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셨습니다. 얀순 부장님"

"수고했어요 얀붕 차장 들어가봐요."


오늘도 일을 마쳤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서류의 처리였지만 

그녀와 함께라면.. 이러한 지루한 작업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내 직속상사이자... 아내인 얀순이 덕분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났던 것은 아마..... 엄마들의 계모임때였을 거다. 우리 엄마와 얀순이의 엄마 즉 나한텐 장모님이시지. 암튼 두 분은 동창이셨다고 한다. 사실은 같은 동네 사시는 줄도 몰랐는데 동창회 끝나고 알게 되었다나 뭐라나


그래서 둘을 포함한 아주머니들의 계모임 때 왜 애들은 따로 놀도록 냅두면서 그리 끼리끼리 친해지는 거지. 

그러한 바탕 덕인지 나와 얀순이는 서로 만나는 날이 잦았다.


처음 얀순이를 봤을 때는..... 어린이집? 다녔을 때 였다.

백옥같은 피부에.. 적절한 키 그리고 특히 그녀는 손이 예뻤던 걸로 기억한다.

처음 그녀를 봤을 때부터 내 눈에는 그녀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항상 내 옆에 있어줬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내 어린이집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


물론 그녀의 미모만 보고서 견딜 수 있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겠지.

그녀는 고전 동화 속에 나오던 백마 탄 왕자님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그런 착각과는 반대로

자기가 직접 나를 지켜줬다.


예를 굳이 들자면.... 난 어린이집 시절에 키도 작고 깡마른 멸치새끼라 맞고 다녔는데

얀순이는 항상 그 녀석들을 두들겨 패 주었다. 그러면서 항상 이 말을 남겼다.


"내 미래의 남편은 내가 지켜 너희같은 녀석들이 어디 내 남편에게 손을 대는 거야!"

그때는 그저 그런 장난인 줄 알았지. 어린이들 보통 서로 장난삼아 좋아한다더니 결혼한다더니 하잖아?


그런데 그녀의 말이 진심임을 그리고 나를 "집착"한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흘러서 난 초등학교-중학교 시절을 졸업했다.

얀순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나를 지켜 주었고

가장 존경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드는 활동이 있다면 무조건 나를 대상으로 만들어갔다.

근데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 작품이 뭔가 좀 내용이 문제가 있어서 그랬지.


예를 들면 나의 초등학교 시절 일이다.

5학년 때 인가? 그 시절에 존경하는 사람의 얼굴을 그려 보라는

그런 미술 수업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얀순이는 갑자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야 김얀붕! 너 잠깐 나 봐봐"

그녀의 심오하고도 차가운 한 마디 그렇지만 눈에 가득찬 생기와 웃음이 약간 띈 미소는

나를 유혹하기엔 충분했다.


"근데 그 미소가 지금 생각해보면.. 살짝 소름이 끼치던 미소였달까."


그러더니 나와 캔버스를 몇번 바라보더니 갑자기 내 초상화를 슥슥 그려냈는데....

미술 선생님이 초상화를 받아봤더니 부들부들 떨고 계셨다. 뭔가 귀신을 본 듯한 표정이랄까?

그리고는 얀순이를 부른 다음 조심히 물었다.


"얀.....순아 이게 뭐야 존경하는 사람의 얼굴을 그리랬지...

좋아하는 사람을 그리는 게 아니에요.


거기다가 이....칼은 뭐니"


그렇지만 얀순이는 눈 하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 얀붕이가 얼마나 존경스러운 남자인데요

성격 좋고 인물 좋고 매너도 얼마나 바르고... 다른 남자들은 본받을 수 없는

그런 매력을 가진 남자라고요."


"그 칼은... 얀붕이를 막는 것은 뭐든지... 베버리려고요.

설령 그게... 어떠한 존재더라도요."


"그 그래 들어가렴"

그러더니 얀순이는 나한테 다가와서 그 특유의 약간은 살 떨리는 미소와 함께 나에게 한마디를 툭 던졌다.

"난 너뿐이야. 얀붕아. 너를 막는 대상은.... 무엇이든 내가 없애줄게 난 너만을 위해.. 존재하는거야."


그때는 나를 그냥 좋아하는 줄 알았다. 아직 나는 뭘 모르는 초등학생이었고 그런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렇게 난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등학생은 초,중학교에 비해 눈코 뜰 세 없이 바빴다. 그로 인해 얀순이와 나는 만나는 시간이 적어졌다.

아니 정정해야겠지. "학교 내에서는" 적었다. 학교 밖에선 항상 만났으니까.


얀순이는 귀신같이 내가 다니는 학원의 같은 시간에 들어와서 

수업을 같이 듣기 시작했다. 

그때 나와 같이 수업을 듣던 얀진이라는 여사친이 있었다.

갈색 긴 생머리에 늘씬한 키 얀순이보다는 못했지만.. 얘도 나름 예뻤다.


그런데 얀진이 얀순이가 학원에 등록하고 며칠 후...

의문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고 한다. 

제일 미스터리인점은 현장에서 얀순이의 지문이 나왔지만

사건 발생 시간엔 얀순이는 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무혐의로 풀러났다. 그 점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는 얀진이 장례식에라도 가려 했지만

얀순이가 나를 막았다.

"야 김얀붕 너 수능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상갓집 다녀오면 부정 타!

넌 공부에만 집중해 나랑 같이 얀챈대 가야지! 상갓집은 내가 대신 다녀올게!"


나를 위해 내 몫까지 그녀를 추모해준게 안하고 또 고마웠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은.... 대학때부터 익어가기 시작했다.



2편 : 대학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