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치마를 두른 감우는 우울한 표정으로 도시락을 바라보았다.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서 동거인인 원준을 위해 열심히 만든 도시락이건만, 3술도 안 떴다. 맨날 외식만 하면 몸에 해롭다고, 가끔은 채소도 먹으라는 차원에서 준비한 도시락인데 결국 얼마 먹지도 않다니 감우로서는 섭섭할 따름이었다.

 

“역시 고기가 안 들어가서 그런 걸까요? 저번에 고기를 넣었을 때는 잘 드셨던데?”

 

감우는 기린의 일족인 자신이 육식을 전혀 하지 못하는 운명을 탓했다. 원준은 그녀랑 모든 게 달랐다. 육식을 즐기고, 근면함과는 담을 쌓았고, 사치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점심값 내놔.”

 

“또 외식인가요, 원준 씨? 도시락은요?”

 

“필요 없어. 또 비건 도시락인지 뭔지 줄 거 아니야? 맛대가리도 없는 걸 왜 자꾸 주는 거야?”

 

“하, 하지만 건강에…”

 

“아잇, 싯팔! 니 도시락 먹다가는 없던 병까지 다 걸리겠어! 물에 빠트린 고기가 고기냐? 정말 니 서방님 건강이 걱정된다면 먹고 싶은 걸 실컷 먹게 해주란 말이야?”

 

감우가 기껏 원준을 걱정해 줬건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폭언이었다. 그리고 이날도 감우는 원준을 위해 만들어준 도시락을 혼자 까먹으면서 한없이 울었다.

 

“오늘은 고기를 넣어줬는데, 흐끅…. 수육을 해줘서 그런 건가요? 그냥 고기를 구워줄 걸 그랬네요. 아니면 소금을 조금만 더 넣을 걸 그랬나요? 흐흐흑…….”

 

감우는 스스로를 탓하며 주먹으로 가슴을 두들겼다. 그녀는 티바트 대륙의 주민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인 원준을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감우가 특이체질인 것과는 별개로, 원준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고향 땅의 음식 때문에 우울할 수도 있으니까.

 

“그, 그래도 오늘 용돈은 넉넉히 챙겨줬는데… 그러니 몇 입이라도 드실 수도 있는 건데? 혹시 원준 씨가 저한테 질린 걸까요?”

 

감우는 얼굴을 감싸면서 조금씩 원준에 대한 원망을 드러냈다. 원준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그녀였기에 괴로웠다. 그래도 원준의 고충을 대략 알고는 있었다. 원준이 매일 만취해서 돌아와서는 지구라는 곳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릴 때마다 그 원망은 또다시 누그러진다. 언제나 그랬듯이 말이다.

 

“그래요! 원준 씨는 그냥 방황하는 것뿐이에요! 티바트와 지구는 여러모로 다르니까요! 그냥 흔히 겪는 적응의 문제라고요! 그렇고 말고요!”

 

감우는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원준을 향해 말하며 눈물을 닦고 웃었다. 어쩌다가 리월의 해안가에서 쓰러진 원준을 발견하고, 그에게 반해서 동거를 제안한 것도 감우였고, 원준이 일상적으로 무단결근 및 직무 유기를 하고 있다는 리월 관리들의 불만을 억누른 것도 감우였다. 원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감우가 잘 안다, 원준은 아직도 시간이 필요한 거다.

 

“원준 씨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저뿐이니까요. 그리고 원래부터 원준 씨가 저런 분은 아니니까요!”

 

감우는 원준이 근본부터 몹쓸 망종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가 날이면 날마다 포커와 마작에 빠지는 거? 지극히 당연하다. 그나마 티바트와 지구 사이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공통 분모니까. 그가 돈을 따든, 잃든 감우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원준이 그렇게나마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괴로움을 지울 수만 있다면 무슨 상관이랴? 원준이 세상에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오직 감우뿐이다. 그 생각에 감우는 근 며칠간 있었던 원준에 대한 모든 섭섭한 감정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자, 원준 씨. 실컷 놀다 오세요.”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감우는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미소를 지으면서 원준에게 100만 모라나 되는 거금을 내밀었다.

 

“뭐야? 돈 얘기도 안 했는데 알아서 나한테 바치다니? 심지어 오늘 평일이야? 또 출근 안 할 거라고,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요~ 다른 직원들에게는 잘 말해둘 테니까요. 대신 외식이라도 좋으니, 식사는 제때 하세요.”

 

“너 대체 왜 그래? 어디 아퍼? 나 오늘도 도박할 거야. 포커나 마작이나 해서 돈 왕창 잃을 거라고! 이러다가 리월 사람들이 나뿐만이 아니라 너한테도 손가락질 할 수 있다고! 남편 관리를 대체 어떻게 하냐고!”

 

신경질적인 원준의 반응에도 감우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원준의 등을 토닥여 주면서 그를 격려해 주기 시작했다.

 

“지위나 평판 따위는 스스로에게 떳떳하면 그만이고, 당신이 얼마나 돈을 잃든 제가 그 몇 배로 복구할 수 있어요. 설령 당신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마지막에는 제가 있으니 걱정 마세요, 원준 씨.”

 

“허! 혹시 내가 이 돈 가지고 홍등가라도 가면 그때는 어쩔 작정이야? 응?”

 

원준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감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녀가 정녕 제정신이라면 이 말마저 그냥 넘어가지는 않겠지? 그러나 감우의 대답은 의외였다.

 

“저와의 섹스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다른 여자를 품는 거면 얼마든지 그러셔도 상관없어요. 제가 부덕한 탓이지, 그게 어찌 원준 씨의 잘못이겠어요?”

 

* * *

 

“⋯.”

 

원준은 죽은 눈으로 리월의 어느 도박장에서 카드 패를 읽고 있었다. 그의 손패는 2, 6 투페어.

 

‘원준 씨? 이 돈 받으세요.’

 

어느 정도 완성된 그의 손패. 하지만 그는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감우가 오늘 그에게 한 행동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진배없다. 돈을 모조리 잃든, 반대로 따든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감우는 그가 도박하러 갈 걸 알면서도 그의 손에 선뜻 거금을 쥐여줬다.

 

‘하지만 게임을 하든, 홍등가로 가든 식사는 꼬박꼬박 챙겨 드세요.’

 

“씨발….”

 

2가 3장, 6이 2장인 풀하우스. 하지만 원준은 조금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어째서 감우는 그에게 그렇게나 관대하게 굴 수 있는 걸까? 감우가 미쳐서 그런 걸까? 아니면 원준이 미친 걸까? 세상에 어느 호구 같은 여자가 도박이나 매춘을 해도 좋다며 돈을 줄 수 있나?

 

“칫. 다이.”

 

결국 원준은 풀하우스를 들고도 죽어야만 했다. 감우를 생각하니 도저히 포커 따위에 집중이 되지 않아서다.

 

드르륵.

 

“나 왔어.”

 

“벌써 다녀오셨어요, 원준 씨?”

 

원준은 리월의 상류층 거주 구역에 위치한 감우의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감우가 바로 원준에게 달려오며 그를 반겼다.

 

“노는 게 질리셨어요? 아니면 피곤하세요?”

 

“아니, 그게 아니야.”

 

감우의 걱정 어린 시선에 원준은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원준은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감우가 아침에 그에게 줬던 100만 모라를 다시 돌려줬다.

 

“이제 괜찮아. 도박도 빡촌 가는 것도 다 집어치울래.”

 

“네? 어째서 갑자기 그런 말씀을? 제가 무슨 잘못을 한 건 아니죠?”

 

원준이 단호하게 말하자 감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원준은 눈치챌 수 있었다. 감우는 절대 일반적인 여성이 아니라는 것을! 보통의 여자라면 저 상황에서 동거인이 정신을 차렸다고 기뻐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감우는 그걸 반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워, 원준 씨. 어째서 돈을 돌려주신다는 거예요? 그거 다 잃으셔도 괜찮아요? 무의미한 곳에 써도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해요? 그러니….”

 

“나와. 나는 이 집을 나가야겠어.”

 

마침내 그 스스로 몇 번이나 구하려고 했던 의문에서 확신을 얻은 원준은 그의 앞을 가로막은 감우를 옆으로 밀어냈다. 뭔가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원준이 지구에서 티바트 대륙에 넘어온 순간부터 잘못되었다! 우연히 감우를 만난 것도 잘못되었고, 그녀가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를 이 집에 같이 살자고 제안한 것도, 리월의 관리로 특별채용해준 것도 잘못되었고, 그냥 모든 게 다 잘못되었다!

 

“어디 가시려고요?”

 

“놔! 넌 정상이 아니야! 어느 미친년이 자기 남자가 도박이나 유흥하는 걸 권장해?”

 

“원준 씨는 단지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라고요!”

 

콰당!

 

감우는 여전히 원준에게 따스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허나 그건 원준에게는 섬뜩한 뭔가로 느껴졌다.

 

“제발 기운을 내세요, 원준 씨! 당신이 누군지 잊지 말라고요!”

 

“내가 누군데? 대체 누구라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건데, 이 미친년아!?”

 

그리고 원준이 고함을 지르는 그 순간, 감우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당신은 제 남편이고, 저는 당신의 유일한 방파제예요.”

 

감우의 말이 어떠한 트리거가 되었을까? 원준은 그 말에 반응하기도 전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 * *

 

“원준 씨. 오늘도 잘 다녀오세요. 그 돈을 잃어도 좋으니까 부디 재미있게 놀다 오세요.”

 

“… 그래.”

 

원준은 초점을 잃은 눈으로 감우가 건네준 거액의 모라를 받고 집 밖을 나섰다. 그리고 감우는 작은 빨간색 동아줄이 감긴 인형을 들고서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 그 빨간색 동아줄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적혀 있었다.

 

‘부디 나만을 의지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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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의지해달라는 거 만화에서 많이 봤으니 잘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근데... 글로 쓰니깐 표현이 더럽게 안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