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가 적당한 어느 한 방에, 캐주얼한 복장을 입고 침묵을 지키는 두 남녀가 있었다.
아니, 침묵을 지키는 건 오직 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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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정신병원이다.
그로부터 3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대론 도저히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것만 같아,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주변의 시선을 감내하고 찾아 오게 되었다.
나는 인터넷을 찾아 이 근방에서 가장 후기가 좋은 병원을 찾아 방문하였다.
매체에서 다루는 정신병원과는 달리, 정신병원은 푸근한 분위기가 주를 이루었다.
얼추 시간이 지나자,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그러나 정작 바라던 정신과 의사를 만난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여느 의사와는 달리 가운을 걸치지 않고 캐주얼한 복장을 입은 것도, 병원 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 것도, 전부 환자의 심신을 안정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었다.
허나, 전부 무용지물이었다.
내가 여기까지 와서 겁을 먹은 이유는, 의사의 얼굴 때문이었다.
의사는 그녀와 똑닮아 있었다.
명찰에 쓰인 이름 석 자가 성씨를 제외한다면 그녀와 확연히 달랐음에도, 치밀어 오르는 공포가 나를 집어 삼키고 있었다.
그녀가 차트를 읽곤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얀붕씨, 얀붕씨 맞으시죠? 혹시 불편하세요? 불편하시면 조금 쉬고 계실래요?"
하곤, 나를 배려해 차를 내주며 정신을 가다듬을 시간을 내어주었다.
5분쯤 지났을까, 진정되며 식은땀과 떨림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 보통 트라우마라고 하죠? 아무래도 제가 트라우마 때문에 일상생활이 힘듭니다."
"음.. 혹시 괜찮으시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꺼려지시면 굳이 말 안 해 주셔도 됩니다."
"대학생 때였어요. 대학교 3학년 때.
친구 추천으로 만난 2살 연하 여자가 한 명 있었는데, 아직도 걔만 생각하면 식은땀이 멈추질 않아요."
그녀가, 경청하고 있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저도 처음엔 친절한 성격에 이끌려 자주 만났어요.
당연히 연인 관계까지 갔고요.
근데.. 근데 여자만 얽히면 평소랑 다르게 불같이 화를 내더라고요. 진짜 다른 사람처럼.
처음엔 저도 질투 때문인가 싶어 귀여워 했는데, 이게 점점 도를 넘는 겁니다."
그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해서일까, 숨이 점점 가빠와 어쩔 수 없이 말을 멈추었다.
나는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다시 그녀에 대해 말했다.
"제가 친구들이랑 좀 놀 때 밤에 연락이 안 되면 부재중이 1시간 만에 100개가 넘게 찍힙니다. 자고 일어나면 1000개가 넘게 찍혀 있고요. 새벽 내내 연락 했다는 거에요. 새벽 내내.
개 중엔 '얀붕이 오빠 어디야.' 같이 정상적인 것도 있었는데 '자취방 찾아가기 전에 빨리 전화 받아.' 같은 것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어요.
여기서 중요한 건, 전 단 한 번도 걔한테 자취방 위치를 알려준 적이 없다는 거에요."
"하루는 선물이라고 곰돌이 인형을 주길래 기쁜 마음으로 인형을 받아들었는데 안에 뭔가 딱딱한 게 만져지더랍니다.
그 왜, 있잖아요, 누르면 소리가 나는 인형이요. 처음엔 그건 줄 알았어요. 어딜 눌러도 그런 소리가 안 나길래 단순히 고장인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그냥 냅두고 지냈는데 알고보니 그게 소리를 내는 기계가 아니었어요.
하루는 대청소를 하다가 인형이 뜯어진 걸 봤습니다. 제 아버지가 기계를 고치시는 분이라 어깨너머로 본 게 있어서 내친김에 안에 있는 기계도 손을 좀 봐두려고 기계를 빼냈어요. 근데 그 기계를 아무리 해부해봐도 소리를 내는 기관이 없는 거에요. 나중에 검색해보니까 이게.. 이게 소형 도청기.. 더라구요."
"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어느날 새벽은 베란다에서 '덜컥' '덜컥' 하고 이상한 소리가 자꾸 나길래 창문을 살짝 열어 무슨 소린지 확인하려 했어요. 거기에 무엇이 있었는지 아시겠나요?"
"음 글쎄요.. 도둑이었나요?"
"아니에요. 그랬으면 말을 꺼내지도 않았을 거에요.
베란다에 있던 건.. 걔였어요. 호기심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지켜봤더니 자취방 안이 다 보이도록 베란다 천장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었어요.
그때부터 느꼈습니다.
'아 이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구나' 하고요."
"마침 그때가 대학교 졸업하고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을 때여서 사정사정해서 부모님 손 좀 빌려 다른 곳으로 이사를 좀 갔습니다. 그녀는 아직 대학교를 다니고 있던 터라 제가 어디로 갔는지 몰랐을 겁니다."
"이후엔 도망가듯이 아예 자취를 감췄어요. 전화번호도 폰도 바꿨고요.
직업도 구하고 바쁘게 살면 좀 나아질 줄 알았어요. 근데 그.. 트라우마 때문인가 아직도 그녀랑 비슷한 사람을 보면 막 떨리고 식은땀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어떻게 좀 하려고 찾아온 거에요. 평생을 이렇게 살 것만 같아서."
의사는 내 이야기를 모두 듣고 천천히 일어나 나를 등진 채 내 컵에 차를 따랐다.
그녀는 내게 다시 한 번 차를 내어주었고, 나는 목이 타 미적지근한 차를 반쯤 마셨다.
그걸 지켜본 의사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말이 너무 심하다. 트라우마라니.
나는 그걸 '그리움'이라 생각하는데. 아닌가?"
"차트 보고 긴가민가 했는데, 들어보니 내가 아는 얀붕이 오빠 맞더라구.
나 의과대학에 있던 거 기억해? 나 오빠 보려고 일부러 정신과 의사 됐어. 머리도 짧게 쳤고 이름도 바꿨어, 서프라이즈 해주고 싶어서.
번듯한 정신병원 차리면 언젠가 '그녀가 보고 싶다.' 라고 말하면서 상사병에 걸린 채로 나타날 줄 알았거든."
"그리고, 이렇게 오빠가 직접 찾아와 줬잖아. 난 이걸 운명이라 생각해. 오빠도 그렇지?"
상황을 파악한 나는, 튀어 오르듯이 달려가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손잡이는 이미 잠겨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그녀에 대해 설명했을 때부터? 아니면 내가 이 방에 들어설 때부터? 글쎄, 잘 모르겠다.
나는 벽에 등을 붙이고 절규했다.
"너.. 너 나한테 원하는 게 대체 뭔데.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그녀가 '또각' '또각' 소리를 내며 미소를 보인 채 다가오고 있었다.
"오.. 오지마. 다... 다가오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와."
다행이라고 할 점은, 그녀는 발악에 가까운 내 말을 듣고 그곳에서 움직이고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는 것이고,
다행이 아닌 점은, 몸이 떨리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1 두 번과 2 한 번을 누른 뒤 전화를 거는 간단한 작업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내 떨림은 멈추었다.
강제로, 멈추게 되었다.
이는 그녀가 내게 준 차에 약을 탔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그저 공포에 의해 쇼크 상태에 빠졌기 때문일까.
글쎄, 역시 모르겠다. 어쩌면 두 쪽 다일지도.
식은땀이 흐르던 몸에 점점 힘이 빠지더니, 그녀의 몇 마디 말만 겨우 들릴 뿐이었다.
"오빠, 이젠 도망 가게 안 둘 거야."
"집도, 혼수도, 돈벌이도 내가 다 할게. 그러니까, 오빠는 도장만 찍으면 돼."
"여기까지 잘 찾아왔어. 우리 둘이서만 평생 행복하게 살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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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단편)
캐주얼한 복장의 두 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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