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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서일까?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의문을 품은 힘없는 소리가 새어 나갔다.


나는 떨리는 두 눈으로 하늘이를 바라봤다.


아무 말 없이 교실을 나가고 있는 하늘이.



"잠깐만 하늘아, 내 말 좀 들어줘..!"



"너랑은 할 말 없어."



각목으로 뒤통수라도 맞은 듯이 굳어지는 몸.


끔찍한 악몽에 가위라도 눌린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쫓아가 봤지만,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하늘이.


하늘이는 그 쓰레기 같은 놈과 사귀었던 나에게 화가 난 게 분명해.


사태가 더 심각해지고 있어.


사과해야 해.


용서받아야만 해.


근데 어떻게?


사과 같은 거 한 번도 해본 적 없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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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틈날 때마다 하늘이를 찾아갔지만, 하늘이는 눈에 띌 정도로 날 피하고 있었다.



'어떡하지.. 하늘이가 날 전혀 봐주지 않아..'



오만가지의 걱정거리가 내 마음속을 휘저어 놓았다.


아까부터 구수한 발음으로 영어문장을 읽던 선생님의 수업을 뒤로하고 초조한 마음에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고 있었다.


어느새 핏물이 맺힌 엄지손톱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던 순간.



'아. 그럼 되겠다.'



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짐을 싸 들고 학교를 나왔다.


시간을 아껴야 해. 준비할 게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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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잘게 썬 대파랑 고추를 넣어주고 5분 정도 더 끓여주면... 아! 기다리는 동안 소시지도 볶아야겠다."



나는 학교를 나와 마트에서 장을 보고 곧바로 하늘이의 자취방으로 찾아갔다.


다행히 비밀번호가 그대로였기 때문에 현관문으로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하늘이가 좋아하는 짜글이랑 계란말이, 소시지볶음까지.. 완벽해! 후후."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밥을 차리며 하늘이를 기다리는 모습.


지금 모습이 마치 신랑을 기다리는 색시와 같아서 입가의 미소가 지워지질 않아.



"나랑 같이 살게 되면 이런 집밥 평생 해줄 텐데.. 아픈 날엔 죽도 쒀주고, 하늘이는 움직이기 힘들 테니깐 내가 직접 떠먹여주는 거야. 아픈 거 빨리 나아버리라면서 키스도 해주고.. 흐흐흐."



하늘이를 기다리면서 침대에 엎드려 보았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하늘이의 체취.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크게 심호흡을 반복했다.


계속해서 하늘이의 체취를 맡으며 자꾸만 욱신거리는 음부에 손을 갖다 대었다.



"하아... 이러면 안 되는데.. 곧 있으면 하늘이가 올 텐데.."



내 손은 고장이라도 난 듯 사정없이 가랑이를 비벼댔다.


누가 보면 변태라고 오해할 수밖에 없는 행동.


고요한 방안에 질척거리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흐읏..! 어떡해.. 멈춰야 하는데..!"



처음 느껴보는 쾌락에 취해 제대로 된 사고가 불가능했다.


끝내 행위를 멈추지 못하고 쾌락의 끝을 맛보려는 순간 도어락의 장금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란 나는 재빨리 옷매무새를 바로 하고 현관문 앞에 섰다.


발갛게 띈 홍조를 가라앉히며 지긋이 하늘이를 바라보았다.


아직 눈앞에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였는지 의아한 표정을 짓는 하늘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하늘이를 대신해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어서 와 하늘아. 네가 좋아하는 짜글이 해놨어. 식기 전에 빨리 먹자!"



"..네 멋대로 우리 집에 들어와선 뭐 하는 짓이야?"



"아.. 하늘이 너한테 꼭 해야 하는 말이 있어서.. 있잖아 하늘아..."



"빨리 나가. 아는 척도 하기 싫다며? 나가라고!"



"아..아니야. 그게 아니야 하늘아.. 그게 아니라.."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 화가 난 하늘이는 처음이거니와 사과 따위 해본 적 없는 나에겐 아무 요령도 찾을 수 없었다.


아직 신발도 벗지 않은 하늘이는 그 고운 얼굴을 구기며 다시 현관문을 열었다.



"어디 가는 거야 하늘아..!"



"넌 알 필요 없잖아."



"내..내가 나갈게..!"



서둘러 짐을 챙긴 나는 하늘이를 피해서 문밖으로 나갔다.


아직, 아직이야.



"저 하늘아.."



지금이라도 말한다면.



"...내일보자."



하늘이와 나 사이에 굳게 닫힌 문.


이게 뭐야.


내일 보자고?


겨우 그딴 말을 하려고 여기에 온 게 아니잖아.


하늘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서 주면 당연히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늘이를 본 순간부터 무릎이라도 꿇었어야지, 머리라도 조아렸어야지.


하늘이가 원한다면 눈알이라도 뽑아 씹어먹을 각오까지 하고 왔는데.


시시하고 보잘것없는 나의 자존심이, 나의 오만함이 너무나도 밉다.


밖으로 나오니 하늘엔 별 하나 없이 새까맣다.


이제 봄이 시작한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너무나도 차가운 바람.


온몸을 때리는듯한 바람을 맞아가며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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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


어렸을 때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내 외모는 곧 나의 힘이 됐고 나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줬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자신을 낮추며 다가와 주는 여자애들.


조금만 관심을 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남자애들.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우러러본 적이 없다.


이런 나의 삶은 완벽하다고 생각했고 후회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왜 죄다 초딩들 얘기밖에 없는 거야!"



지금 나는 인터넷에 '친구랑 화해하는 법' 같은 거나 검색하고 있다.


진심을 담아 사과해라, 친구의 입장에서 생각해라, 자존심을 낮춰라.


온통 당연한 얘기들뿐.


18살 먹었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방법인걸.


하지만 방법을 알아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내가 한심하다.


1시간이 넘게 인터넷만 찾아보던 나에게 한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아ㅋㅋ 결국 여자 싫어하는 남자 없다고ㅋㅋ 계속 들이대셈 알아서 화 풀릴거임-



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