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의 날개를 모티브로 하여 각색한 것입니다. 

각색이라 부르기에도 부끄러울 만큼 엉성하게 기워 만든 이야기이나, 

아무쪼록 즐거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나비 = 고양이 / 가히 = 개. 




정녕 나는 이 여인을 아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내가 같이 혼례도 치른 적 없는 여인을 아내라 칭하는 까닭은 

한낱 종이 쪼가리에 찍힌 도장 ― 애초에 찍은 적이 없기도 하거니와 ― 때문이 아니요,

다만 그녀가 나를 낭군처럼 받들어 모시기 때문이라.

애당초 그녀에게는 서면에 적을 이름이나 번호 같은 게 없었을 터다.

과연 이 나라는 그녀의 존재를 알기나 할까?

아마 모르는 편이 서로에게 낫겠구나 싶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 나는 이제 그 무엇도 생각하지 않고 싶었다.

그 어떤 것이더라도 생각은 되도록이면 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그저 날이 흐르는 대로 흘러가도록, 하염없이 머리를 비우고 밤을 지새는 것이 지금의 내게는 더 나았다.

요람에서 선잠을 자는 나비가 도대체 무엇을 생각한단 말인가.

이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 한 시진이라도 더 눈을 붙이는 것만이 내 유일한 관심사였다.

이 나비의 비유는 자못 잘 들어맞는 비유였으나, 한편으로는 작금의 내 신세에 대한 자조이기도 하다.

길에서 주워다 사육된 나비 마냥 쪽방에 갇혀 제때 밥이 오기를 기다릴 뿐인 인생.

어쩌면 인생보다는 축생이라고 불리우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따금 그녀가 내 머리를 쓰담을 때면 눈을 감고 고개를 젖혀주는 것만을 과업으로 삼는 게 지금의 나다.

 

그리고 감히 추측하건대,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끝에서 비릿한 철 향이 사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내는 내게 말하지 못할 일 ― 구태여 물어보지도 않았네만 ― 을 업으로 삼고 있었다.

나는 필시 사람의 피를 먹어 그 삶을 연명하고 있는 것이겠지.

나는 그녀에게 감사해야 할까, 아니면 두려워해야 할까 도무지 분간이 가지를 않아

그날 내내 그녀의 눈을 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하루는 그 응어리진 두려움이 내 몸을 뒤로 잡아당기는 일이 있었다.

분명히 손을 씻었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피의 냄새가 코를 찌르고

하이얀 옷의 귀퉁이에 옅게 물들은 연분홍빛 얼룩이 유독 섬뜩했던 지라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길을 피해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그러자 그녀는 분노인지 슬픔인지 모르는 것을 삭이며 세면대로 가 손을 박박 문질러 씻었다.

마치 자신의 혈관에 흐르는 피까지도 모조리 씻어내려는 듯이 흐르는 물에 제 손을 문대었고, 

가늘고 하얀 손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차마 내버려둘 수 없었기에 그녀를 힘껏 끌어안아 세면대에서 끌어냈다.

허나 그녀는 이런 내 의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내가 안아주었다는 사실만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내 등 위로 제 팔을 두른 채 역으로 내 몸을 끌어 이불 속으로 뛰어들듯이 쓰러졌다.

닦아내기를 잊은 물기가 내 등줄기를 적셨지만, 첫 동침을 구태여 어색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날의 잠자리는 퍽 따스하였다.


첫 동침을 했던 날, 나는 유독 눈이 일찍 뜨였다.

그녀를 깨워야 할까 싶어 어깻죽지에 손을 옮기려던 순간,

문득 나는 그녀를 무어라 부르며 깨워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말았다.

나는 아직 그녀의 진짜 이름을 알지 못했고, 그것이 내가 나의 반려를 "그녀"라 부르는 까닭이다.

그녀에게는 여러 이름이 ― 모두 다른 이에게서 빼앗은 것이지만 ― 있었다.

어느 날 그녀의 화장대 서랍에서 찾아낸 여러 장의 주민등록증은 필시 그녀가 거쳐온 이름들일 테고,

내 것을 제외한 이름에 모두 줄이 그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지금은 나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헌데 갑자기 드는 생각이, 어쩌면 그녀는 내가 아니라 나에게 붙여진 이름과 번호만을 원했던 것은 아닐까?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이가 다른 이의 껍질을 뒤집어써야 했기에 그 껍질로서 나를 고른 것일까?

하지만 차마 그녀에게 내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직접 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난 너에게 있어 무엇인지, 그리고 또 너는 나에게 있어 무엇인지.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결론이 나지 않았기에  ― 이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 이래 최초로 ― 그녀에게 머리 숙여 부탁을 했다.

잠시 마실을 나가려 하여 돈 한 푼만 꾸어 달라 말을 붙이니 그녀의 눈이 가늘어지는 게 느껴졌다.

노기 서린 목소리로 "어디를 가려 하느냐" 묻기에 네 선물을 사러 간다 답하였고,

"갑자기 웬 선물이냐" 묻기에 지금은 나의 이름과 번호를 쓰고 있으니, 내 생일이 곧 네 생일이 아니냐고 답했다.

기실 그녀에게는 아무 날도 아니건만. 무릇 핑계란 그 연유를 따지지 않는 것이며, 나는 그저 핑곗거리가 필요했을 뿐이다.

단순히 내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전하기 위한 핑계.

무엇이 됐건 일단 형태로써 전달해 보아야 내가 찾던 답의 실마리라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녀의 노기는 어느새 옅어졌고, 하늘 높이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진정시키려 했으나

 ― 처음으로 그 얼굴에 감정이라는 게 맺힌 모양새가 내 눈에는 퍽 어여쁘게 보였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어 나오는 기쁨을 모두 틀어막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이내 그녀는 나를 몇 번 쓰담더니 지폐 몇 장을 건네주며 저녁 먹기 전까지는 돌아오라고 말을 전했다.


우습지 아니한가, 그녀에게 빌은 돈 ― 하물며 이는 사람을 죽여서 번 돈임이 자명한데 ― 으로 그녀를 위한 선물을 사는 꼴이라니. 

나는 그저 자그마한 마음을 전할 길이 없으니 에둘러 허울 좋은 대용품을 찾는 것뿐이건만

그것 하나조차 찾지 못하고 빈손으로 집에 돌아와 버리고 말았기에, 아내에게 이미 구겨진 지폐 다발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헌데 지폐를 건네줄 때 힐끗 그녀의 손을 보니 엄지손톱이 넝마 마냥 물어뜯겨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홀로 집에 남겨진 아내는 끓어오르는 불안을 삭이려 애꿏은 손톱만 잔뜩 물어뜯었으리라. 그리 생각하니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 어째 안색이 창백하였던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 야기된 것이겠지 ― 그녀는 빈손으로 돌아온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는 분명 꾸중이라도 돌아올 줄 알고 미리 풀이 죽어 있었거늘 그녀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다만 나를 다시 한번 끌어안아 제 이불에서 재워주었다. 

분명히 같은 이불에서 같은 사람과 누웠지만 이전과 같은 따사로움은 온데간데없고

한없이 차가운 무언가가 내 뼈마디에 녹아들고 있었다.


다음 날, 내 생일 당일이었다.

어제 나를 밖으로 내보냈던 것이 영 불안했던지 아내는 내게 목줄 하나를 건넸다.

주인이 없는 줄 알고 누군가 나를 채어갈까 봐 불안하기라도 했던 걸까.

"네 생일이니 선물은 네가 받는 것이 옳다"며 어거지로 내 목에 목줄을 둘렀으나

이는 필시 선물 같은 것이 아니요, 다만 그녀의 불안이 그녀로 하여금 나를 소유하도록 부채질한 결과였다.


손으로 더듬어 보니 이는 분명 도사견에게나 채울 법한 줄이었건만, 아내는 구태여 그 고리에 사슬을 매지는 않았다.

그 목줄에는 작달막한 철제 상자 ― 필시 내 위치를 추적하는 기계 뭉치였음이라 ― 가 오직 하나 붙어있었을 뿐이지만, 

내게는 그것이 여느 철근보다도 무거웠으며 마치 보이지 않는 사슬이 내 발을 이곳에 묶어둔 것만 같았다.

나는 스스로를, 원한다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 단지 내 변덕으로 여기에 잠시 머무르고 있을 뿐인 ― 나비라 여겼거늘 

실상은 줄에 매인 가히에 지나지 않았구나.

주인이 줄을 잡아주지 않으면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가히.

얌전히 줄에 매여야지만 밥을, 물을, 쓰담을 받는 가히.

그리 생각하니 퍽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목에 채워진 줄의 무게를 느끼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다시 한번 내 이불에 누워 창을 바라보았다.

방범창 ―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것으로 기억하네만 ― 의 살들이 내 햇빛을 여러 갈래로 쪼개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란히 내 창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 마치 철로 된 새장 같지 않은가.

양철 케이지 안에 스스로를 구겨 넣고 사는 것을 애써 아늑하다 여기려는 내가 너무나도 가증스러워서, 나는 실로 오랜만에 커튼을 쳤다.

내가 바라 마지않던 햇볕이 사라진다.

공기 속에서 부유하는 먼지들의 형체가 어둠 속으로 녹아들듯 사라진다. 

장막의 틈새로 기어들어 온 빛은 그 광채를 잃고 나를 엿보는 듯이 눈을 간질인다.


눈을 감는다.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 사라진다.


눈을 감는다.

내 모습이 사라진다.



3줄 요약:
1. 킬러 얀순(호적 없음)이 명의 도용을 위해 아무나 납치함
2. 헌데 납치해보니 얀붕이 생각보다 귀엽고 말도 잘 들어서 키우기로 결정

3. 얀붕을 한 번 외출 시켜줬더니 극도의 불안증세가 나타나며 얀데레로 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