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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 중순양함 론



"아쉬웠어요, 지휘관님

정말 안타까운 결과로 끝나버렸군요"


론은 상냥하면서도 어딘가 유혹에 빠져들게 하는

달콤한 목소리로 내 귓가에 속삭였다


그녀는 늘 보던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건가

아니면 약해진 사냥감을 보는 것처럼

교활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인가


뒤에서 끌어안는 손길이 조금 강해졌다

마치 자신을 바라보았으면 하는 바램인 것 같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게 해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즐기고 있는지도 몰라


하나도 모르겠다

그녀가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함대에서 봤던 자상한 언니 같은 모습 또한 그녀이면서

전쟁터에서 보여준 폭군 같은 모습 또한 그녀였다


그녀를 잘 보지 않았기 때문에, 공감이 안가는 걸까?

이제는 그것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단지, 내가 지금 알 수 있었던 것은

무언의 반응을 나타내는 나의 모습에

론이 만족하지 않고 있다는 것 뿐


점점 더 강해지는 힘과

그것을 잊게 해주는 부드러운 감촉이 뒤통수를 메워 갔다


졸음이 많이 없어졌다

내일이 두려워서일까

부드러운 감촉을 즐길 욕구가 생기지 않은 것은

아마도 내일이 두려워서가 맞는 것 같았다


"아쉽다니 뭐가?"


나는 부자연스럽게 시치미를 뗐다


하지만 그녀는 금방 알아차린 듯이


"왜냐면 지휘관은 시리우스 씨가 MVP를 이뤄내서

내일부터 평소처럼 같은 일상을 보내고 싶었잖아요?"


"그래? 내가 그랬다고?"


"어머? 아니였을까요?"


아닐리가 없다

론의 말이 너무 빨라서, 변명조차 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내 비서함은 시리어스 뿐이라고 말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그랬다면 비서함이 되겠다고 말하는 함선들을 마음 아프게 했을거야"


"후훗, 역시 지휘관님은 상냥하시군요"


론은 나쁜 짓을 하고, 정직하게 사과한 아이를 타이르듯이 

내 머리를 상냥하게 어루먼져 왔다


"열심히 하는 착한 아이네요"...라고 일부러 덧붙이면서 말이다



"하지만, 정말 함선들을 생각해서 그러신 건가요?"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얼굴을 조금 돌리면서, 곁눈질로 그녀를 볼 뿐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자니

짐짓 내색하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아마 기다렸을 것이다

내 시선이 그녀의 시선이 마주치기를...

내가 그녀를 직시하기를...

론은 사냥감이 덫에 걸린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것은 정말... 교활한 웃음이였다...


"거짓말쟁이"


그 한 마디에 몸이 덜덜 떨렸다

마주하기 싫은 현실에서 도망치려고 해도 이미 늦은걸까

나를 조르던 손도, 부드럽게 어루만지던 손도...

지금은 그저 내 양볼에 붙은 채, 움직이려하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차가운 손이였다


정말로 이게 생물인가 하고, 의심하지 않게 될 것만 같았다

나는 온몸에서 불쾌한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거짓말 뿐이야"


그녀는 추격을 동반한 말에, 나를 누르듯이 시선을 내리 찍었다


"거짓말이 아니야"


"함선들을 위해서라니, 진심인가요?"


"진심이야, 거짓말이 아니야"


"바쁘다고 방에 틀어박힌 나머지, 얘들 얼굴도 안보시면서?"


"...하지만, 누군가가 일을 하지 않으면, 곤란한 것은 모두 사실이니까"


"직접 온 사람의 말만 듣고, 세부적인 불만은 무시하면서"


"모든 걸 다 들어준다는 것은 불가능해

일부러 와준 함선들의 큰 불만을 우선시했을 뿐이야"


"당장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스스로 미루기만 하면서"


"...그것이 가장 불만이 남지 않을 것 같아서 말야..."


"모두에게 선택을 맡기고, 

본인은 무슨 결과가 나오든, 불만이 나오지 않는 꼴이라니..."


"...모두의 선택을 존중할 뿐이야..."


"역시 거짓말 뿐"




말이 떨리기 시작했다

론의 한마디, 한마디에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한 채

늘 생각해오던 핑계만 내뱉었다


"사실은 스스로 선택하기 싫을 뿐이잖아요?"


"...그렇지 않아, 나는 지휘관인 신분이니까

쉽게 결정하면 안 되기에, 마지막에 결정할 뿐이야"


가장 떨리는 말이였다


"사실 결정하기가 두려운 거죠?"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상사에게

정확히는 소속된 함대의 책임자에 대해서

...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질문


분명 나 개인에게 묻고 있을 것이다

어딘가에서 멈추었어야 했는데

주도권은 이미 그녀에게 넘어가버린지 오래였다


"이 방 참 좁죠?

저는 건조되어, 출항할 때까지, 이 방에서 지냈어요"


나는 갑자기 터져나온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화제를 조금이라도 딴 데로 돌리고 싶었기에...


"저를 만들기 위해, 모아진 철혈 함선들의 데이터...

모두가 당신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보고 싶다, 이야기 하고 싶다, 껴안고 싶다, 안고 싶다

함께 있고 싶다, 떨어지고 싶지 않다, 방해하는 건부숴버리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론은 한박자 쉬면서


"분명 서로 다른 함선들로부터 온 데이터 인데...

마음만은 모두가 똑같았어요

그 때문에, 저는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을 계속 생각했어야 했어요"



특별 개발함


각 진영에 소속된 함선들의 데이터를 모아 만들게 된 함선

론이라면 철혈의 모든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대상으로 삼는 것이 보통 사람이라면 

전투 데이터만을 모아서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보통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만들어진 그들이기에, 여러가지 데이터를 모아 바탕으로 한 것일까

이게 가능한 것인가


그녀는 과거를 그리워하듯, 주어진 작은 방을 둘러보며

어딘가 즐거운 듯이, 말을 계속했다


"얼굴도 본 적도 없는 사람 때문에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어서, 부탁을 했어요

배속될 지휘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싶다고 말이에요

그랬더니 재미있는 자료를 얻을 수 있었어요"


나는 그 이야기의 끝을 듣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체념한 듯이 한숨을 내뱉었다


"후훗, 재미있었어요, 지휘관의 일생을 여러 번 읽는 시간은..."


"별로 재미없었을 것 같은데..."


"네, 사실 재미는 없었어요

단지 군에 소속되기 전, 오래전 일이 적혀 있었을 뿐..."


나는 그 오래 전 일이 알려지는 것이 제일 싫었다

겉으론, 과거 따위야 아무래도 좋았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나는 그 과거를 다시 떠올리는 것이 두려웠다


"불쌍한 지휘관, 정말로 불쌍해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읽었는데... 정말로 불쌍해"


연민의 시설, 동정의 말...

하지만 모든게 거짓이라는 듯이,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주어진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


론은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그저 나를 가지고 놀고 싶은 것일까?

그녀의 차가운 시선이 내 몸을 식히기 시작했다


"아, 지휘관

그 자료에는 조목별로 대략적인 내용만 적혀 있었어요
그러니 가르쳐 주세요

지휘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남한테 얘기할 게 아니야"


나는 거부를 했다

말할까 말까가 아닌, 그런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왜 나는 그때 그런 말을 해버렸던 걸까?

지금도 나는 잘 모르겠다

단지 나는...


"아니에요

저한테 얘기하면 편해질 거에요"


"편해져? 대체 어떻게?"


"왜냐면, 제가 지휘관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잘 알기에, 당신을 너무나도 좋아하니까요

그런 저에게 말씀하시면, 마음이 편해질 거에요

다정하게 안기면서, 제 품에서 울면서...

오직 제 앞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

열심히 말하는 지휘관을 달래면서, 한 구절도 놓치지 않고 공감할께요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 중

당신을 잘 아는, 저는 당신만의 편이니까요"


론은 차가웠던 전보다 달리, 이번엔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대체 정말로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그녀 나름대로 내게 신경을 써주고 있는 것일까

나를 알고 있기 때문에, 걱정을 해주는 건지 모르는 것이였다


그녀는 내 볼에서 손을 떼고, 다시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저항할 생각도, 힘도 없었기에, 이끌리는 대로 응했다


"아, 불쌍한 지휘관

처음 만났을 때,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저는 완전히 반했어요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를 좋아해주시다니

그런 모습에 다시 반해버리고 반해버렸어요

아, 내가 좋아하는 타입은 저런 노력쟁이면서 착한 성격이구나, 라면서요"


"아... 나를 지켜보고 있었구나"


"네, 물론이죠!"



론은 나를 정말 신경 써주고 있었던 걸까


"세이렌의 출현이 점점 줄어 희미해진 이 시대

하지만, 완전히 없어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함선의 힘은 필요하죠

수수께끼에 쌓인 그 기술의 이치도...

그런 사상의 바탕에서 만들어진 함대

함선들의 연구와 힘을 더 알기 위해, 만들어진 자유로운 함대

지휘관이라는 장식 아래, 각자 마음대로 생각하고 싸우는 자유로운 연구소"


"장식은... 상처받을 필요 없다..."


"맞아요, 장식은 상처받을 필요 없어요"


그래... 론의 말이 맞아, 난 상처받을 필요 없어

그녀는 내 말을 공감하듯이 나를 끌어안는 힘을 더 강하게 했다


"저는 모두가 모르는 것을 다 알아요

함대의 일도, 지휘관님의 일도

그러니까, 저에게만 얘기해 주시겠어요?

괜찮잖아요, 이미 사건의 전말은 알고 있으니까요

새삼스럽게 숨길 필요는 없어요

그저 듣고 싶을 뿐

지휘관 입으로 직접 들어서, 우리끼리의 비밀로 하고 싶어요

가르쳐 주지 않으면, 내가 알고 잇는 여러 가지 일을

모두 까발려 버릴지도 몰라요"


"맘대로 해"


아, 다행이다

겨우 그녀에게 반격할 수 있었다

예상외의 말에, 론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맘대로 해, 얘기하든 말든..."


"...모두가 지휘관을 싫어할지도 몰라요"


"그건... 곤란하겠지만, 그래도 맘대로 해"


론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뭘까 화난 모습이였다

아, 그렇군

전쟁터에서는 이 웃는 얼굴로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했던 것인가

그래서 구축함 얘들이 무서워했던 거지


그렇지만, 지금은 그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기에

뭔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함대의 이야기로 인해, 내게 바람이 불었다

그녀가 들은 것은 그녀가 말한 것 밖에 없기에 말이다

물론 그것도 다른 함선들에게는 비밀이겠지만

솔직히 다른 함대도 이곳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니까...


물론 다른게 있다면

건장한 지휘관이 솔선수범해 나가

모두를 이끄는 것


실제로 그렇게 들었다

하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늘어난 함선들을 관리하기 위한 함대


각각의 특색을 내기 위해서

함선들을 주연으로서 내세우는 역할극

작전도, 전술도 각자의 함선이 앞장서 지휘하는 곳


난 그걸 그저 듣기만 한 채, 허락만 내줄 뿐이였다


생각하지 않고, 그저 사고를 정지한

최악의 지휘관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녀는 그것을 말하고 싶은 것일 것이다

선택하기를 거부하는 나의 모습을 알고 있다고 전하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론

나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함대에 대해서는 전부 알지 못하는 구나

왜냐하면 방금 늘어놓은 설명 또한 사실 장식이니까


"론, 나는 모두를 좋아해"


"...정말요?"


"응"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응, 지금은 좋아해"


"지금요?"


"응"



만족한 것일까

적어도 조금 전까지 피부로 느끼고 있던 강한 감정이 사라졌다

이제까지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좋아한다는 것을 생각만 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할 기회도 없었고

할 생각도 없었던 것일까

그녀들 또한 이런 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신경이 쓰였는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하지만, 이젠 쓸데없는 일이란걸 깨달았다



"론, 내 자료에는 뭐라고 쓰여 있었어?"


"어? 어....

지휘관이 살던 동네가 세이렌에게 습격당해

살던 사람들은 지휘관을 제외하고 전멸했다고..."


"그래, 더 이상 내가 할 이야기는 없어"


사실 알려져서 곤란한 일은 아니였다



그저 말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의 문제가 컸다

솔직히 말한다고 해도, 어설프게 말하면 안되었다


일단 진정하고


"자료에는 지휘관이 세이렌을 안내했을 가능성이 있다던가...

그래서, 군에 넣어 감시하고 있다든가..."


"그런 사람이 지휘관을 어떻게 하겠어?"


"그게... 그것이 제일 궁금했거든요"


"나도 잘은 모르지만... 그 날의 사건을 말해주자면

단지 우연히...

우연히, 다른 곳으로 놀러 갔던 날에

세이렌이 나타나서 내 마을을 습격했을 뿐이야"


누차 말해오던 진실이였다

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세이렌


느닷없이 나타나, 이 세계의 바다를 지배한 침략자

그 녀석들 때문에, 전 세계가 대규모의 패닉에 빠졌다

이제는 함선들 덕분에 평화로워지고 있지만

그래도 그들이 뺏어간 것은 매우 컸다


적어도 많은 해안에 살던 마을들을 포함해

몇 개의 도시들이 파괴됬었으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이였다


보통의 평일


평소라면 학교를 가던 날이였지만

우연히 알게 된 도시의 풍경을 보고 싶어서

열심히 모은 용돈으로 학교를 빼먹고 가버렸었다


조금 있으면, 휴일이든 공휴일이든 그런 거였지만

나는 그저 대충 혼날 것을 감안하고, 다음날 도시를 떠나버렸다

그리고 그 날, 세이렌이라는 경이로운 존재가 내 마을에 나타나고 말았다


그렇게 나 혼자만...



평일인데도 마을을 빠져나와 홀로 살아남은 인간에 말에는

아무도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다

마음이 습격당한 것을 알고, 모두의 무사 여부를 확인하려고

마을로 달려온 사람들은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고는 구속했다


이 녀석이 안내했다고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해, 간단한 대답을 하고 싶어했다

나라는 인간에게 죄를 모두 떠넘기고, 그저 자리를 빠져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솔직히 증거 등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내가 죄를 뒤집어 쓸 이유가 없었지만

신뢰가 없다는 것의 벌일까?


KAN-SEN(함선)이라는

갑자기 나타난, 그러니까 세계의 구세주적인 존재가 나타나기까지

나는 오랫동안 구속되어 있었고

그 후로도 군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없었다

사실 갈 곳도 없었지만...


드디어 해방이다 하고, 생각했으면 편했을 텐데

너무 길었던 것이 원인이였다

모처럼 찾은 자유보다, 영원하다고 느낀 닫힌 방 안에서

계속 생각해왔던 말이 내 마음을 채워갔다


왜 나는, 마을을 나갔던 것일까

나가지 않았다면, 모두와 함께 죽었을 텐데

왜 나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 것일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단 두 번의 선택

이 선택이 나의 전부를 바꾸고 빼앗았다

이 모든게 그저 우연

도움을 청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도움이 없었다면, 살아갈 수 없었을 테테니까


과거의 내가

그렇게까지 살고 싶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무조건 NO라고 대답할 것이다


군에 입대한 사람들은 모두 체격이 좋았다

모두 나 처럼 몸집이 작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미지의 세력과 맞서기 위한 지혜가 있었다

모두 나 같은 어린애가 아니였다

그래도 배우는 것만은 다르지 않았다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에서 

지옥 같은 환경에서 지낼 수 밖에 없었다


사이좋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모두가 나를 스파이라고 욕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무고한 나를,..

자신들이 알기 쉬운 죄의 형태로 나를 밀어 넣었다


그런 지옥이 지나자. 이 장식을 받았다

정확히 말하면... 장식의 칭호를...



"...아, 불쌍한 지휘관"


대충 말을 마치자, 그녀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아이를 달래듯 끌어안으며,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녀의 차가운 손길이, 이번에는 기분좋게 느껴졌다

따뜻한 몸매가 더욱 돋보이는 듯 했다


"그래서 어떻게 지휘관이 되셨어요?"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음, 그게 제일 궁금했는데요"


앙증맞게 볼을 볼록하게 하는 론

화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적어도 내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잠이 오는 군"


이미 날이 조금 떠오르기 시작했지만,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평상시라면 더 일찍 잠에 깨어있겠지만

론이 나를 끌어 안았던 탓에, 안심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까

수면욕이 강력하게 나를 끌어 당겼다


"...흠, 실은 하고 싶은 말이 또 있었습니다만

다음 기회로 미루겠어요"


찰싹 달라 붙어있던 시리우스 씨를 떠나게 됐으니까요


그렇구나, 벌써 내일이 와버렸구나

나는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오늘이라는 날이 매우 우울하게 느껴졌다


오늘부터 달라지게 될 것이다

옆에 있는 함선만 바뀌여도, 분명 일상에 큰 지장이 올 것이다


싫다

그것은 매우 싫다


나는 본심을 입밖에 내지 않으려고, 입을 무겁게 다물었다


목을 움직이는 것이 귀찮았기에, 눈을 흘기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분명 아기자기하게 보였을 것이다


"에에, 설마 저를 유혹하시는 건가요!?"

론은 흥분하는 기색으로 나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따뜻함과 감싸이는 부드러움에 기분좋음과 이상한 오한을 느꼈다


특별 개발함이라고는 하지만

그녀가 사용되는 기술은 대부분 알 수 없는 것이였다(검은 상자)


세이렌이라고 하는 미지의 위협으로부터

얻은 기술의 결정체인 큐브로부터 태어난, 미지의 존재


내게서 가족을, 친구를, 자유를 빼앗은 존재의 힘


그런거 몰랐고, 알고 싶지 않았다


KAN-SEN

인류를 위협하는 경이로움에 대해 나타난 구세주

처음 나타나 세이렌을 물리쳤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벌벌 떨었다

신이 이를 인류에게 내밀었다면, 몸과 마음을 다 바치겠다고 다짐했기에

그래서 모든게 싫어도 버틸 수 있던 것이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그저 모든 것을 함선들이 통솔하게 될 함대의

지휘관이라는 허울 뿐인 장식일지라도 상관없었다

눈 앞에서 세이렌을 쓰러뜨릴 수만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내가 몸과 마음을 바친 신들도

따지고 보면, 원래는 세이렌이니까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모든 것이 엇갈리기 시작해버리고 말았다


여기서는 내가 모두를 보는게 아니라

모두가 나를 주시하고 있다


세이렌이 나를 돕기 위해 세력을 모은다면

나는 함선들의 힘을 약화시킬 것이다

세이렌과 세이렌들이 서로 싸우게 한다

과연 나 말고, 누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택할 수도, 지휘할 수도 없다

표면적으로는 그럴 권리가 있겠지만, 사실은 없다

함대의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지만, 나는 알고 있다

여기는 대체 누구를 위한 함대인가

무엇을 위한 함대인가


나는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감았다

잊고 있던 일을 다시 떠올리니, 론에 대해 불쾌하게 느껴졌다


잊으려고 닫았던 마음은

다시 열게 되면, 좀처럼 되돌릴 수 없었다

어쩌면 그녀는 진짜 내 마음을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역시 거짓말쟁이군요


그런 말이 들린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