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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나에게 소꿉친구는 소중한 존재다

「... 휴, 끝났어요, 회장님」

「수고했어, 슈군. 나도 마침 끝났어」


작업하던 자료를 회장--이오리 씨에게 건네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라면 방과 후는 아야나, 토와와 함께 셋이서 귀가할 예정이었지만, 이오리 씨가 조금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다고 해서 학교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왜 다른 사람이 아닌 나한테만 부탁한 것인지 의문이 들긴 하지만, 뭐, 그럭저럭 알고 지낸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라는 의미가 크겠지. 뒷정리를 하는 회장으로부터 시선을 떼고 스마트폰을 들고 앱을 열자 아야나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토와군과 함께 먼저 돌아갈게요. 일 잘하세요, 슈군』


굳이 이런 메시지를 보내지 않아도 되지만, 그녀의 다정다감한 메시지가 반가운 것도 사실이고, 결국 웃음이 흘러나왔다.


토와와 단둘이 있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토와가 나 다음으로 아야나를 오래 알고 지냈지만, 내가 보기에 두 사람은 그저 친한 친구 사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오래전부터 토와가 나와 아야나를 응원한다고 말했으니 말이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왜 그렇게 히죽히죽대? 괜찮아?」

「으악! "아, 아뇨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흠~」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이오리 씨에게 나는 황급히 말을 둘러댔다. 그녀는 단숨에 나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간다. 조금만 움직이면 키스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거리감에 나는 당황했고, 이오리 씨는 재미있다는 듯이 킥킥 웃었다.


「있잖아, 슈군? 그런 모습이라면 나한테도 아직 기회가 있는 걸까?」


장난스러우면서도 색기가 느껴지는 눈빛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가 아는 이오리 씨는 이런 식으로 가까운 여성이지만, 나 이외의 남자에게는 이런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나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는지 알려주지는 않지만, 한 번은 알려줄 뻔한 적이 있었다.


『나랑 사귀면 가르쳐줄 수 있는데...' 라고 말했었다』


그 말이 농담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렇다면 좋겠다고 가볍게 대답했다. 아무리 말을 아껴도 이오리 씨는 미인이다.


그야말로 나 같은 사람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미인이다. 이렇게 말하면 토와가 자신을 비하하지 말라고 말하겠지만, 예전에 비해 나아졌다고는 해도 이 소심한 성격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나는 아야나를 좋아한다. 이오리 씨에게 휘둘릴 것... 같지만, 그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아야나다.


「크흠. 빨리 돌아가자고요, 이오리 선배」

「아, 잘못 너무 놀렸네」

「먼저 돌아갈게요」

「후후, 두고 가지 말라고요」


더 이상 놀림감이 되기 싫어서 나는 발 빠르게 학생회실을 나왔다. 곧이어 이오리 씨가 달려와 내 옆에 섰고, 우리는 함께 신발장을 나와 교문을 빠져나갔다.


돌아오는 길은 중간까지 함께였기 때문에 이오리 씨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데, 그 길목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내 고막을 울린다.


「선배! 슈 선배!」


활기찬 목소리가 울려 퍼져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한 소녀가 달려온다.


「지금 막 돌아가는 길인데 선배님도 가시나요? 그럼 같이 가도 될까요!」


그렇게 말을 건넨 것은 우치다 마리라는 후배 소녀였다. 어른스럽고 아름다운 이오리 씨와는 정반대로, 마리는 보이시하고 날씬한... 미인이라기보다는 귀여운 소녀라고 할 수 있다.


「괜찮아. 슈군도 괜찮겠지?」

「물론입니다. 같이 갈까, 마리?」

「네!」


힘차게 대답한 마리는 이오리 씨와 반대로 나를 사이에 두고 자리를 잡으며 계속해서 거리를 좁혀왔다. 그것을 본 이오리 씨도 경쟁심을 드러내는 듯이 나와의 거리를 좁힌다. 토와라면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나는 도저히 그럴 수 없다. 게다가 이런 장면을 다른 사람이 본다면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르겠다.


「우치다 씨, 너무 가깝지 않나요?」

「회장님이야말로 좀 떨어지는 게 어때요?」


제발 나를 사이에 두고 말다툼을 하지 말아줘, 곤란한 내 표정을 본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잠시 휴전이라도 한 듯이 말다툼을 멈춰 주었다.


만약 이런 장면을 아야나에게 보여서 오해를 받으면 곤란한데, 다행히 아야나는 이미 돌아갔을 테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시 한참을 걷다가 문득 이오리 씨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슈군과 우치다 씨는 어떤 관계야?」


그것은 단순한 이오리 씨의 의문이었을 것이다. 이에 대답한 것은 마리였다.


「제가 휴일에 자주 시내를 달리는데, 그때 오토나시 선배를 만났어요. 계속 동아리 활동에 몰두하고 있던 저로서는 오토나시 선배와의 대화가 즐거웠고, 자연스레 슈 선배를 소개해 주셨어요」


어느 날 휴일, 아야나에게 불려서 간 곳에는 마리가 있었다. 첫 대면이라 긴장했지만, 옆에 아야나가 있었기 때문에 대화가 잘 통했다.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마리의 러닝에 동행하는 일이 많아졌다. 마리와 마음이 맞아서 대화가 즐거웠고, 최근에는 아야나 없이도 자주 만날 정도다.


「그랬구나, 하지만 우연이네 생각해보니 나와 슈군이 만나게 된 계기도 오토나시 씨가 아니었나?」

「어, 그래요?」

「... 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반에서 토의을 할 때 등 아야나는 자주 솔선수범하여 모두를 이끌었다. 그래서 반에서 결정한 것을 회장인 이오리 씨에게 보고할 때, 아야나에게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동행했을 때 알게 되었다.


주위에서 냉정하다고 말하던 이오리 씨였지만, 사람을 잘 대하는 아야나가 곁에 있었던 덕분인지 대화가 잘 통했다. 그 때의 인연으로 나도 이오리 씨와 친분을 맺게 되었다.


「왠지 아야나 씨가 큐피트 같네요」

「정말로. 뭐, 슈군 본인은 아직 우리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지만...」

「... 고생이 많네요」

「진짜로!」


왜 둘이서 나란히 눈빛을 보내고 있는 거야.

곤란한 표정의 나를 보고 두 사람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 되겠네」

「안 되겠어요」

「내가 뭐 잘못했어?!」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의 반응에 나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항의하자, 두 사람은 부드럽게 웃으며 사과주었다... 그래도 나 역시 그녀들과 보내는 일상이 싫지 않다. 오히려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녀들은 아야나처럼 나를 제대로 봐주기 때문이다.


「... 그래도 역시 오토나시 씨는 강적이네요」

「그렇네요. 소꿉친구는 만만치 않네요!」


왜 갑자기 아야나의 이름이 나왔을까.


하지만... 소꿉친구라니. 나는 정말 아야나와 소꿉친구가 된 것에 감사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지내온 친한소꿉친구, 항상 웃는 얼굴로 나를 대해준 그녀를 나는 정말 좋아한다.

나에게 소꿉친구라는 존재는... 그렇구나.



무엇보다도 소중한 존재



그래, 이게 잘 어울린다.


『아야나랑 같이 있으면 즐거워!』

『그렇구나. 나도 그래』


그렇게 말해준 아야나의 미소, 언제까지나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보물.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 그녀에게 내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나와 아야나는 말하자면 부모님이 서로 인정한 사이인 것이다. 아야나도 싫은 표정 없이 항상 웃으며 내 곁에 있어 주었으니... 분명 이 마음은 통할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분명 괜찮을 거야.


「오토나시 선배도 그렇고, 유키시로 선배도 대단하죠. 중학교 때 축구를 굉장히 잘했었죠?」

「앗!」

「어머, 그래?」


흥미롭다는 듯이 되묻는 이오리 씨와는 달리, 내 마음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 같았다. 토와는 확실히 나의 절친이다. 하지만 토와에 관한 축구 이야기는 나에게는 금기어 같은 존재다.


「중학교는 달랐는데, 당시에는 저희 학교에도 소문이 날 정도였어요. 그런데 사고로 다쳐서 축구를 그만뒀다고 들었어요. 슈 선배님, 혹시 아세요?」

「어...」


나는 마리의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사건은... 아니, 이미 끝난 일이다. 토와도 용서해 주었으니까.


『'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지. 신경쓰지마, 그보다 네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 봐, 기억 속의 토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미 끝난 일이야.


「... 자세한 건 모르겠어. 토와에게도 안타까운 일이었을 테니 너무 캐묻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렇게 평범하게 말해도 되는 걸까? 분명 괜찮을 것이다. 몇 번이고 말하지만, 그건 이미 끝났어.


「그것도 그렇네요. 그보다! 나는 나대로 열심히 해야지!」

「힘내, 마리짱. 라이벌이지만 응원할게」


토와의 이야기가 끝나자 나는 진심으로 안심했다.

평상심을 유지한 채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귀가길에 오른다. 나에게 있어서 토와는 절친... 그래, 친한 친구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절친.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친구도 많고... 아야나와 사이가 좋아서.

나와 다른 네가 부러웠다... 병실에서 더 이상 대회에 나갈 수 없다는 선고를 받은 너를 본 나는... 웃었다.


비웃고 있었다 ...... 마치 꼴좋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 때 느꼈던 누군가의 시선, 너무 무서웠지만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았다. 혹시... 누군가 나의 비웃는 얼굴을 보았을까?






### 9. 나는 토와고, 토와는 나인가.... 그래, 이제야 알았네

가끔은 이게 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 여기는)


새하얀 공간, 청결감이 넘치는 이곳은 어디 병실인가?

주위를 둘러보려는데 생각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꼈다. 어찌 된 일인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곧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우선 팔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다음으로 다리도 매달려 있고... 후에는 허리도 최대한 움직이지 못하도록 뻣뻣하게 고정되어 있는 것 같은 감각이 느껴진다.

꿈치고는 너무 현실적... 아니, 과연 이게 정말 꿈일까. 이렇게 현실적이고, 마치 내가 경험한 과거처럼 느껴지는 현실감... 뭐, 괜찮다. 일단 이건 꿈으로 치자. 라고 말했지만 아무리 꿈이라고 해도 몸을 만족스럽게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불편하다.


(꿈이라면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꿈이라면 뭐든 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마법이라든가, 이세계라든가, 아야나와의 그런 장면이라든가... 크흠, 이건 좀 그렇네, 무심코...


(아~...... 아 테스트, 테스트. 누가 좀 도와줘~. 꿈의 세계에 갇혀 있어요~)


... 장난을 쳐봤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네, 정말 뭐야? 난 병실에 꼼짝도 못하고 갇혀있는 취미는 없어. 만약 그런 취미를 가지고 있다면 대단한 성향일 거다.

몸은 움직이지 않고, 방금 깨달았는데 내 목소리가 나지 않는 것 같다. 이것도 묘한 느낌이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눈앞의 문이 열렸다. 들어온 것은 슈였다. 그는 눈이 빨갛게 부어오른 채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입을 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미안... 미안해, 토와! 내가 멍하니 있었기 때문에... 네가 사고를 당했어.......으윽!」


콧물까지 흘리며 펑펑 우는 슈, 지켜보는 나로서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뭐지? 지금 당장 몸이 움직일 수만 있다면, 온 힘을 다해 슈의 얼굴을 때려주고 싶다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 분노에 당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뭐, 이럴 수도 있는 거지. 신경 쓰지 마. 그보다 네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 왜..... 왜 네가 그렇게 울고 있는 거야? 울고 싶은 건 이쪽인데!』


이중음성같은 토와... 아니 나인가, 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겉으로는 슈를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부드럽게 다독이면서, 속으로는 마치 원망이라도 하는 듯 격정이 지배하고 있었다.


토와가 품고 있는 분노, 그것은 나와 동화되듯 녹아들었다. 그러자 떠올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왜 토와..."나"는 다쳐서 병원에 있는 것일까. 간단하다. 사고를 당했다... 멍하니 걸어서 도로로 뛰어나온 슈를 보호하다 내가 대신해서.


「큰일났다! 전혀 움직일 수 없는걸. 이거, 똥 싸는 것도 힘들지 않겠어? 으아아, 부끄러워!」

『... 씨발 씨발 씨발... 씨발! 왜 이 시기야...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대회... 맞다. 축구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친구들과 열심히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고 있다. 그리고 엄마도 일을 쉬고 보러 오겠다고 했어! 아야나도! 아야나도 보러 오겠다고...


나와 토와의 감정이 뒤섞이는 형언할 수 없는 느낌... 솔직히 기분 나빴다.

슈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흰 가운을 입은 선생님이 들어왔다. 선생님은 어딘지 모르게 말문이 막힌 듯이 입을 열었다.


「유키시로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어요. 팔다리 골절도 그렇고 무엇보다 허리 상태가 좋지 않아. 사사키군에게 들었는데, 축구 대회가 다가오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 마치 가슴을 꿰뚫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 그렇가요. 그렇죠. 이 상태로는 불가능하죠... 아하하하하」

『...........』


마음대로 움직이는 입, 마음대로 내뱉어지는 말들. 왜일까.... 왜 이렇게 괴로운 걸까. 고통스럽지만 눈물이 나지 않는다. 이것은 토와의 강인함일까, 아니면 울 수 없을 정도로 현실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

의사 선생님이 떠나고 슈가 남겨진 병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것은 슈의 어머니와 아야나이었다.


「토와군, 괜찮아요?」


많이 걱정했을까, 슈와 마찬가지로 아야나도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눈물을 흘린 흔적이 있으니 분명 울었을 것이다.


「걱정시켰나?」

「다, 당연하거잖아요! 쓰러져서 움직이지 못하는 토와군을 보고... 으으.... 아아아아아!」


울기 시작한 아야나의 머리를 나는 움직이는 손으로 쓰다듬어 준다.

아야나가 울고 있는... 엉뚱하지만 조금은 기뻤다. 아, 역시 나는 아야나를 좋아하구나.


「슈, 아야나도 밖에 나가 있어, 저 애랑 얘기할 게 있으니까...」


슈의 어머니 하츠네 씨가 입을 열었다. 슈는 그 말을 듣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아야나만은 내 곁을 떠나지 않겠다며 움직이지 않았다.


하츠네 씨는 아야나에게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시선을 내게로 돌렸다. 그 눈빛은 마치 나를 비난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원래부터 하츠네씨를 포함한 아야나 엄마가 나를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자, 무슨 말을 들을까? 하츠네 씨는 날카로운 어조로 말을 꺼냈다.


「만약 슈나 아야나 양이 다치면 어떻게 책임 지려고 했어? 당신이 다쳤으니 망정이지」

「...... 어」

「에?」


...... 솔직히 말해서 나는 순간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몰랐다. 아야나도 고개를 들어 하츠네 씨를 쳐다보고 있다. 그 표정은 마치 믿을 수 없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있잖아, 너는 필요 없어. 슈에게는 아야나가 있고, 아야나에게는 슈가 있어. 이물질인 네가 끼어들었으니 분명 벌 받은 거겠지?」

「..........」

「하츠네 씨!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정말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이 사람은.

나는 그저... 두명의 친구로서 함께 있었던 것뿐인데.


「... 그렇군요」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알겠어?」

「..... 네」


그래, 이 사람들의 세계는 그들만의 세계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인가.

슈와 아야나, 두 사람이 맺어지는 세계가 이 사람이 원하는 세계. 하하하하...! 웃기네. 현실에서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없겠지만... 그랬구나. 이 세상은 게임의 세계였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인격이 파탄난 사람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토와와 감정이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나와는 달리, 실제로 이런 말을 들은 토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원망했을까, 아니면 포기했을까.

하츠네 씨는 할 말을 다 했는지 병실을 나가고, 남은 나와 아야나 사이에는 말하기 어려운 공기가 흐른다.


「... 참 난감하네. 설마 이렇게까지 미움을 받을 줄은 몰랐어」

「토와군 ...」


굳이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긴 한데. 다만 저 사람들 입장에서는 내가 마당을 망가뜨리는 해충 같은 존재이기도 하겠지.


고개숙인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아야나의 존재가 그저 고마웠다. 아야나에게 팔을 뻗자 그녀는 부드럽게 내 손을 잡아 주었다. 그 따뜻함을 느끼며, 나는 아야나에게 이런 소원을 말했다. 평소 같으면 절대 말하지 않을 말이지만, 오랜 시간 함께한 그녀라면 분명 거절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


「... 안겨도 될까? 울어도 될까?」

「응... 나라도 괜찮다면...」


그렇게 말하면서 아야나는 내 머리를 가슴으로 끌어안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 좋은 냄새도 나서 안심이 된다. 나는 한동안 아야나에게 안겨서 마음껏 울었다. 울고 또 울어서, 이 자세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울고 또 울었다.

몇 분이 지나고 아야나에게서 떨어지려고 했지만, 그녀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야나?」


그렇게 물었을 때, 그녀에게서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해요, 이런 거. 왜 토와군이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요? 왜 그런 말을 들어야만 하는 거죠?」


아야나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토와군이 가장 힘들 텐데... 대신해 줄 수 있다면 저라도 대신해 주고 싶은데.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어? 사람...? 저거 우리랑 같은... 사람...? 아 그렇구나. 저 사람들은... 저건.....」

「아야나!」

「엇!...... 토와군」


중얼거리며 혼잣말을 하는 아야나에게 나는 조금 위험한 무언가를 느끼고 그녀의 이름을 강하게 불렀다. 아야나는 정신을 되찾은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쉬웠지만, 아야나의 가슴에서 해방된 나는 침대에 누웠다.


「... 휴.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피곤하네. 이제 좀 한가해지겠지」

「병문안, 매일 올 테니까요. 절대로 토와군을 외롭게 하지 않게 해줄게요」

「확실히 외롭긴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그렇게 매일 와줄 만큼 외롭지는 않아....」

「그럼 말을 바꿀게요. 제가 외로워요.... 안 될까요?」

「....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있겠어」

「그럼」

「꼭 와줬으면 좋겠어. 나도 아야나랑 매일 이야기하고 싶어」

「아...... 네!」


다행이다. 드디어 웃어주었다.

아야나의 미소를 볼 수 있어서 안심이 된 나는 조금 졸려서 눈을 감았다. 내 의식이 가라앉을 때까지 아야나는 계속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이 기묘한 체험, 깨어나면 나는 잊어버릴까? 아니, 아마 잊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야 비로소 몰랐던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모르는 것...... 아니, 아니다. 아직도 기억해야 할 것이 더 있을 것이다. 내가 토와가 되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런 생각이 든다.






### 10. 검게 물들다

『토와 군은 왜 축구를 계속하고 있나요?』


문득 궁금해진 나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어서도 토와 군은 축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단순히 좋아한다는 것도 알 수 있지만, 나는 토와군이 무슨 생각으로 축구를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조금 더, 더 많이, 그에 대해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왜 계속하고 있는지라... 음.. 좋아해서?』

『... 그렇군요?』


너무 단순하다!


그건 그렇겠지 하고 스스로도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토와 군은 주변을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이야기해 주었다. 축구를 좋아한다는, 그 이면에 숨겨져 있던 또 다른 이유를.


『아야나는 엄마를 만난 적 있지?』

『아케미 씨요? 네, 맞아요. 자주 얘기해요』


토와군의 어머니인 아케미 씨와는 친분이 있다. 토와군이 출전하는 경기를 보러 갔을 때 객석에서 자주 응원하기 때문이다. 중학생 아들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고, 화려해 보여서 처음엔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냥 자식사랑에 눈먼 평범한 엄마였다.


『토와야! 거기야! 힐리프트로 빼내! 

네가 캡틴인데 궁시렁대는 거 아니야, 시합 중에 그러면 어떡해!?』


정말 활기찬 어머니였고, 나도 아테미 씨와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렇게 말하면 불효자식 같은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사람이 엄마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적지 않다. 아케미 씨가 아주 멋진 엄마라는 것은 알지만... 뭐랄까.


『그... 네 마음속에만 담아줄래? 엄마한테는 괜히 말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창피하니까』


토와 군은 뺨을 긁으며 그렇게 말했고, 나도 알겠다고 약속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며 토와 군은 말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왜 이렇게까지 계속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우리 집에 아빠가 없는 거 알겠지만... 사고가 나서 말이야...』

『아 .....』


토와 군의 집 사정은 자세히 들어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알려주었다... 미안하다고 말했더니 토와군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엄마는 아버지를 정말 사랑했으니까. 많이 힘들어하셨지. 하지만 엄마는 내가 있으니까 라면서 금방 회복했어. 진짱 강한 어머니라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가끔 아빠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어...』


토와 군도 그때를 떠올리는지 조금은 힘들어 보인다.


『회복했다고는 하지만 웃는 얼굴이 줄어든 건 사실이고, 그런 엄마를 보는 게 역시 힘들었어. 그럴 때였어. 내가 축구 클럽에 들어가서 경기를 뛰는 동안 엄마가 응원하러 오시게 됐지. 그러면서 점차 웃는 얼굴이 늘어났어』


아 그렇구나. 어쩌면 그것이 ...... 토와 군이 축구를 계속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축구하는 모습을 보고 웃어주신다면, 아들로서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하게되었어, 그래서 계속하다 보니 축구를 더 좋아하게 돼서 윈윈이라고 할 수 있지』

『... 그랬구나』


...... 나는 가족을 위해 노력한다는 발상을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평생 그런 때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토와군의 엄마를 위해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은 정말 소중했고, 나는 그런 토와군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부끄럽다고 말했던 것처럼 수줍어하며 이야기하는 토와군이 너무 귀여웠다. 하지만... 그런 그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그 때, 좁았던 세상에 빛을 비춰준 토와군. 그 후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더 많은 토와군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오늘 또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은 느낌인데... 갑자기 얼굴이 붉은데?』

『후후, 그렇겠지. 왜냐하면 토와 군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아, 부끄럽다. 부끄럽지만, 이제 감정을 숨기는 건... 아니, 숨길 필요 없어.


나는.... 토와군을 좋아해.


어쩌면 나는 그 때부터 계속 좋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마음은 아직 가슴 속에 담아두자. 지금은 아주 중요한 시기니까, 토와군이 축구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아야나, 열심히 할 테니까 대회 보러 와줘』

『물론이죠. 꼭 응원하러 갈게요!』


대회에 꼭 응원하러 간다. 아니, 아케미 씨와 약속을 했으니 확정된 일이지만 말이야. 슈군은 어떨까? 토와군이 출전하는 경기니까 따라갈지도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중간에 지루해하는 모습을 봐서 잘 모르겠다.

슈군인가... 이제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내가 정말 못된 여자인 걸까. 엄마들이 들으면 뭐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속에는 이미 토와군이 있다. 슈군이 비집고 들어갈 틈 따위는 없다.


... 아, 그러고 보니 토와군이 물어봤던 것도 이 때였나 보다. 내 말투에 대해.


『그러고 보니 요즘 계속 존댓말 쓰네... 무슨 일이야?』

『아........ 그건....』


최근 들어 내 말투는 존댓말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가족들에 대한 방호벽 같은 것일 것이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존댓말을 쓰면 타인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토와군에게도 존댓말을 쓰는 것이 버릇처럼 굳어졌고, 의식하면 고칠 수 있지만 이미 익숙해져 버렸다.

바보같이 정직하게 가족과 거리를 두고 싶어서라고 말할 수도 없고, 대답을 곤란해 하자 토와 군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존댓말 쓰는 여자 좋은 것 같아』


쓸데없이 멋있게 말하는 토와군에게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 정말 토와군 앞에서는 사소한 고민 따위가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시간은 흐른다.

토와 군은 축구대회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를 응원했다. 토와 군은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열심히 해왔던 것이다. 아케미 씨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라고 말해줬다. 그런 그의 노력은 반드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나는 늘 생각했다.

하지만 .......


『슈!!!!』

『... 어?』


운명은 잔인하다.


『토와......군......?』


그의 수년간의 노력과 마음을 한순간에 앗아가 버렸으니 말이다.


사람은 왜 이렇게 추악한 존재인지, 나는 그것을 며칠 동안 많이 알게 되었다.


『있잖아, 너는 필요 없어. 슈에게는 아야나가 있고, 아야나에게는 슈가 있어. 이물질인 네가 끼어들었으니 분명 벌 받은 거겠지?』


쓰레기가 뭔가를 말하고 있다.


『오빠랑 아야나 언니만 있으면 돼요. 저런 놈이 있는 건 싫어』


시끄러워, 쓰레기는 닥쳐.


『토와가 대회에 못 나간다... 하하하』


왜 비웃는 거야? 토와 군은 너 때문에 다쳤는데 왜 웃는 거야?


『내가 뭐랬니? 엄마는 그때부터 못된 애라고 생각했어. 그런 엄마라면 교육도 제대로 못시킨 게 당연해』


... 이 사람과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니... 이런 기분 나쁜 일이 또 있을까.

나는 토할 것 같은 가슴을 억누르듯 손을 얹어보니 조금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것은 토와군이 내 가슴에 눈물을 흘렸다는 증거였다.

축구를 좋아했다. 아케미 씨의 미소를 위해 노력했다... 그런 마음을 쉽게 짓밟는 말들에 내 안의 무언가가 바뀌었다. 그때부터... 나에게는 더 이상 그들이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재활을 열심히 하는 토와군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자기 일로 벅찰 텐데도 내가 온걸 알아차리고 신경을 써준다. 그런 토와군의 마음이 기쁘기도 하고, 기뻐하는 내가 얄밉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들었다.


『나.... 아야나를 좋아해. 그래서 토와가 그 응원을 해줬으면 좋겠어. 너는 나의 절친이니까 가장 먼저 말해주고 싶었어』


무관심하던 마음이 혐오, 증오로 바뀌었다.









「... 끔찍하네. 아야나가 위험해」


팬 에디션을 플레이한 남성은 한 마디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본편에서 말하지 않은 아야나가 걸어온 길, 토와의 꿈을 조롱한 자들에 대한 복수의 이야기.

증오에 휩싸인 아야나의 모습은 충격적이지만, 토와 앞에서는 늘 그랬듯 평소의 모습이었다. 물론 그런 아야나의 H신은 있었지만, 그 상대는 모두 토와뿐이었다. 그녀가 흐트러지는 것은 언제나 토와 앞에서만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강렬한 장면이었지만, 스토리가 너무 무거워서 그쪽에만 신경을 쓰게 되었다.


「... 어, 개발자 인터뷰인가?」


남성이 본 것은 공식 사이트에 올라온 개발자의 코멘트였다.


『아마 플레이하신 분들은 슈를 포함한 가족에게 증오가 향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솔직히 과하다 싶었던 장면이 몇 개 있는데, 아야나의 광기를 세밀하게 표현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선배와 후배들이 불쌍하다고 스태프들이 반성하고 있었어요(웃음) 자, 여러분 2회차는 플레이는 해보셨나요? 2회차 엔딩에선 연출이 조금 달라집니다』


「하아!?」


그 말은 남자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소리였다. 그 코멘트 페이지를 넘긴 채 남성은 다시 플레이를 시작하지만, 대화 등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에 스킵을 활용해 단숨에 엔딩으로 향한다.


웃으며 손을 맞잡은 토와와 아야나를 비추고, 그대로 그 그림을 배경으로 스탭롤을 재생하는데... 그 마지막에 화면에 이런 문구가 뜬다.


"내 품 안에는 아야나가 있다. 항상 웃어준다. 그런 미소를 보고 있으면 나까지 행복해진다. 하지만... 정말 이것만으로 충분한걸까."


둘이서 행복해 보이던 그림에 변화가 생겨 아야나의 모습이 사라지고 토와만 남았다.


"나를 생각해서 그녀는 행동했다. 하지만 진짜로 그녀의 마음을 망가뜨린 건... 아무것도 몰랐던 나 자신이었다. 다정했던 그녀를 내게서 빼앗아간 것은...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그런 말을 마지막으로 진정한 의미의 엔딩이 되어 타이틀로 돌아갔다.

이를 계속 지켜보던 남자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이내 코멘트 페이지를 들여다보았다.


『사실 토와가 본편에서 아야나가 한 일을 알진 못해요. 그래서 이것은 만약에 나중에 눈치채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스태프들이 재미삼아 넣은 거에요. 그러니까 무슨 말인가 하면, 이미 아야나도 망가져버려서 하는 일에 대한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는 거죠. 이 게임은 이것으로 끝인데... 그렇네요. 만약 게임 속 토와도 아니고, 아야나도 아닌 좀 더 특별한 시점을 가진 존재가 있었다면 두 사람 모두에게 더 행복한 결말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복수는 성취감은 있겠지만, 나중에 찾아오는 건 허무함뿐이니까요. 뭐 어떤 형태로든 슈에게는 씁쓸한 결말이 될 것 같네요(웃음)』


「특수한 관점을 가진 제3자라니...」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자신이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게임 속 일이라 생각해도 어쩔 수 없지만, 만약... 만약이라면 토와가 이런 결말이 날 줄 알았다면, 아야나가 토와의 증오를 짊어지고 가는 것을 좋게 여길까.


팬 에디션을 플레이하면서 토와라는 캐릭터에 대한 인상이 달라졌다. 그는 그저 아야나를 좋아하고, 계속 곁에 있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아야나가 행동으로 옮길 만큼 과거와 증오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뭔가 계기가 있다면, 무언가 하나라도 아야나와 진심으로 마음을 주고받고, 그로써 과거를 극복하는 이벤트가 있었다면... 분명 더 토와와 아야나의 미래는 희망이 넘쳐났을 것이다.


「... 후, 리뷰나 써볼까?」


게임을 끝낸 후의 감상은 일상이다.

남자는 리뷰를 쓰기 위해 인터넷을 켰다.


「음... 그렇지」


어떤 리뷰를 쓸까, 팔짱을 끼고 고민하는 남성을 향해 무언가가 번쩍였다.

그것은 창 모드로 설정해둔 게임 파일, 마지막까지 남자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 11. 매듭지어진 기억

「...읏」


창문을 통해 살짝 새어나온 빛이 눈꺼풀 사이로 들어와 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팔, 허리, 다리에 손을 올려가며 가볍게 문지른다.


「... 꿈이었구나. 그렇긴 하지만 기억나」


꿈에서 본 모든 것, 슈를 대신해 사고를 당해 축구를 포기해야만 했던 사건들. 게임에서는 말하지 않았던 한 가지 진실을 나는 알았다. 그 꿈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지금까지 내가 토와에게 빙의된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사라지고, 마치 처음부터 토와였던 것처럼... 마치 영혼 자체가 동화되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슈와 그 가족에 대한 증오와 같은 감정이 솟구쳐 오를 것만 같다. 하지만 여전히 '나'라는 의식은 남아있다. 토와만의 의식이라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라는 의식이 있는 이상 미움은 남아있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 밥 먹어야지」


침대에서 내려와 간단히 몸단장을 하고 엄마가 기다리고 있을 거실로 향했다. 타이밍이 좋았는지 마침 아침밥이 차려져 있었고, 엄마도 내려온 나를 보고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좋은 아침, 토와」

「좋은 아침, 엄마」


어머니 - 유키시로 아케미, 내가 보기에도 고등학생 아들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다. 엄마와 함께 자리에 앉아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음, 오늘도 맛있다.


「정말 맛있게 먹는구나. 엄마로서 기뻐」

「진짜로 맛있으니까. 고마워요, 엄마」

「얼마든지 더 먹어도 괜찮아」


몇 주 전만 해도 조금 서먹했던 대화가 이제는 이렇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평소라고 느껴진다.

뜨끈한 장국을 후후 불어가며 맛있게 먹고 있는데, 어머니가 문득 입을 열었다.


「... 정말 건강해져서 다행이야」

「엄마?」


아침을 먹던 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은 매우 다정다감했다. 하지만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그런 눈빛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부끄러워서 먹기 힘들고... 뭐랄까, 민망한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니는 킥킥거리며 웃는다.


「... 무슨 일이야?」


내가 끼어든다.

엄마는 미안하다며 말을 이어갔다.


「축구를 그만둔 후부터 너가 통 기운이 없었으니까. 내 앞에서는 꿋꿋이 버티고 있었지만, 다 들통 났잖아?」

「... 티가 났어?」

「응」

「즉답인가?」


... 신기하네.


엄마와의 대화에서 어떤 말을 선택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점점 안개가 낀 기억이 맑아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꿈에서 본 그 사건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일들이 하나하나 풀려나가는 듯하다.


「하지만 그 일이 있은 후 아야나 짱이 집에 와서 우리 아들이 다시 건강해졌잖아. 그때의 아야나 짱에겐 정말 고마워. 저기, 무슨 일 있었니?」


웃으며 물어보는 엄마에게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말문이 막힌다. 부끄럽다고 하면 부끄러운 일,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씁쓸한 기억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아야나가 나를 주인님이라고 불렀는지, 왜 내 말 한마디에 그렇게 불안정해졌는지, 왜 그렇게 헌신적으로 나를 위해 노력해 주는지.

생각에 잠긴 나에게 엄마가 당황한 듯 입을 열었다.


「그, 그렇게까지 고민할 정도라면 안 들을테니까! 자, 무리하지 말고!」

「아, 응......」


엄마의 목소리에 무심코 생각을 중단했다. 나 역시도 그 상태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계속 생각에 잠겨 있었을 것 같아서 다행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장국을 홀짝홀짝 마신다. 아, 맛있다, 아침은 역시 이거지.


「잘 먹었습니다」

「괜찮았니?」


식기를 싱크대에 놓고 거실에서 나가려는데,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아야나 짱이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가끔 대화하다보면 뭔가 고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말야. 그러니까 토와가 잘 지켜봐 주렴」

「... 그래. 알았어」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다. 내 대답을 듣고 엄마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설거지를 시작하려던 그 순간, 무심결에 엄마가 말을 툭 던진 것이다.


「아야나 짱 에게서 병원에서 있었던 일 들었어. 나도 모르게 방망이 들고가서 때려눕힐까 생각했었지~」

「... 하지 않았지?」

「당연하지. 다만 너한텐 비밀로 아야나 짱이 그 아줌마 만나게 해줬을 땐 『내 아들에게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지껄인 거 같은데 목 졸라줄까 이 빌어먹을 아줌마야』라고 소리쳐 버렸어」

「들은 적 없는데!?」

「알려고하지 마. 싫네, 나도 모르게 양키 시절의 흔적이 나와버」

「... 다녀올게요」

「다녀오렴~」


...... 설마 엄마의 과거가 양키였을 줄은 몰랐다. 옛날 사진이나 잠깐 본 기억이 있는데, 확실히 보통 사람에 비해 화려했던 것 같다. 아 그렇구나. 가끔 집에 찾아오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여자들은 사제나 뭐 그런 거 같은 거였나? 뭐랄까, 별로 알고 싶지 않다.


「잘 지켜봐 주렴....?」


두 번째 되었지만 그럴 작정이다. 하지만.... 이상하네. 이렇게 토와와 아야나의 일까지 떠올릴 수 있었지만, 아직도 뭔가 목구멍에 걸리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꼭 기억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 끔찍하네. 아야나가 위험해』

「.... 어?」


순간, 나와는 다른 다른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몹시 그리운, 어릴 적부터 들었던 것 같은 그런 목소리다. 주위를 둘러봐도 당연히 나 말고는 그 자리에 아무도 없다. 그럼 내 기분 탓이겠거니 하고 넘기려 했지만, 이전에 축구는 별 상관없다고 넘겼더니 역시나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이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일어나는 일, 작은 것부터 무엇이든.... 관심을 가져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면 분명 무언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 왜, 왜 저항하지 않는 거야?」


방에 괴로워하는 남자의 말이 울려 퍼진다.

남자는 한 여성을 밀어 넘어뜨리고 있었다. 얼핏 보면 남성이 여성을 덮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성의 모습이 이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항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토와군이 요구한다면 저는 상관없어요」

「....읏! 왜 그렇게... 너는.... 아야나는.... 나를...」


아야나는 저항할 생각은 전혀 없고, 앞으로 토와가 하는 모든 일에 몸을 맡길 각오를 그 눈빛에 담고 있었다. 아야나의 모습에서 그녀는 절대 토와를 거부하지 않을 것임을 토와 자신도 알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저항하지 않는 여자를 취하라는 더러운 마음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지만 토와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눈앞에 있는 아야나는 토와에게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절대 해치고 싶지 않다고 맹세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토와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슈가 아야나를 좋아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행동 등으로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오랫동안 소꿉친구로 지내왔으니 토와 같은 사람보다 훨씬 더 오래 알고 지냈을 것이다. 아야나가 멋진 여자라는 것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니, 그런 아야나를 슈가 좋아하는 것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 젠장」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토와도 그녀에게 끌렸다. 하지만 슈를 생각하며 그 마음을 감추고 있었다. 그것은 사고를 당한 이후에도 계속... 그러나 점점 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미움이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사고는 우연이다. 결코 슈가 일으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런데도 축구를 잃고 절망하고 있을 때, 슈가 아야나와의 사이를 응원해 달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거기서부터.... 토와 속에서 무언가 달라진 것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기운이 없던 토와를 격려하려 집에 온 아야나를 밀치고 현재에 이르렀다.


「...」

「...」


서로 시선을 떼지 않는다. 하지만 토와는 정말 이대로 덮칠 생각이 없었다. 아야나가 밀쳐내 주면 된다, 그래서 미움이라도 받으면 이 마음을 정리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불현듯 느껴지는 감촉이있었다.


「......읏!」

「으음...」


입술에 닿는 부드러운 그것은 아야나의 입술이었다.

갑작스러운 일에 당황한 토와, 입술을 떼어낸 아야나는 볼을 붉히며 중얼거렸다.


「키스 .... 해버렸네요」

「...뭘」


수줍어하면서도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그 모습에 토와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걸로는 부족하다, 더 많은 아야나를 맛보고 싶다고 내면에 숨어있는 자신이 외친다. 토와의 갈등은 뒷전으로 아야나는 말을 꺼냈다.


「토와군, 제는 계속 내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생각했어요. 슈군과 그 가족, 엄마가 만들어 놓은 세상을 살기 위해 존재하는 건가....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아야나의 말은 이어진다.


「저는 아마 토와군을 만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아요. 처음 만났을 때, 저는 토와군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만나다보니 점점 사랑으로 바뀌었고, 언젠가부터 당신 곁에 있고 싶고, 당신을 응원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토와가 눈이 휘둥그레진다. 처음 듣는 아야나의 말이었다. 그녀는 토와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크고 부드러운 촉감, 탄력은 있지만 점점 손가락이 가라앉는다. 그리고 그 촉감 속에서 전해지는 쿵쿵쿵쿵쿵쿵 하는 심장 소리.


「토와군, 나한테 증표를 줄 수 있겠어요? 저는 그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당신만의 것이라는 증표를 내 몸에 새겨주세요. 제 존재는 오직 당신만을 위해, 언제든 당신만을 치유해 줄 것을 약속해요. 그러니 받아주세요. 저의 사랑과 헌신, 그리고 저의 모든 것을」


그렇게 두 사람의 그림자가 겹쳐졌다.


감미로운 교성이 울려 퍼지는 그 공간, 과정은 어떻든 두 사람의 마음이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토와는 어딘지 모르게 이것이 잘못된 것임을 느꼈다. 하지만 휩쓸려버린 채 시간은 흘러갔고, 두 사람의 관계는 둘만의 비밀이 되었다.


그때, 아야나와의 교감을 끝냈을 때, 그녀는 토와의 가슴 속에서 이런 말을 중얼거렸다.


「토와군,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누구도 우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할 거야.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반드시 청소할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아야나?」

「.....새액.....새액」


무서운 속도로 잠이 들어버려서 결국 그 말의 진의를 들을 수 없었다.

품에 안겨 잠든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안고 토와도 한 줌의 행복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 가슴 속에 피어오르는 막연한 불안감을 모르는 척하며.









한편, 아야나는 아직 깨어 있었다.

안심한 듯 잠든 토와를 훔쳐보며 미소를 지었다. 기세에 맡긴 관계였지만, 아야나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랫동안 좋아했던, 오랫동안 사랑했던 남자와의 교감은 아야나에게 전에 없던 감정을 심어주었다.


몸이 닿는 것만으로도 불길이 치솟고, 그에게 사랑받고 있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방금 전까지 느꼈던 행복을 가슴에 품은 채, 아야나의 눈빛은 점점 더 거치어지고 증오를 품은 듯 날카로워진다.


(... 결국 토와군을 여기까지 몰아붙인 건 그 녀석들이야. 저렇게 힘들게...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아무 생각 없이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쓰레기들, 언젠가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 줄거야.


(...... 슈군)


토와가 슈를 생각하며 마음을 정리하려고 했었다는 것을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 친절함은 토와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슈의 그 비웃는 얼굴을 본 후 아야나에게 남은 것은 혐오감뿐이다. 자신의 마음은 모른 채 항상 곁에 있으려는 슈에게 아야나는 어떤 마음을 품는다.


(전부 이용해 줄게. 나에 대한 호의를 모두 이용하고, 그 위에서 말해주겠어. 나는 오래전부터 너 따위는 상관없다고.)


언젠가 반드시 이 남다른 마음을 고백해 줄게... 하지만 지금은, 지금만은.


(토와군, 좋은 냄새..... 킁킁. 그리고..... 우람했었지)


검게 물든 마음에서 일변, 복숭아빛 분홍색으로 물드는 것은 어쩌면 그 나이 또래의 소녀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