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엄마한테 안녕 해야지”


남자가 안고 있는 아이를 찬찬히 어른다.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기도 하고, 몸 전체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둥기둥기를 해준다.


마주앉은 여자에게 아이가 눈빛을 맞출 수 있도록 자세를 고쳐잡는다.


“어마. 옴마”


말을 하기엔 너무나도 어린 나이의 갓난쟁이.

잘 걷기만 해도 다행이다.

건강하게 자라만 주면 부모에게 있어서 최고의 행복이다.


옹알이를 하는건지, 엄마를 알아보고 부르는건지

진실은 그 어느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의 부모에게 있어서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아이가 자신을 바라보며, ‘엄마’라 불러준다는 사실만 남는다.


“우리 아가, 벌써 이렇게 컸어? 어떡하니. 평생 요만했으면…”


여자는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며 어쩔줄을 몰라한다.

 

아이를 함부로 안아들지도 못한다. 

혹여나 잘못 만지면 부러질까, 부서질까. 망가져버릴까

애지중지하는 가장 귀여운 인형을 고이 모셔놓는 것 처럼.


남자와 아이와 마주보고 앉아서

여자는 행복한 웃음을 지어보인다.


“별일은 없지?”


남자가 겨우, 여자에게 한마디 건넨다.


“그럼. 괜찮아. 몸도 건강하고, 아픈데도 없고. 당신은?”


“나도. 뭐… 일 나간동안 어린이집에 맡기고

 장인 장모님이나, 우리 부모님에게도 신세좀 지고 그렇지 뭐.”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서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연일 뉴스에선 출산율에 대해 떠들어대고

국가에선 양육비 보조금을 늘린다 어쩐다 말이 많지만


그래도 부모에겐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게

돈과 체력과 시간이다.


남자는 한 살이 겨우 넘어가는 갓난쟁이를

눈물을 머금고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긴다.


그리고 직장으로 나가 돈을 벌어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데 돈이 많이 드니까, 맞벌이를 하면 된다는 말은

아이를 키운 적이 없거나, 있어도 키우는데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이 끝나도, 

아이는 100일 200일이 겨우 지난 갓난쟁이다.

그 어린 피붙이를 어린이집에 맡겨야 하는 부모의 심정을 누가 알까!


남자는 아이를 보육교사에게 건네며 눈물을 흘리고

매일같이 어린이집에 전화를 걸어 귀가가 늦어져 죄송하다는 말을 한다.


조부모의 손을 벌리는것도 어쩌다 한두번이다.


육아 필요한건, 분유나 기저귀를 살 돈이기도 하지만

아이를 돌봐줄 부모의 시간이기도 하다.

돈만 있다고 아이가 자라나지 않는다.


“어떡해. 나라도 좀 도울 수 있으면 좋을텐데…”

여자는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며 측은한 표정을 짓는다.


“아..아냐! 괜찮아. 애가 낯을 많이 가리지 않아서. 선생님들도 크게 힘들어하지 않아. 

우리 아이를 많이 이뻐해주더라.”


“선생..님? 누구야?”


여자가 마주앉은 남자를 바라본다.


“왜..그… 어린이집에 보육교사…선생님”


“여자야? 왜 그 사람이 우리 애를 이뻐해?

 그걸 당신한테 말해? 그 선생이란 사람이 우리 집에도 들어오는거야? 

 같이 살아?”


“그만! 아냐. 그런거 아냐.

 그냥 보육교사일 뿐이고. 난 그 선생 이름조차 몰라. 그런거 아냐”


여자가 막 나가기 전에 남자가 제지한다.

보육교사라 해서 꼭 여자일리도 없고

하물며 학부형과 친하게 지내긴 더욱 힘들다.

뉴스에선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학대사건이 많이 보도되지만

실제론 보육교사를 막 대하는 학부형들이 더욱 많다.


“으으..으애애앵!”


남자가 소리치는 소리에 아이의 울음이 터진다.

남자가 엉덩이를 토닥이며 아이를 달래고

여자가 아이를 바라보며 우쭈쭈쭈를 해준다.


“그만 가봐야겠다. 애도 힘들어하고”

남자가 아이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음에 또 올거야? 언제와?”

여자가 눈물이 흘러내릴 듯 한 얼굴로

아이와 남자를 바라본다.


“금방 또 올거야.”


[후후. 278번 면회 종료합니다.]


스피커에서 안내방송이 나온다.


남자는 아이를 안아든다. 떠나가는 엄마를 바라보지 못하도록.

여자의 곁으로 교정직 공무원들이 다가온다.


여자가 떠나가는 남자와 아이를 향해 손을 뻗는다. 

면회실의 강화유리에 여자의 손길이 막힌다.

밝은 초록색 죄수복을 입은 여자에게

교정직 공무원이 수갑을 채운다.


남자는 이끌려가는 여자가 면회실 밖을 나서는동안

계속해서 여자를 바라본다.


여자가 시야에서 사라져서야. 


“후우”


한숨을 내쉰다.


전국에 단 하나뿐인 청주여자교도소

남자는 셔틀버스를 타고 청주역으로 향한다.


---

---


어쩌다 여기까지 일이 꼬인걸까?


남자도 여자도, 처음엔 흔하디 흔하면서

그들에겐 단 하나뿐이고 특별한 신혼부부였다.


운명처럼 만나서 사랑을 나누고

양가 부모님의 응원과 축복아래 결혼식을 올렸다.


인터넷과 현실은 다르다.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로 정해진 시대가 아니다.


누가 더 저축을 많이 모았고

부동산과 차량의 명의를 누구의 것으로 해야하고

공동명의를 어찌 해야하는지

인테리어는 어찌하고,

신혼여행은 어딜 가고

결혼식엔 비싼 드레스를 입어야하고

하객들에게 책잡힐 만한게 없어야하고

새 차를 고급 세단으로 뽑아야한다느니


모두 인터넷 속에서나 싸우는 이야기들이다.


각자의 사정과 상황에 맞추어 계획을 세우고

그곳에 가용할 수 있는 자금을 모두 쏟는다.


명의의 기준은 대출이 더 많이 나오고, 세제혜택이 나오는 방향이 결정한다.

이혼이 어쩌네 저쩌네 할거면 결혼은 생각하지도 않았고

설령 이혼을 하더라도 재산에 대한 증명이 꼭 명의만 있지는 않다.


양가 부모님들이 도와주신다면 큰 절을 한번 올리고

신혼여행에 다녀오면서 답례품이라도 챙긴다.


양가 부모님들의 의견을 존중하되

휘둘리지 않는 선에서 혼인생활을 꾸려나간다.


당연히 인터넷에 보는 것 처럼

트집을 잡는 친척도 있고

부모님이 엄한걸 가지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고

남편이나 아내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그제서야 눈에 띄기도 한다.


하지만 눈에 보인다고 당장 갈라설 정도의 큰 흠결이 아니다.

서로가 살아온 방식과 가풍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가 맞추어 나간다.


여자도 남자도 그렇게 울고, 웃고, 싸우고, 화해하고

그걸 수 십번을 반복하는 신혼생활을 보낸다.


돈과 생활에 여유가 생기지 않아도

삶이 익숙해지고 안정된다.


자연스레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남자도 술을 줄이고

여자도 건강에 신경을 쓰고

병원에서 건강검진도 한 번씩 한다.


출산 예정일을 어림잡아 계획을 세운다.

아이가 여름에 태어나면 땀띠에 힘들고

겨울에 태어나면 꽁꽁 싸매느라 힘들다.


2~3월에 태어나면 초등학교때 친구들에 비해 너무 작을 수도 있으니

가을에 태어나는게 좋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여자의 배는 점점 불러오고

거동이 힘들어질 시기에 출산휴가를 길게 낸다.


남자도 야근과 회식을 줄이고

매일같이 집으로 돌아와 빨래와 밀린 집안일을 하고

허구헌날 쥐가 나는 여자의 다리를 주무른다.


산후조리원을 예약한다.


무통주사를 있는데로 들이부어도 여자는 고통에 비명을 지른다.

분만실에서 남자의 손모가지와 머리카락이 한 번 뜯겨나간다.


건강하게 나온 아이를 간호사가 강보에 둘러싸 산모에게 안긴다.

처음으로 3명이서 가족사진을 찍는다.


아직도 남자는 지갑에 그 사진을 들고다닌다.


모든게 행복했고 모든게 잘 풀릴줄만 알았다.

두루마리 휴지와 잘 풀리는 집이라는 브랜드 처럼.


여자가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에 복귀한다.

오랜만의 출근이라 옷도 반듯하게 차려입고

발이 부어올라 잘 신지 않던 구두도 챙겨신는다.


출근카드를 찍고, 오랜만에 만나는 직원들과 복도에서 인사를 나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새를 못참고, 핸드폰 배경화면의 아이 사진을 자랑한다.

동료직원들이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보안카드를 대고, 사무실 문을 열고

자신의 명패가 달린 파티션 안쪽을 살펴본다.


그리고, 여자의 책상이 사라져 있다.


정확히 말하면, 책상도 있고, 의자도 있고, 명패도 있지만

어떠한 서류도, 심지어 컴퓨터도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100일이 겨우 지난 아이를

어린이집에 피눈물로 맡겨놓고 직장에 출근했건만

돌아오는게 이모양 이꼴이다.


방금까지 엘리베이터에 같이 탔던 동료 직원들에게 물어보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한달음에 팀장에게 달려가 상황을 물어도, 


"지시가 내려올 때 까지, 자리에서 대기하세요"


라는 명령이 하달된다.


내리 8시간을, 출근 할 때부터, 퇴근 할 때까지

책상에 앉아서 빈 공간을 바라보아야 했다.


화장실을 가면 팀장이 펜을 딸깍거리며 시간을 확인한다.

직장 동료들도 말을 걸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일거리를 내어주지 않고,

알아서 찾아 하려 해도 저지한다.


그래, 고용노동부에 가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할 수 있다.

회사에서 잘리는 한이 있더라도

여자를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벌금과 콩밥을 선물해 줄 수 있다.

실업급여외 퇴직금이 당연히 나올 것이고

두둑한 위로금과 함께 다른 직장을 알아보면 된다.


하지만 100일이 갓 넘은 아이의 분유값이 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남자의 수입만으론 대출금과 생활비만으로도 빠듯하다.

앞으로 아이가 큰다면, 학원비니 뭐니 들어갈 돈이 많다.


다른 곳으로 이직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고

출산과 육아휴직때문에 경력에 흠집이 있는 사람을 뽑아줄련지도 모르겠다.

이정도 급여를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직장은 지금 당장엔 이곳 뿐이다.

사직서를 쓸 볼펜도 없거니와, 사직서를 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


---


여자는 3주를 빈 책상만 바라보며 버텼다.

마지못해 아이의 사진이라도 책상에 붙여놓는다.

지옥같은 이 8시간을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버텨낼 수 있도록.

아무리 오랫동안 바라보아도, 아기의 얼굴은 질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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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이의 사진이 보란듯이 찢겨져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다.


여자의 책상이 출근 첫 날과 같이 말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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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안다.

젊은 총각이나 처녀들은 조금만 찔러도 고용노동부와 경찰에 신고를 한다.

하지만 자녀가 있는 부모는 다르다.


그들은 절대 회사에 대들지 않는다.

아무리 갑질을 당해도, 부모의 마음으로 견뎌낸다.


한달 반이 지나도록, 여자의 책상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다.

드문드문, 탕비실에서 여자를 언급하며 독하다느니, 눈치도 없다느니 이야기가 나온다.

2주 전에, 몇 개월 전 자신처럼 배가 부른 임산부 직원 한명이 사직서를 냈다.


8시간동안 꿈쩍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퇴근을 한다.

어린이 집에 들러서 아이를 안아든다.


아무도 없는 공원 벤치에 앉아서

아이를 안고 숨죽여 운다.


“엄마가. 미얀해. 엄마가 약해서 미안해…”


집으로 돌아와 어두컴컴한 집안의 불을 켠다.

젖병을 소독하고, 분유를 탄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너는 동안에도 

중간 중간 보채는 아이를 안아든다.


일찍 돌아온다던 남자는 답장조차 없다.


아이의 분유를 먹이고

등의 촉감이 민감해서 눕히지도 못한채

안아서 재운다.


팔보다 등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시끄러워서 TV도 틀지 못하고

양손이 자유롭지 못해 핸드폰도 못만진다.


조금만 각도가 틀어지면, 아이가 칭얼댄다.


거실 방바닥에 앉아서, 이도저도 화장실도 못간 채로 가만히 숨죽인다.

다리가 저리고, 쥐가 나는 듯 하다.


시계가 밤 9시를 가리킬 때가 되어서야

아이가 깰라, 조용히 남자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아이 얼른 이리 줘, 힘들겠다.”


“손부터 씻고 와. 괜찮아”


드디어 인생의 하나뿐인 자신의 편이 돌아온다.

쓰러질 것 같던 여자도 힘이 솟는다.


남자가 옷을 벗고, 손을 씻고, 

아이를 번쩍 안아든다.


그 새 아이가 잠에서 깬다.

팔다리를 뻗으며 몸부림을 친다.


“어. 아냐아냐. 아빠야 아빠. 괜찮아. 괜찮아. 우쭈쭈쭈”


아이를 찬찬히 흔들며 다시 꿈나라로 보낸다.

다리에 쥐가 나 움직이지 못하는 여자의 옆에 남자도 나란히 앉는다.


“많이 힘들었지? 늦어서 미안해. 갑자기 일이 밀려와서…”


“괜찮아. 하아. 좀 살겠다. 당신 아니였으면, 바위가 되어버린 며느리가 나였을거야”


여자는 자신의 손으로 다리를 주무른다.


“저녁은?”


“나도 아직 안먹었네. 당신은?”


“나도…아직”


“회사에서 밥도 안줘?”


“아니.. 그 바쁘다 보니까.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좀만 있어, 밥 차려줄게”


여자가 무릎을 딛고 힘겹게 일어난다.


“아냐아냐. 당신도 힘들잖아. 조금 있다가, 배달이라도 시켜먹자”


“우리가 배달 시킬 돈이 어딨냐”


“그럼, 라면이라도 먹자구. 당신도 언제 설거지하고 그럴려고”


아이를 안아든채. 꼼짝도 못하는 부모가 야식메뉴를 고른다.


등센서에 아이가 깨지 않도록

포대기에 남편이 아이를 둘러맨다.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한채로,

여자와 컵라면을 끓여먹는다.


“요즘…일 많이 힘들어?”


여자가 남자의 눈치를 살피며 질문을 한다.


“괜찮아. 이런 것도 어쩌다 한번이겠지… 당신은 어때? 적응 할만해?”


12시간이 넘도록 근로를 하고 돌아온게 괜찮을리 없지만

남자는 구태여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을 건네는 여자의 동태를 살핀다.


“아니 뭐…나도…”


말을 맺지 못한다.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상황이 극과 극이다.

한 명은 출근해서 12시간동안 밥도 못먹고 일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보는데

다른 한 명은 일을 주지 않아서 8시간동안 목석마냥 자리를 지키다가 귀가한다.


남편 앞에서 


‘회사에서 일을 안시켜서 힘들어’


라고 말하는게, 올바른 일인지 의문이 든다.



“힘들면, 말만 해. 내가 당신하고 이 애는 먹여살릴 수 있으니까”


남자가 여자를 보면서 씨익 웃는다.


여자도 남자를 바라본다.

아직도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로

포대기를 매고선 구부정하게 라면을 먹는다.


눈 밑은 거무튀튀하고

머리카락도 예전보다 가늘다.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대출 이자 납기일과 원금 상환일은 따박따박 다가오고

여자와 남자의 식비보다 한달치 아이의 분유값이 더 비싸다.


분유와 기저귀를 뗀다면

옷도 사 입혀야하고, 이유식도 먹여야한다.

기고 걷고 뛰기 시작하면 예상치못한 병원비도 생겨나고

하다못해 친구들이랑 놀 수 있게 태권도라도 보내야한다.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회사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고

당장에라도 때려치고나서 

여유를 가지고 이직처를 알아보고 싶다고


입이 죽어도 떨어지지 않는다.


“뭐래. 허세는, 얼른 먹기나 해”


여자도 남자에게 웃음을 지어보인다.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가면서 아이를 안아든채로 선잠에 든다.


밤 중에도 2~3시간에 한 번씩 분유를 타 먹이고

초주검의 상태로 출근을 준비한다.


아기와 성인의 생활리듬은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남자도 여자도 잠을 자지 못해서 머릿속이 멍하다.


어떻게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었는지도 모르겠고

출근카드는 찍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정신을 차렸을땐


회사 직원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고

팀장의 두꺼운 나무명패가 자신의 손에 들려있고

팀장이 자신의 발 밑에서 머리에 피를 흘린 채 굴러다니고 있었다.


여자의 손이 새빨갛다.

상의 블라우스에 고속으로 튄 혈액이 흩뿌려져 있다.


“112 불러! 아니 119부터 불러!!”


입사동기인데, 육아휴직을 하는동안 먼저 진급한 과장이 소리를 지른다.


팀장이 들것에 실려나가고

여자의 손목에 쇠고랑이 채워진건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변호사님… 방법이 없을까요?”


국선 변호사를 앞에 두고, 남자가 사정을 한다.


“힘듭니다. 합의라도 하지 않으시면…”


“회사에서 괴롭힘을 당했다잖아요. 네?”


“노동쟁의는 이것과 별개의 사안입니다. 

 원인으로서 참작은 될 수 있어도, 형량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그런건 노무사나 근로감독관에게 알아보셔야죠”


“...”


이미 남자는 근로감독관과 노무사도 만나고 왔다.

하는 말이야 뻔하다.


[왜 먼저 신고를 하지 않았느냐.]


일이 크게 벌어진 다음에야 신고를 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회사는 합의를 빌미로 노동쟁의를 취하시키려 할 것이다.


말이야 쉽다.

말 그대로 ‘목숨줄’을 걸고 고용노동부에 민원을 넣는 것은.


경찰, 변호사, 근로감독관, 노무사

어느 누구도 그간 여자의 심적 고통에 대해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士자가 붙은 전문직들에게 아무리 이야기를 해보아도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반성문이라도 써서 제출해 보시면…”


변호사가 남자에게 조심스럽게 제안을 한다.

TV나 뉴스기사에서 많이 보던 이야기다.


시정 잡배들이 온갖 깽판은 다 쳐놓고

피해자나 검사, 판사들에게 구구절절한 사연이 담긴 반성문을 써놓고선

합의도 안해놓고 낮은 형량을 받는 것을.


하지만 남자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마음같아선 회사 사장부터 경비실 직원까지

하나하나 찢어죽이고 싶다.


여자의 직장동료라던, 폭력사태에 대해 소식을 듣게된 임산부가,

굳이 남자를 불러내서 전후 사정을 이야기 해 주었을 때

남자는 분노에 눈꺼풀이 떨렸다..


여건만 되고, 형편만 된다면.

하나하나 회칼로 살을 저며서 포를 떠버리고

사무실 창문에다가 널어서 바짝 말린 황태를 만들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아이가 있다.

아직 엄마 젖도 못떼고 분유를 먹는 아이가 있다.

장인장모도, 자신의 부모도 본인 노후를 대비하는게 빠듯하다.


자신마저 구치소나 감방에 들어가면 

아이는 도대체 누가 키워준단 말인가?


그리고. 여자의 정신상태가 별로 좋지 못하다.

본래는 국선변호사와 ‘여자’가 상담을 해야하는데

배우자인 남자가 대신 하는 이유가 있다.


여자는 어떠한 외부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구치소 바깥에서 아무리 아내를 불러보아도 돌아보지 않는다.


남자가 안고있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철창으로 다가와 아이를 안아들려다 

쇠창살에 가로막혀 실패한다.


이내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구치소 구석으로 돌아간다.


반성문 이야기를 안해본것도 아니다.

펜과 종이를 들려보내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


먹고, 자고, 화장실도 가지만 그뿐이다.


국선 변호사 앞에서 남자는 머리를 쥐어뜯는다.



—--



“주문. 피고인을 징역 6개월에 처한다”


여자에 대한 심신미약

폭행에 원인이 된 직장 내 괴롭힘

하다 못해 어린 아이의 어머니인 사실을 들먹여보았지만


어느것도 검사와 판사의 마음을 흔들지 못했다.


공명정대하고 원리원칙대로

여자는 둔기를 사용한 특수폭행을 저질렀고

피해자와 원만한 합의를 이루지도 못했고

범죄에 대해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판결문에 기록된다.


출산에 임박한 임산부를 증인석으로 부를 수도 없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이 퍽이나 증언을 해줄리도 없다.


여자는 방청객 자리에 앉은 남자와 자신의 아이의 손조차 잡아보지 못하고

그대로 교정직 공무원에게 이끌려 청주 교도소로 향한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팀장이란 사람이

남자와 아이를 보며 웃음을 짓는다.


“조만간 민사에서 봅시다.”


라고 이야기를 건넨다. 


죽이고 싶다.

죽여버리고 싶다.


지금이라도 당장 방청객 석을 뛰어넘고 들어가

여자가 죽이는데 실패해버린 저 팀장의 목을 졸라 죽여버리고 싶다.


하지만 엄마가 어디로 끌려가는지 조차 모르는

아직 엄마라고 말도 잘 못하는 자신의 아이가

포대기에 싸여 자신의 품에 안겨있다.


남자는 집으로 돌아와 가재도구를 정리한다.


여자와 힘겹게 구한 이 집을

헐값에 팔아넘길 준비를 한다.


큰 맘 먹고 지른 LG의  백색가전들


남자의 사촌형이 ‘이때가 아니면 기회가 없다’며 사준 PC와 게임기

  

인조가죽 소파


돈이 될만한 모든걸 중고장터에 내놓아 현금을 마련한다.

본래대로라면 집을 팔아넘기고, 작은 전셋방으로 옮기는게 더 합리적이겠지만

차마 여자와 남자의 보금자리인 24평 아파트마저 팔아넘기지 못한다.


친척들에게 사정사정을 해서 돈을 끌어모으고

민사 재판이 열리기 전에, 팀장에게 합의금을 건네고 사건을 종결지었다.


여자의 전 직장 앞 카페에서 

회사가 고용해준 변호사를 대동한 팀장과 대면한다.


치료비와 별개로 천만원 가량의 돈을 쥐어든 팀장은


“다음엔, 좋은일로 보도록 합시다. 웃으면서.”


라며 남자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추가로 주문한 조각케잌값도 계산하지 않고, 유유히 자리를 떠나간다.


민사랍시고 여자를 다시 법원에 불러세우는 것 만큼 잔인한 일도 없으리라.

남자는 각고의 인내심을 끌어모아 분노를 잠재운다.


---


회사는 여자의 퇴직금도 주지 않는다.


남자가 연락해도 


‘당사자가 아니면 드릴 수 없다’며 모르쇠다.


정작 당사자는 감방 안에서 연락도 잘 못하는 상태다.

회사는 모든 상황을 알면서도 

조그마한 손해도 보기 싫어서 여자와 남자의 집안을 망가뜨린다.


의도야 뻔하다.


[앞으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고 싶다면 인생을 걸어라]


모든 직원들에게 일벌백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남자는 마음을 다잡는다.

6개월이면 여자가 다시 돌아올 것이고

이전에 자신이 당당히 이야기 한 대로

여자와 아이를 자신이 먹여살리면 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지금 자신이 할 일은, 여자가 없는 6개월 동안, 자신의 아이를 잘 보실피는 것 뿐이다.


평소처럼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네? 안된다뇨. 왜 그러세요 선생님”


“다른 원아 부모님들이 하도 반대를 하셔서… 죄송해요 아버님”


당장 출근을 해야 하는데

어린이집에서 남자의 아이를 받아주지 않는다.


해약금이 담긴 현찰 봉투를 내밀며, 연신 고개만 숙인다.

범죄자의 자녀라고, 어린이집에서 조차 내쫒기는건가?

도대체 어디서 소문이 퍼졌는지. 

앞으로, 아니 지금 당장 어찌해야하는지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남자는 한참이나 포대기에 아이를 안고서 어린이집 앞을 서성이다.

그대로 출근길에 몸을 싣는다.



“여기가 유치원이야?! 정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애는 너 혼자 키워봐?!!!”


포대기에 감싸여진 아이가 큰 소리에 놀라 운다.

남자는 자신의 상사 앞에서 아이를 달래지도 못한다.


아이가 울건 말건, 상사는 아이를 회사에 데려온 남자에게 소리를 지른다.


“죄송합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다들 사정이 없는줄 알아? 나는 애 안키워봤어?! 애 엄마는 어쩌고, 엉?”


상사는 목에 핏대를 세운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진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인다. 아이의 얼굴이 보인다.

아이도 우는데 차마 아빠인 자신마저 울 수는 없다.

입술을 깨문다.


“거 시끄러우니까 애 좀 조용히 시켜봐아!”


상사가 그제서야 남자를 뒤로 물린다.

그렇다고 집으로 보내지도 않는다.

계단실 한 구석에서, 울음보가 터진 아이를 달랜다.


아이를 급하게 구한 바구니에 방석과 함께 눕힌다.

업무를 보면서 틈틈히 젖병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고

울지 않도록 달랜다.

그나마 사무직이라 이렇게라도 할 수 있음에 남자는 안도한다.


담배를 피는 직원들이, 사무실로 들어오기 전에 주차장을 한바퀴 돈다.

알음알음, 지나가는 직원들이 아이를 보고 놀리고 귀여워한다.

어느 누구도 묻지 않는다.


아내는 어떻게 된 건지

아이는 왜 여기까지 오게 된건지.



아직도 어린이집을 구하지 못했다.

새벽같이 길을 나서서 부모에게, 장인장모에게 아이를 맡기길 반복한다.


차량과 써보지도 못한 유아용 카시트를 중고차매매상에게 팔아넘겼다.

대중교통비나, 자동차의 유류비나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데

남자는 착잡함을 느낀다.


어린 아이가 지하철과 버스를 한 시간이나 타며 돌아다니는것도 

좋지 않다는걸 알고는 있다.


아이를 어르신들에게 맡기기 위해 길거리에서 수 시간을 버리는게

미친짓이란걸 알고는 있다.


하지만 엄마도 없는데, 돈을 벌러 가야 한다며

아이를 친정이나 시댁에 전적으로 맡겨놓을 수도 없다.

있지도 않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장모는 최근 흔들리는 어금니를 발치했다.

임플란트를 해야하는데, 틀니를 끼웠다.


얼마 안되는 차액을 분유값 하라며 남자에게 쥐어준다.


돈을 쥐어주는 장모의 손이 떨린다.

미안하다며 울려는 장모를 남자가 제지한다.


“사과하지 마셔요. 아내는 잘못한거 하나도 없습니다.”


남자는 장모가 내미는 분유값을 거절하지 않는다.

장모의 틀니가 어떠한지도 묻지 않는다.


그래, 자신의 아내는 잘못한 것 하나 없다.

썩어빠진건 이 세상이고, 

그곳에서 아이를 보란듯이 키워내야한다.


여자의 재판 이후로 3개월이 지났다.

저번 달에 처음으로 아내의 면회에 다녀왔다.


처음보단 정신이 좀 돌아왔고

어느정도 대화도 가능하지만.


자신이 왜 교도소에 갇혀 있는지

아니, 지금 자신이 있는곳이 교도소인지 조차 분간하지 못한다.


마지막엔 아이와 자신의 사이를 가로막는 유리를 치워달라며 소리를 지르다가

교정직 공무원에게 끌려나갔다.


남자는 면회를 가야하는지, 가지 말아야하는지 분간이 되질 않는다.

아내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현실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


말은 쉽지.

밖에 있는 남자도 작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계속해서 아내가 잘못한게 아니라

세상이 썩어빠진거라며 수십번 되뇌여야 

지금의 현실을 겨우 마주한다.


저번 달에, 아이가 혼자 힘으로 일어섰다.

기고 배로 밀면서 집안 곳곳을 들쑤시고 다닌다.


조만간, 분유를 떼고 이유식을 시작해야 한다.

준비할 것이 많다. 정신은 없고 시간은 모자라다.

그나마, 이제는 밤에 한 번 잠들면 아침까지 일어나지 않는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자라나는 아이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장모님, 집에서 분유만 타 가지고 갈게요!”


남자는 수화기에 대고 소리를 친다.

남자는 17시가 되자 마자 퇴근을 한다.

회사에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아내가 교정시설에 들어가고

아이가 어린이집도 제대로 들어가지 못해서 

여러 집을 전전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전후사정을 고려하지도 않고

자신의 상사처럼 소리만 버럭 지를 사람들은 지천에 널렸다.


그래, 모두가 각자의 사정을 가지고 있다니까

남자도 자신의 사정을 구태여 늘어놓지 않는다.


젖병에 적정온도보다 뜨거운 물을 붓는다.

분유를 비율에 맞게 집어넣고

보온가방에 집어넣어 어깨에 맨다.


역으로 뛰쳐나가는데 전화기가 울린다.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이미 자신은 퇴근한 뒤다.

온전히 아이에게 신경을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르다.


진급이니 뭐니 하는것보다

지금 하루하루와 6개월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



“얼른 집으로 가서, 코 자자”


지하철 좌석에 앉지도 못하고

남자는 아이에게 분유를 먹인다.


어깨끈으로 고정시켜 앞으로 아이를 매는 포대기.

지하철에선 이것만 있으면 무적이다.


유모차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비싸기도 하거니와, 있더라도 들고다니기 불편하다.


그런걸 챙길 시간에 차라리 안고, 업고 다닌다.

이제는 아이가 7kg을 넘어서 10Kg을 바라본다.

온 몸의 관절이 끊어질 것 같지만, 참아낸다.


전화기는 계속해서 울려대는데, 받을 재간이 없다.

분유를 먹이고, 짐을 들고, 남는 손으로 아이의 등을 두드려야 한다.


신혼집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겨우 팔꿈치로 누른다.

10초만 기다린다면, 꿈같은 자신의 집에 당도할 것이다.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려는데

문 틈 사이로 집 안쪽의 형광등 불빛이 새어나온다.


문이 잠겨있지 않다.

분명, 문단속 만큼은 언제나 신경쓰고 있다.

애초에, 누군가 안에서 훔쳐갈만한 물품이 남아있지 않다.


남아있는 제일 비싼 물품이, 아기용품들이다.


남자는 아이를 뒤로 돌려매고서

조심스럽게 집 안을 살핀다.


“당신 왔어? 애도 데리고 있지?”


그리고, 언제나 집에서 자신을 맞이해주었지만

집에는 있어서는 안될 그녀가


남자와 자신의 아이를 맞이한다.


익숙한 움직임으로 젖병소독기에서 병을 꺼낸다.


준비해둔 뜨거운 물을 붓고, 분유를 두 스푼 집어넣는다.

열심히 흔들어 잘 섞은 다음에, 손등과 이마로 온도를 잰다.


온도계는 애저녁에 졸업한 뒤다.

분유 온도를 맞추는데 촉감이면 충분하다.


“아이고, 우리새끼. 배고프지? 맘마먹을까?”


“다..당신… 여긴 어떻게…”


“우리 집이잖아. 왜 그래, 당신도 내가 친정갔으면 좋겠어서 그래? 정말 별꼴이야”


여자는 남자의 어깨끈을 풀어내고

아이를 받아든다.


분유를 먹은지 1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남자는 젖을 먹이려는 여자를 막을 수 없다.


전화기를 꺼내든다.

어디에 전화를 걸어야 하지?

아니. 전화를 하는게 맞긴 한가?

112? 119? 정신병원?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그리고 전화가 울린다.

아까부터 울리던 부재중 전화 십 수통.

남자는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여기 법무부 교정본부 특별사법 경찰팀 팀장입니다.”


“저….”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하.. 저희도 아버님이랑 통화 한번 연결하려고 얼마나…”


“있어요”


“네?”


“제 눈앞에…”


“아내분이랑 같이 있으세요? 어디십니까?”


남자는 고민한다.

지금 자수를 해야하는지

아니면 썩어빠진 세상에서 도망쳐야 하는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고민한다.


여자는 아이를 안아들고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먹성좋은 아기는 엄마가 건네는 분유를 잘도 받아먹는다.


“우리아가, 내일이면 첫 돌이네”


여자의 발언에, 남자는 결심을 한다.


“자택입니다. 조용히 와주세요. 같이 있습니다.”


여자를 자극하지 않도록 전화를 끊는다.

이쯤 되면, 알아먹었겠지

문이 잠기지 않도록 말발굽을 받치고

여자와 함께, 소파도 없는 거실에 나란히 않는다.


오랜만에, 여자의 다리를 주물러준다.


차라리, 자수라도 해서 한시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

남자의 머리는 냉철해지고, 차가워진다.


하지만 눈에서 눈물이 난다.

한번 스윽 닦아내고, 아내의 다리를 주무른다.


주변을 둘러보자, 집안일이 말끔하게 되어있다.

청소기도 돌려져있고

밝은 초록색 죄수복이 다른 옷들과 함께 건조대에 널려있다.


밀린 설거지도 없고

얼기설기 던져놓은 육아용품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머리는 차분하고 냉철하게 돌아가는데

자꾸만 눈물이 난다.


“고마워.”


“뭘, 당신이 고생이지”


여자는 안아든 자신의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꿈같은 10분의 시간 뒤에

교정직 직원들이 살며시 문을 연다.


“사모님, 이제 돌아갈 시간입니다.”


팀장이 먼저 여자에게 말을 건넨다.

남편의 입장을 고려해서 죄수를 정중하게 대한다.


“어머, 누구세요? 당신 친구분들이셔?”


여자는 아기를 안아든 채 특별사법경찰 팀장을 바라본다.


“여보. 미안해.”


“아냐아냐. 당신이 왜 미안해. 이 분들이 누구신데 그래.”


여자가 손을 덜덜 떨면서

아이와 팀장을 번갈아 바라본다.


마지못해 남편이 아이를 여자에게서 받아든다.


사법경찰 팀장은 비어버린 여자의 손목에 

조심스레 수갑을 채운다.


여자는 채워진 은팔찌를 바라본다.

눈 앞의 교정본부 직원들을 바라본다.

아이를 바라보고, 남편을 바라본다.

다시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바라본다.


여자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이분들 누구셔? 왜 이러시는거지?”


“여보...미안해. 이 방법 뿐이야."


“나 정말 모르겠어. 우리 집은 여기라구.

 나랑, 당신이랑, 우리 아가랑 같이 사는 집이 여기라구.”


이제는 신혼살림으로 장만했던 물품 대부분이 없는데도

남편과 아이와 함께 있는 이 집을 ‘우리집’이라 말하는 여자.


교정직 직원에게 끌려가는 여자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남자.


이내 여자가 사법경찰에게 사정을 한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주저앉아서 손을 싹싹 빈다.

손목에 걸린 수갑이 찰칵거리는 소리를 낸다.


“제발요. 1시간만, 1시간만요. 내일이 우리 애 돌이란 말이에요.

 엄마가 되어서 애 돌잡이도 못보고. 안돼요. 제발요….”


사법경찰 팀장이 머리를 긁는다.


“사모님, 저도 자녀가 있는 부모입니다.

 충분히 마음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도 아이를 키우려면, 제 본분을 다 해야합니다.


 제가 사모님을 모시고 가는건. 사모님의 죄가 경 하냐 중 하냐를 따지자는게 아닙니다.

 제 직업에 맞도록 일을 해야, 저도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자랑스러운 부모로 서 있을 수 있습니다.


 모쪼록.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남자도 사법경찰 팀장 앞에서 숙연해진다.

처음으로, 여자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사람은

이 팀장이 처음이다.


자신의 이기심이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의 마음으로 여자를 설득한다.

언젠가, 여자가 자신의 자녀 앞에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더 큰 죄를 저지르기 전에 돌아가자 이야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자가 탈출한 교도소로 여자를 끌고가는 저 사법경찰이

여자를 가장 존중해준다.


여자도 손이 발이되도록 비는걸 그만둔다.

자신을 끌고가는 이 사람도, 누군가의 부모이리라.

자신이 느끼는 내장을 끊어내는 듯한 고통을, 

이 사람도 느끼고, 느껴봤으리라.

이 사람도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아이를 보고싶으리라.


차마 자신의 억지를 관철시킬 수 없다.


“...”


여자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조용히 사법경찰을 따라 나선다.


팀장은 다시 한 번 머리를 긁는다.


“하아… 요 앞에 편의점이든 다이소든 가서

 돌잡이 물품좀 사와라”


부하 직원들에게 돈을 건네며 명령을 한다.


“네?”


어리둥절한 교정본부 사법경찰들이 반문한다.


“내일 돌이래잖아. 돌잔치는 해야지. 집에 빨리 가고싶지 않아?”

퇴근을 빌미로 협박을 한다.


직원들이 한달음에 달려나가 온갖 물품을 사온다.


간단한 간식거리, 음료수, 쟁반

돌잡이에 사용할 실뭉치, 나무망치, 볼펜, 돈봉투, 마이크 등등

없는게 없어서 다이소는 밤 열시까지 정상영업이다.


아이의 생일까지 2시간이 넘게 이르지만

사법경찰들과

엄마와 아빠와 아이가 

소파도 없는 거실에 둥그렇게 모여 앉는다.


음료수를 마시고, 과자를 먹고

아이와 엄마와 아빠의 가족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찍는다.

아이를 향해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준다.


대망의 돌잡이 시간.

팀장이 직접 소반에 명주실부터 마이크까지 놓아두고

아이의 눈 앞에 가져다댄다.


“어머님은, 뭐 잡으셨으면 좋겠어요? 마이크?”


“흠…싫어요. 요즘 아이돌도 힘들어서 할 게 못된데요. 어디보자…”


여자가 소반을 찬찬히 살피며 고민한다.

망치를 들고 士자가 붙는 직업을 가지는것도 좋겠다.

볼펜을 들고 자신과는 다르게 공부를 잘해도 좋겠다.


“명주실이, 좋겠네요”


명주도 아닌 실뭉치를 가리키며, 남자가 이야기한다.


건강을 상징하는 명주실

자신의 아이는 건강하게만 잘 자라줘도 고맙다.


“뭐야, 맨날 자기만 좋은거 고르고”


아내는 그런 남편을 타박한다.


이내 여자와 남자의 아기는, 소반에서 돈봉투를 잽싸게 쥐어든다.


“어이쿠, 녀석. 앞으로 재벌이 되려나보구나!”


팀장이 한 번 아이를 번쩍 안아든다.

돈봉투에 5만원짜리 한 장을 찔러넣는다.


그리고 다시 여자에게 아이를 들려준다.

여자는 아이를 보고 웃는다.

밤이 늦은 시각. 아이는 졸린지 하품을 한다.


여자는 남자에게 아이를 건넨다.

특별사법경찰 팀장의 눈을 마주하고 이야기한다.


“이제,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아기를 안아들고, 청주로 향하는 여자를 배웅한다.


“춥다. 애 감기걸릴라, 나오지마. 사랑해”


밖으로 나오려는 남자를 여자가 가로막는다.

엘리베이터에 앞에서 작별의 인사를 한다.

남자는 곤히 잠든 아이가 깰까봐 소리내어 울지도 못한다.



“주문. 피고인을 징역 3년에 처한다.”


신창원의 탈옥사건에 비하면 아주 가벼운 형량이 여자에게 내려졌다.


판결문에는

피고인이 죄를 깊게 뉘우치는 점.

한 아이의 부모인 점.

탈옥 뒤 자택에서 자수한 점을 들어 형량을 낮춘다 명시되어 있다.


물론 2012년 마지막 탈옥수가 나온 뒤로

최초의 여성 탈옥수가 나온게

대중의 이목을 끈 것도 한 몫 한다.


누구에게 피해를 끼친 것도 아니고

절도나 상해를 일으킨것도 아니면서

아이의 첫 생일이 보고싶어 탈옥한 어머니의 마음이

대중들의 심금을 울렸다.


방청석에서 아이를 안아든 남자가 법원을 나온다.

방송사의 시사고발 프로그램 PD가 남자를 알아보고, 명함을 내민다.


어느것도 알려지지 않은 여자의 전후 사정이 궁금하리라.

남자는, 이제는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된

여자의 옛 직장 동료의 전화번호를 PD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라면, 모든 사실을 이 PD에게 전달해 주리라.

 

여자의 정신은 아직 온전치 못하다.

교도소에 들어간 뒤로, 다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치료감호를 요청해 보았지만, 반려당했다.

거동이 불편한 것도 아니고,

지적장애가 있는것도 아니고

단순한 일시적 착란에 치료감호를 내어줄 수 없단다.


대신, 탈옥을 하지 못하도록 매 주마다 청주의 교도소에 아이와 함께 방문한다.


D-1165

여자와 처음 만난 날도

결혼기념일도

누군가의 생일도 아니다.


이 기념일은, 세 명의 가족이 다시 모이는 날이다.

꼴랑 6개월의 시간이 3년이 넘는 시간으로 늘어났지만


교정본부 특별사법경찰 팀장의 배려로 이루어진 단 1시간의 돌잔치가

남자에게 힘이 되고 희망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