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카데미는 헌터들을 양성하는 교육기관.

 

 나는 이곳 Y지부에 다니며 학생회의 서기를 맡고 있다.

 

 아, 학생회라고 해서 대단한 건 아니다.

 

 다른 학교는 어떤지 몰라도, 우리 같은 경우 실권은 없는 주제에 잡무는 많아서 지원자가 별로 없다.

 

 덕분에 구성원 태반이 유령회원인 상태. 학생회실에 꾸준히 들리는 건 나와 나보다 한 학년 선배인 학생회장, 단 둘뿐이다.

 

 [2]

 연진(외자 이름이다). 별 볼 일 없는 나를 학생회로 스카우트한, 우리 학교의 자랑인 학생회장님.

 

 시험 성적은 입교 이래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데다가 몬스터를 맨손으로 때려잡는 괴력의 소유자다.

 

 몬스터를 맨손으로 잡는다니. 처음엔 나도 ‘과장이 심하네,’ 하고 생각했는데.

 

 A급 몬스터인 사이클롭스가 회장 손에 다진 완자가 되는 걸 직접 목격한 뒤로 깨달았다.

 

 와,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나중에 S급 헌터가 되는 거구나... 라는 걸.

 

 회장은 얼굴도 예쁘다. 윤기가 흐르는 까만 생머리에 키도 훤칠하고, 모델 잡지 한 페이지를 오려낸 듯한 쿨뷰티 되시겠다.

 

 그걸로도 모자라 어머니가 학교 이사회 대표라던가 뭐라던가. 

 

 그야말로 재색겸비에 문무양도. 내가 아는 한 가장 완벽한 인간이다.

 

 [3]

 그런 회장에게도 말 못 할 고민, 숨겨진 비밀이 있었으니...

 

 “우으, 연진이 쉬 마려...”

 

 그것은 회장의 괴력과 연관이 있었다.

 

 그녀의 스킬은 일종의 버서크 모드. 사용하는 동안 신체능력이 대폭 강화되는 대신, 전투가 끝나면 그 반동으로 지능이 떨어진다. 거의 대여섯 살 수준으로 말이다.

 

 “네에, 쪼끔만 더 참으면 화장실이에요. 연진이는 누나니까 참을 수 있죠?”

 

 “연진이 못 참겠어. 연진이 이제 그냥 쉬야 할래!”

 

 “어라, 이상하다? 누나들은 바깥에서 쉬 안 하는데?”

 

 그 결과, 전투가 끝난 뒤 어린애처럼 구는 회장을 케어하는 것이 내 주요 임무가 되었다.

 

 “연진이 누나 안 할래! 그럼 바깥에서 쉬해도 되지?”

 

 “연진이 누나 그만할 거에요?”

 

 “응!”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알았어요. 그럼 이제부터 동생 해요.”

 

 “앗싸!”

 

 “아이고, 근데 이를 어쩐담? 밖에 바람이 쌩쌩 부는데, 이런 날씨에 밖에서 쉬하다가 엉덩이가 꽁꽁 얼지도 모르겠네.”

 

 “...읏.”

 

 “엉덩이 얼면 병원 가야 하는데. 병원 가면 의사 선생님이 엉덩이 녹이려고 불주사 놓는데. 연진이는 불주사 맞아봤어요?”

 

 “힉...! 여, 연진이 그냥 화장실 갈래! 참을 수 있어! ...대신에.”

 

 “대신에?”

 

 “손잡아주면 안 돼?”

 

 “안 될 리가요. 자, 벌써 거의 다 도착했네요. 혼자서도 다녀올 수 있죠?”

 

 “응! 연진이, 누나니까 혼자 갔다 올게! ...딴 데 가면 안 된다?”

 

 [4]

 “연진이 사탕 먹을래요?”

 

 “응! 먹을래!”

 

 어려진 회장을 돌보는 이 시간이 나한테는 공부며 훈련으로 팍팍한 학교생활 속 유일한 낙이다.

 

 반면, 회장은 자신의 능력이 상당한 콤플렉스로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부끄러운 모습을 그만큼 여럿 보였으니, 사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나마 정신 연령이 어려진 동안의 기억은 사라진다고 하니까. 불행 중 다행으로 이불킥거리가 쌓일 일은 없는 셈이다.

 

 그런데 회장이 왜 하필 나를 골랐는지, 내 어디를 믿고 자신의 약점을 드러냈는지는 의문이다. 만약 내가 회장 입장이었다면 적어도 동성인 친구에게 도움을 받았으리라.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덕분에 도도한 미녀가 어린 애처럼 떼를 쓰고 때론 애교를 부리는 귀한 광경을 나 홀로 직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연진이는 딸기맛이 좋아요, 오렌지맛이 좋아요?”

 

 “...아무거나 괜찮아.”

 

 “응? 아무거나라고 하면 오빠는 잘 모르겠는데? 무슨 맛 먹을래요, 빨리 골라봐요.”

 

 “...이제 그만! 연상을 그런 식으로 놀리지 마라!”

 

 게다가 쿨한 인상과는 다르게, 회장은 세상 물정 모르는 전형적인 아가씨 타입이어서 놀리는 맛도 일품이다.

 

 성격이 나쁘단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 나 스스로도 내가 기분 나쁜 녀석이란 건 인지하고 있고.

 

 그러니까 평상시엔 감히 엄두를 내지 않는다. 회장에게 이성으로서 접근할 엄두 말이다.

 

 같은 학생회 소속에 장난기가 많은, 그냥 좀 친한 후배. 그 정도만 해도 내겐 과분하다.

 

 [5]

 벚꽃이 화사하게 핀 4월의 첫날.

 

 만우절을 맞이해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이름하여 ‘응애를 부탁해’ 대작전.

 

 구체적인 계획은 이렇다.

 

 1. 회장에게 능력을 복사하는 아티팩트를 구했다고 거짓말을 친다.

 

 2. 회장의 능력을 복사했다고 말한 뒤 미리 준비한 차력쇼를 선보인다.

 

 3. 회장이 의심하기 전에 능력의 반동이 온 척 연기한다.

 

 오늘을 위해서 어제 공구실에서 망가진 책상을 가져왔다. 카메라 세팅도 완료했다.

 

 뻘짓도 정성을 담으면 예술이 되는 법.

 

 ─드르륵.

 

 마침 오늘의 주인공도 입장하셨겠다.

 

 “안녕하세요 선배. 저어, 봐주셨으면 하는 물건이 있는데요.”

 

 나는 주머니에서 장난감 반지를 꺼냈다.

 

 속으로 ‘이제부터 나는 다섯 살이다. 다섯 짤 코찔찔이가 된다’ 하고 되뇌면서.

 

 ***

 

 “누나! 나 심심해!”

 

 “시, 심심해? 남자애랑은 어떻게 놀아줘야 하지... 하고 싶은 건 없니? 인형놀이 할래? 앗, 숨바꼭질은 어때?”

 

 ‘크흡!’

 

 나는 젖먹던 힘까지 짜내 웃음을 참았다. 안면근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처음엔 자기도 오늘이 무슨 날인지 정도는 안다고, 놀리지 말라며 인상을 찌푸렸으나.

 

 내가 누나, 누나 하며 달라붙자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는 회장이었다.

 

 맨정신으로 이러려니 조금, 아니 솔직히 많이 부끄럽지만.

 

 참을 수 있다. 성공적인 몰래카메라를 위해서라면 말이다.

 

 회장이 너무 순진한 건지, 아니면 내가 연기에 소질이 있는 건지.

 

 어쩌면 둘 다일 수도 모르겠다.

 

 아무튼.

 

 회장은 내 수발을 들다시피 하며, 내 요구라면 뭐든지 들어줬다.

 

 손님 접대용으로 마련해둔 과자 세트도 꺼내오고, 유튜브로 신비 아파트나 요괴 워치도 틀어주고.

 

 심지어 동요에 맞춰 씰룩씰룩 율동을 추기도 했다. 회장의 동물 흉내는 “음메음메, 송아지-” 가히 압권이었다.

 

 “우, 우리 얀붕이, 배고프진 않니? 누나랑 맘마 먹을까요?”

 

 “까까 아까 먹어서 배 안 고파.”

 

 “그래? 그, 그러면 목은? 목은 안 말라? 누나가 음료수 줄까요...?”

 

 아, 재밌었다.

 

 그래도 이 이상 놀렸다간 역시 한소리 듣는 걸론 끝나지 않겠지. 이쯤에서 슬슬 만우절 농담이었다고 밝혀야겠다.

 

 ...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일이 터졌다.

 

 “자, 잠깐만 기다려 봐? 누나가 우유 줄게?”

 

 회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와이셔츠 단추를 위에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풀었다.

 

 내가 무어라 할 새도 없이 회장의 중심부가, 넘치는 존재감이 모습을 드러냈다.

 

 브래지어는 검은색. 주인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색깔이었다.

 

 “흣, 흐히힛.”

 

 회장은 어딘가 나사가 빠진 사람처럼 실실 웃으면서 하나뿐인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

 

 그쪽은 카메라가 있는 방향이어서, 그때만 해도 나는 ‘아, 그런가, 들켰구나. 반대로 놀려주려는 모양이구나’ 하고 안심했다.

 

 우리 회장님도 장난을 치려면 칠 줄 아는구나 감탄하기도 했다.

 

 ─찰칵.

 

 문 잠기는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