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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I    4~7    I    8~11    I    12~16






### 4. 이건 정말 뭔가 있는 것 같다고 토와가 의아해했다.

『봉사는 봉사에요. 제 몸을 주인님이 만족하실 때까지 사용하시는 거죠. 그걸 생각하면... 아아!!!!』


점심시간에 아야나가 한 말, 그리고 무언가를 상상하며 흥분한 듯한 그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 후 아야나는 평소의 모습을 되찾았고, 내가 조금이라도 먹고 싶은 도시락 반찬을 마치 초능력처럼 알아채고 '아~'하고 먹여줬다.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내민 반찬을 입에 넣고 맛있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아야나가 무척 좋아해줬다. 그 미소를 보고 싶었던 것도 있고, 무엇보다도 그녀가 그렇게나 기뻐하는 것이 나는 좋았다.


「괜찮다면 토와군의 도시락도 만들어 올까요?」

「그건 괜찮아. 엄마의 즐거움 중 하나가 도시락 만드는 거 같아서...」

「...흐음」


아야나의 도시락이 너무 맛있어서 그 제안에 고개를 끄덕일 뻔 했지만, 우연히 일찍 일어났을 때 부엌에서 즐겁게 도시락을 만드는 엄마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매일 만들어 주는 도시락, 그야말로 무상의 사랑이라는 건데 정말 고마운 마음이다.

아야나는 한동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이렇게 말하자 부드럽게 웃으며 그렇구나 하고 수긍했다. 만들어 달라고 하면 언제든 말해달라고 마지막에 덧붙였다.


자, 여러 가지로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았던 점심시간이지만 지금은 시간이 흘러 종례가 끝난 직후다. 보통은 슈와 아야나 두 사람과 함께 돌아가는데, 종례가 끝나자마자 다시 나타난 이오리가 슈를 데리고 갔다. 마치 폭풍처럼 나타나서 사라지는 이오리를 보고 나는 행동력 있는 여자라는 감상을 품었지만, 아무래도 주변 사람들... 이오리와 친한 슈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에게는 역시 질투가 났던 모양이다.


「요즘 슈 자식 신났어!」

「그렇겠지. 왜 저런 녀석이 혼죠 씨와 저렇게 친한 거야?」

「그냥 끝내버릴까?」


웬만큼 목소리가 커서 들려왔다. 그쪽을 보니 얼굴이 잘생긴 남학생 그룹, 보기에도 자존심이 강해 보이는데, 그렇구만. 외모가 뛰어난 자신들보다 왜 평범한 슈가 이오리라는 미녀와 친하게 지내는지 질투하는 것 같았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든 그건 그 사람의 자유지 남이 참견할 수 있는 일이 아닐 텐데. 그냥 내버려 둘까도 생각했지만, 점점 더 험악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기 때문에 조치의 의미로 그 그룹에 다가갔다.


「뭐, 그렇게 열내지마」

「앗... 토와?」


등을 돌리고 있던 남자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렇게 말했다.

뒤돌아선 남자의 이름은... 소메야였던가. 소메야를 포함한 다른 남자들에게도 들릴 수 있도록 말을 꺼낸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든 그건 그 사람 마음이야. 타인이 참견할 일이 아니라고, 마음에 안든다고 손을 댔다간 큰일 난다는 것쯤은 알잖아?」


이 녀석들도 결코 바보가 아니다. 슈가 인기를 끄는 것이 별로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슈를 상대로 맞받아쳐도 자신들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단순히 이 녀석들이 원하는 것은 불합리한 분노를 발산하고 싶을 뿐이다. 이 중에 이오리를 좋아하는 녀석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오리가 슈를 좋아하는 이상, 슈를 때리면 이오리의 분노를 건드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 알긴 하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런 자식에게...」


아까의 기세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슈에 대한 질투심은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솔직히 말을 걸면 맞을 줄 알았는데, 잘 생각해보면 토와라는 존재는 반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뛰어난 외모는 남녀를 불문하고 매력을 끌기도 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상냥한 성격에 끌린 친구들도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슈를 친한 친구로 지키려는 그 모습이 반 친구들에게 호감을 샀다... 뭐, 지금은 이미 내가 아야나랑 사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내 안에 있지만 말이다.


「질투심 따위로 누군가를 때리는 건 그만둬. 그런 쓸데없는 일로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마. 같은 반에서 지내면서 너희가 좋은 친구라는 건 알고 있어. 얼굴도 좋고 성격도 나쁘지 않으니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많을 거 아냐?」


진심은 아니지만, 제대로 들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입이 잘 돌아가는 것은 토와의 몸 때문일 것이다. 게임에서도 나왔지만 토와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겉으로만 보면 친구가 많고 배려심 많은 훈남으로만 보인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말하니 소메야도 차분해진 것 같다. 이 정도면 이제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또 다른 제3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누군가를 나쁘게 말하는 것은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해요. 같은 반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저를 포함한 여러분들 모두 소중한 반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토나시...」


끼어든 것은 아야나였다.

아야나는 나를 향해 빙긋이 웃은 후, 소메야 일행에게 시선을 돌렸다.


「슈군은 ...... 아첨을 잘하는 편이 아니에요. 하지만 저와 토와군에게 그는 오래전부터 함께한 소꿉친구예요. 그런 그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 여러분들이 후회할 만한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요」


아야나의 말은 매우 공손했다.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렇게까지 말하니 반론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소메야 일행은 벌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아야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슈에 대한 태도를 고치려는 목소리마저 들렸다.


「저는 잘 모르지만, 혼죠 씨가 슈 군을 좋아해 주시는 것이 기뻐요.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에요. 그 밖에도 슈 군의 좋은 점을 제대로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아야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얼굴을 보고 앞에 서 있던 소메야 일행의 얼굴이 일제히 붉어지며 고개를 숙인다. 아무래도 아야나의 미소에 당하고 만 것 같다...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아야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은 기분 탓일까? 


「뭐, 이야기는 잘 끝난 것 같고, 소메야! 너희도 가라오케 안 갈래? 이럴 때는 노래 부르면 속이 후련해져!」


아야나의 친구인 여자아이가 그렇게 말하자, 소메야 일행은 모두 그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의 어수선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간 듯하다.


「역시 아야나, 대단하네」

「아뇨, 아뇨, 우리도 결코 무관하지 않으니까요...」


아야나가 와준 덕분에 이렇게 둥글게 정리된 것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아야나, 그리고 슈는 친한 친구인데 그마저도 공격적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야나의 저런 모습을 보고 슈를 괴롭히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이 반은 이제 괜찮다고 생각한다.

사람들도 흩어지고, 슈도 이오리와 함께니 아직 시간이 걸릴 것이다. 특별히 동아리에 가입하지 않은 우리는 방과 후에 하는 일도 없다.


「아야나는 어떻게 할 거야? 함께 돌아갈까?」

「네! 손잡고 가지 않을래요?」

「... 그건 좀」

「아, 부끄러우면 팔짱을 껴도 괜찮아요?」


그러니까 그런런 건 슈한테 해 달라고...


「...」

「왜 그래요?」

「아니, 그렇지」


... 잠깐 확인해 볼까.

가방을 짊어지고 아야나와 함께 신발장으로 향한다. 교문을 지나 인적이 드문 곳에서 나는 빈 팔을 벌려 아야나에게 말했다.


「자, 봐. 팔짱 끼자」

「아! 실례합니다」


아야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팔짱을 껴왔다. 팔을 단단히 감아버리니 당연히 떼어내기가 어렵고, 아야나는 그것도 부족하다는 듯이 몸을 밀착시켜 왔다. 여성 특유의 달콤한 향기도 그렇고, 스타일이 좋은 아야나이기에 대담하게 밀어붙이는 부드러운 촉감.

평소의 나 같으면 펄쩍 뛰었을 텐데,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검증의 일환이기도 했다.


(... 보통의 소꿉친구라면 여기까지는 아니지 않니잖아. 역시 '뭔가' 있네)


아무래도 집에 돌아와서 여러 가지 알아봐야 할 게 많을 것 같다.


「... 응?」

「아... 후후후. 토와군♪」


... 귀엽다?

시선이 느껴져서 얼굴을 돌려보니 정말 파괴력이 대단하다.

그 이후로도 아야나는 재치있게 학교 사람이 눈에 들어오면 조금 거리를 두고, 보이지 않으면 다시 몸을 끌어당기는 것을 반복했다. 하지만 멀어지려고 할 때마다 혀를 차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것은... 무엇일까?









「슈 군의 좋은 점이라니... 있을 리가 없잖아~? 소중한 소꿉친구? '난 계속 싫어했어, 그런 새끼'」






### 5. 슈의 가족들은 토와를 싫어하는 것 같다.

아야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내용은 식재료가 부족하니 사다 달라는 단순한 심부름이었다.


아버지가 없는 우리 집에서 나를 생각하며 매일 요리를 해주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당연히 거절할 수 없다. 혼자 가려고 했는데 마침 아야나가 옆에 있었다.


「도와드릴게요. 오히려 돕게 해주세요... 라는 건 명분이고, 좀 더 같이 있고 싶어요. 안 될까요...?」


상냥한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자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가를 향해 걸어가자 당연하다는 듯이 아야나가 팔짱을 꼈다.


아무리 주변에 학생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인파가 많다. 그래도 아야나는 내게서 떨어지지 않고 가끔씩 나를 올려다보며 눈이 마주치면 기쁜 듯이 웃어주니 나로서는 도저히 떨어져 달라고 할 수 없었다.


가게에 도착하자 아야나는 식재료와 눈싸움을 하며 골라나간다.


「고구마는... 이게 좋겠어요. 양배추와 배추... 그리고 고기와...」


내가 들고 있는 바구니에 쓱싹쓱싹 식재료를 넣는 아야나를 보고 있자니 아야나는 분명 좋은 며느리가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현재로서는 조금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이대로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야나는 슈와 결혼할지도 모르겠다. 게임에서 일어난 비극이 일어나지 않고, 슈가 첫사랑과 결혼하는 엔딩이라면 그건 해피엔딩일 것이다.


... 하지만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내가 있다.


『... 젠장』


무심코 초조한 태도가 드러난다.

유키시로 토와의 몸이 되고 나서 이상하게 의식이 끌려갈 때가 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아야나가 곁에 있는 것이 편안해서 계속 곁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그렇지만 몸도 아야나를 원하고 있다.


아야나는 누구에게도 주지 않을 거야, 슈에게 절대 주지 않을 거야, 슈뿐만 아니라 다른 누구에게도 주지 않을 거야, 등등의 말이 머릿속에서 반복된다. 이게 내 의지인지, 아니면 유키시로 토와의 의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감정을 부정할 수 없다.


「후흐, 마치 부부 같네요. 내가 신부, 토와군이 남편인 것 같네요」


조금 쑥스러워하며 그렇게 말하는 아야나의 옆모습은 매우 아름다웠다. 그 옆모습에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이제 볼일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석양이 지고 어두워진 길, 아야나와 나란히 걷는 이 공간은 우리 둘 뿐이다.


한참을 걷다 보면 보이는 것은 아야나의 집, 건너편에 보이는 것은 슈의 집이다. 즉, 오늘은 여기서 헤어지게 되는 것이다.


「고마워, 아야나. 덕분에 살았어」

「아뇨, 아뇨. 제가 먼저 말했으니 괜찮아요. 게다가 토와군과 오랫동안 함께 했으니 오히려 좋았어요」

「... 그렇구나」


묘하게 아쉬움이 남는 이 기분은 무엇일까.

그 감정은 별개로 아야나가 들고 있는 쇼핑백을 받으려는 순간, 마치 몸의 자유가 없어진 것처럼 내 몸은 자연스럽게 아야나의 몸을 끌어안고 있었다.


「꺄... 토와군?」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느낀 것은 아야나의 따뜻함과 감촉뿐. 아야나는 놀란 표정이었지만, 곧바로 내 등에 손을 대고 안아주었다.


「진정해... 조금만 더 이대로 있지」

「언제까지나 괜찮아요. 뭣하면 이대로...」


그렇게 말하면서 아야나는 고개를 들어 입술을 내밀며 다가온다... 닿을 뻔한 순간, 단둘이 있던 공간에 또 다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야나 언니?」

「앗!」


울려 퍼진 그 목소리에 우리는 바로 떨어졌다. 익숙한 목소리의 출처에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 있던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얼굴이었다.


「... 코토네 짱」


아야나가 말한 코토네라는 이름, 풀네임은 사사키 코토네로 슈의 여동생이다. 검은색 단발머리에 헐렁한 교복, ...... 이렇게 말하면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여러모로 작다. 아야나로서는 별 문제가 없겠지만, 나로서는 코토네와 만나는 것은 조금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우리 집 앞에서 뭐하는 거예요?」


아야나에게서 시선을 떼고 나를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이 몸이 되고 나서 만난 적은 별로 없지만, 코토네는 아무래도 토와를 싫어하는 것 같다.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언행과 태도로 보아 토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 역시 히로인 중 한 명이다.


(사사키 코토네, 여동생 유형의 NTR 히로인)


어쨌든 코토네는 브라콘이고 슈를 좋아한다는 설정이다. 슈도 그런 코토네를 사랑하고 있으며, 남매 사이는 기분 나쁠 정도로 사이가 좋다. 다만 그녀도 히로인인 이상, 슈의 눈앞에서 타락해 버릴 숙명을 짊어지고 있다. 확실히 코토네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것을 생각하려던 순간 머리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무심코 관자놀이를 움켜쥐고 옆에 있던 아야나가 무슨 일인가 싶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지만, 그 통증도 금방 사라져서 나는 아야나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아야나가 내 쇼핑을 도와준 것뿐이야. 정말 고마웠어, 그럼 다음에 보자」


이대로 여기 남아서 코토네와 싸워봤자 아야나에게 미안할 뿐이다. 아야나에게서 쇼핑백을 받아 그대로 코토네의 옆을 지나가려는데, 그녀는 나에게도 들릴 것 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야나 언니, 엄청 힘들었지? 억지로 시킨 거지? 여자 버릇이 나쁜 것 같으니까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아」


... 왠지 정론인 것 같아서 반박할 수가 없다.


하지만 글쎄, 일단 나와 슈가 절친한 사이인데 왜 그 여동생과는 이렇게 사이가 안 좋은 걸까? 그러고 보니 게임에서도 토와가 슈의 집에 놀러 가는 묘사는 한 번도 없었구나, 그 반대의 경우는 있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게임에서는 그려지지 않은 무언가가 있어서 토와가 슈의 집에 가지 않는 것일까?


「... 전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엄마를 너무 기다리게 하는 것도 나쁘다고 생각해서 귀가를 서둘렀다.









한 소녀가 콧노래를 부르며 자기 방 침대에 앉아 있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방에서 소녀 아야나는 집에 돌아오기까지 있었던 일들을 떠올린다.


「토와군의 온기와 냄새를 잊을 수 없어... 아 좋아... 사랑해, 토와군」


커다란 인형을 껴안고 얼굴을 묻고 몇 번이고 그 광경을 머릿속에 되새긴다. 요즘은 연락이 뜸했지만, 아야나에게는 토와가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게다가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키스까지 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아야나의 마음은 한순간에 분노로 가득 찼다.


「그 년만 안 왔으면 키스할 수 있었는데... 그 전에도 혹시...! 젠장!」


껴안고 있던 인형을 거칠게 던지며 갈 곳 없는 분노를 표출한다. 키스를 방해받은 것 뿐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코토네는 토와를 모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때는 참을 수 있었지만, 코토네와 헤어진 이후에도 그 분노는 계속 남아 있었다. 토와와의 일을 떠올리면 마음이 가라앉았지만, 이제서야 코토네에 대한 분노가 폭발해 버린 것이다.


「토와군이 아무 말도 안 하니까 나는 참을 수 있어... 그래도... 그래도! 아아아아아아아아악!!!!」


평소 그녀에게서는 결코 생각할 수 없는 그 모습,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이것도 그녀가 가진 얼굴이기도 하다. 내동댕이쳐진 봉제인형에게 한 방이라도 날려주려고 일어서려던 순간, 아야나의 스마트폰에 메시지가 뜬다. 머리가 끓어올랐지만, 발신자를 보자마자 분노가 가라앉았다.


「아, 토와군!」


서둘러 메시지를 본다.


『오늘은 정말 고마웠어. 역시 아야나는 의지가 돼. 이번 주말에 둘이서 어디 놀러 가지 않을래?』


그 문장을 보고 아야나의 마음을 감싸는 것은 환희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답장을 입력하고 전송 한 후 한숨을 내쉬었다. 스마트폰을 가슴에 안고 아야나가 떠올리는 것은 토와의 모습, 미소, 냄새, 따뜻함, 그를 떠올리는 모든 것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나는 것은 최근 토와의 모습이다.


「역시 요즘 토와 군은 조금 달라졌어요. 뭐, 어떤 토와 군이라도 사랑하지만요」


아야나는 토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봐 온 것이다. 그래서 토와의 변화도  알아차리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야나에게는 사소한 문제였다. 토와가 거기에 있다. 말을 걸어준다. 안아준다. 귀여워해 준다. 자신을 바라봐 준다. 그것만으로도 아야나는 만족한다. 곁에 그가 있고, 그 옆에 자신이 서 있으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야나는 일어나서 방에 놓여 있는 책상을 향한다. 책상에 놓여 있는 여러 장의 사진, 거기에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토와와의 사진이 장식되어 있었다.


「... 토와군」


넋을 잃고 바라보는 아야나. 하지만 사진들에는 하나같이 왜곡된 부분들이 있다. 그것은 두 사람 외에 또 다른 사람이 사진에 찍힌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 흔적이라는 것은 아주 쉽게 알 수 있는데, 토와와 아야나가 아닌 다른 인물이 매직으로 검게 칠해져 있는 것도 있고, 가위로 상체만 잘라낸 듯한 조잡한 것까지 있다. 마치 그 인물에 대한 큰 혐오감 같은 것을 보여준다.


「... 저런 새끼랑 소꿉친구라니 구역질 나, 그 여동생도, 그 엄마도! 언젠가는 꼭 더럽혀버릴 거야」


엄청난 증오와 함께 내뱉은 말은 허공으로 사라진다.

다시 한 번 혼란스러워진 마음은 방금 전에 받은 답장으로 평온을 되찾았다.


「토와군 사랑해. 안녕히 주무세요」


부드럽게 중얼거리던 아야나는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일 또 토와를 만날 수 있다는 기쁨을 가슴에 품고.






### 6. 뭔가 없는 건가... 아무 일도 없는 것 같다.

「... 이제 그만」


엄마와 함께 저녁을 먹고, 오늘 심부름을 함께 해준 아야나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낸 뒤 나는 현재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캐릭터의 간단한 설정을 적어보기로 했다.


솔직히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해서다. 아야나가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른 것은 충격이었고, 평소보다 분명히 가까워진 거리감에 나는 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 비정상적인 아야나의 태도와 거리감이 전혀 이상하지 않고, 그것이 정상이라는 것을 인식하려고 하는 나 자신이 무섭기도 하다. 두려움은 있지만... 그 두려움도 곧 사라질 거라고 체념하고 있다.


「사사키 슈, 오토나시 아야나, 혼죠 이오리, 사사키 코토네...」


최근에 만났던 인물들의 정보를 적어 내려가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다. 슈에 관해서는 흔한 주인공 설정이고, 아야나, 이오리, 코토네에 관해서는 스타일이나 성격,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등의 정보밖에 없다.


이 세상에 【나는 모든 것을 빼앗겼다】의 공식 사이트 같은 것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지만, 캐릭터 소개 글은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기억을 떠올리며 종이에 적어 내려가니 어느새 종이는 내가 쓴 글씨로 가득 찼다.


「슈에 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없네... 이오리도 코토네도 비슷한 느낌인가. 아야나는...」


아야나에 대해 적어놓은 부분은 이것이다.

・슈의 소꿉친구이자 같은 동네에 사는 소녀. 외모도 예쁘고 성격도 착해서 반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슈도 그렇고, 토와와도 사이가 좋아 자주 등하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슈에게 남다른 마음을 품고 있으며, 언제 그 마음을 고백할 수 있을지 기회를 엿보고 있다.


「... 흔히 볼 수 있는 소꿉친구 히로인의 문장이지?」


결국 마지막에 토와에게 빼앗기는데... 음 모르겠다.

다음으로 써내려가는 것은 지금의 나 자신, 유키시로 토와에 대한 것이다. 그게 바로 이것이다.

・슈의 친한 친구이자 아야나에게도 의지될 수 있는 남학생. 외모와 성격으로 남녀를 불문하고 인기가 많아 아야나와 마찬가지로 반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존재.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축구를 했었다고 하는데, 어떤 사정으로 인해 그만두고 지금은 귀가부라고 한다.


「... 평범하네. 청량감이 느껴질 정도로 잘생겼어」


내가 기억하는 토와의 일러스트와 소개글에서 설마 금태양 캐릭터일 줄은 몰랐어서 그 당시에는 정말 놀랐다. 그러고 보니 토와가 축구를 한다는 설정이 있었지. 지금 쓰면서 생각났는데... 특별히 의미는 없을 것 같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우치다 마리와 사사키 하츠네... 슈의 후배와 어머니인데, 역시 별 의미는 없는 것 같다... 아~ 모르겠어!」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위와 같은 내용을 적은 종이를 접어서 보관하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책상 서랍을 열었다. 나온 것은 앨범이었는데, 토와의 지금까지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인 것 같았다.

촤르륵 넘기니 어린 시절부터의 사진들이 줄줄이 붙어 있었다. 토와뿐만 아니라 작은 아야나와 슈도 찍혀 있었다.


「... 오오. 이 녀석은 희귀하네」


내 눈에 띈 것은 한 장의 사진.

축구공을 차려다가 헛스윙을 한 건지, 아야나가 크게 넘어져 있고 그것을 배를 잡고 웃고 있는 슈와 토와가 찍혀 있었다. 모두 어린 나이 탓인지, 사이좋게 놀고 있는 이 광경은 매우 흐뭇하다.


「... ?」


그런데 많은 사진을 보면서 한 가지 느낀 점이 있다.

주로 셋이서 찍은 사진이 많은데, 모두 토와가 중심이 되고 양옆에 아야나와 슈가 있다. 아야나와 슈가 나란히 있는 사진이 한 장도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별다른 의미는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지도 않게 사진을 보다가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가 훌쩍 넘었다. 조금 졸리기도 하고 이제 자러 가야겠다. 앨범을 정리하고 침대에 눕는다. 그러자 왠지 모르게 아야나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이 시간에 전화는 정말 귀찮을 텐데... 좋아, 수신음 2번 안에 안 받으면 끊자!」


깨웠다면 사과하고, 기분 나쁘게 했다면... 역시 사과할 수밖에 없겠구나.

마음은 먹었다. 이제 발신!


「역시, 안 받겠...」

「여보세요 토와군?」

「... 오오」


.... 전화를 걸었는데, 수신음 1번 만에 받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전화를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받을 줄은 몰랐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전화를 받아줘서 반갑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그저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전화했기에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잠시 말문이 막히자 쿡쿡하고 아야나가 웃었다.


「이 침묵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았다는... 건 가요?」


너무나도 정확한 말에 전화기 너머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도 미안하니,  곧바로 아야나에게 말했다.


「사실은 말이야. 설마 이렇게 빨리 전화 받을 줄은 몰랐어. 안 잤어?」

「네. 어쩌면 토와군이 전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핸드폰을 들고 있었는데 전화가 걸려와서... 후흐, 생각이 통했네요」


어떻게 이렇게 부끄러운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나를 기쁘게 해줄 수 있는 말을 고르고 있다. 아야나의 경우 이건 계산된 것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거짓 없는 말일 것이다. 그런 아야나의 말을 들어서 그런지 나도 마음이 안정되어 평온한 마음으로 말을 고를 수 있었다.


「듣고 싶었어. 아야나의 목소리가」

「제 목소리인가요?」

「응. 그래서 지금 아야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정말 기뻐」

「...헤! 정말이지 토와군! 전화 너머로도 정말 기쁘지만, 다음엔 얼굴을 마주보고 말해 주세요! 안아주는 것도 같이요!」


펑펑,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야나는 쑥쓰러우면 무언가를 두드리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 그 장면을 상상하니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아야나가 좋다면 그렇게 할게. 아니, 그냥 하게 해줘」

「괜찮습니다. 언제든 해 주세요. 그야말로 토와군이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토와군이 하지 않으면 제가 할 테니까」

「장소는 생각해 보자」

「그래요, 단 둘이 있을 수 있는 곳에서...... 꺄!」


성급한 아이구나. 하지만 역시 아야나와 이야기하는 시간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역시 이 몸이 된 영향도 있겠지만, 나는 아야나를 원하고 있다. 결국 나는 유키시로 토와라는 건가?


「...」

「토와군」

「왜?」


조금 진지한 목소리가 된 아야나가 말을 이어간다.


「어떤 토와군이라도 저는 좋아요. "그때" 내가 토와군을 받아들인 것은 결코 동정심 때문이 아니었어요. 당신 곁에 있고 싶고, 지탱하고 싶어서 저를 바친 거예요」

「... 그건」


아야나가 무슨 말을 하는 걸까? 그것을 물으려는 순간, 머릿속에 영상이 떠올랐다. 아야나를 덮치는 토와의 모습, 하지만 그 표정은 매우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토와를 안심시키려는 듯 아야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건 도대체........!

욱씬하고 머리에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몰려오자 정신을 다잡았다.


「아하하, 조금 부끄러워졌어요... 하암」


아야나의 하품을 듣곤 시계를 보니 조금 길게 이야기한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은 아야나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해서 아쉬운 마음에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고 제안했지만...


「아직이요... 더 이야기하고 싶어요」

「전화를 건 내가 말하긴 그렇지만, 역시 미안해. 내일 보자?」

「... 알겠어요. 오늘은 참을게요」


정말로 전화를 끊기 싫어하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나 역시 아야나처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지금은 마음을 다잡고 내일을 기다리기로 했다.


「오늘은 정말 고마웠어, 하나부터 열까지 정말로. 잘자, 아야나」

「네. 또 언제든 전화 주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토와군... 츄」


그렇게 전화는 끊어졌다. 마지막 효과음은... 즉, 그런 뜻으로 봐도 될까?


「...후」


아야나와 통화한 덕분에 외로웠던 마음이 사라졌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편안하게 잠 잘 수 있을 것 같다. 궁금한 것, 조사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되는 것만 알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마음을 터놓고 아야나와 대화할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눈을 감으면 찾아오는 졸음에 내 의식은 금방 가라앉았다.









어느 곳에 한 남성이 게임을 하고 있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던 게임의 엔딩을 맞이한 남성은 기쁨이 아닌 탄식을 흘렸다.


「... 이게 뭐야, 이 게임. 아니, 알고 있었는데? 근데 마지막에 아야나의 타락 장면을 보여주다니? 얼마나 악마 같은 게임이야 이거!」


스태프 롤이 흐르는 것을 멍하니 쳐다보던 남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미동도 하지 않는다.


「... 감상문이라도 쓸까?」


게임을 했으니 클리어한 플레이어로서 리뷰를 쓰려고 인터넷에 접속한 그 순간이었다. 문득 남자는 마음에 걸리는 것을 발견했다.


「뭐야... 【나는 모든 것을 빼앗겼다】 팬 에디션... 아야나 이야기?」


남성이 발견한 것은 방금 전까지 플레이했던 게임의 팬 에디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속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남자 입장에서는 매우 궁금했지만, 도저히 손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야나 시점의 이야기, 본편에서 그려지지 않은 그녀의 이야기를 체험하자... 어차피 그거겠지? H씬이 하나밖에 없었던 아야나를 파헤치는 거 아니야? 이렇게 데미지 받은 상태에서 아야나의 농후한 타락 장면 따위를 누가 보겠냐고!」


하지만, 무서운 것은 도리어 보고 싶다는 자신의 마음이다. 남자 자신은 이 팬 에디션을 살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의 리뷰 정도는 보고 싶다는 생각에 해당 페이지로 이동했다.


「엄청나게 평가가 높잖아」


너무 높은 평가에 남성은 깜짝 놀랐다.

남성은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작성된 리뷰를 읽어 내려갔다.


・본편에서 그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라는 점이 궁금해서 구매했습니다. 뭐랄까... 굉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점의 차이는 물론이고, 본편에서 그려지지 않은 사건을 파고들면서 이렇게까지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슈에게 조금이라도 애착이 있는 사람은 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정말 구제불능이고, 무엇보다 아야나라는 소녀에 대한 인상이 뒤집어집니다.


・아야나가 처녀성을 버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의 아야나는 NTR된 여주인공이 아니라... 그냥 여신이었어요.


・슈와 친하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한 후배와 선배가 불쌍하다. 하지만 타락해버려서 저는 만족해요.


・이게 본편의 NTR 히로인이란 말인가? 그냥 순애야 최고였어요.


・그저 아야나가 무섭다. 하지만 이런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디서 만나면 만날 수 있을까?


・축구라는 설정이 저렇게까지 관여할 줄은 몰랐어요. 토와군, 그건 충분히 원망할 수 있다고봐. 아야나랑 행복해져라.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 같아요. 다만 본편에서 NTR 당한 히로인이 팬 에디션의 주인공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는 앞으로 없을 것 같아요. 스토리도 그렇고 H씬도 최고였어요.


・아야나의 자비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어머니를 놓아준 것은 아쉽다. MILF 매니아로서 아야나 엄마의 장면이 있었으면 좋겠다.


등등이 감상평으로 적혀 있었다.

그것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남자는 천천히 커서를 구매 버튼으로 가져가서 클릭 했다.






### 7. 나에게 소꿉친구는...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소꿉친구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사사키 슈로, 항상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그런 아이였다. 어머니들끼리도 친한 사이여서 우리도 친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야나짱! 같이 놀자!』

『응, 좋아』


뒤에서 졸졸 따라다니는 슈를 당시에는 귀엽다고 생각했고, 동생을 돌보는 누나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 자신도 슈를 돌보는 것이 싫지 않았고, 특별히 계획도 없는 일상이 이런 식으로 채워지는 것도 싫지 않았다... 단지 그것이 계속 이어져야만 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친해진 친구들과 놀기로 약속한 적이 있었다. 친구들과 놀러 갈 준비를 마치고 나가려고 하는데, 엄마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어디 가는 거야? '안 되잖니. 슈 군네 엄마한테 놀러 간다고 얘기했으니까』

『... 어? 하지만 친구들이랑 놀기로 약속했는데』

『그건 다음에 하렴. "소꿉친구"니까 슈를 소중히 여겨야지』

『... 그래도』

『알았어?』

『... 네』


친구와의 약속을 취소하고 슈의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다행히 친구는 볼일이 있으면 어쩔 수 없다고 말해주었지만, 나는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 즈음부터... 나는 소꿉친구라는 존재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무엇을 하든 슈 군의 집으로 향하는 날들, 그와 그의 여동생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한다. 학교가 있는 날은 일찍 일어나서 슈 군을 깨우고 나란히 학교로 향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건 내 의지가 아니라 엄마가 시킨 일이었다.


『아야나 짱이 있어줘서 다행이네. 슈의 신부가 되어 주겠니?』

『아야나 언니, 그렇게 하자! 오빠의 신부!』

『두, 둘 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눈앞에서 펼쳐지는 가족의 단란한 모습, 거기에 우리 어머니까지 가세해 펼쳐지는 미래, 나는 그것을 어딘지 모르게 냉랭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든 슈 군, 슈 군이, 슈 군 에게라고 말하는 엄마가 싫증이 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귀엽다고 생각했던 슈 군이 귀찮게 느껴진다. 슈군에게 신경쓰는 나를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알 수 없는 칭찬을 하며 치켜세운다... 그 모든 것이 나에겐 역겹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소꿉친구라는 이유로 계속 함께 있는 것이 당연시되고, 그의 곁에 있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현실에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 나는 뭐지?


『... 소꿉친구란 무엇일까』


소꿉친구, 오래전부터 함께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라는 존재는 항상 슈 군의 곁에 놓여 있고, 싫다고 하면 심한 말하지 말라고 혼난다.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말을 하면 뺨을 맞는... 있잖아, 가르쳐줘.


나는 뭐야? 나는 슈 군이라는 존재를 장식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옆에만 있으면 되는 간판 같은 존재인지...


언제부턴가 나는 가면 같은 미소를 짓게 되었다.


『아야나짱과 함께 있으면 즐거워!』

『그렇구나. 나도 그래』

『있지있지, 아야나 언니. 나랑도 같이 놀자!』

『응. 뭘 할까?』

『아야나 짱은 벌써 요리를 배우는거야? 대단하네』

『감사합니다』


내 삶이지만 남의 일처럼 냉정한 마음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무관심해질 수 있었다. 무엇을 하든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내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나만 알 수 있으니 이 가면을 쓰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내 세계는 보호받을 수 있었다.


어렸을 땐 나도 여자아이라서 소녀만화 같은 것을 동경한 적도 있었다. 소꿉친구 남녀의 연애, 달콤하고 설레지만 때론 힘든 경험을 하면서도 결국엔 맺어지는 두 사람. 친구들은 '꺄악꺄악'하며 그런 이야기들을 나에게 들려주기도 했지만, 나는 그런 것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내가 특이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저 소꿉친구를 위해 헌신하는 이성의 모습은 내게는 의지없는 인형이 정해진 동작을 하는 것으로만 보인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만화나 소설에서 자주 그려지는 것은 소꿉친구 사이의 사랑, 좋아하는 이성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 인기를 끄는 것 같다.


나로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주인공은 어릴 때 부터 소꿉친구를 좋아하도록 세뇌라도 당한건지 같은 비뚤어진 생각을 하기도 한다.


『소꿉친구란 무엇일까』


그것은 계속되는 나의 화두였다.

하지만 한 가지 말하자면... 소꿉친구라는 단어는 나에게 있어서...




저주 그 자체였다.




학교라는 공간이 끝나면, 소꿉친구라는 주박의 세계를 보낸다. 그런 세상에 갑자기 빛이 비친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당신이... 토와군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혼자서 뭐해? 눈이 새빨개...』


처음으로 엄마에게 반항하여 슈 군의 집으로 향하지 않고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망쳤을 때였다. 도망쳤다고 해도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았고, 바로 돌아갈 수 있는 장소였던 것은 조금 무서웠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토와 군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축구공을 발로 굴리면서 말을 걸어오는 토와 군을 보고 나는 도망같은... 짓은 하지 않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이야기했다.


아마 누구라도 좋았을 것이다. 그냥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좋겠고, 그럴 때 나타난 사람이 토와 군이었다는 것뿐...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 좀 어렵네』


토와 군은 팔짱을 끼고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당시에는 아직 초등학생이었다. 이런 고민을 함께 하는 것 자체가 너무 지나친 것 같았다. 다시 고개를 숙인 나를 보고 토와 군은 당황한 듯 뭔가 없을까 싶어 이리저리 바쁘게 시선을 움직인다. 그리고 그는 발밑에 있는 축구공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말했다.


『이봐. 잠깐 봐봐』

『어?』


그렇게 말하면서 토와 군은 리프팅을 시작했다.

나도 TV에서 봤기 때문에 발과 몸을 이용해 공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절하는 그 동작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가끔 TV 에서만 봤지,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은 없었다.


『어이쿠. 영차! 읏차아!』

『... 우와아아아!』


축구는 잘 모르지만, 그게 대단하다는 것만은 알았다. 그리고 나를 격려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토와군의 모습도 나에겐 너무나도 눈부시게 보였다.


고등학생이나 어른들이 하는 것에 비하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토와군이 포즈를 취하고 끝냈을 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대단하다, 굉장해!』

『헤헤, 고마워!』


생각해보니 슈 군이 아닌 다른 남자아이와 이렇게 대화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다. 너무 새롭고, 평소와는 다른 세계가 펼쳐진 것 같은 신선함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나 지금부터 갈 곳이 있는데 같이 갈래?』

『응!』


그 제안에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의 나는 더 이상 슈 군이나 어머니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토와 군은 여러 곳으로 나를 데리고 다녔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게임센터에 갔을 때였다.


『아저씨, 실례할게!』

『시, 실례하겠습니다...!』

『여어, 토와 군, 뭐야 걸 프렌드야?』


나온 아저씨는 토와 군의 지인인 듯 두 사람은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치 부자지간 같은 편안함이 느껴진다.


『걸 프렌드가 아니야... 아니, 여자아이인 친구니까 걸 프렌드?』

『오, 오? 그래, 그렇게 되는 거야?』

『... 후후』


당시 나는 영어를 잘 몰랐지만, 그 분위기가 재미있어서 웃고 말았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정말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어본 것 같다는 것을.


『아저씨가 바보라서 웃음을 샀잖아』

『토와 군에게 바보라는 말을 듣고 싶진 않은데?』

『우리 엄마도 바보라고 했는데?』

『아케미짱, 정말 심하네!』

『후후... 아하하하!』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대화, 정말즐거웠다. 내가 웃자 토와 군 뿐만 아니라 아저씨도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러워하는 모습도 재미있었다.


평소에는... 라기보다 이런 곳에 초등학생이 잘 오지 않을 것 같고, 여자아이라면 더더욱 오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토와 군에게 끌려다니면서 한 시간 정도 마음껏 놀았다.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상쾌해졌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빨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토와 군도 그걸 눈치챘는지, 바래다주겠다며 내 손을 잡고 집까지 가는 길을 걸었다.


『... 따뜻하다』


따뜻하고 큰 손, 남자아이의 손의 감촉에 나는 조금 두근거렸다.


그리고 가는 길에 토와 군은 나에게 돌아보며 열쇠고리 하나를 꺼냈다. 내가 보지 않을 때 게임에서 딴 상품이라고 한다. 엉성한 곰 인형이 달린 열쇠고리.


『자. 선물이야. 필요 없으면 버려도 돼』

『그런 짓은 안 해!』


나는 토와 군에게 받은 키 홀더를 가슴에 안으면서 고맙다고 말했다. 토와 군이 수줍어하는 표정이 너무 귀여웠고, 그런 표정에 설레는 나도 있어서... 정말 그때는 이 느낌이 뭔지 신기하게 느꼈던 기억이 난다.


집이 보이자 집 앞에서 모두들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혹시나 더 화를 낼까, 그런 두려움을 안고 있는 나를 뒤로 한 채 토와 군은 어머니들 앞에 섰다.


『죄송합니다. 제가 데리고 돌아다녔어요. 아야나랑 있으면 재미있어서 무심코...』


원래는 내가 집을 뛰쳐나온 것이 원인이지만 아무래도 어머니들은 내가 집을 나간 것조차도 토와 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단번에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험악해졌다.


나는 아니라고 말하려 했지만, 토와 군은 괜찮다고 나를 보호하려는 듯 어머니들의 눈치를 살폈다. 역시나 어머니들도 모르는 초등학생에게 호통칠 생각은 없었던 모양인지 그 얘기는 거기서 끝이 났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더 이상 그와 놀지 말라고 잔소리를 들었다.


『... 토와 군. 멋있었지. 저기, 곰돌이씨』


등 뒤에 감싸졌을 때, 토와 군은 정말 멋있었다.

토와 군에게 받은 엉성한 곰돌이 인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슈 군이나 코토네도 뭐라고 말했지만, 평소처럼 내 마음은 식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에는 언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런 마음이 통했는지 다음 날 우리는 재회하게 된다.


『어라, 아야나 짱?』

『토와 군!』


세상은 좁았다.

그야 같은 초등학교였던 걸.









몰아붙이고...... 물아붙여서.......

괴롭히고...... 괴롭혀서 .......

그리고 마지막에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는거에요...... 그러면 이제 절망밖에 없잖아요?


나는 절대 잊지 않을 거야, 너희들이 내뱉은 말을.

나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그가 흘린 눈물을.


그래서 내가 【모든 것을 빼앗아 줄게요】



「... 뭐야 이게?」


도착한 팬 에디션을 바로 플레이하려던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게임을 설치하고 더블클릭하여 게임을 실행한 순간, 오프닝 영상처럼 위 문구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지금은 이미 타이틀 화면에서 조금은 쓸쓸하지만 몽환적인 노래가 흘러나오고 검은색 후드를 쓴 아야나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전작과 전혀 다른 시작이네」


전작에서는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랜덤한 히로인이 타이틀을 읽어주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남자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처음부터를 선택해 게임을 시작했다.






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