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kakuyomu.jp/works/16816927859192096822/episodes/16816927859192234394

1~3    I    4~7    I    8~11    I    12~16






### 1. 때때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나는 모든 것을 빼앗겼다】 이런 제목의 게임을 아는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 게임은 소위 말하는 18금 에로게임이다.


한 명의 평범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로, 그를 중심으로 모인 여성들이 각기 다른 남자에게 빼앗긴다는 뭐랄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도M을 위한 시나리오다.


보통 이런 시나리오의 히로인은 한 명 정도가 당연한데, 이 게임에 등장하는 히로인은 무려 다섯 명이나 된다.

소꿉친구, 여동생, 후배, 선배, 어머니까지... 그야말로 여러 타입의 매니아를 노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라인업이다.


초반에는 히로인들과의 사이가 좋고 행복해 보이는 장면을 그리다가 서서히 먹구름이 드리워져 막장이라고 할 만한 전개가 당당히 막을 여는 것이다.

미려한 일러스트와 명성우들의 연기, 아름다운 히로인들이 무참히 타락해가는 모습이 상당한 인기를 끌며 한때 SNS에서도 화제가 됐을 정도다.  

특히 메인 히로인이기도 한 소꿉친구 '오토나시 아야나'가 타락한 장면은 많은 플레이어의 마음을 꺾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다른 히로인들과 달리 아야나의 H씬이 적기 때문이다.

H씬의 수는 겨우 한 번뿐이다.

다른 여주인공들이 NTR되는 가운데 아야나만은 그런 장면이 전혀 없이 계속 주인공의 곁을 지켰었다.  

  

패키지의 중심에 아야나는 그려져 있고, 소꿉친구라는 NTR물에선 제일 먼저 빼앗기는단골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그렇고 그런 시나리오는 전혀 없었다.


설마 처음부터 아야나는 히로인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NTR물이라는 장르에 새로운 형식을 보여주는 구제 캐릭터일까, 그런 감상을 플레이어들은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런 생각도 이야기의 결말에 갈수록 사라진다.  

앞서 말한 단 1번의 H씬, 겨우 한 장면인데도 이미 아야나는 타락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주인공과 어릴 때부터 사이가 좋았던 친한 친구이기도 한 남자에게 말이다.


도시락을 싸주고 등교할 때도 하교할 때도 항상 아야나는 함께였다.   

휴일에 시간이 날때마다 만났던 사이가 좋았던 여자아이였고 주인공이 사랑에 빠져 언제 고백할까 고민까지 생각하던 소녀다.  

그렇게 좋아했던 여성이 이미 다른 남자의 것이었다니... 그때 주인공의 기분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주변의 히로인들의 소녀다운 면모가 사라지고 쾌락에 빠진 추잡한 모습을 보여주며 멘탈이 너덜너덜했던 순간 아야나의 그런 모습이 보여졌고, 거기서 게임은 엔딩으로 향하여 주인공은 전혀 구원받을 수 없는 결말에 그런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많은 플레이어들의 마음이 부서졌던 것이다.  

  

NTR이라고 하는 흔한 장르이면서 엔딩 직전까지 타락 묘사가 없다가 결국은 빼앗기고 마는 아름다운 소꿉친구... 기묘하게도 그런 일회성 히로인이 인기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는 쾌거까지 이룬 것으로 보아 '오토나시 아야나'라는 캐릭터는 의외의 화제성을 끌어, 에로게와는 관계가 특별히 없는 일러스트레이터조차도 그녀를 그리는 사람이 생기면서 큰 인기를 보여줬다.




「...후」


누구에게 말하는 것도 아니지만, 내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끝낸 나는 한숨을 내쉰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학교로 향하는 통학로, 거기서 나는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시야 너머로 한 쌍의 남녀의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은 나를 발견하고는 쏜살같이 달려온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지자 두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제일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은 느긋한 남자, 사사키 슈이다. 그리고 


「늦었네요. 미안해요, 토와군」


다음으로 말을 건넨 것은 아름다운 여자아이였다. 

긴 검은 머리는 찰랑찰랑 바람에 흔들리고 부드러운 눈빛은 나라는 존재를 바라보고 있다. 

옷 위에서도 알 수 있는 풍만한 가슴은 그 주위를 걷고 있는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지만 옆에 서 있는 남자와 나란히 서있는게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미소녀였다.  

  

그녀의 이름은 '오토나시 아야나'. 바로 그 '오토나시 아야나'이다.


조금 전에 내가 말했던 에로게 히로인과 같은 이름이며 같은 외모다... 뭐 여기까지 말하면 나머지는 알 수 있겠지.



그래, 나는 어느새 환생... 아니 이 경우는 빙의라고 해야할까?

얼마 전 아침에 눈을 떴더니 나는 이 몸이 되어 있었다.  

그 순간은 당연하게도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그 혼란도 금방 가라앉았다.  

보통이라면 패닉에 빠져 어쩔 수 없을 텐데, 이상하게도 지금의 나는 평범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게 두렵기도 했지만 이제 거의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다.  

마치 그것이 세상의 뜻과 같은 것이라고 느끼긴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긴 했지만 일상생활은 문제가 없었고, 이 몸의 인물이 어떤 식으로 지내는지도 왜인지 머리가 이해하기 때문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세계가 【나는 모든 것을 빼앗겼다】의 세계인 것도 이해했고, 내가 누구인지도 싫어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갈까요 토와군?」

「...아」


아야나가 그렇게 말하자 나는 발을 움직인다.  

아야나가 말한 '토와'라는 이름, 그것이 지금의 내 이름이다.


이 에로게의 세계에서 '오토나시 아야나'는 히로인이고, '사사키 슈'는 주인공이다. 그리고 나 '유키시로 토와'는 슈의 친한 친구이기도 하고, 그리고 이것이 가장 중대한 일이지만….  

  

「무슨 일이야?」

「왜 그래요?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지그시 아야나의 얼굴을 보는 바람에 이상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조금 빨리 학교에 가려고 했다.  

  

그래, 유키시로 토와.  

그것은 주인공의 절친한 친구이자 그 주인공의 최애이기도 한 오토나시 아야나를 빼앗는 남자의 이름이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신이시여 환생이든 빙의든 뭐든 상관없지만, 이런 건 보통 검과 마법 같은 이세계가 아닌가요. 하필이면 NTR물의 에로게에서 금태양 역이라니 도대체 나한테 뭘 원하는 거야.


「토와군! 두고 가지 마세요! 자, 같이 가요.」


그렇게 말하면서 아야나는 상냥하게 손을 잡아왔다.  

너, 그런 거잖아. 하고 말하려던 찰나, 형언할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는 슈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슈의 얼굴을 보면 오싹오싹한 쾌감이 몰려왔다... 역시 이 몸은 '유키시로 토와'구나 하고 인식한 순간이었다. 

딱히 나는 NTR하는 취미가 없다.  

아야나가 원치 않는 일을 할 생각은 없고, 굳이 친한 친구이기도 한 슈를 괴롭힐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시나리오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나서. 아직 우리는 2학년이라 1년 가까이 남았다. 그동안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괜찮을 거야... 다른 히로인은 모르겠지만.


「...후후」


내 얼굴을 보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보이는 아야나... 생각해보면 이게 하나의 의문이다.


왜 아야나는 이 시기의 나에게 이렇게 친밀감을 느끼는 걸까? 지금까지의 기억이 없기 때문에 그것만이 의문으로 남아 있다. 언젠가는 알 수 있겠지, 빨리 그것을 알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우리가 다니는 학교로 향한다.


「토와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으니 먼저 가자, 아야나」

「아! 슈군 잠깐만 기다려」


조금 걷는 페이스가 느렸는지 슈는 억지로 아야나의 손을 끌고 달려가 버린다. 남겨진 나는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청춘이구나 하고 흐뭇하게 생각했다.  

  

「...잘못 들은거지?」


슈가 아야나의 손을 잡고 달려나가려던 순간, 아야나가 혀를 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그래, 분명 기분 탓이겠지. 학교에서는 반의 아이돌 같은 존재이기도 하고, 외모와 성격 때문에 여신 같다는 말도 듣는 아야나다. 그런 아야나가 혀를 차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테고.  

  

「자, 나도 얼른 갈까?」 

  

가방을 어깨에 다시 걸치고, 두 사람을 쫓아 나도 달리기 시작했다.






### 2. 아야나 씨는 히로인...이죠?

슈와 아야나보다 늦게 교실로 도착했다.

내 자리로 향하기 전에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슈는 자고 있는지 깨어 있는지 모르지만 얼굴을 책상에 박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세계의 주인공인 슈는... 뭐랄까, 이런 표현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소위 말하는 찐따다.  

  

예쁘고 밝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아야나는 슈와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친구가 적은 슈와 달리 아야나는 남녀를 불문하고 친구가 많다. 게다가 외모까지 좋으니 인기가 없을 리가 없다.  

  

그런 아야나와 슈가 친하게 지내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좋지 않아보였고, 슈가 적지 않은 괴롭힘을 당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 괴롭힘을 아야나가 말리면서 일단락됐지만, 아야나가 슈에게 도시락을 만들어 주거나 하는 것을 시기하며 질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 아니, 비난한 건 토와도 그랬나?)  


아야나와 함께 토와도 함께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슈의 과거를 보면 겉으로 드러난 토와는 정말 좋은 친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슈를 도와주거나 상담도 해주고, 아야나와의 관계 발전까지 도와주었을 정도다. 그런 든든한 절친인 유키시로 토와가 사실은 아야나와 육체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 사실에 당시에는 정말 놀랐었다.  

  

『토와군이 아니면 안 돼요♡ 저런 구질구질하고 한심한 소꿉친구는 필요 없어요♡』


슈가 목격하는 순간에 나온 아야나의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슈는 더욱 절망하고, 황망히 그 자리를 떠나는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엔딩을 맞이한다. 믿었던 첫사랑에게 필요 없다는 말을 들은 오사무가 그 후 어떻게 되었을지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그리 좋은 결말은 아닐 것이다.


아야나가 말했듯이 정말 슈라는 사람은 우유부단하고 우물쭈물한 놈이다. 어떻게 이런 녀석이 많은 여자들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들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인기가 많은 것은 이런 게임의 특권이기 때문에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자리에 앉으러 가는 길에 친구와 친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아야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야나가 나를 알아차리자 주변 사람들도 알아차리고 손을 흔들어 주었기에 나는 작게 손을 돌려 내 자리에 앉았다. 의자에 앉은 나를 아야나가 눈을 부릅뜨며 쳐다보고, 친구들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나로서는 특별히 이상한 짓을 했다는 인식이 없었고, 아야나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이유는 아야나가 전해준 말로 납득할 수 있었다.


「토와군, 무슨 일이에요? 요즘은 이쪽으로 와주지도 않고... 저도 가끔 이런 날도 있구나 싶었는데, 설마 이렇게 계속 이어질 줄은 몰랐어요

「...아~」

  

그렇구나, 토와는 항상 그 그룹에 속해 있었구나.


게임에서는 토와의 교우관계에 대해서 언급되지 않았고, 슈와 대화하는 장면에서도 특별히 그룹에서 빠져나갔다는 등의 텍스트가 없었기 때문에 몰랐다.


내가 이 몸이 된 후로 그 그룹에 스스로 다가간 적은 없었다. 며칠 정도라면 아야나도 신경 쓰지 않겠지만, 아무래도 계속 엮이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건 내용물이 다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을 아야나가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일이다.


「아침에는 조금 조용히 있고 싶어서 말이야. 아야나도 나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알았지?」


이런 대답이 무난한 것일까. 나는 특별히 아야나를 노릴 생각은... 없지만, 이런 극상의 여자를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은 남자로써는 있지만, 그 시나리오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를 신경 쓰지 말고 슈와 사이좋게 지내면 된다, 그런 의미도 담고 있었는데... 아야나의 반응은 내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요... 왜요!」

「잠깐, 잠깐만!」


갑자기 아야나가 내 어깨를 잡았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모를 정도로 세게 잡아당겨서 나는 아야나에게서 떨어질 수도 없이 아주 가까이서 그녀와 마주하는 형국이다. 주위의 반 친구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싫어요...토와군에게 그런 말 듣기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주인님!」

「주, 주인......?」


뭐야, 주인님이라니.

갑작스러운 아야나의 말에 당황했지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싫어서 어떻게든 아야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달래주었다.


「아, 미안해... 내가 기분이 좀 안 좋았어. 괜찮으면 아야나가 이쪽으로 와줘. 그러면 이야기든 뭐든 할테니까」


조금 당황한 듯 그렇게 말하자 아야나도 눈물을 흘리는 상태였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안심이 된 건지 다행이라고 웃는 그 모습에 나는 무심코 넋을 잃고 굳어 버렸다. 역시 게임의 히로인이라고 해야 하나, 파괴력이 대단하다.


「...이제 그만... 주인님. 토와군은 정말 못됐어. 그렇게 나를 괴롭히면서도 마지막에 이렇게 기분 좋은 말을 해주다니... 아아」

「...아야나?」


... 아니, 정말 무슨 일이야?


이 아야나의 반응은 역시 이상한 것 같다. 물론 슈와 함께 토와도 아야나의 어린 시절 친구라는 분류는 맞지만, 아직 시나리오가 시작되지 않은 이상 토와와 아야나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 말 한 마디로 당황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게다가 감정의 폭이 분명히 이상하다. 덧붙여 지금 나를 바라보는 아야나의 눈빛은 뜨거운데... 마치 게임에서 볼 수 있는 발정난 여주인공 같은 눈빛이잖아.


「괜찮아요. 하지만 친목도 중요하니까, 토와군도 가능한 한 이쪽으로 와 주세요. 참을 수 없게 되면 ... 학교라면 그러니까 집에 놀러가도 괜찮을까요?」

「어, 어...」

「.....!」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아야나의 모습이 역시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다... 그래, 확실히 나는 이런 아야나의 모습이 매우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다. 하지만 내 몸은 어딘지 모르게 그런 아야나를 보고 흥분을 느끼고 있는 것도 확실했다. 이 알 수 없는 감정은 잘 모르겠지만, 신경을 써봤자 소용없다며 고개를 저으며 그 생각을 버린다.


아야나가 내 대답을 듣고 친구들의 그룹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귓가에 아야나의 독백이 들렸다.


「토와군이 없으면 관여할 이유가 없어. 좋은 척하기 귀찮아, 저 녀석들 짜증나」


전반부는 내 이름이 들린 것 같았지만 후반부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뭔가 가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내 곁을 떠난 아야나는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보며 작게 손을 흔들며 친구에게로 돌아갔다.


나는 폭풍이 지나간 듯한 허탈감을 느끼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을 때, 그런 내 어깨를 두드리는 존재가 있었다.


「야! 너 혼자라니, 희한하네.」

「... 아이사카구나」


어깨를 두드린 사람은 '아이사카 타카시' 같은 반 친구이자 나와 자주 이야기하는 친구였다. 삭발이 트레이드마크인 근육질 남자인데, 이 녀석은 야구부에서 활약하는 남자다. 이 건장한 체격도 평소 연습 덕분일 것이다.

아이사카는 나를 보며 "흐음"이라고 중얼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 너 역시 뭔가 조금 달라졌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날카로운 말을 하는 녀석이다.


나는 그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되받아쳤다.


「혹시 내용물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거나?」

「아하하! 너 그런 만화 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뭐 빠진 만화라도 있는 거야?」


전혀 믿지 않는 눈치다. 뭐 그것도 그렇겠지 하고 나 자신도 납득한다. 이 현실 세계... 에로게임의 세계이지만 당연히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의 속이 바뀌었다고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고, 믿으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뭐, 나 자신이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실감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야.


아이사카가 사소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문득 아이사카가 내게서 시선을 떼고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나도 거기에 이끌리듯 시선을 옮기자... 얼굴을 숙이고 있던 슈에게 말을 걸려는 아야나의 모습이 보였다.


「오, 또 슈와 엮이는구나, 오토나시 씨」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잖아.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

「그건 그렇지만. 아무리 소꿉친구라고 해도 저렇게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글쎼」


그건 아야나가 슈에게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기서는 대화가 들리지 않지만, 귀찮게하는 듯한 슈와 그것을 귀찮다는 듯이 들으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는 아야나의 모습. 그런 슈를 보고 있던 근처의 여학생이 "힘내라 아야나"라며 강하게 말한다.


「외야가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지 않나?」

「그래. 하지만 슈와 달리 넌 누가 말해도 잘생겼으니까 이득이지?」

「잘생겼다고?」

「.... 너 진심이야?」


아 그렇구나, 확실히 객관적으로 보면 토와는 잘생겼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 내가 멋지다거나 하는 취미가 없어서 신경 쓴 적도 없었다. '그래, 기뻐해라 나, 나는 아무래도 잘생긴 것 같다.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아이사카는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곧 시선을 다시 두 사람에게로 돌렸다. 할 일이 없으니 나도 볼까 하고 시선을 돌렸을 때, 문득 깨달았다.


「...어랏」


아야나가 저렇게 무기력한 눈빛을 하고 있었나?


아까 나랑 얘기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그 눈빛에 나는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 3. 토와(속은 다른 사람)는 눈치챘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방금 전 수업을 맡았던 선생님이 교실에서 나오는 순간, 친구들끼리 책상을 나란히 세우며 그룹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 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 여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례합니다. 슈 군 있나요?「


시끄러웠던 교실도 그 목소리가 울리는 순간 조용해졌다. 그 목소리의 발원지인 교실 입구에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 있던 것은 이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 인물... 과장 했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학생회장님이다.


그 학생회장 '혼죠 이오리'가 슈를 찾고 있는 모양이다. 그녀가 슈를 찾으러 오는 것은 드문 일은 아니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


이오리는 목적지인 슈의 모습을 발견하고 곧장 그쪽으로 다가간다. 그 사이 몇몇 남학생들이 그녀에게 말을 걸려고 하지만, 이오리가 가진 차가운 분위기에 압도되어 결국 말을 걸지 못한다.


「바로 대답하지 않는 건 무슨 일인가요?」

「... 아니, 뭔가 귀찮아질 것 같아서요」

「말했잖아, 슈군. 일단 와봐. 도시락 챙기고」

「거부권은 ...」

「없어」

「... 그런가요?」


거부권 따위는 없다, 그런 말을 들은 슈는 한숨을 내쉬며 일어서서 그대로 이오리에게 끌려갔다. 이오리의 방문으로 조용해졌던 교실은 그녀가 사라지자 다시 소란스러워진다. 각자 평소와 다름없이 점심을 먹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역시 오사무가 말을 건네는 슈를 부러워하는 목소리도 간간히 들렸다.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는 이오리 이지만 외모는 매우 뛰어나다. 날카로운 눈빛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무서운 인상을 줄 수도 있지만, 여자들 사이에서는 멋있다는 평을 듣고 남자들도 경멸 당하고 싶다고 말하는 변태도 있다. 아야나만큼 긴 검은 머리를 사이드 테일로 묶은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어쩌면 그것이 그녀의 매력 포인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야나를 능가할 정도로 스타일이 좋다.


그렇게 주목받는 이오리가 왜 슈를 데려갔는지, 나는 이오리의 생각을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뭐라 말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뭐 슈와 관련된 여성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예측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 본조 이오리, 선배 유형의 NTR 되는 히로인)


아야나와 마찬가지로 게임 속 히로인, 그 선배 유형이 그녀이다.


이오리가 어떤 이유로 슈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그녀가 마음을 열 수 있는 친구이자 후배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며, 앞으로의 관계에서 그 마음이 연애 감정으로 승화될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런 그녀도 빼앗기게 되니, 에로게의 시나리오, 아니 게임에서만 발동하는 쾌락이라는 이름의 마법은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아마 대학에 진학해서 질 나쁜 서클에 들어가는 거였지? 흔한 레페토리네)


야리사였나, 그런 느낌의 서클에 들어가게 되는 거다. 본인도 모르게 들어가서 술에 취해 몰래카메라를 찍히는, 어떤 의미에서는 왕도의 시작이다. 경계하라든가, 그 서클에 대해 조사하라든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에로게의 히로인은 머리의 나사가 몇 개 빠져있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일단 혼조 이오리에 관한 것은 머리 한구석에 두고, 나도 밥을 먹기 위해 엄마가 만들어 준 도시락을 펼친다. 막상 밥을 먹으려는 순간, 시선이 느껴져 그쪽을 바라본다. 그러자 아야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야나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도시락 뚜껑을 여는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 내가 뭔가 행동을 취하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

「……………」


최근 사이가 안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같이 먹기로 하자.

아야나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말하듯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아야나는 활짝 웃으며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 같은 기세로 내 곁으로 달려왔다.


「뭐예요, 토와군!」

「아니, 알잖아?」

「저 바보라서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겠어요」


어이쿠, 전교 1등이 무슨 말을 하고 있어, 네가 멍청하다면 이 반 애들은 나를 포함해서 정말 멍청한 놈들만 모여 있는 거네.

나는 일어서서 앞자리를 마주 보도록 붙인다. 그리고 의자를 끌어당겨 아야나에게 앉으라고 눈짓을 하자, 아야나가 기쁜 듯이 앉았다.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쳐다보는 것도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촉촉한 눈빛을 하고 있어서 묘한 기분이 든다.


「도시락, 같이 먹을까?」

「네!」


활기찬 대답과 만인을 매료시키는 미소에 나는 이미 침몰 직전이다. 아니, 아야나, 그런 얼굴은 슈에게 보여줘야지. 그 녀석은 그것만으로도 엄청나게 기뻐할 테니까... 어쩌면 기뻐서 미쳐버릴지도 모르겠지만.

엄마가 만들어 준 도시락을 먹는 도중, 아야나의 도시락을 슬쩍 훔쳐본다. 영양을 고려한 도시락으로 아주 맛있어 보인다. 이것도 만들고 슈의 도시락도 만드는 걸 보면 아야나는 정말 최선을 다하는 아이구나 하고 실감한다.


「무슨 일이세요?」


지그시 바라보던걸 알아챈 건지, 아야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조금 부끄러워져서 솔직하게 맛있어 보이는 도시락이라고 말했던게, 아무래도 내가 잘못 선택한 것 같다.


「그래요? 그렇다면... 네」


그렇게 말하면서 아야나는 계란말이를 젓가락으로 집어 그대로 내 입에 가져온다. 이거 그거 아니야, 아앙~ 이런 거 아니야? 세상 남자들이 동경하는 광경이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버릇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이런 미소녀에게 이런 짓을 당하고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불가능했다.


「아앙~」


내민 계란말이를 먹으니 계란 특유의 단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잘게 썰어서 섞여 있는 파도 좋은 맛을 내고 있었다. 아무리 먹어봐도 맛있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말은 과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꽤나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한다.


「맛있어, 정말 맛있어」


「... 헤. 다행이다」


아야나가 행복해하니 나도 마음이 놓인다.

그녀의 미소가 슈에게 향하지 않는 것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지만, 지금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마음껏 즐기기로 한다.

한참을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문득 아야나가 이런 말을 했다.


「기뻤어요. 토와군이 초대해줘서... 그, 제가 권유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역시 그런 의도가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아야나와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는게 기쁜 일이니까.


「완전 괜찮아. 앞으로도 권유해도 될까?」

「그럼요! 하지만 이렇게 교실에서 먹는 것도 좋지만... 둘이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곳에서 가끔 먹지 않을래요? 그 후에 '봉사'도 할 수 있고요」


아야나와 단둘이서... 자신의 본래 위치를 잊어버릴 정도로 매력적인 제안이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뻔했지만, 아니, 특별히 그녀에게 손대지 않으면 시나리오를 따라갈 일이 없으니 문제없겠지... 나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겨서 물어보기로 했다.


「봉사가 뭐야?」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다. 하지만 그 순간, 아야나를 감싸고 있는 공기가 달라졌다. 아까보다 눈빛이 더 촉촉해지고, 볼이 붉어지며 숨을 헐떡거린다. 한 마디로 말하면 굉장히 에로틱한 분위기를 풍기는 아야나. 이 변화에 당황한 나를 뒤로 한 채, 아야나는 쭈뼛쭈뼛 허리를 흔들며 나만 들을 수 있도록 작게 입을 열었다.


「봉사는 봉사예요. 제 몸을 주인님이 만족할 때까지 사용하시는 거에요. 그걸 생각하니.... 아!」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아야나의 모습에 나는 그냥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동시에 아침부터 아야나의 모습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설마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여기서 한 가지 결론을 도출했다. 그것은 매우 무섭고, 맞지 않기를 바랄 뿐인 것이었다.


이봐, 유키시로 토와.

너... 이미 뭔가를 저지른건 아니겠지!


내 진심어린 외침, 당연히 누구도 들을 수 없는 소리임은 말할 것도 없다.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