들이 옆 대학교의 학생들과의 단체 소개팅에 동석을 권하기도 하였다.


"사람수가 부족합니다." 하는 것이 주장이었다.


얀 교수는 "됐습니다. 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라며 거절했다.



"교수 되려면 10년 가까이 걸렸을 텐데,

20년 전부터 교수였으면 얀 교수는 이미 할머니야! 할머니!"



아니뗀 굴뚝에 연기 나랴 싶지만 틀린 지적도 아녔다.


말을 들은 여학생은 "그런가." 라며 얼버무렸다.


좌우간 비정상적인 수준으로까지 젊고 어린 외모의 얀 교수.


주름살 하나 없는 두부 같은 피부의 얀 교수의 이마에도, 가끔은 주름이 태어나곤 한다.


아니, 실은 꽤나 자주.



"맛이 좋네요."



집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던 얀 교수가 돌연 인상을 썼다.


귀엽게 보이기엔 충분히 아담한 체구와, 성숙미가 돋보이는 어른스러운 몸매.


녹발 녹안의 이 괴팍한 교수는

맛난 걸 먹어도 인상을 쓰고

맛이 없는 걸 먹어도 인상을 썼다.


여름날 삼림의 활기를 본뜬 듯한 녹색의 눈.


얀 교수는 이 푹신한 깊은 눈을 찡그렸다. 


얀 교수가 쿠키통 속 다른 쿠키에 손을 댔다.



"이것도 조금 새콤하지만 맛있고."



이번엔 사과맛 쿠키였다.


어느 벼락 맞을 파티셰가 쿠키에 사과맛을 넣을 생각을 한 걸까.


의문스러울 법도 했지만 얀 교수는 오물오물 먹어치웠다.



"사과맛이면 그 이가 좋아했을 텐데."



얀 교수가 옛 남자를 떠올렸다.


"봐요. 누나 눈망울 닮았잖아요." 라며 덜 익은 사과를 베어물던 남자.


한번은 "그럼, 저라고 생각하면서 먹는 거란 말이에요?" 하며 얀 교수가 웃자

남자가 말없이 응시한 적이 있었다.


얀 교수는 그 꼴을 지그시 보다가 뒤늦게 깨우치고 얼굴을 붉혔다.


얀 교수가 돌연, 회상을 멈추고 눈두덩이를 눌렀다.



"헛짓거리. 헛짓거리를.

더 의미도 없는 걸 왜 생각하는 걸까요."



얀 교수가 쿠키가 들어있던 상자를 닫아버렸다.


쿠키통을 더 보기 싫었던 건지, 교수는 냉장고에 쿠키를 대충 밀어넣었다.



"전부 헛짓거리... 헛짓거리."


'쿵 쿵 쿵'



영문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얀 교수의 귀에 신선한 충격이 들어왔다.


연 교수가 낸 소리는 아니었다.


홧김에 물건을 두들기는 버릇은 작년, 테블릿 pc를 박살냈을 때 고쳤다.


노크였다.



"택배일까요."



얀 교수의 머리에 택배를 시킨 기억은 없었다.


그렇다면 손님이렸다.


우울감이 부흥하려는 지금, 손님이라?


얄궂은 타이밍이지만 분위기 쇄신에는 제격이었다.


철제 문을 여니 교수가 모르는 남자였다.


학생인가?


그럴 리 없었다.


일개 학생이 무슨 수로 교수 집 주소를 다 알겠나.



"누구신가요?"



대답은 않고, 낯선 남자가 모자를 벗었다.


검은 야구모자의 아래에는 모자 못지 않게 검은 단발이 있었다.


얼굴은 평범하게 생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관상이었다.


20대 초반의 젊은이겠거니 싶은 인상과 의미불명인 괴상한 센스의 티셔츠를 빼면,

남자의 외모에서 개성 일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초목색의 티셔츠엔 [맥반석 계란 2판 2만원] 이라는 글씨가 써있었다.


남자는 얀 교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 몰라?' 하는 눈치였다.



"저... 누구신지."



옆집인가?


아는 사람이었다면 뻘춤할 터였다.


이때 얀 교수는 평소보다 세배 빠른 속도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말하자면 적색의 속도였다.



"저에요 저."



생면부지의 사람이 교수 자신에게 친근하게 굴었다.


교수에게 인지부조화가 오고 있었다.


교수가 아무렇게나 말을 던졌다.



"참! 뒷집에 사는 철수씨군요!

이제야 알아봤네요."


"뒷집에 사는 아이 이름이 철수인가요?

거기 빈 집 같던데."



아차차, 뒷집은 반년 전에 비워졌다.



"그럼 중학교 때 길수 선생님이시로군요!

오랜만이에요!"


"저 그렇게 나이들어보이나요?"


"... 아뇨."



끙끙.


이마에 손을 얹고 얀 교수가 물었다.


조심스럽게.



"혹시 공무원한다던 희수에요?

유니콘 고등학교 동창이던."


"여자 이름 아니에요?"


"걔가 의외로 남자였거든요."


"제 이름은 아니네요.

전 이름이 '수' 로 끝나지도 않고."


"으극."


"서운하네. 알려줘요?"


"네. 누구신가요?"



얀 교수 궁금한 표정으로 재촉했다.


재촉하는 모습에는 어딘가, 먹이를 조르는 새끼 새 같은 일면이 있었다.


어쩌면 얀 교수의 작은 신장 탓일지도 모르겠다.


얀 교수에게서 음울함의 그늘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눈앞의 남자가 얀 교수의 감정을 바꿔놓은 것이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썩지 않는 몸' 이 된 이래로 무얼 먹고 무얼 행해도 쉽사리 동요하지 않는 정신상태가 되었는데.


얀 교수 자신도 속으론 내심 놀라고 있었다.



"저에요 누나. 오랜만이죠?"



방금까지의 인사와 다른 점이라곤 '누나' 뿐이다.


뭘 어떻게 알라는 건지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자기소개였다.


교수가 고개를 갸웃하자 남자가 교수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당황한 사이에 남자의 팔이 교수를 한바퀴 휘감았다.



"20년 만이네요 누나.

이거 들고 왔어요. 첫 데이트 때 생각나서."



남자가 뒤에서 화분을 하나 꺼냈다.


화분엔 이름 모를 풀이 자라고 있었다.


문득, 얀 교수가 과거를 떠올렸다.


첫 데이트로 화분을 선물하는 기괴한 센스.


추억을 자극 받은 교수가 눈이 휘둥그래져서 외쳤다.



"김 조교?"


"응."


"김 조교 죽었잖아요. 마력 역류로!

분명히 원자분해 됐을 텐데!"



대학 내 마법식 연구실을 반이나 날려먹은 대사건.


얀 교수는 그 사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설명하면 복잡한데... 나 이렇게 현관에 세워만 둘 거에요?"


"믿을 수가 없어서 그래요.

제가, 저, 제가 똑똑히 봤어요.

나 놀리는 거죠, 지금?"


"이 누나 의심 많은 건 여전하네."



남자가 몸을 일으켜 집 주인에게서 떨어졌다.


남자가 품에서 펜을 꺼냈다.


허공에 펜을 휘적거리더니 남자가 중얼거렸다.



"브리라 오스쿠리드."



펜대에 환한 빛이 생겨났다.


빛을 만드는 마법은 이제는 흔하지만, 이 마법에는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토대가 되는 마법식이 흑마법이었던 것이다.

음울하고 어두컴컴한 흑마법으로 광원을 생성하는 기록적인 업적.


일찍이 '김 조교' 가 발명한 마법이었다.


마력 효율이 안 좋아 학계에 발표하진 않았기에,

이 마법을 아는 사람은 지도 교수이던 얀 교수와 발명한 당사자 뿐이었다.



"이거 김 조교가 만들었던-."


"토도스 엔쿠엔트란 마드레."



곧이어 남자가 20년 전의 주문을 읊었다.


남자를 '죽인' 마법이었다.


얀 교수가 흠짓하였다.



"그때 썼던 마법이었죠.

이제 믿어요?"



얀 교수가 얼어붙어서 아무 말도 않았다.


"아님 내가 누나랑 첫날밤 보냈던 얘기까지 해야겠어요?" 라고 하자, 그제서야 얀 교수가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얀 교수의 두 팔이 남자의 몸을 안았다.


얀 교수가 눈물을 흘렸다.



"정말 아카군요. 아카, 흑, 우리 김아카!"



김아카.


당시 김 조교의 본명이었다.


남자는, 김아카는 일단 안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몇번인가 청하다가 포기했다.


전前 조교는 순순히 교수의 머리에 손을 얹고 토닥였다.



"그 사고만 아니었으면, 히끅... 아무 일 없었을 텐데!"


"괜찮아요. 괜찮아."


"저 때문에... 제가, 저가 하자고 부탁해서...."



20년 전 사고.


당시 조교이던 김 조교는 께름칙하다며 그만두길 권한 바 있었다.


연구의 진행을 부탁했던 이는 불로의 몸이던 얀 교수였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흑!

제가 김 조교, 히끅, 말을 들었어야... 했어요!"


"괜찮아요. 저 이렇게 돌아왔잖아요."


"20년, 흐윽, 동안 하루하루 꿈 같아서, 악몽 같아서... 언제 깨나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김 조교가 얀 교수의 볼을 주욱 당겼다.


마법계 전대미문의 썩지 않는 몸답게, 탱탱한 젊음을 과시하는 얀 교수의 뺨.


뺨이 찹쌀떡처럼 늘어나 얀 교수의 눈물궤도를 비틀었다.



"이 피부 보니 누나는 실패했나보네요."


"흐극, 지금 그 말이... 훌쩍! 나와요?"


"우는 건 나중에 해요 누나.

저 멀쩡하다니까요. 어쨌거나."



*



20년 전, 한 마법 대학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흑마도학 계열의 랩에서 마법이 폭주를 한 것이었다.



"생명을 건드리려고 하다니 분에 넘친 거죠.

흑마법으론 재현 못하는 게 생명인데.

물 마법으로 불꽃을 만드려는 꼴이라고들 수군거렸다고요."



일찍이 언론에, 당시의 동료 교수는 그렇게 증언한 바 있었다.



"음침하게 저주하고, 죽이고, 묶고, 괴롭히고... 그런 게 흑마법이잖아요.

무슨 생명을 건드려요, 흑마법이."



이 부분은 보도 전, 당사자의 강력한 의사에 의해 편집된 부분이었다.



"하긴!

애초에 연구 목적부터가 그런 흑심 가득한 사유였는데, 성공할 리가 없죠!"



다들, 그리 단언하면서도 연구 목적을 물으면 쉬쉬했다.



"앗, 엇, 아, 그건 그... 제가 말할 만한 건 아니고, 그게-."



'그 연구' 는 인구에 오르는 것을 기피당하곤 했다.

 

때문에 20년 전 사건은 많은 이들이 알면서, 또 많은 이들이 몰랐다.


여하간 20년 전의 마법 폭주로 몸이 터져 죽었다고 알려진 게

당시 얀 교수의 제자 겸 연인이었던 김 조교.


20년이 지나고 거짓말처럼 어디선가 나타난 것도 '그' 김 조교였다.


김 조교는 얀 교수와 빠르게 재결합하였다.



"우리 다시 사귀는 거에요? 조교님?"


"누나만 좋으면 그러죠."


"제가 왜 싫겠어요. 좋아요! 좋아좋아!"



얀 교수는 어린애처럼 기뻐하였다.


둘에게 각기 바뀐 점도 있었지만 긴 시간의 공백은 별 문제가 되지 못했다.



"참, 이제 김 조교 아니에요."


"예?"


"이제 학생이에요. 김 아카 '학생'."


"조교 관두려고요?"



일순간 얀 교수의 눈빛이 흔들렸다.


남자는 여자의 눈에서 불안과 죄책감을 읽어냈다.


남자의 의외의 답변을 돌려주었다.



"누나, 저 올해 신입생인데요?"


"네에?"



버너 앞에 서 있던 얀 교수가 뒤돌아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식탁에서 얀 교수를 향해 이러쿵저러쿵 설명했다.



"사고가 그렇게 됐으니까 저 올해로 21살이라고요. 누나.
아마 누나 수업도 들어갈 텐데."



그 말에 얀 교수가 제 나이를 헤아려보았다.


몸의 나이였다.



"제가 스물다섯에 몸이 멈췄으니까 스물하나라면-."


"스물다섯이요? 누나 저보고는 항상 스물셋이었다고 하셨잖아요."


"마, 만으론 스물셋이에요!"



얀 교수의 아이 같음에, 남자가 피식 웃었다.


얀 교수는 낯빛을 붉히고는 "어서 먹기나 해요." 라며 쟁반을 건넸다.



"의외네. 누나 요리하는 거 안 좋아했잖아요?"


"마지막 날 아침에... 못 해줬으니까."



여자는 미안한 낯이었다.



"그렇게 먹고 싶어했는데 귀찮다고 안 해줬잖아요.

계속 마음에 걸렸어요."



화도 내고, 미안해하기도 하고.


분주한 얼굴이었다.



"먹고 오늘은 돌아갈게요.

누나 봐서 기뻤어요."


"어딜 가요?"


"하숙집으로 가야죠.

아, 집은 지방이고 방을 구했어요.

학교 근처. 여기서도 가까워요."


"그래요?"


"종종 올게요."



얀 교수가 입을 삐죽였다.


노골적으로 주장은 못하고 이리저리 포크로 방울토마토를 굴렸다.


덕분에 식탁에 남은 건 고요함 뿐이었다.


김 조교는 김 조교대로 고요함을 즐기는 걸까?


식사 중에 멀찍이 창가의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꽃은 싱그러워 아름다웠다.


김 조교가 주었던 화분이었다.


죄 없는 방울토마토가 터질 즈음, 얀 교수가 속내를 드러냈다.



"여기서 사세요."


"예?"


"예전엔 동거했잖아요. 그때처럼 같이 살아요."


"저, 짐도 있고, 계약도 했는데."


"짐이야 옮기면 되고 계약은 깨면 되죠.

떨어지기 싫어요. 매일 아침 먹여주고 싶어요."



"아니면 난 이제... 싫은 거에요?" 란 말이 나왔을 땐 김 조교에게 선택권이 없었다.


'어지간히 내가 그리웠나보구나'.


김조교는 그리 속단하고 받아들였다.


문제는 수용이 김 조교의 독단이었다는 점이다.


정보는 퍼지기까진 시간이 걸렸다.



"어제 하숙집에 왜 안 들어왔냐?"



다음 날 아침, 남자가 우연히도 정문에서 지인을 만났다.


남자에게 있어서는 별로 친하지도 않은 지인이었다.


지인의 아침 인사는 느닷없었다.


혹여 방해가 될까, 옆에 꼭 붙어서 걷던 얀 교수가 뒤로 빠졌다.



"근처 아는 사람 집에서 잤어."



남자는 적당히 둘러댔다.


얀 교수의 집에서 취침하며, 간밤에 물고 빨았다.... 따위의 내용을 속속들이 보고할 필요는 없었다.


지인은 성을 냈다.



"이런, 씨! 내 이럴 줄 알았지. 나만 바보됐네 이거!"


"무슨 일인데."


"하숙집 아줌마가 너 왜 안 오냐고 어제 내내 들볶았다고."


"내가 어제 밤에 뭘 했을지 네가 어떻게 알아."


"내 말이 그 말이야. 나도 똑같이 말씀드렸다고!

그래도 걱정을 하시길래 내가 친절히 추가설명까지 해드렸어!"



남자의 지인이 불만스런 얼굴로 과장되게 연기하였다.



"혹시 모르죠.

걔도 청춘이니까 누구네 집 여식을 낚아다 솎아먹고 있을지.

그냥 놔두세요 아주머니. 대학생들이 다 그런 법이에요.


특히나 녀석은 뭐랄까, 이 집에서 가장 연약한 녀석이고요.

그리고 연약한 것일수록 더 이성을 밝히기 마련이죠. 

이건 세상이치가 그래요."


"그렇게 말했다고?"


"이 어투, 이 문장으로 똑같이 들려드렸지."



남자는 기가 막혀 "허, 참, 나." 하는 단말마를 뱉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 부정은 하지 못했지만.


자신은 예외라는 듯 '세상이치' 를 떠벌리던 철부지 대학생이 말을 이었다.



"그랬더니 아줌마가 그러더라.

너는 여지껏 쉬는 날에도 백날천날 공부만 하던 성실한 학생이라고.

나랑은 다르게!"



남자가 전화기를 살펴보니, 과연 문자가 몇통인가 와있다.


어젯밤에 보낸 문자였다.



"근데 오늘 보니 이게 뭐야! 제대로 말해준 나만 바보 됐잖아."


"미안해. 아주머니한텐 내가 나중에 연락해볼게."



성가시다는 말투.


칭얼거리는 사람의 입을 사과 한마디로 틀어막는 격이었다.


남자는 지인과 곧 헤어졌다.


강의가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누구에요, 그 여자?"



얌전히 지켜보던 얀 교수가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의 지인에 관한 질문이었다.


문장에 적개심이 숨어있었다.



"건너건너 아는 사람이에요."


"잘 아는 사람처럼 친근하게 굴던데요?"


"얼굴은 많이 보니까요.

같은 하숙집에서 살아요.

친하진 않고요."



따지자면 서로 앙금이 있는 사이에 가까웠다.


'내 돈 80만원 안 갚는 여자'.


남자의 마음 속에서 하숙집 동료에 대한 인상은 확고했다.


얀 교수는 알 길이 없었다.



"정말 안 친한 거 맞아요?"



아하.


이 여자, 질투를 하고 있었다.


남자는 눈치챘다.


얀 교수의 독점욕이야 20년 전에도 심심찮게 관람했던 자가 김 조교였다.



"저런 애의 어디가 좋다고 친구를 먹어요?"



남자는 안심시키려 그리 말했지만, 악효과였다.


얀 교수의 뇌에는 한 단어가 박혔을 뿐이었다.


'좋다'.


얀 교수에겐 마냥 불안한 낱말이었다.


얀 교수의 불안감은 무의식 한구석에 침체되어 남아있었는데, 이는 몇달 후에 더 커졌다.


발단은 두 남녀가 저녁을 들던 어느 날이었다.


"누나 잠깐만요." 라며 남자가 자리를 떴다.


일어나는 남자의 손에는 전화기가 들려있었다.


남자는 그날 하루의 식사 도중에만 대여섯번을 그랬다.


이쯤이면 궁금해지기도 하고 무서워지기도 하는 법.


그날 밤, 얀 교수가 행동했다.



"자요?"



대판 밤놀이를 즐긴 김 조교는 답이 없었다.


김 조교의 몸 위에서, 알몸으로 포개져있던 얀 교수가 살그머니 등을 폈다.


김 조교의 것과 밀착되어있던 얀 교수의 가슴이 조금씩 들어올려졌다.


그 크기 탓에 완전히 공중에 뜨게 되기까진 시간이 걸렸다.


얀 교수가 조심스레 침대에서 내려왔다.


여자는 김 조교의 전화기를 찾았다.



"이래도 될지 싶지만...."



여자가 김 조교 쪽을 힐긋 바라보았다.


남자는 코를 골기 바빴다.


남자를 향한 죄책감이 물씬 치밀었다.


그래도 여자의 초조함이 더 컸다.



"미안해요."



연인을 신뢰했다는 걸까.


전화기에는 비밀번호조차 걸려있지 않았다.


최근 통화목록에 금새 들어갈 수 있었다.


발신자 명에 여자 이름이 써져있었다.



"'수아' 가 남자 이름은 아닐 텐데요...."



카톡을 둘러보니 이번에도 의미심장한 이름이 있었다.



"리사?"



이번에도 틀림없는 여자이름이었다.


나눈 대화로는 '잘 들어갔어?', '어제는 재밌었어.' 따위의 내용을 영어로 옮긴 것이었다.


'관심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와' 라는 리사의 마지막 메시지에서, 여자가 신음하고 말았다.



"아읏... 으으음."



이 남자는 뭐란 말인가?


여자 자신은 스무 해가 넘게 남자만 그리워했다.


죽은 게 확실하다고 판단했을 때조차 남자만을 마음에 품어왔다.


한데 이 남자는 뭐란 말이던가?


"심지어 한명도 아니라고요?"


여자가 남자를 노려보았다.

수마에게 패배하여 무방비한 꼴로 자고 있는 남자.

얀 교수가 위험한 눈으로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보니 석사 시절 배운 마법 중에 고문에 쓰는 마법이 있던가?

'진정으로 자기 죄를 뉘우칠 때까지 천장에 거꾸로 매달아두는 마법' 인가 뭔가 하는.


"지팡이는... 식탁에 올려뒀던가요."


*

하편 링크
상편 하편 합쳐서 하나임
왜 자꾸 에러가 나냐

얀챈은 처음인데 대회 있길래 있는재주없는재주앞구르기뒷구르기옆구르기 해서 써봤음

성행위 묘사는 최대한 뭉개버렸는데 조심해서 나쁠 거 없을 듯 하여 19 붙임.

완장이 보고 아니다 판단하면 떼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