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나왔어."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대부분 밤 늦게 들어오지만, 오늘 따라 더 늦게 들어 온 거 같다.



"왔어? 수고했어."



그래도 고생하고 온 애한테 쳐다도 보지 않고 인사를 하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아 두 손을 움직여 휠체어를 돌린다. 



밖에 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는 탓인지 홀딱 젖어있는 모습이다. 안 그래도 감수성 예민한 십대인데, 딱히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하고 온 것도 모자라 비까지 맞았으니, 얼마나 기분이 더러울까.



"목욕하고 옷부터 갈아입어."



그러니 최대한 신경을 건들지 않는 게 좋겠지. 그래서 난 매일 얀순이가 돌아오면 하는 형식적인 말만을 되풀이 할 뿐이었다.



"밥은?"



"먼저 먹었어."



"또 인스턴트 먹었지?"



대화가 끊겼다. 목소리 톤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지금 얀순이는 상당히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였다.



그래서 그 신경을 건들지 않기 위해 최대한 유야무야하면서 넘어가려 했건만... 아무래도 오늘은 일진이 좀 사나운 모양이다.



부스럭- 부스럭-



얀순이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무엇을 찾는지는 뻔하기에, 난 곧 몰아칠 얀순이의 잔소리에 대비하여 머리를 비우기 시작했다.



"내가 몸에 안 좋은 인스턴트는 먹지 말라고 했잖아. 가뜩이나 몸도 안 좋은데 이런거 먹어서 뭐하려고? 더 이상 이 세상에 미련 없다 이거야?"



날카로운 신경 만큼이나 매운 독설을 쏘아 붙인다. 물론 날 걱정 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는 건 알겠지만, 이러는 것도 한 두번이지.



"대체 왜 내 말을 안 듣는 거야? 아직도 내가 거리에 앉아서 울던 꼬맹이로 보여? 가뜩이나 요즘 일 때문에 머리 아픈데 적어도 아저씨 만큼은 날 내버려 둬야지."



"알았어. 미안해."



"늘 말로만 미안하지? 늘 그렇게 말해놓고 언제 한번 진지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한번이라도 보여준 적 있어?"



"나 지금 반성하고있어. 그리고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너 오늘 기분 안 좋은 건 알겠는데, 이쯤 하고..."



"반성하긴 뭘 반성해! 그렇게 말해놓고 내일이면 또 이딴거나 쳐먹을 거잖아!"



얀순이가 손에 쥐고 있던 인스턴트 포장을 바닥에 던진다. 



"...나도 이제 지긋지긋해. 아저씨 수발 들어주는거랑, 계속 아저씨랑 지내면서 이렇게 스트레스 받는 거..."



"얀순아..."



"짜증나니까 내 이름 부르지 마."



쾅-!



더 이상 나와 말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 건지, 얀순이는 씩씩거리며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얀순이가 방에 들어가고, 거실에 홀로 남은 난, 얀순이가 바닥에 던진 인스턴트 포장지를 들며, 생각에 잠겼다.



'...얀순이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얀순이가 행복했을까?'



시간을 거슬러 오래 전, 이름 없는 무명 킬러로 활동 했던 시절, 난 우연히 길에서 울고 있는 얀순이를 데려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땐 무슨 마음이었는지 모르겠다. 부모를 잃은 고아라는 점이 나와 비슷해서일까? 아니면 그저 단순한 동정심일까?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사람을 죽일 수 밖에 없었던 나로써는 어린 얀순이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거라고는 살인하는 방법 밖에 없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얀순이는 그런 내 가르침을 잘 따라왔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킬러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이렇게 아담한 집도 구하고, 이젠 더 이상 쓸모 없는 날 데리고 있을 정도로 실력이 있는 킬러가 된 얀순이었지만... 가끔씩 이렇게 얀순이를 데려오지 않았으면 얀순이가 어떻게 지냈을지, 상상해보곤 한다.



지나간 일에 만약은 없고,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지만... 만약 죽지 않고 독하게 살아남았다면, 이 킬러 일보다 훨씬 더 나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어쨌거나 아무래도 오늘은, 얀순이에게 잘 자라는 말을 하지 못할 거 같다. 



---



"으음..."



날이 밝아오니, 몸이 찌뿌둥하다. 평소라면 얀순이가 날 휠체어에서 들어내 침대에 눕혀주지만... 깜빡한건지, 아니면 의도적이었는지. 덕분에 휠체어에서 눈을 붙였다.



끼릭- 끼릭-



휠체어를 움직여 방을 벗어나, 거실로 나와본다. 



"......"



고요하다.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던것처럼. 아무래도 얀순이는 늘 그랬듯, 일찍이 집을 나선 모양이다.



킬러들은 늘 바쁘다. 아침 일찍 일어 나 의뢰 받은 타겟의 정보를 수집하고, 암살을 할 준비를 해야 하기에.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은 직업이다.



'마침 잘 됐네. 내가 밖으로 나간 걸 알면 얀순이가 노발대발 할 테니...'



혹시나 오늘은 의뢰가 없어 집에 있다면 어쩌나 싶었지만... 역시나 기우였나보다. 실력 있는 킬러는 늘 의뢰가 끊이지 않는 법이니.



끼릭- 끼릭-



얀순이와 함께 동거를 시작한 이후로는, 밖에 나가보질 못했다. 정확히는 얀순이가 밖에 나가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 상태가 이 모양이니...



'얀순이는 보나마나 늦게 들어 올 테니, 바깥 바람 실컷 쐬어도 상관없겠지.'



밖으로 나온 것이 얼마 만인가. 물론 전직 킬러이기에 내 본모습은 최대한 숨겨야 하기에 조금은 답답한 면이 있지만, 이게 어디야.



"앗, 선배!"



바깥으로 나온 내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가까운 곳에 있는 카페. 자동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빠르게 날 알아본 한 여자가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죠? 몸은 어때요?"



"아냐. 집 근처인데 뭐. 괜찮아."



내가 휠체어를 움직이려하자 빠르게 내 뒤로 다가와 휠체어를 이끄는 여자.



"제가 직접 집으로 찾아가도 되는데 말이죠."



"아냐. 청소 안 해서 더러워."



얀진. 킬러 시절, 얀순이를 알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한 후배다. 킬러를 은퇴하고 대부분 연을 끊었지만, 얀진이 만큼은 나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선배 얼굴 보는 거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네요. 은퇴하셨는데... 참."



"미안해. 얀순이가 나 걱정해서 그러는거니까 이해 좀 해줘."



"아직도 걔 데리고 다녀요? 이제 놓아 줄 때 되지 않았나."



"글쎄... 난 상관없는데, 걔는 아직 나한테 배울 게 남아 있나 봐."



"걔가요? 나 참- 선배 앞에서 이런 말하긴 좀 그렇지만, 선배 전성기보다 지금 걔가 훨씬 더 잘 나갈걸요?"



정곡을 찌르는 후배의 말에 움찔했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닌 거 같아 난 말 없이 어느샌가 나와있는 커피를 홀짝였다.



"그건 그렇고 넌 어때? 잘 지내?"



"저요?"



대화의 주제가 자신에게로 향하자, 얀진은 멋쩍게 웃으며 검지로 자신의 볼을 긁기 시작했다.



"저야 늘 똑같죠 뭐..."



"그래? 은퇴하면 좋은 남자 찾아서 결혼한다고 했던거 같은데, 아직 은퇴 안 한거 보니, 아직 못 찾았나봐?"



"아악! 선배! 그 얘기가 갑자기 왜 나와요!"



장난스럽게 꺼내본 말이지만, 예상보다 뛰어난 얀진의 리액션이다.



"농담이야. 농담.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



"으윽... 그, 그러는 선배야말로! 언제까지 얀순이 데리고 있을거에요? 지금 선배 나이면 벌써 애가 딸려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란 말이에요!"



"나 같은 아저씨를 누가 좋아하겠어. 그냥 너랑 얀순이가 좋은 남자 찾아서 결혼하는 거 보는 게 꿈인데."



내 말에 얼굴을 붉힌 채 날 째려보는 얀진. 내가 뭘 잘못했나?



"요, 요즘 좋은 남자 찾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요?"



"그런가? 하긴, 나 같아도 얀진이 너한테 쉽게 추근덕대진 못 할 거 같네. 젊었을 때 널 알았다면 어떻게 해보려고 했을 수도 있는데. 하하. 예쁘고 능력 좋으니까."



내 말을 듣더니, 충격을 먹은 듯 벙찐 채 날 쳐다보는 얀진.



"...네?"



"어... 기분 나빴어? 난 그냥 내가 생각하는 네 모습을 말한건데..."



"아니, 아니.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응? 예쁘고 능력 좋다고..."



"아니 아니, 그 전에요."



"쉽게 추근덕대지 못한다고..."



"그 다음에요!"



갑작스럽게 언성을 높이며 날 쏘아붙이는 얀진의 모습에 당황했지만, 난 입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젊었다면... 널 어떻게 해볼 수도 있었다는 거?"



드디어 얀진이가 원하는 답을 내놓자, 애써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미소를 짓는 얀진.



"저, 정말... 크흡...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응? 농담은 아니었지. 너 처음 봤을 때 눈에 확 띄었으니까."



"그... 그럼...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점점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에게 가까워지는 얀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지만, 그래도 대답은 해줘야 하니...



"무슨... 뜻이야? 지금도 너 예쁘다고 생각하냐고?"



"아뇨! 지금도 절 어떻게 해볼 생각이 있으신거냐구요!"



"장난 쳐? 너랑 나랑 나이 차이가 몇인데. 게다가 난 불편한 몸이고..."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탕-!



테이블을 손으로 치며, 내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얀진.



"선배가 몸이 어떻든, 선배 나이가 어떻든... 선배가 저한테 마음이 있었다고 한다면, 상관없어요."



"그게... 무슨 뜻이야?"



"저도, 선배 좋아해요."



"...엉?"



갑작스러운 고백에 정신 차릴 틈도 없이, 얀진의 목소리는 계속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전 지금까지 선배가 절 후배 그 이상도, 이하로도 보지 않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일찌감치 선배에 대한 마음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떨쳐낼 수가 없던거에요."



"무... 뭘..."



"선배에 대한 마음이요! 제가 지금까지 은퇴도 안하고 계속 킬러 일을 한 이유가 뭐 일거 같아요?"



"글쎄..."



"전 차라리 선배에게 갈 수 없다면 이대로 선배만 보다 늙어 죽으려고 했다구요! 거기다 얀순이까지 선배 곁에 있으니, 아예 그냥 선배만 바라보다 죽어버리자, 이 생각만 했는데..."



덥석-!



말을 끝내고 내 두 손을 잡은 얀진이 시선을 가까이 마주친 채,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



"그런데 이젠 선배도 저한테 마음이 있단 걸 알았으니... 이제부터 우리, 더 이상 선후배 사이가 아닌, 사랑하는 남녀 사이로써 지내봐요! 선배!"



"자, 잠깐만. 얀진아. 너 지금 너무 흥분한거 같은데..."



"네! 너무 흥분 돼요! 선배와 평생을 약속할 수 있다니, 정말 꿈만 같다구요!"



이후, 내 뒤로 와 내 휠체어의 손잡이를 붙잡은 얀진은, 내 귓가에다 대고 속삭였다.



"우리 이러지 말고, 선배 집에 가서 이야기해요. 얀순이도 어차피 알아야 할 테니, 집에 가서 얀순이 오는 동안 함께 미래에 대해 얘기하자구요."



"아, 아니. 잠깐..."



하지만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얀진은 싱글벙글 웃으며 내 휠체어를 몰아, 카페 밖을 나섰다.



---



"후우..."



한편, 쓰러진 남자들 사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총구를 바닥으로 향한 채, 쪼그려 앉아 숨을 돌리던 얀순은, 땅바닥을 보며 생각했다.



'어제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비도 와서 찝찝한데다, 하마터면 죽음의 경계를 넘을 뻔했기 때문에 매우 신경이 날카로웠던 어젯밤. 그 탓에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막말을 해버렸다.



'대체 왜 그런거야... 왜... 아저씨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어제 일을 곱씹을수록, 죄책감만 더해질 뿐이었다. 아저씨가 두 다리를 잃어버린 것은 자신을 구하려다 생긴 결과물인데, 오히려 그걸 붙잡고 죽네 마네 같은 소리나 하고 앉아있다니.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겠다. 아저씨에게 줄 선물도 가지고...'



오늘 집에 돌아가면 자신의 아저씨에게 무릎 꿇고 석고대죄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총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우웅- 웅-



그 순간 걸려온 전화. 혹시나 자신의 아저씨일까 싶어 다급하게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봤지만.



[의뢰자]



단숨에 마음이 팍 식어버리는 이름. 하지만 생계를 유지하려면, 이 전화를 받지 않을수는 없었다.



"...네."



[의뢰는 어떻게 됐나?]



"단 한 사람도 남김 없이 보냈습니다. 곧 현장 사진이 갈 겁니다."



[좋아. 역시 확실하군.]



"대금은 제 계좌로 입금해주세요. 그럼 이만..."



[잠깐.]



전화를 끊으려다,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의뢰자의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춘 얀순.



[의뢰가 하나 더 있네만.]



"오늘은 이 이상 일을 하기 싫습니다."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타겟이라서 말이야. 이 의뢰만 완료해주면, 대금을 10배로 쳐주지]



10배라는 어마어마한 수치에, 몸을 움찔거린 얀순. 



'지금 대금도 만만치 않은데... 10배라면...'



자신의 아저씨와의 미래를 위해 착실하게 자금을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완료한 대금의 10배라면, 당분간 의뢰를 나가지 않고 자신의 아저씨와 시간을 보내도 될 정도로 많은 금액이었다.



"...뭡니까."



[사진을 보내줄테니, 그 사진에 있는 여자를 암살하고 증거 사진을 보내게. 그럼 곧장 대금을 입금해주지.]



"...알겠습니다."



우웅-



이후 전화를 끊자, 진동이 울리며 도착한 한 장의 사진.



"...이 사람은..."



그리고 그것을 본 얀순의 두 눈은 흔들리며, 점점 커질 수 밖에 없었다.



---



"정말 얀순이와 만나도 괜찮겠어?"



"어차피 얀순이도 알게 될 텐데요 뭘~ 선배도 말했잖아요, 저랑 미래를 함께 할 생각이 있다고~"



결국 얀진을 데리고 와버린 집. 누군가를 데리고 오는 것. 특히 여자를 데리고 오는 건 죽도록 싫어하는 얀순인데...



"이제 킬러도 은퇴하고?"



"은퇴해야죠! 돈도 넉넉히 모아두었으니, 이 집보다 더 넓고 좋은 집에 가서 살 거에요!"



정말 나 같은 아저씨가 좋을까. 얀진이라면, 어떤 잘난 남자라도 잘 만나고 다닐텐데.



"그럼... 얀순이는?"



"네?"



얀순이 이야기가 나오자, 멈추어버린 휠체어의 움직임.



"나랑 네가 이 집을 나가버리면 얀순이 혼자 여기 지내게 될 텐데..."



"선배, 얀순이는 이제 성인이에요. 자기 앞가림 혼자 할 수 있다구요. 알고 있잖아요?"



"하지만..."



"가끔씩 보러 오면 되잖아요? 선배랑 같이 지내게 될 사람은 전데, 벌써부터 얀순이 걱정을 하면, 저 엄청 서운하다구요."



얀진이의 말을 듣고, 난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 얀진이 말대로 얀순이는 킬러로써, 혼자 앞가림을 할 수 있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증명해주고 있잖아? 얀진이 말대로, 가끔씩 찾아가면 되고...



그래도 갑자기 이렇게 얀순이와 떨어지게 된다니, 씁쓸한 건 어쩔 수 없...



툭-



"아저씨...?"



그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이에 손으로 휠체어를 돌려보니.



"야, 얀순아."



자신이 들고 있던 케이크 박스를 떨어뜨린 채, 떨리는 두 눈으로 나와 얀진이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이 사람이... 왜 이곳에..."



"아, 얀순아! 오랜만이야!"



얀순이와는 다르게, 여전히 천진난만하게 얀순이에게 다가가는 얀진이.



"나 기억나지? 너 어렸을 때 보고 그 이후로 못 봤던 거 같은데. 헤헤."



하지만 얀진이의 말에도 얀순이의 시선은, 나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아저씨... 이게 무슨 일이야?"



"일단 들어봐... 내가 다 설명할게."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선을 옮겨 얀진이를 노려보는 얀순.



"나가."



"응?"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운 채, 죽일 기세로 얀진이를 쳐다보는 얀순.



"여긴 아저씨와 내 보금자리야. 나가라고."



"아하하... 얀순아, 내가 왜 선배랑 여기 왔냐면..."



철컥-



얀진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 얀진의 복부에 겨눠진 얀순의 권총.



그 모습을 본 나와 얀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야... 얀순아... 너..."



"너 지금 뭐..."



타앙-!



"아악!"



"야, 얀진아!"



자신에게 총을 겨눈 얀순을 본 얀진이 그대로 빠르게 얀순의 총을 낚아채려 했지만, 빠르게 피한 뒤 그대로 얀진의 허벅지를 조준하고 쏜 얀순.



"끄으으... 으으..."



"얀진아! 괜찮아?!"



철컥-



내가 주저 앉은 얀진에게 다가가려하자, 얀진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는 얀순.



"다가 오지 마. 아저씨. 이 년 머리통 날아가는 거 보기 싫으면."



"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아니. 이렇게 하지 않아서 지금 같은 상황이 벌어진거야."



주저 앉아 고통을 호소하는 얀진을 보던 얀순의 차가운 시선이, 나를 향한다.



"잠시라도 흔들렸던 내가 바보 같아. 지금까지 내가 뭘 위해서 킬러 일을 해왔는지 진작에 깨달았어야 했는데..."



"무... 무슨 소릴..."



"아저씨."



얀순의 부름에 얀순의 눈을 본 난, 뭔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아저씨는... 받아들여야 해."



"어...?"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아저씨 때문이잖아... 그러니까... 받아 들여야 해."



"뭘..."



타앙-!



말이 이어가던 도중 당겨진 방아쇠. 



털썩-



이후, 총알이 머리를 뚫은 얀진은 그대로 즉사하여, 피를 흘린 채 바닥에 쓰러졌다.



"...어?"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 꿈일 것이다. 지금 내 앞에 쓰러진 채, 피를 흘리는 건, 얀진이가 아닐것이다.



얀진이의 떨리는 두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이후, 몇 초간 날 향하던 눈동자는 이내, 다시 허공으로 떨어진다.



"야... 얀진아..."



과연 내 앞에 있는 게, 방금까지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던 얀진이가 맞을까? 생기가 느껴지던 그 얀진이가... 정말 맞을까?



"얀진아!!"



쿠당탕-!



내가 얀진이의 이름을 울부짖자, 발로 차 날 휠체어에서 넘어뜨리는 얀순.



"생각해보니 휠체어도 필요 없겠네. 쭉- 내 방에서만 지낼 테니까."



"너... 너어...!!"



내가 분노를 표출하지만, 얀순은 허망한 듯, 초점 없이 빛을 잃어 탁해진 눈만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저씨, 나 오늘도 힘들었어. 어제처럼 수고했다고 해줘."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하지만 얀순이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엎드려 있는 내 팔을 붙잡아,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이렇게 쓰다듬으면서, 수고했다고 해줘."



"이거 놔...! 놓으라고!!"



더 이상, 내가 알던 얀순이가 아니었다. 길에서 울고 있다 구조 되어, 날 졸졸 따라다니며 일을 배우던, 그 얀순이가 아니었다.



"어제 일 때문에 그래? 내가 잘못했어. 그래서 화해도 하려고, 케이크도 사왔는데..."



"흐아아... 아아...!"



얀순의 말은 그 어디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여전히 바닥에 누워 눈을 뜬 채, 식어가고 있는 얀진이의 시체에 손을 뻗어 볼 뿐이었다.



"야... 얀진아... 얀진..."



"읏차."



어떻게든 기어가며 얀진에게 닿으려던 찰나. 갑작스럽게 뒤에서 날 껴안더니, 그대로 들어올리는 얀순.



"놔, 놔아... 제발 놔 줘..."



수영하듯 팔을 허우적거려보지만, 지치기만 할 뿐, 얀순의 품에선 벗어날 수 없었다.



"얀진아... 흐윽..."



"이번 의뢰를 끝냈으니 꽤 많은 대금이 들어올거야. 당분간... 밖에 나가지 않고 아저씨만 돌봐도 될 정도로 말이야."



"얀진아!!"



쿵-



내 처절한 외침은 무색해지게도, 얀순은 날 안은 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버렸고, 이후 고요해진 거실엔, 여전히 엎드려 있는 얀진의 시체만이 있을 뿐이었다.