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쉽다고 여겨진다.

타고난 머리. 타고난 외모. 타고난 환경까지.

스스로 나를 돌아봐도 내 삶은 순풍이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풀리지 않는 답답함이 내 속을 조여오고 있는 건.

그 안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썩어있을지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하아.”

 

거대한 단독주택의 대문을 열며 진세연은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을 열자 쇼파에 기대어 잠자고 있던 진성열이 부리나케 일어나 딸을 맞이한다.

 

“어, 어서 오렴. 하,학교는?”

“그저 그랬어.”

“그, 그랬니?”

“응. 조금만 다녀보고 아빠가 원하는 학교로 전학 가볼게.”

 

아빠의 가려운 부분을 어떻게 알았는지 진세연의 그 말에 진성열은 희색이 만연했다.

그런 아빠를 내버려두고 진세연은 2층으로 올라가 20평이 넘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 잠궜다.

철컥.

 

방안은 껌껌했지만 불을 키지 않고 가방은 대충 땅바닥에 던져놓으며 널따란 침대에 눕는다.

 

답답함.

지루함이라고 하기엔 복잡하고, 우울증이라기엔 정서가 불안하다.

 

단서는 있다.

일반적인 대화가 힘들다는 것이 단서다.

 

동성 친구끼리 하는 시시콜콜한 드라마,연예인,화장,옷 그리고 사랑 애기까지…….

진세연은 그것을 도저히 빈말로도 맞장구칠 수 없었다.

자신이 여자인데도…… 공감할 수 없다니.

참 이상한 이야기다.

 

변화를 꾀하려 남자친구를 사귈까 생각도 했었다.

고백 받는 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귀찮아질 정도로 많아졌으니깐.

그 중에는 한심한 남자부터 눈이 번쩍 뜨이는 미남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진세연은 이마저도 간단히 포기했다.

 

공감 능력 뿐만 아니라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없다.

 

자신의 상황을 진단하고 성적 지향성을 찾아보니 Asexuality.

무성애(無性愛)란 검색어가 나왔다.

그제서야 이해가 된다.

어떤 호기심도, 끌림도 나타나지 않고 그저 단조로움에서 나오는 시니컬한 한숨만 튀어나오는 이유를.

 

“하아.”

 

상황을 알아도 한숨이 튀어나온다.

이번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자신은 사랑을 갈망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가 그 자리를 채워줬기에 가족의 사랑은 이해하고 있지만….

 

“하아.”

 

그럼에도 아무도 모른다.

자신의 속이 썩어가고 있는 것을.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버틸 힘이 점점 줄어든다….

 

 

 

******

 

 

 

“흐헤헤.”

“흐히히.”

 

학교가 끝나고 바로 빌라로 돌아와 할머니에게 쌍둥이를 받아든다.

쌍둥이는 날 보자마자 활짝 웃었다.

 

“확실히 너가 아빠긴 한가 보다. 하루종일 울어댔는데 너 보니깐 조용해지네.”

 

쌍둥이를 품안에 잘 받들고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맡아주셔서.”

“뭘. 돈 받고 하는 건데. 아직 밥 안맥였으니깐. 밥 좀 맥여라.”

“네. 그럴게요.”

 

3층으로 올라가 조심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쌍둥이를 침대에 눕혔다.

 

“으아으.”

“쁘쁘.”

“밥 줄게. 조금만 기다려.”

 

소독한 젖병에 분유를 넣고 온도를 맞춘 후 갖고 가자 이를 알아챈 하은이가 손을 번쩍 든다.

 

“아으,아으.”

“알았어. 하은이부터 줄게. 다은아 조금만 기다려?”

 

손이 하나라서 분유를 먹이는 것도, 씻길 때도 순서가 있다.

가장 먼저 손을 드는 건 지금처럼 하은이다.

처음엔 쌍둥이라서 얼굴도 구분이 안됐는데 지금은 성격도,생김새도 확실히 구분이 됐다.

하은이는 자기주장이 강하다. 배고프거나 응아를 누면 빨리 알아채달라고 우렁차게 운다.

입술도 앙다문 게 남자로 태어났으면 장군감이겠다 싶다.

 

“다은이는….”

 

고개를 흘낏 돌리자 다은이가 부럽다는 듯 하은이가 먹고 있는 젖병을 바라보고 있다.

그럼에도 하은이마냥 울거나 하진 않는다.

되게 순하다고 할까? 어쩔 땐 밥때를 놓쳤는데도 너무 안울길래 병원에 데려갈까 고민도 했었다.

쌍둥이인데 이렇게 다르다.

신기하다. 인간이 본래 갖고 있는 성정이 벌써부터 보인다는 게.

 

“하은아, 다 먹었지? 잠깐만 다시 누워 있어.”

“으헤헤.”

 

새 젖병을 들고 다은이를 안으며 젖병을 물린다.

배가 고팠는지 다은이가 우렁차게 쪽쪽 빨아먹는다.

육아란 게 돌보면 끝인 줄 알았는데 마음 속에 애틋함이 생겨난다.

내가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내 여동생들이고 지금은 사실상 부모나 다름없다.

그럴수록 피곤함과 책임감이 자라난다.

저녁에 애들을 계속 돌보고 재운 다음 9시부터 12시까지 다시 일하러 가야한다.

피곤하고 잠 부족한 밤에 쌍둥이가 갑자기 울면 그것을 재우는 게 한두 시간 까먹고. 다시 지쳐 잠들다가 쌍둥이가 또 울면 그날 잠을 다 잔 거다.

몸은 지치고 피곤하다. 돈은 아슬아슬하다 못해 걱정이 파묻혀 고민이다.

그럼에도……

 

“하은아,다은아. 오빠가, 아니 아빠가 꼭 남부럽지 않게 키워줄게. 절대 나처럼 키우지 않을 거야. 사랑해. 쪽쪽.”

“흐헤헤.”

“흐히히.”

 

쌍둥이가 날 믿고 따라주는 모습을 보면 원래 없었던 애정표현도 적극적으로 하게 된다.

그만큼 사랑스러운 딸이고 여동생이다.

몸은 녹아나지만 더 이상 내 마음을 우울하게 했던 외로움은 사라졌다.

모두 쌍둥이 덕분이다.

 

“…그래도 엄마가 있으면 좋을 텐데. 내 투박한 손보단.”

 

현실성 없는 망상을 집어던지고 밥을 먹인 쌍둥이를 조곤조곤 재운다.

잠이 들자 시간을 확인하니 8시 20분이다.

40분이나 잘 수 있는 꿀 같은 시간이다.

알람을 진동으로 맞추고 잠시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오늘은 집에서 4시간은 잘 수 있을까.

이래서야 공부는커녕 학교에서 잠만 잘 수 밖에 없다.

학업과 육아 그리고 일. 빡세다. 빡세….

 

 

 

******

 

 

 

진세연은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이승현을 노려봤다.

그 뒤에 이어지는 일은 뻔하다.

 

“야! 이승현!”

 

안경을 쓴 국어 선생의 일갈에 이승현이 책상에 머리를 박으며 깼다.

 

“…아야. 죄,죄송합니다. 선생님.”

“너 밤에 야동 보고 게임 하냐? 아니면 내 수업에만 이러냐?”

 

그 말에 다른 학생이 대답했다.

 

“쌤. 재 맨날 저래요. 둘다 하나봐요. 크크.”

 

깔깔깔깔.

재미 없던 수업에 잠깐의 활기가 돋았다.

입학하고 한 달이 지나 얼떨결에 짝궁이 된 이승현에 대한 진세연의 생각은 단순하다.

 

‘문제아’

 

지각은 고사하고 이렇게 수업마다 혼이 난다.

공부에는 열의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애초에 잘해보이지도 않았고….

 

‘생김새는 평범하고 옷은 후줄근해. 집에 다리미가 없는 것도 아닐 텐데…. 흥.’

 

그렇게 다시 안졸겠다는 의미없는 다짐을 받고 4교시가 끝났다.

친구로 분류된 그룹들이 삼삼오오 모여 반을 나간다.

진세연은 가만히 가방 속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고급 도시락통이 3단으로 쌓여있다.

부담스럽다고 1단으로 줄여달라고 말하지만 이것만큼은 아빠도 양보할 수 없는 모양이다.

젓가락을 꺼내 도시락 뚜껑을 여는 그때.

 

“쿠울-”

 

옆에서 코고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

 

‘오늘은 밖에서 먹어야 하나?‘

 

입맛 떨어지는 소리다.

하필이면 이런 애랑 짝궁이라니.

남는 자리가 여기밖에 없었으니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진세연이 움직일지 생각에 잠겨있을 때 다행히 이승현이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폈다.

 

“뭐야? 애들은?”

“밥 먹으러 갔어. 지금 안가면 밥 못 먹을걸?”

“공짜급식인데…. 어우. 놓칠 뻔 했네.”

 

이승현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자 진세연이 그를 말로 가로막았다.

 

“잠깐만 앉아봐. 할 말이 있어.”

“밥 먹으러 가야 되는데….”

“그리 길진 않아. 대답하지 않아도 좋고.”

“그래? 뭔데?”

 

웬만하면 남에게 상관하지 않으려는 진세연이 이승현에게 말을 건 이유는 간단하다.

입학한 지 벌써 1달이 지났다.

30일간에 연속된 일관성과 문제점은 알게 모르게 짝궁인 자신에게까지 피해가 왔다.

예를 들어 방금 코고는 소리 때문에 입맛이 떨어져 자리를 옮길까 고민했던 사소한 문제까지 말이다.

1달이면 참을 만큼 참았다.

이 문제아가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있는지 일단 그것부터 물어봐야 한다.

 

“일단 너한테 사과할 게 있어.”

“응?”

 

그는 내 말이 의외인지 두 눈을 깜빡거렸다.

 

“입학 날에 네 휴대폰을 봐버렸어. 네 검색기록을. 고의는 아니었지만 일단 사과할게.”

“그랬어? 별로 상관 없는데… 할 말이 그거면 밥 먹으러 가도 돼?”

 

그는 뭐가 그렇게 불안하고 마려운지 자신을 재촉했다.

진세연은 진지한 자신이 왠지 우스꽝스럽게 느껴져서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저기 말이야. 부모님이 동생을 낳으셔서 같이 돌보느라 잠이 부족한 거잖아?”

“어?”

“네 검색기록에 그렇게 적혀 있었어. <애가 밤새도록 우는 이유>랑 <애 잘 재우는 법>라던지… 그런 걸 검색했더라고. 내 말이 맞아?”

 

그는 내 말에 머리를 긁적였다.

 

“틀린 말은 아닌…”

 

옳커니.

진세연은 이승현의 말을 자르고 계속 말을 이었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부모님 도와주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매일 지각하고 수업시간에 졸고… 옆에 있는 나도 신경쓰지 않을래야 신경이 안갈 수가 없어. 무슨 말인지 알아?”

“아, 그랬어? 진짜 미안해. 세연아.”

 

이승현이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순간 가슴이 철렁거렸다.

진세연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미안하면 나한테 말고 부모님한테 먼저 말해. 너랑 대화해보니깐 나쁜 애 같진 않은데, 너무 착한 것도 문제야. 너.”

“…….”

 

이승현은 입술을 옴짝달싹하며 손으로 매만지더니 주위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진세연을 바라봤다.

 

’뭐지?‘

 

진세연은 이승현이 자신에게 눈을 맞추자 왠지모르게 긴장이 됐다.

 

“너 좋은 애구나.”

“뭐?”

“근데 네가 하는 말 하나 빼고 다 틀렸어. 크크.”

 

이승현은 겸연쩍은 웃음을 짓고는 자신의 말을 기다리는 진세연에게 말했다.

 

“부모님 도와주는 거 아니야. 애도 하나가 아니고.”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내가 아빠거든. 쌍둥이 아빠. 육아 때문에 잠 부족한 건 맞는데 뭐 어쩌겠어.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니…. 일단 네가 하는 말 알겠어. 학교에서 잠 보충하려 했는데 최대한 참아볼게. 지각도 어떻게든 해보고.”

“…….”

 

진세연은 대답하지 못했다.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말에 사고회로가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이승현은 진세연이 가만히 있는 것이 대답한 것으로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비밀이다. 아직 선생님도 나한테 부모 없는 거 눈치 못 챘으니깐. 짝꿍이니깐, 그리고 좋은 애 같아서 말한 거야.”

 

달칵.

이승현이 문을 닫고 나가자 진세연의 심장이 쉴새없이 뛰었다.

쿵쾅쿵쾅.

 

’차,착각 했어. 바보같이.‘

 

자신이 실수했다.

당연히 부모님이 낳은 동생을 같이 돌봐준다고 생각했다.

아니, 아까 국어 선생의 말처럼 게임이나 하면서 밤을 새는거 아닐까 의심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충격적인 애기가 흘러 나왔다.

상상도 하지 못한 이야기다.

실수했다.

뭣도 모르면서 아는 체하며 훈수질이나 했다.

바보같다. 정말 창피하다…. 속으로 자신을 얼마나 우습게 쳐다봤을까 생각하면 쥐구멍으로 숨고 싶다.

 

진세연은 입맛이 떨어져 그날 도시락통을 열지 못했다.

오후 수업은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오히려 늘 졸았던 이승현이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잠을 깨려할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고개를 피하기 급급했다.

 

“세,세연아… 내 수업이 그렇게 재미 없니…?”

 

영어 선생이 자신의 행동을 오해하며 자책했지만 고개를 젓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쿵쾅쿵쾅.

심장이 아릴 정도로 계속해서 뛰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경험은 없었다.

진세연이 당황하며 감정을 수습하는데 급급하는 동안 이승현은 하품을 하며 겨우 졸음을 참았다.

 

’하아암. 졸립네. 이거 뭐 잠 잘 수도 없고. 어떡하지. 자리를 바꿔야 하나?‘

 

집과 학교가 아니라면 어디서 잠을 쪼개서 채워야 할지 이승현은 깊이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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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두통이 너무 심해서 약 먹고 겨우 썼네요. ㅠㅠ

병원을 계속 다니고 있어서 몸상태 좋아지면 계속 써올게요.

좋은 새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