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대학원생이라고 소개를 하면 사람들은 안쓰럽다는 듯이 쳐다보거나, 괜찮냐는 말을 한다.
뭐, 대학원생과 관련된 유머가 많이 과장돼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만.
물론 대학원생이 피곤한 부분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책상에 수없이 늘어져 있는 에너지 음료만 있다면 걱정은 없다!
까지가 농담이고, 확실히 힘들다, 매일 읽어봐야 하는 수많은 양의 논문과 그 논문들을 해석하기 위한 언어 실력, 몸담은 학과에 전문적인 이해, 수많은 소 논문과 논문 작성….
이것으로 끝나면 참 좋겠지만, 우리 교수님은 우리 제자들에게 애정이 각별하셔서 매일같이 작성하는 논문들을 보고 피드백해주신다.
그렇게 오늘도 피드백을 에너지 음료와 곁들이며 밤을 보내고 있었지만...
극에 달한 피곤을 에너지 음료로는 어떠하지 못하는 것인지 그만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톡, 톡.
“어헉! 졸지 않았습니다! 페툴라 교수님!”
“풉!”
웃음소리에 바로 뒤를 돌아보니 선배가 악동같이 짗궃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하하, 과장돼서, 설마 밤새도록 여기에 있었던 거야?”
선배의 장난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에서야 긴장이 풀려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리는 와중에
툭.
외투가 떨어졌다.
선배를 쳐다봤지만, 선배는 자기는 모르는 일인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야, 설마 내가 장난 하나 쳤다고 삐진거야?”
여기에서 대답해봤자,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할 것이 뻔하지.
“피곤해서 선배한테 나머지는 맡기고 저는 가보겠습니다.”
선배는 과장된 몸짓으로 안타깝다는 표현을 하고 있을 때, 잽싸게 나와버렸다.
문을 열고 나오니, 벌써 날은 밝아있었고 바람은 꽤 세차게 부는 것을 보며, 확실히 가을답다는 느낌을 받았다.
누구것인지 모르겠는 외투를 바라보며 입어야 할지, 말아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외투를 걸쳤다.
“깨끗이 빨아서 연구실에 있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되겠지.”
바로 잽싸게 집으로 가려고 하였지만, 근처에 날 발견한 친구들에게 붙잡히고 술을 진창 마시고 말았다.
…………
“아, 머리….”
숙취에 아픈 머리를 감싸 안고, 휴대폰을 찾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물컹.
평소 휴대폰을 놓는 자리인 침대 한쪽에는 휴대폰이 아닌 여자가 있었다.
벌써부터 멘탈이 나갔지만, 여자의 얼굴을 보고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나의 지도교수님인 페툴라 교수님이었으니까.
“으응?”
교수님이 살짝 눈을 찡그리며 내는 신음에 귀엽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일단 정신 나간 생각을 멈추기 위해서 그대로 화장실로 도망쳤다.
어떻게서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찬물로 박박 얼굴을 닦던 와중.
“깼어?”
페툴라 교수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담배를 물며 말씀하셨다, 그런 태도보다 더 신경이 쓰였던 것은…
알몸이였다는 점이었다.
아무런 말도 못하고 어버버 거리는 것을 보셨는지, 페툴라 교수님은 웃으며 담배를 한 모금 빠셨다.
“귀엽네, 외모는 여리여리해서 여자애들 많이 꾀었을 줄 알았는데?”
멘탈이 완전히 나가버려, 담배 연기를 하염없이 쳐다보자 페툴라 교수님이 말을 계속 이으셨다.
“아, 미안, 집주인 허락도 안 받았는데 담배를 피웠네? 한 모금 필래?”
페툴라 교수님은 가볍게 웃으시면서 피우시던 담배를 입에 물려주셨다.
“깊게 들이마시고.”
나도 모르게 몸담은 교수님의 리드에 따라 담배를 피우게 돼버렸다.
“연기를 너의 몸에 가둔다고 생각하며, 삼키고.”
과하게 올라오는 매콤함과 그걸 미묘하게 달래주는 약한 단맛이 호흡기에 가득 찼다.
“뱉어.”
후.
참았던 숨을 내뱉자, 담배 연기와 함께 아주 잠깐 내 고민이 달아났다.
그런 나를 페툴라 교수님은 웃으며 바라보고 계셨다.
“난 이제 씻어도 되겠지?”
그 말에 바로 정신이 퍼뜩 들어버려 자리를 비키기 바빴다.
그렇게 교수님이 씻는 동안 나는 휴대폰을 찾아,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찾기 바빴지만…
교수님이 나올 때까지 그 답을 찾지 못했고
“푸흡”
페툴라 교수님은 내 모습을 보시고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고 있는 모습에 나와 또래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처음 논문을 냈던 20살 때부터 학계에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고, 30살의 나이에 지금은 터키 최고 대학의 교수가 되었던 사람.
앞날이 창창한 이런 사람이 왜 이런 실수를 저질렀던 걸까?
아무튼 나는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서 페툴라 교수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웃음을 멈춘 교수님은 담배를 피우시다 입을 열었다.
“그렇게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어제 날 유혹한 건 전부 기억에 없나 보네?”
페툴라 교수님은 살짝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피우던 손으로 옆머리를 넘기셨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풉, 큽, 크헙.”
내 말에 교수님은 배와 입을 부여잡고 웃기 바쁘셨다.
나만 심각하게 생각했던 건지, 기분이 나빠져 있던 순간, 교수님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가볍게 내 입술에 키스했던 교수님은 웃으며 말했다.
“왜? 걱정돼?”
나는 솔직한 심정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창 밖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던 교수님은 반론하셨다.
“우리 둘이 술에 취했다고는 하지만, 평소 호감이 없었다면, 몸을 섞었을까?”
그 질문에 대답하려던 찰나, 페툴라 교수님은 여지도 주지 않고 다른 질문을 던졌다.
“물론 이 부분은 너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나에게도 있으니, 우리 둘이 같이 책임을 져야지.”
그렇게 말을 마친 교수님은 꽁초를 창문 밖으로 집어 던진 뒤, 나에게 물 한잔을 따라주었다.
“물론 생리를 안 하면, 그때는….”
풉, 컥 커 컥!
교수님의 말에 상상해버리고, 바로 사레들렸다.
그런 내가 재밌었는지 교수님은 또 웃으셨고, 나는 진정하기 바빴다.
……………
다행히 교수님이 임신하는 일은 없었고, 교수님과 나는 비밀연애를 하게 되었다.
교수님과의 연애에 특별한 건 딱히 없었다, 서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서로 조금씩 알아가고, 음식도 같이 먹고, 몸도…섞고.
굳이 특별한 점이라면, 다른 여자랑 이야기만 해도 죽어라 노려보는 일과, 그 대가로 밤에 쥐어짜이는 것 정도?
아무튼 그렇게 우리 앞에는 이런 행복한 시간만 있을 줄 알았다….
바보같이.
…………
“야, 어떠하지, 이거 봤냐?”
평소와 같이 밤에는 교수님에게 쥐어짜이다 맞이한 아침, 랩실에 뛰어들어온 선배가 가져온 신문을 보게 되었다.
‘고고학계의 천재, 모든 것은 거짓?’
제목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나는 떨리는 손으로 차근차근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페툴라 교수가 발굴한 자료들이 위조된 것이라는 발표 결과와, 터키 고고학계에서는 페툴라 교수를 학계에서 퇴출함과 동시에 사기 행위로 기소할 방침이라는 내용이었다.
다 읽은 후, 멍하니 책상만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보며, 선배는 입을 열었다.
“나는 이제 그만두려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음을 느낀 나는 선배를 설득했다.
“아직은 모르잖아요, 이게 그저 의혹이면 저희가 힘을 모아…”
“봐, 너도 의혹이면 이라고 가정을 하잖아, 이건 끝났어, 지금까지 도와준 교수님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그렇게 선배는 나중에 술이라도 먹자는 말과 함께 랩실을 나갔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랩실에 있던 모두가 선배와 같이 떠났다.
똑딱, 똑딱
어두움이 짙게 깔린 밤이 되어서야, 교수님은 랩실로 돌아왔다.
“…”
“…”
나도, 교수님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똑딱, 똑딱
마치 침묵이 모든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우리의 사이가 여기서 끝인 것 같아서, 너무 두려워서, 먼저 입을 열고야 말았다.
“변명이라도, 뭐라도 좋으니까, 말을 해봐.”
“…”
아무런 말이 없는 교수님을 붙잡고, 분노에 차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왜! 왜… 나에게는 최소한 무슨 말이라도 해줄 수 있었잖아.”
“…”
그 어떠한 말도 없는 교수를 두고 나는 랩실을 나왔다.
…………
띠리리링
귓가를 때리는 벨 소리에 힘없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다름이 아니라, 페툴라 교수… 아니, 페툴라님이 자살시도를 하였습니다.”
잠이 저절로 달아나는 소리에 나는 머리카락을 부여잡으며 되물었다.
“예?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말씀드렸던 대로 페툴라님은 자살을 시도하였고, 유서에는 아르다님의 이름이 적혀서…”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어디죠?”
나는 무너져가는 정신을 억지로 움켜쥐며, 밖을 향해 정신없이 걸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한 대학병원이었고, 이미 소식들을 전해 들었던 건지, 수많은 기자가 진을 치고 있었다.
구급대원을 찾아가 물어보니, 유서에는 내 이름과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 뒤처리를 부탁한다는 말이 적혀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도, 살아남았다는 얘기와 함께 병실까지 안내해주었다.
“후.”
심호흡을 하고 병원 문을 여니, 페툴라는 누워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뇌에 심각한 충격이 갔는지,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 같습니다, 물론 자세한 건…’
“누구세요?”
페툴라의 말에 정신을 차린 나는 질문에 답했다.
“아르다 에브렌…이에요.”
“…역시 기억은 나지 않네요.”
자살시도 소식을 듣던 그 순간, 내가 무너지고 있음을 느꼈다.
아무리 그런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그녀를 위로해주지 못했는지, 유일한 편이 되지 못했는지.
결국, 이 사태를 만든 건 ‘아르다 에브렌’이며 책임 또한 내가 져야 한다는 것.
그게 중요하겠지.
“기억은 안 나도 돼, 모든 건 내 잘못이니까.”
그렇게 말을 마친 나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정도는 깨닫게 되었다.
페툴라 교수를 믿고, 가시밭길이라 할지라도, 그 누명을 벗겨야 함을.
그 후에는 정신없이 바빴다.
페툴라 교수가 발견한 유물들을 가까스로 손에 넣어
조사하고, 조사하고 또 조사하며 날을 보내고, 남는 시간에는 병원을 찾아가 페툴라 교수와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만 되고 있었다, 대중 매체와 사람들은 교수가 자신의 범죄를 묻기 위해 쇼를 한다고 말했기 일쑤였고, 그 누구도 페툴라 교수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으니까.
“…티비는 그만 보시죠.”
내가 깎아준 사과를 집어먹지 않고, 티비만 쳐다보며 담배를 피우는 페툴라 교수님이 걱정돼 한마디 했다.
“…”
아무런 말 없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교수님의 시선에 한숨을 내쉬었다.
“다크서클.”
“?”
무슨 말인지 몰라 멀뚱멀뚱 쳐다보자, 페툴라 교수님은 내 눈가를 조심히 쓰다듬으며, 아주 조그맣게 속삭였다.
‘옛날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쨍그랑!”
우리 둘 다 깨져버린 접시 소리에 놀라 화들짝 놀랐다.
“…치우고 올게요.”
병실을 나와 화장실로 갈 때까지, 겉으로는 멀쩡한 척을 했지만, 머리는 깨질 듯이 어지러웠다.
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
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
그래! 잘못 들었던 것이 틀림없어!
아니지, 아니야! 어쩌면 처음 병원에 만났을 때에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일 수도 있잖아!
그런 생각을 하며 찬물에 박아놓은 얼굴을 들어 올리며 다시 병실로 향했다.
“뭐 파편은 더 없죠, 그리고 아까 했던 말 기억나시나요?”
페툴라 교수님은 내 말에 흡연을 멈추고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말했다.
“아니.”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찰칵! 찰칵! 찰칵!”
“페툴라님! 기억상실증 조사 결과가 거짓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이에 한 말씀 부탁합니다!”
“페툴라님!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이 전부 쇼였다는 것입니까?”
“학회에 손해배상 청구와, 사기죄는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갑자기 들이닥친 카메라와 기자들을 보며 나는 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아, 나는 이 여자에게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그럼 나는 뭐지?
나는…
“안녕하세요?”
의사 가운을 입은 젊은 여자가 나에게 인사를 했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말하기 힘들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면 원래 그렇죠.”
나와 페툴라를 쫓던 기자인가?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기…”
하지만 그녀의 초점 없이 깊고 어두운 눈동자와 여리여리한 몸과는 전혀 다른 내 입을 막은 손에서 전해오는 악력에 입을 열 수 없었다.
“기자면 다냐고? 뭐 이런 말을 하고 싶겠지만, 그건 아니야.”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을 마친 여자가 고개를 들고 한숨을 쉬는 모습이 귀찮아 보였다.
마치, 똑같은 일들을 반복했던 사람처럼.
“와, 감이 좋네?”
나를 쳐다보던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말했다.
“아닌가? 그냥 관찰력이 좋은 건가? 아무튼, 이번에 얼추 상위권에 들어갈지도?”
무슨 상황인지 감이 잡히지는 않았지만, 알 수 있는 것은.
이 여자, 절대로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
“말은 어느 정도 통하는 것 같으니까, 그냥 빠르게 말할게, 게임에 참여해서 1등을 거머쥐면 무슨 소원이든 들어줄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산더미 같아, 직접 말을 하려 하자 입에서 손을 떼줬다.
“소원의 범위가 어디까지지?”
하지만 내 말에 여자는 감탄했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와, 이거 진짜 물건이네.”
만약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면…
“응, 내가 사람들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성인 남성보다 강한 것도, 그리고 그 게임이라는 것의 방향성도 네가 생각한 게 맞아.”
모든 것을 이해하고 아무런 말도 없이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
“응원할게, 과장돼서 에블렌… 아니, 16M-RFT24.”
…………………………………………………
“실험의 끝까지 함께한 당신에게 깊은 감사를”
울려퍼지는 나쟈의 목소리에, 그동안의 피로를 날리기 위해 기지개를 피던 도중이었다.
“으아, 아까워어~~~”
아깝다며 소리 지르고 돌아다니는 꼴을 보아하니, 배팅에 실패한 것 같았다.
“내가 말했잖아, 무조건 1등이라고.”
어지간히도 분했는지, 씩씩거리며 나에게 울분을 토했다.
“아니이~ 내가 분명 상위권은 갈 줄 알았는데!”
“알았는데?”
“1등이 말이 되느냐고! 그것도 들어오자마자 바로!”
그러면서 울적해 있는 것을 보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나는 이제 퇴물이야, 내 안목만큼은 정확했는데….”
“연구원이면 연구나 해라, 배팅에 목숨을 걸지 말고.”
“너야말로 연구는커녕, 실험체에 애정을 쏟아붓잖아! 페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얼어붙어 버린 모습에, 뒤를 돌아보니 안젤리카 소장이 뒤에 있었다.
“재밌는 얘기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려운 사람.
“한 명은 실험보다는 배팅에 더 관심이 있고… 한 명은”
“히익!”
비명과 함께 달아난 녀석을 보니,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 명은 실험체에 애정을 준다라…”
예측조차 힘든 상황만큼 힘든 상황도 없다.
목에 침이 넘어감과 동시에 담배를 꺼냈다.
“여기는 금연구역이야.”
아, 긴장을 너무 했는지 나도 모르게 습관이 나왔나 보다.
“죄송합니다, 소장님.”
그런 나를 유심히 보던 안젤리카 소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냐, 그것보다 16M-과장돼서 아니, 아르다 에브렌을 어떻게 생각해?”
함정일까? 아니면 단순한 질문일까?
소장의 포커페이스에 평소 생각해 두던 답변을 꺼냈다.
“훌륭한 실험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의 좌절감에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생존에 성공하는 모습에 더불…”
담배를 쥔 상태로 귓가의 머리카락을 넘기던 내 손을 잡은 소장 덕분에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담배를 피우면서 거짓말할 때는 항상 귓가의 머리를 넘기더라고, 아르다 에브렌과 같이 있을 때도 말이지.”
…처음부터 내 뒤를 계속 감시했구나, 하긴 보안은 철저해야지.
헛웃음을 터트린 나를 바라보던 소장은 한가지 물어봤다.
“포기한 거야?”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마시고, 연기를 몸 안에 가두었다가, 내뱉었다.
마치 순수했던 과장돼서 에브렌을 기억하듯이.
“예.”
내 대답에 한숨을 내쉬던 소장은 생각에 잠겼는지 가만히 책상에 걸터앉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담배 한 갑이 전부 태워졌을 때, 소장은 입을 열었다.
“거짓말 없이 아르다 에브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솔직히 말해봐.”
마지막 기회일까, 아니면…
……………………………………………………………
게임 시작을 알리던 해설의 목소리가 게임의 끝을 알리자마자 쓰러졌다.
온통 피범벅인 땅을 보며 어떻게든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이려고 애를 썼다.
그 노력이 야속하게도 몸은 내 말을 따라주지 않았다.
저벅저벅
누군가의 발에 풀이 짓밟히는 소리를 들으며 정말로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소한 연구자료로 더 써먹을 만하지 않나?”
나의 대답에도 아무런 말이 없던 사람은 갑자기 나를 등에 업었다.
“…”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를 업고 있던 사람은…
“너가 말했었지, 모든 건 내 잘못이라고!”
울면서 하는 말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들렸다.
“아니야! 그건 아니야! 내 잘못이야!”
그녀의 울음은 멈추지 않았고 발걸음도 멈추지 않았다.
“교수인 척 속인 것도, 기억이 안 난다고 속인 것도, 널 여기로 납치하기 위해 속인 것도 전부 거짓이지만!”
“…”
“호감이 있었기에 몸을 섞었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야.”
“다른 여자들에게 질투해서 노려봤던 것도 거짓말이 아니야.”
“연애하던 그 모든 순간은 거짓말이 아니야.”
그런 페툴라의 목을 감싼 팔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떨리는 어깨도 거짓말은 아니겠지.”
그 말과 함께 나는 정신을 잃었다.
………………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많은 게 해결이 되어있었다.
페툴라 교수의 조작사건은 교수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사람이 교수를 매장하기 위해 꾸민 일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교수는 자신이 덫에 걸렸음을 알고, 모든 사람이
등을 돌린 상황에서 부인해 봐야 소용없을 것으로 생각해 모든 것을 잊은 척하며 포기했다는 인터뷰가 티비에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눈을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게임에 참여시킨 여자가 찾아왔다.
“하아, 절대 입 밖으로 내뱉지 마.”
그 말뿐이었지만, 많은 것을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칫, 이래서 관찰력 좋은 사람은 싫다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 여자는 떠났다.
“이제는 상황이 역전이 됐네?”
“미…”
나는 과장돼서 하려던 말을 입술로 막아버렸다.
“이제는 그 단어는 당분간 금지야, 아까 전 못 들었어?”
고개를 끄덕이는 내 여자친구를 바라보며 난 눈을 감았다.
오늘 아직 안 지났으니까 일단 된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